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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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25편 · 02 / 25

제2편: 하나라, 가천하의 대가

지난 편의 결론은 이랬다. 선양의 구축은 세 세대 만에 무너졌다. 혈연이라는 잔여항이 풀려났고, 한 집안이 천하를 물려받는 가천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편의 결론은 이랬다. 선양의 구축은 세 세대 만에 무너졌다. 혈연이라는 잔여항이 풀려났고, 한 집안이 천하를 물려받는 가천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천하라는 말은 쉽다. 실제로 굴리려면 풀리지 않은 연립방정식 한 묶음과 씨름해야 한다. 우가 계에게 천하를 넘겨주면서 한 가지 질문에는 답이 나왔다. 천하를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가. 그러자마자 새로운 질문이 상자째 쏟아졌다. 하나라는 400여 년 동안 이 질문들에 부딪혔지만 어느 하나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했다. 뒤이은 왕조들도 계속 부딪혔다. 부딪히는 방식은 달라도 결과는 비슷했다.

하나라의 사료는 몹시 빈약하다. 『사기』 「하본기」는 수천 자에 불과하고, 『죽서기년』의 하대 기록은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고고학에서 얼리터우 문화를 하나라와 연결하는 일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한나라나 당나라를 논하듯 하나라의 구체적인 정치를 논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자료가 적은 탓에 오히려 사건보다 구조를 보게 된다. 사건은 전설일 수 있지만 구조는 전설이 아니다. 한 문명이 부족 연맹을 벗어나 세습 왕권으로 들어설 때 반드시 마주치는 구조적 문제들은 사료가 부족하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하나라의 이야기는 세 가지 구조적 문제에 관한 이야기다.

1. 첫 번째 문제: 어느 아들에게 물려줄 것인가

계가 왕위에 오른 일 자체는 크게 논란이 될 만하지 않다. 능력이 있었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후들이 지지했고 우의 위광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데 계가 죽고 나면?

계에게는 아들이 여럿 있었다. 『사기』에는 계의 아들 태강이 즉위했다고 나온다. 태강은 적장자였을까? 어떤 규칙에 따라 뽑혔을까? 전혀 분명하지 않다. 우리가 아는 것은 결과뿐이다. 태강이 즉위했고, 그다음 나라를 잃었다.

우연이 아니다. 가천하가 막 자리 잡았을 때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원칙은 명확했다. 그러나 ‘어느 아들에게 물려준다’는 규칙은 모호했다. 그 모호함 자체가 잔여항이다.

나중에 주나라는 적장자 계승제를 만들어 이 모호한 영역을 단단한 규칙 하나로 봉쇄하려 했다. 정실이 낳은 맏아들. 능력이 어떻든 무조건 그 아들이다. 장점은 명확하다는 데 있다. 다툴 여지를 없애준다. 대신 바보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도 있다. 주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자질보다 명확함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모호함 때문에 서로 싸우며 소모하는 힘이 어쩌다 바보 하나가 왕이 되었을 때 입는 손실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하나라에는 이 규칙이 없었다. 『사기』에 따르면 우부터 걸까지 열일곱 왕이 있었는데, 계승 방식은 혼란스러웠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잇기도 했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잇는 방식의 흔적도 보인다. ‘다음은 누구인가’에 안정적으로 답해줄 제도가 없었다. 권력을 넘길 때마다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협상은 언제든 충돌로 번질 수 있었다.

이것이 가천하가 치른 첫 번째 대가다. ‘가족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해결했지만, ‘가족 중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더 어려웠다. 다투는 사람들이 모두 한집안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이 권력을 빼앗으면 찬탈이라 부른다. 도덕적 대가가 따른다. 집안사람끼리 자리를 다투면 뭐라고 부를까? ‘나도 직계다.’ 도덕적 대가는 거의 0이 된다.

가천하는 경쟁을 바깥에서 안으로 끌어들였다. 외부 경쟁, 곧 선양 구축에서 ‘누가 더 덕이 있는가’를 겨루는 일에는 적어도 이론상 당사자들을 넘어서는 판정 기준이 있었다. 내부 경쟁에는 그런 기준이 없다. ‘우리 모두 우의 후손인데 왜 네가 되고 나는 안 되느냐’는 싸움이다. 혈연 자격은 같기 때문이다. 너도 우의 손자고 나도 우의 손자다. 차이는 나이와 적서뿐인데, 하나라에서는 장유와 적서를 따지는 규칙이 아직 단단한 제도로 굳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라 정치사의 상당 부분은 왕실 안에서 벌어진 계승 투쟁의 역사다. 이 문제는 뒤이은 상나라에서 더 격렬하게 되풀이된다. 이른바 구세지란(九世之亂)은 본질적으로 형에게서 동생으로 잇는 규칙과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잇는 규칙이 서로 싸운 사건이다. 아홉 세대를 싸우고서야 겨우 승부가 났다.

2. 태강이 나라를 잃다, 잔여항의 첫 반격

태강은 계의 아들이자 하나라의 세 번째 왕이다. 그의 이야기는 중국 정치사에서 ‘어리석은 군주가 천하를 잃는다’는 서사의 첫 틀이 되었다.

『사기집해』에 인용된 기록에 따르면 태강은 ‘사냥에 빠져 백성의 일을 돌보지 않았다’. 사냥에 정신이 팔려 정무를 내팽개쳤다는 이야기다. 유궁씨의 후예(后羿)가 틈을 타 권력을 빼앗았고, 도성에서 쫓겨난 태강은 끝내 타향에서 죽었다.

이 이야기는 이후 셀 수 없이 복사되고 붙여넣어졌다. 걸은 말희에게 빠지고, 주왕은 달기에게 빠지고, 유왕은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농락한다. 서사의 구조는 놀랍도록 똑같다. 군주가 향락에 빠지면 간신이나 외적이 빈틈을 파고들고, 천하가 어지러워진다. 이 틀 자체도 하나의 구축이다. 도덕으로 설명하는 구축. 정치적 실패를 개인의 품성 탓으로 돌리고, 구조적 모순을 ‘착한 사람 대 나쁜 사람’의 이야기로 줄여버린다.

그러나 태강이 나라를 잃은 진짜 구조적 원인은 ‘사냥에 빠졌다’는 설명보다 훨씬 깊다.

계가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덕분이었다. 우에게서 물려받은 위세, 그리고 자신의 실력. 태강 때가 되면 우의 위세는 두 세대를 거쳐 거의 바닥까지 닳아 있었다. 태강 자신의 실력은 어땠을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두 번째 계승자인 그는 우가 13년간 물을 다스리며 겪었던 담금질을 겪지 않았다. 계처럼 제후들 사이에서 자기 위신을 쌓아본 적도 없었다. 그의 정당성은 전적으로 혈연에 기대었다. ‘나는 계의 아들이고, 계는 우의 아들이다.’

혈연에 근거한 정당성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실력은 만들어주지 못하고 명분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태평한 시절에는 명분으로 충분하다. 관성이 작동하고,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예를 올리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에는 명분으로 부족하다. 위기를 넘으려면 자원을 동원하고, 군대를 지휘하고, 정치적 동맹을 맺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혈연을 따라 유전되지 않는다.

후예는 유궁씨의 우두머리였다. 유궁씨는 동이 계통의 부족으로, 애초에 하나라의 핵심 세력에 속하지 않았다. 선양 시대와 계의 창업기에는 중앙의 권위가 이런 주변 부족들까지 덮고 있었다. 감히 도전할 수도 없었고 굳이 도전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중앙의 권위가 속 빈 껍데기가 되는 순간, 권력자에게 명분만 있고 실력이 없는 순간, 주변 부족들의 원심력은 곧바로 풀려난다.

태강이 나라를 잃은 일은 근본적으로 도덕 이야기가 아니라 구조 이야기다. 가천하의 혈연 계승 장치에는 능력을 전달하는 기능이 딸려 있지 않다. 왕위는 물려줄 수 있다. 능력은 물려줄 수 없다. 위신도, 부족 연맹의 충성도 물려줄 수 없다. 앞선 두 세대는 창업자가 남긴 위세로 체제를 굴렸다. 세 번째 세대에 이르러 그 위세가 다하자 체제의 밑바닥에 있던 결함이 드러났다.

이 결함은 이후 모든 왕조가 마주했다. 한나라도 겪었다. 문경지치는 고조의 공신 집단이 남긴 유산에 기대었다. 당나라도 겪었다. 현종 이후에는 태종의 정관 시대가 남긴 제도적 유산에 의존했다. 명나라도 겪었다. 주원장 이후에는 후계자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제도 설계가 만들어놓은 관성에 기댔다. 해법은 제각각이었지만 문제의 뿌리는 같았다. 혈연은 명분을 전달할 뿐, 실력을 전달하지 않는다.

잔여항은 여기에 있다. 가천하라는 구축은 혈연을 잔여항에서 기반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혈연이 해결한 것은 ‘누구에게 자격이 있는가’였지, ‘누구에게 능력이 있는가’가 아니었다. 능력이 새로운 잔여항이 되었다. 선양 구축에서는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뽑았으므로 능력이 핵심이고 혈연이 잔여항이었다. 가천하에서는 뒤집힌다. 혈연이 핵심이고 능력이 잔여항이다. 잔여항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분만 바꾸었다.

정치 제도의 차원에서 잔여항 보존이 처음 온전하게 드러난 사례다. 잔여항은 없앨 수 없다. 재배분할 수 있을 뿐이다. 혈연을 잔여항에서 기반으로 바꾸면 능력은 기반에서 잔여항으로 밀려난다. 총량은 그대로이고 위치만 맞바뀐다.

3. 소강중흥, 구축의 첫 자기 복구

태강이 나라를 잃었다고 하나라가 곧바로 멸망한 것은 아니다. 그 뒤로도 지극히 복잡한 우여곡절이 이어졌다.

권력을 빼앗은 후예도 자리를 굳히지 못했다. 그의 심복 한착이 후예를 죽이고 권력까지 찬탈했다. 한착은 또 태강의 동생 중강의 후손인 상을 죽였다. 하나라 왕실은 거의 멸족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상의 아내 후민은 임신한 몸으로 친정인 유잉씨에게 달아나 소강을 낳았다. 소강은 유잉씨와 유우씨의 보호 아래 자라며 힘을 길렀고, 마침내 한착을 무너뜨리고 하나라의 통치를 되살렸다. 이것이 소강중흥이다.

소강중흥은 중국 정치사에서 처음 등장한 ‘나라를 되찾는다’는 서사다. 사건 자체보다 구조적 의미가 훨씬 크다.

첫째, 혈연 정당성이 얼마나 질긴지를 보여주었다. 소강이 나라를 되찾은 것은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낸 일이 아니다. 물론 그에게 능력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사실이었다. 유잉씨와 유우씨가 그를 거두어주고 도우려 한 것은 그 개인이 특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의 몸에 우의 피가 흘렀기 때문이다. 그 혈통이 사람을 모을 힘을 주었고, 깃발 하나를 쥐여주었다. 한착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부족들은 그 깃발 아래 모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태강이 나라를 잃은 일은 혈연 정당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소강중흥은 혈연 정당성을 대신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충분하지 않지만 대체할 수도 없다. 미묘한 자리다. 혈연 정당성이 필요조건이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다. 없으면 자리를 지킬 수 없다. 후예와 한착의 최후가 이를 보여준다. 있다고 자리를 지킨다는 보장도 없다. 태강의 최후가 이를 보여준다. 그래도 있으면 적어도 재기할 가능성은 남는다.

둘째, 소강중흥은 새로운 정치 서사의 원형을 만들었다. 잃었다가 되찾는 이야기다. 왕조는 끊길 수도, 찬탈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핏줄만 끊어지지 않으면 되살릴 가능성이 있다. 이후 이 서사는 거듭 쓰였다. 광무중흥이 그랬다. 북송을 이은 남송이 그랬다. 남명의 몇몇 작은 조정조차 이 모형을 끌어다 쓰려 했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잃었다가 되찾는다’는 서사는 더 깊은 곳에서 혈연 정당성을 강화했다. 중흥에 성공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셈이었다. 보라, 혈통이 맞으면 끊어져도 다시 이을 수 있다. 후대 사람들은 혈통의 힘을 더욱 믿게 되었고, 가천하 자체의 정당성을 근본부터 의심하려는 마음은 더욱 줄어들었다. 소강중흥이 복구한 것은 하나라의 통치만이 아니었다. 가천하라는 구축의 신용도 되살려놓았다.

하지만 신용을 회복한다고 결함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태강이 나라를 잃은 사건이 드러낸 구조적 문제, 혈연은 능력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소강중흥은 조금도 해결하지 못했다. 소강 본인은 유능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의 후손은 어떨까? 역사에서 보듯 하나라는 소강 이후에도 여러 대를 이어갔다. 좋은 왕도 나쁜 왕도 거쳐 마침내 걸에 이르렀다. 결함은 줄곧 거기 있었다. 다만 운이 좋을 때는 후계자가 마침 유능했고, 운이 나쁠 때는 마침 무능했다. 운에 기대는 체제는 좋은 체제가 아니다.

셋째, 소강중흥은 구축의 자기 복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드러냈다. 구축이 스스로 자신을 고친 것이 아니었다. 하나라의 제도에는 잘못을 바로잡는 내부 기능이 전혀 없었다. 해임 장치도, 섭정 제도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비상 절차도 없었다. 복구를 해낸 것은 바깥의 힘이었다. 유잉씨가 거두어주었고, 유우씨가 지원했으며, 소강 개인의 군사 능력과 정치적 수완이 있었다.

그러므로 가천하 구축의 ‘복구’는 사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순환이 새로 한 차례 돌아간 것이다. 옛 구축인 태강의 하나라는 공격에 뚫려 무너졌다. 그것을 되살린 것은 옛 구축 내부의 힘이 아니었다. 도망 다니던 소강이라는 주변 인물이 구축 바깥에서 힘을 모은 뒤 폭력으로 질서를 다시 세웠다. 소강의 행동은 구조상 계의 행동과 같다. 실력으로 현상태를 깨뜨리고, 혈연으로 그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구축은 스스로 복구되지 않는다. 복구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다시 구축하는 일이다. 이 역시 이후 거듭 등장하는 모형이다. 광무제는 전한을 고친 것이 아니다. 후한이라는 새 구축을 세운 뒤 유씨 혈통을 내세워 ‘복구’라고 주장했다. 복구 서사는 새 구축이 정당성을 얻기 위한 전략이지 사실의 묘사가 아니다.

4. 걸, 구축의 끝인가 서사 틀의 시작인가

하나라의 마지막 왕은 걸이다. 전통 서사가 그린 걸의 얼굴은 지독히 정형화되어 있다. 힘은 장사지만 포악무도하고, 여색에 빠져 말희에게 정신을 빼앗기고,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인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숲처럼 매달아 향락을 즐기며, 충직하고 어진 신하들을 해친다.

이 초상에는 진실이 얼마나 담겨 있을까?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서사 구조는 뒤에 나오는 주왕, 진 이세, 수 양제의 이야기와 거의 똑같다.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후대 사람들이 하나의 틀에 맞추어 걸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보는 편이 더 그럴듯하다. 바로 ‘마지막 왕은 혼군이었다’는 틀이다.

이 틀에는 정해진 구성이 있다. 군주에게 완력은 있으나 덕은 없다. 가무와 여색에 빠지고, 어진 신하는 멀리하며 소인배는 가까이한다. 나라를 망치는 미녀가 한 명 등장하고, 마침내 덕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상나라 탕이 하나라를 멸한 뒤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만든 틀이다. 이후 왕조를 세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것을 가져다 앞 왕조의 마지막 군주에게 씌웠다.

왜 이런 틀이 필요했을까? 가천하라는 구축 안에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천명과 혈연의 관계다.

가천하의 논리는 이렇다. 천명은 어느 한 집안에 있고, 그 집안이 대대로 물려받는다. 그런데 천명이 영원히 그 집안에 있다면 왕조 교체는 정당화될 수 없다. 앞 왕조를 무너뜨리는 것은 곧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 이미 천명이 옮겨갔음을 입증하지 않는 한. 천명은 왜 옮겨갈까? 앞 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덕을 잃었기 때문이다. 덕은 천명의 조건이다. 덕을 잃으면 천명도 떠난다.

이 논리의 절묘한 점을 보자. 가천하, 곧 천명이 한 집안에 있다는 원칙과 왕조 교체, 곧 천명은 옮겨갈 수 있다는 원칙을 동시에 지켜낸다. 모순되는 두 명제를 함께 살려두는 방법은 밸브 하나를 다는 것이다. ‘덕’이라는 밸브다. 덕이 있으면 천명이 머물고, 덕이 없으면 천명이 옮겨간다. 평소에는 밸브가 닫혀 있으므로 천명도 움직이지 않는다. 왕조가 바뀔 때만 열리고, 그때는 천명이 옮겨간 것이 된다.

하지만 이 해법에도 비용이 든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앞 왕조의 마지막 군주에게 덕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입증 방법은 마지막 혼군의 서사를 만드는 것이다. 걸의 이야기는 이 생산 라인에서 나온 첫 번째 제품이었다. 주왕의 이야기가 두 번째다. 그 뒤 2천 년 동안 새 왕조는 하나같이 앞 왕조의 마지막 황제에게 ‘덕이 없다’는 딱지를 잔뜩 붙여야 했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관계없었다.

걸의 진짜 역사적 의미는 여기에 있다. 정말 나쁜 황제였을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서사 틀의 원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천하라는 구축은 자기 논리의 앞뒤를 맞추려면 반드시 이 틀을 생산해야 했다. 가천하는 왕조 교체를 설명해야 했고, 마지막 혼군의 서사가 그 설명 방식이었다.

잔여항의 관점에서 보면 마지막 혼군의 서사는 잔여항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천명은 영원하다는데 왕조는 바뀐다. 이 내적 모순은 가천하 구축의 잔여항이다. 왕조가 실제로 바뀌므로 이 잔여항을 없앨 수는 없다. 서사로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이야기로, 도덕적 교훈으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바꾼다. 이 서사 전략은 엄청나게 성공했다. 2천 년 동안 제도의 차원에서 가천하 자체를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비판은 모두 개별 황제를 향했다. 이 황제는 너무 어리석고 저 황제는 너무 포악하다. 제도 자체는 좋은데 운이 나빠 나쁜 사람을 만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혼군의 서사는 가천하 구축을 보호했다. 모든 공격을 개인에게 돌려 제도는 무사하게 했다. 왕조 교체는 매번 ‘제도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바꾸는 일’로 설명되었다. 사람은 바뀌어도 제도는 그대로다. 가천하는 죽을 때마다 다시 태어났다. 죽은 원인을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사람의 실패로 돌리는 방식으로.

잔여항 관리의 고급 기술이다. 잔여항을 해결하지 않는다. 잔여항을 서사로 바꾸어 서사가 대신 충격을 흡수하게 한다. 구축 자체는 거듭된 붕괴를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통과했다. 붕괴할 때마다 서사가 그것을 ‘설계 결함’이 아닌 ‘운용 실수’로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5. 하나라의 유산, 가천하의 바탕 코드

하나라가 후대에 남긴 것은 구체적인 제도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라의 제도를 거의 모른다. 남긴 것은 체제 밑바탕에 깔리는 세 가지 코드다. 이후 모든 왕조가 이 코드를 실행했다. 대부분 자기가 실행하는 줄도 모르면서.

첫 번째 코드: 혈연 계승이 기본값이다.

우가 계에게 천하를 물려준 그 순간, 이 코드는 중국 정치의 운영체제에 새겨졌다. 이후 2천 년 동안 어떤 정치 개혁도 이 코드를 근본부터 건드리지 못했다. 과거제로 관리를 뽑는다고? 관리 선발이지 황제 선발이 아니다. 내각제는? 행정 체계일 뿐 황위 계승에는 영향이 없다. 모든 제도적 혁신은 이 코드의 상위 층에서 돌아갔을 뿐, 코드 자체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왕조 하나를 뒤엎고 새 왕조를 세우는 일조차 본질적으로 이 코드를 수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코드를 실행할 집안만 바꾸는 일이었다. 유방의 한나라가 영정의 진나라를, 이연의 당나라가 양광의 수나라를, 조광윤의 송나라가 시영의 후주를 대신했다. 바뀐 것은 코드를 실행하는 집안이지 코드 자체가 아니다.

이 코드의 실행이 중단된 것은 1912년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실행 중단은 완전 삭제와 다르다. 위안스카이가 황제를 자칭한 것은 이 코드를 재시동하려는 일이었다. 그 뒤의 정치에서도 최고 권력을 누가 잇는지가 더는 혈연으로 결정되지 않을 뿐, ‘누구 사람인가’, ‘어느 줄인가’, ‘어떤 출신인가’라는 말 속에는 가천하 코드의 그림자가 여전히 어른거린다.

두 번째 코드: 능력은 잔여항이다. 운에 맡겨야 한다.

가천하라는 구축은 후계자의 능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해결할 수도 없었다. 뒤에 주나라가 내놓은 적장자 계승제는 자질을 희생하고 확실성을 택한 방안이었다. 어진 사람을 뽑거나, 유능한 사람을 세우거나, 후보를 검증하는 다른 방안들은 실행이 불가능하거나 대가가 너무 컸다. 전자는 정보가 부족해서였고, 후자는 내부 다툼을 부추겨서였다. 결국 모든 왕조는 ‘확실성’과 ‘자질’ 사이를 오갔고, 둘 다 얻을 방법은 찾지 못했다.

이 문제를 풀 수 없는 까닭은 어느 특정 제도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가천하라는 구축의 논리 자체가 거기서 한계에 닿기 때문이다. 혈연을 계승의 첫 번째 원칙으로 삼는 순간 능력은 영원히 두 번째가 된다. 그런데 정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 모순은 화해시킬 수 없다. 관리할 수 있을 뿐이다. 보정대신을 두고, 외척에게 섭정을 맡기고, 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내각에 권력을 나누어주는 등 관리 방식은 다양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근본 해법은 되지 못했다.

세 번째 코드: 마지막 왕은 혼군이었다는 서사.

앞서 말했듯 이것은 잔여항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가천하 구축 자체를 지켜주는 대신 왕조의 마지막 황제들이 역사에 남길 얼굴을 희생시킨다. 실제로 형편없는 마지막 황제도 있었다. 걸은 정말 나쁜 왕이었을지 모른다.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황제도 있었다. 숭정제가 혼군이었을까?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서사는 사실에 맞는지보다 쓸모가 있는지에 관심을 둔다. 마지막 혼군 서사의 기능은 새 왕조에 정당성을 주면서 가천하라는 바탕 코드가 의심받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코드가 하나라의 진짜 유산이다. 하나라의 어느 왕 한 사람이 의식적으로 설계한 것이 아니다. 우가 계에게 물려준 때부터 걸이 나라를 잃을 때까지, 400여 년에 걸쳐 조금씩 가라앉아 쌓인 것이다. 법을 만들거나 책을 써서 남긴 것이 아니라 되풀이된 실천이 기본 패턴으로 굳어진 것이다. 기본 패턴은 법보다 오래간다. 법은 고칠 수 있지만 기본 패턴은 사람들이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려야 비로소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개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장 오래 실행되는 코드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코드다.

6. 철학적 주석 하나: 세대를 거치며 약해지는 구축

하나라의 이야기는 한층 더 깊은 구조적 법칙도 드러낸다. 구축의 세대 간 감쇠라고 부를 만하다.

우는 깎아내고 구축한 사람이다. 13년 동안 물을 다스렸다. 이것이 깎아내기다. 부족 연맹에서 세습 왕권으로 넘어가는 새 질서를 세웠다. 이것이 구축이다. 깎아내고 구축한 사람은 그 구축을 몸소 이해한다.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 어디가 타협의 산물인지, 어디에 위험이 숨어 있는지 안다. 이것은 지식으로 아는 일이 아니다. 몸으로 아는 일이다.

계는 구축을 처음 물려받은 사람이다.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것은 아니어도 깎아내고 구축하는 모습을 보기는 했다. 그의 이해는 한 다리 건너온 것이지만, 적어도 몸으로 느낀 흔적은 남아 있었다.

태강은 구축을 두 번째로 물려받은 사람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구축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는 성과만 알았다. 왕위는 내 것이라는 사실. 대가는 몰랐다. 깎아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의 이해는 두 다리 건너온 것이었고, 몸으로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태강의 세대가 되면 구축은 공기와 같다. 들이마시며 살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왕권은 지켜나가야 하고, 부족 연맹은 공들여 유지해야 하며, 정당성은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태어날 때부터 거기에 있었으니까.

이것이 세대 간 감쇠다. 구축을 물려받는 사람은 대를 거듭할수록 앞 세대보다 구축을 덜 이해한다. 더 멍청해서가 아니라 깎아내기의 경험에서 더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깎아내기는 고통스럽고, 고통은 이해를 낳는다. 깎아내기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구축이 왜 저 모양이 아니라 이 모양인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왜 이 부분은 건드리면 안 되고, 저 부분은 줄이면 안 되는지 알 수 없다.

세대 간 감쇠는 가천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떤 세대가 세운 체제든 후대로 넘겨지는 과정에서 창조자가 몸으로 알던 지식을 잃어간다. 기업 창업자와 2세 경영자의 관계도 같은 구조다. 다른 점은 기업은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왕조가 실패하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하나라는 세대 간 감쇠가 온전히 드러난 첫 사례다. 우는 깎아내고 구축했다. 계는 구축을 지켰다. 태강은 구축을 잃었다. 소강은 다시 깎아냈다. 그리고 순환이 재시동되었다. 소강 이후의 하나라도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약해졌다. 마침내 걸에 이르러 다시 임계점 아래로 떨어지자 상나라 탕이 깎아내러 왔다.

훗날 사람들은 이 패턴을 흔히 ‘부자는 삼 대를 못 간다’고 불렀다. 그러나 이 속담은 문제의 구조적 성격을 가린다. 3대째가 유난히 못나서가 아니다. 3대째에 이르면 처음 깎아내고 구축한 사람이 몸으로 알던 지식이 이미 닳아, 구축을 정상적으로 굴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3대는 원인이 아니라 문턱이다. 어떤 왕조는 천천히 약해져 5대, 6대까지 버틴다. 어떤 왕조는 빨리 약해져 두 세대 만에 문제가 생긴다. 속도는 달라도 구조는 같다.

7. 다음 이야기: 제사의 구축, 상나라가 택한 다른 길

하나라는 상나라에 멸망했다. 상나라 탕이 걸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그러나 상나라는 하나라의 복사판이 아니었다. 상나라 사람들은 하나라와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조직했다. 그 길의 중심에는 제사가 있었다.

하나라 권력의 기반은 혈연과 무력이었다. 정신적 차원에서는 흐릿한 상태에 머물렀고, 체계적인 이념을 형성하지 못했다. 상나라 사람들은 달랐다. 조상 숭배와 정치권력을 한데 묶고, 점복과 제사, 순장을 핵심으로 하는 신권의 구축을 만들어냈다. 이 구축에서 왕은 정치 지도자일 뿐 아니라 하늘 및 조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자였다. 왕의 정당성은 혈연 자체에서 나오지 않았다. 혈연도 여전히 중요했지만, 근원은 하늘과 인간 사이를 잇는 그만의 독특한 자리에 있었다.

중대한 발전이었다. 하나라의 혈연 구축이 ‘왕위에는 누가 앉아야 하는가’에만 답했다면, 상나라의 제사 구축은 ‘왕은 왜 왕인가’에 답하려 했다. 한층 더 깊은 정당성의 문제였다.

그러나 제사 구축에도 그 나름의 잔여항이 있었다. 왕권과 신권을 한데 묶었기에 신권의 기반이 흔들리면 구축 전체가 진동했다. 점괘가 불리하게 나온다든지, 다른 누군가가 자신도 신과 통한다고 주장한다든지 하면 그랬다.

더구나 제사 구축은 계승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상나라 초기의 구세지란은 본질적으로 형에게서 동생으로 잇는 규칙과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잇는 규칙이 뒤엉켜 벌인 싸움이었다. 제사 구축은 정당성의 서사를 내놓았지만 계승 규칙은 내놓지 않았다. 두 문제는 따로 처리되었을 뿐 하나로 통합되지 않았다. 그 통합되지 못한 상태 자체가 잔여항이다.

다음 편: 상나라, 왕이 무당이기도 할 때.

한국어 독자의 맥락과 호흡에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쓴 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