‘인정받고 싶은 것뿐이야’라는 해석은 복잡한 행동을 정리하고 대응을 돕는다.
그러나 설명이 완성되면 당사자의 말은 필요 없어지기 쉽다. 무엇을 말해도 내 이론을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
이해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가설이지 대신 말할 권리가 아니다. 그 사람이 틀렸다고 고칠 수 있어야 한다.
해로운 행동을 막을 때도 원인을 전부 알 필요는 없다. 경계는 세울 수 있지만 사람 전체를 진단할 필요는 없다.
좋은 이해는 설명 안에 빈 의자를 남긴다. ‘나는 이렇게 보았는데, 너에게는 어땠니’라고 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