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이해가 흩어진 경험을 이어 줄 때 큰 안도감이 온다.

그러나 상대의 침묵도 친절도 모두 같은 두려움의 증거가 되면 어떤 사실도 설명을 고칠 수 없다. 이해가 울타리로 변한다.

좋은 설명은 무엇을 예상하며 어떤 사실 앞에서 수정될지를 말할 수 있다. 사람 전체가 아니라 특정 조건의 경향으로 남는다.

자기 이해의 가치는 설명이 아름다운 데 있지 않다. 이전과 다른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데 있다.

나에 대한 가설에도 검토 날짜를 둘 수 있다. 몇 주 동안 무엇을 설명하는지 적고 예외도 찾아보자. 오늘 고른 문장이 살아 있는 사람보다 오래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절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