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소식을 누가 맡을 것인가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天下莫柔弱于水,而攻坚强者莫之能胜也,以其无以易之也。水之胜刚也,弱之胜强也,天下莫弗知也,而莫之能行也。故圣人之言曰:受邦之垢,是谓社稷之主;受邦之不详是为天下之王。正言若反。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잘되지 않은 날의 책임자
계획이 성공한 날에는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실패한 날은 다르다. 누가 결정했고 누가 막을 수 있었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면 각자의 담당 범위가 갑자기 좁아진다.
그 가운데 먼저 바깥으로 나가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인정하고 피해를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필요한 대응을 시작한다. 전부 자기 탓이라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 있는 자리에서 사정이 나빠지자마자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제78장의 ‘受邦之垢,是謂社稷之主’는 좋은 것을 받는 자리와 어려운 것을 맡는 자리를 분리하지 않는다. 주인이라는 지위가 빛나는 쪽에 설 권리뿐이라면 무엇인가 빠져 있다.
그러나 이 장은 지도자 이야기로 바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물의 부드러움을 보여 준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를 놓는다.
2. 물이 작용하는 조건
‘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強者莫之能勝也,以其無以易之也.’ 물의 부드러움과 단단한 것에 작용하는 힘이 대비된다. 역(易)을 대신한다는 뜻으로 읽어 물을 대체할 것이 없다고 이해하는 것은 유력한 방향이지만, 다른 주석의 가능성을 모두 배제할 필요는 없다.
돌은 단단한 것에 부딪칠 수 있지만 스스로 깨지기도 한다. 솜은 부드럽지만 그 사실만으로 돌을 깎지는 않는다. 물의 움직임에는 상대의 단단함을 그대로 흉내 내지 않고 시간과 흐름으로 작용한다는 의외성이 있다. 물방울과 흐르는 물이 바위를 깎고 지형을 바꾸는 모습이 그 상상을 받친다.
다만 물은 무엇을 당해도 상하지 않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기는 만능의 존재가 아니다. 흐름이 막히거나 다른 곳으로 돌려지며 증발하기도 한다. 침식도 암석의 성질과 유량 같은 조건에서 일어난다. 비유를 살리려고 조건을 없앨 필요는 없다.
현대의 워터젯도 흥미로운 예지만, 강철을 자르는 힘이 부드러운 물을 한곳에 모으는 데서만 나온다고 설명하면 부정확하다. 장비 제조사의 설명에 따르면 금속 같은 단단한 재료에는 고압수에 연마재를 더한 방식이 쓰인다. 장치와 재료와 힘의 조합이 작동하는 것이다.
제8장의 ‘上善若水’로 돌아가면 중요한 것은 물을 마법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단단한 자세를 계속 보여 주는 것 말고도 작용할 방법이 있다. 물은 그 상상을 넓혀 준다.
3. 책을 읽던 나는 말다툼 자리에 없다
‘水之勝剛也,弱之勝強也,天下莫弗知也,而莫之能行也.’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거리가 극단적인 말로 드러난다. 온 인류가 문자 그대로 알고 한 사람도 못 한다는 조사 결과는 아니다.
채택 본문은 물이 굳셈을 이기는 데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쪽으로 가고, 통행본은 약함과 부드러움의 대비를 나란히 놓는다. 앞의 문장은 물의 모습을 바로 다음으로 운반하지만, 뒤의 문장이 반드시 흐름을 망가뜨린 것은 아니다. 어느 쪽에서도 이해가 그대로 행동이 되지 않는 어려움을 들을 수 있다.
조용한 시간에는 상대 말을 듣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그런데 회의에서 내 제안을 부정당하는 순간 설명하려던 말이 반격으로 바뀐다. 사과하려던 문장 가운데 변명이 끼어든다.
읽을 때 없던 것이 실행의 자리에는 있다. 분노, 부끄러움, 시간 압박, 이전의 관계다. 지식이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작동할 조건도 필요하다. 제70장에서 보았듯 연습과 주변의 지원은 이해의 반대가 아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침착하겠다고 맹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잠시 자리를 비울 수 있게 하고, 답을 미루는 말을 준비하고, 도움을 청할 사람을 정한다. 평온하지 않은 나도 쓸 수 있는 형태로 아는 말을 조금씩 옮겨 간다.
4. 맡는다는 것은 감춘다는 뜻이 아니다
‘受邦之垢,是謂社稷之主;受邦之不詳,是爲天下之王.’ 나라의 때와 치욕, 불길한 어려움을 받는 사람에게 주인과 왕의 자리가 연결된다. 수(受) 한 글자로 모든 것이 자유로운 선택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책임 있는 사람이 스스로 맡는다는 윤리적 방향에서 생각한다.
사고를 설명한다. 계획 중단을 당사자에게 알린다. 인력에 관한 고통스러운 결정의 이유와 지원을 자기 말로 이야기한다. 하기 싫은 일을 낮은 지위의 사람에게 떠넘기고 자기 평판만 지킨다면 그 지위는 무엇을 맡고 있는가. 다만 설명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 결정 자체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필요성과 다른 선택지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어려움을 맡는 것과 거짓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다르다. 부하를 지킨다며 사실을 숨기고 부정을 없던 일로 하고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한다면 정직한 책임이 아니다. 진실을 설명하고 책임을 공정하게 나누며 피해 회복을 진행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제한 희생이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감정적 공격을 혼자 계속 받으며 휴식과 지원도 없는 사람에게 더 많은 오욕을 떠안으라고 할 수는 없다. 맡는 일에는 권한과 자원과 동료와 경계가 필요하다.
어려운 때 남은 사람에게 신뢰가 자랄 수 있다. 하지만 고통의 양만으로 지배할 자격이 생기지는 않는다. 사람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자리는 설명과 검증을 피할 수 없다. 누군가의 헌신을 칭찬하는 것으로 구조의 부족함을 덮지 말아야 한다.
5. 방과 국이 알려 주는 문자의 역사
채택 본문의 방(邦)에 비해 통행본에는 국(國)이 보인다. 한 고조 유방의 이름을 피하는 관습은 그 차이를 생각할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다. 다만 모든 시기와 사본에서 방을 일률적으로 국으로 바꾸었다는 단순한 규칙으로 만들 수는 없다.
출토된 백서도 역사 밖에 보존된 저자 친필 원고는 아니다. 각각의 필사와 전승을 거친 자료이며 글자 모양과 문구에 차이가 있다. 오래된 자료를 발견한 가치는 손대지 않은 유일한 정답을 되찾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의 완성된 원문이라고 생각하던 것에 여러 내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피휘와 필사와 독해의 선택이 말의 모습에 관여해 왔다. 여기에 실린 채택 본문 역시 그런 차이를 바탕으로 선택한 텍스트다.
이문을 알면 독서가 불안정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가 글자이고 어디서부터 해석인지 더 세심하게 나눌 수 있다. 물의 작용을 한 가지 성질에 가두지 않듯 말의 역사도 하나의 이야기 안에 가두지 않고 싶다.
6. 거꾸로 들린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正言若反.’ 바른 말이 거꾸로 하는 말처럼 들린다. 부드러운 물의 작용, 알면서 못 하는 우리, 좋은 것보다 먼저 어려움을 받는 책임자. 이 장의 장면을 돌아보면 마지막 말이 울린다.
통행본의 표현으로는 제41장의 ‘明道若昧,進道若退’, 제45장의 ‘大成若缺,大直若屈’도 겉모습에 대한 판단을 한 번 멈추게 한다. 밝아 보이는 것만 밝음이 아니고 곧아 보이는 것만 쓸모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바른 말은 거꾸로 들릴 수 있다는 데서 거꾸로 들리는 말은 바르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뜻밖의 주장 중에는 그냥 틀린 것도 있다. 듣기 거북함이나 독창성은 그 자체로 증거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이유와 조건과 결과를 살피는 일이다. 물은 어떤 조건에서 작용하는가. 책임을 맡은 결과 누가 보호받고 누가 침묵하게 되었는가. 상식을 뒤집는 아름다움을 즐긴 뒤에도 그 검토를 남겨 두고 싶다.
7. 어려운 한 일을 공정하게 맡기
다음에 일이 잘못되면 자기 평판을 지키는 설명부터 시작하지 않고 영향을 받은 사람이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생각한다.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말하고 지금 할 수 있는 대응을 보여 준다.
팀을 지킨다면서 밖에서는 무엇이든 자기 탓이라고 하고 안에서는 화를 쏟아 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실을 공유하고 누구에게 어떤 판단이 가능했는지 살피며 같은 부담이 반복되지 않도록 한다.
늘 받아 내는 사람이라면 그 역할을 나누어도 된다. 도움을 구하고 할 수 없는 범위를 말하는 것은 책임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자기 한 사람이 망가질 때까지 받는 구조는 주변에도 오래 의지할 버팀목이 되지 않는다.
아는 말 하나를 쓸 수 있는 행동으로 옮긴다. 되받기 전에 듣는다. 나쁜 소식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설명하는 자리에 함께 있다. 극적이지 않아도 된다. 실제의 한 번이 다음 한 번의 방법을 조금 바꾼다.
8. 물에서, 사람이 남아 있는 자리로
물의 이미지는 제8장과 제43장을 거쳐 여기로 이어졌다. 낮은 자리의 힘은 제66장에서 강한 쪽이 받치는 제76장을 지나, 여기서 보기 좋지 않은 책임에 닿는다.
이 장면들은 부드러운 사람이 반드시 마지막에 이긴다는 하나의 증명이 아니다. 힘을 과시하는 것과 쓸모 있게 사용하는 것을 따로 생각하기 위한 이미지들이다.
다음 장에서는 큰 원한을 풀어도 남는 것에 관해 생각한다. 설명했다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사과했다고 끝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어려운 소식을 맡는 일 뒤에는 곧장 없어지지 않는 아픔을 대하는 시간도 있다.
자리에 남는다는 것은 전부 혼자 삼키는 일이 아니다. 사실을 숨기지 않고 필요한 사람을 모으며 회복의 길을 닫지 않는 것이다. 책임자의 이름은 그 일에서 떠나지 않기 위해 있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9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 제8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