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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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77장 · 총 81장

다음 한 그릇도, 이미 가진 쪽에 놓일 때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天下之道,犹张弓者也。高者抑之,下者举之,有余者损之,不足者补之。故:天之道,损有余而益不足。人之道则不然,损不足而奉有余。孰能有余而有以取奉于天者乎?唯又道者乎?是以圣人为而不恃,功成而不居也。若此,其不欲见贤也。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성과가 있는 곳에 다시 예산이 온다

좋은 성과를 낸 팀에 다음 인력과 예산을 준다. 한 번의 판단으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맡기면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고전하는 팀은 성과가 없어 지원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지원은 없는 채로 다음 성과를 요구받는다.

각 결정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합쳐 보면 부족한 쪽이 부족함에서 나올 기회까지 잃는 경우가 있다. 그릇이 이미 찬 사람에게 다음 한 그릇도 먼저 놓인다.

성공을 지원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모든 차이가 악의에서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나쁜 사람 하나를 찾으면 해결되는 것만은 아닌 불균형이 있다. 그것을 보면 평가와 배분의 구조 자체가 질문이 된다.

제77장은 활의 모습으로 시작해 남음과 부족함을 인간 사회로 가져온다. 끝에서는 자신이 놓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자원의 편중을 마음가짐만의 문제로 줄이지는 말자.

2. 더 세게 당기면 되는 것은 아니다

‘天下之道,猶張弓者也。高者抑之,下者擧之,有餘者損之,不足者補之.’ 활을 당기는 모습 안에 높은 것은 낮추고 낮은 것은 들어 올리며, 남는 것은 덜고 모자란 것은 보태는 동작이 놓인다.

정밀한 궁술 설명으로 읽기보다 힘을 늘리기만 하는 것과 힘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의 차이를 보고 싶다. 한쪽을 계속 팽팽하게 만든다고 도구가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가 지나치고 어디가 모자라는지 살펴야 한다.

채택 본문의 첫머리는 ‘天下之道’, 통행본은 ‘天之道’다. 이 연재는 큰 조정의 모습을 먼저 보고 뒤따르는 하늘의 도와 사람의 도의 대비로 간다. 다만 통행본의 반복만으로 구조를 망가뜨린 증거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현실의 배분도 전부 같은 양으로 맞추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같은 업무라도 경험과 장비와 생활 조건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다르다. 남는다는 판단은 숫자만으로 할 수 없고, 부족함도 실제 필요로 돌아가 생각해야 한다.

활의 비유는 더 당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어디에 무리한 힘이 걸리느냐는 질문으로 바꾼다. 그 차이는 힘을 풀 때도, 지원을 보탤 때도 작용한다.

3. 자연의 모습과 공정함을 향한 바람

‘天之道,損有餘而益不足.’ 이 방향을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나 온도 차이에 따른 열의 이동으로 상상할 수 있다. 비바람이 높은 땅을 깎고 운반된 흙이 다른 곳에 쌓이는 풍경도 한 예다.

그러나 모두 조건을 가진 과정이다. 자연은 고르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으고 파괴하고 차이를 키우기도 한다. 흙이 낮은 곳에 쌓인다고 인간 사회의 부족함도 언젠가 자동으로 채워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굶주린 사람에게 몇백 년 기다리면 세계가 평평해진다고 해도 한 끼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우주가 결과를 보증한다는 설명보다 우리가 어느 쪽으로 힘을 쓰고 싶은지 묻는 방향으로 읽고 싶다.

채택 본문의 익(益)과 통행본에서 보이는 보(補)도 한쪽만 살아 있는 작용이고 다른 쪽은 기계적인 빈자리 채우기라고 나눌 필요는 없다. 어느 글자든 누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실제로 무엇이 늘었는지가 중요하다.

부족함을 메우고 싶다는 바람은 자연과학에서 허락받아야만 가질 수 있는 소망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갈 조건을 지금 여기에서 만든다. 그 이유는 눈앞에 있는 사람의 필요에도 있다.

4. 악의가 없어도 편중은 이어진다

‘人之道則不然,損不足而奉有餘.’ 사람의 도는 반대로 부족한 쪽에서 덜어 남는 쪽에 바친다. 날카로운 대비다. 반드시 차분한 관찰만 있고 분노는 없다고 목소리의 톤까지 확정할 필요는 없다.

자원이 있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다. 한 번의 실패를 견디고 더 좋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한 사람은 기다릴 비용이 없어 당장의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같은 기회가 주어져도 활용할 수 있는 범위는 같지 않다.

앞의 팀도 과거 성과만으로 다음을 계속 정하면 처음의 조건 차이를 굳힐 수 있다. 제75장에서 생각한 생활 부담은 다음 가능성을 잡을 여유까지 깎아 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인간은 태생적으로 반드시 그쪽으로 간다며 포기할 필요는 없다. 협력과 공적 지원과 재분배와 평가 기준의 수정으로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악의적인 착취와 기만의 책임 역시 구조 설명 속으로 사라져서는 안 된다.

물어야 할 것은 둘이다. 누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누구도 드러내 놓고 나쁜 일을 하지 않아도 이 구조는 약한 쪽에 추가 부담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분노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노가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조건을 검토하는 데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

5. 주는 일과 따르게 하는 일을 나누기

‘孰能有餘而有以取奉於天者乎,唯又道者乎.’ 자기 여유를 가지고 하늘에 바친다는 물음을 이 연재는 하늘의 도를 본받아 남는 것을 덜고 부족한 것을 늘리는 초대로 읽는다. 봉어천(奉於天)이 반드시 본받는다는 뜻이라는 글자 풀이의 단정은 아니다.

통행본의 ‘奉天下’도 위에서 내려주는 시혜만 뜻하지 않는다. 자원을 실제로 건네고 구조하고 공공을 위해 사용하는 일은 삶을 바꿀 수 있다. 모든 나눔을 지배라고 의심하면 필요한 도움까지 보이지 않게 된다.

차이는 그 뒤의 관계에도 드러난다. 도왔으니 앞으로 반대하지 말고 계속 감사하라고 요구하면 자원과 함께 다른 사슬을 건넨다. 상대가 용도와 생활을 판단할 여지를 남기면 도움은 다른 모양이 된다.

또 필요한 지원을 개인의 후한 마음에만 맡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매번 부탁하고 상대 기분을 확인해야 얻는 지원보다 공정하고 안정적인 구조가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제도가 할 일과 사람의 친절은 서로의 대체물이 아니다.

내게 여유가 있을 때 그것이 여기에 남는 경우와 필요한 곳에 닿는 경우를 비교할 수 있다. 그 질문은 누군가의 훌륭함을 칭찬하는 글 안에서만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 자리에도 놓아 보고 싶다.

6. 했던 일을 영원한 청구 근거로 만들지 않기

‘爲而不恃,功成而不居’, 그리고 ‘不欲見賢’. 행하되 그것에 기대지 않고, 이루되 성과를 계속 독점하지 않으며, 현명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見’은 여기서 ‘현’으로 읽어 드러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를 세 가지 놓는 방식으로 생각한다. 전에 도왔다는 사실을 오늘의 복종 근거로 삼지 않는다. 공동의 일을 자기 이름 하나에 가두지 않는다. 좋은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당한 보수와 기여자의 이름 표기, 공정한 평가를 구하는 것까지 불필요한 자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래 기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 더 양보하라고 한다면 부족한 쪽에서 또 가져오는 일이 된다.

덜어 내는 것은 필요 이상의 독점이지 자신의 존재가 아니다. 보고하면서 내가 한 일을 정확히 말하고 다른 사람이 한 일도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감사를 받아도 거기에 나중의 청구서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가장 놓기 어려운 것이 돈이 아니라 그때 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말일 때도 있다. 한때의 지원이 관계에 영구적인 위아래를 만든다. 놓는다는 것은 했던 일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 이자를 계속 내게 하지 않는 것이다.

7. 오늘 바꿀 수 있는 배분부터

예산을 정한다면 과거에 누가 잘했는지에 더해, 누구의 능력이 바꿀 수 있는 조건 때문에 막혔는지 본다. 평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평가가 보지 못한 것을 더 보는 일이다.

늘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자주 끊기는 사람이 설명을 마칠 시간을 마련한다. 대신 말해 주기보다 그 사람의 말이 직접 닿도록 한다.

내가 부족한 쪽에 있다면 더 내어 줄 존엄을 자기 안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지원과 대우를 구하는 일과 모든 성과를 독점하지 않는 일은 양립한다. 남는 것을 덜라는 말을 부족한 사람 쪽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전에 도운 사람과 의견이 다를 때 그 과거를 즉시 꺼내지 않고 이야기해 볼 수도 있다. 큰 불공정에는 공동 행동이 필요하지만, 작은 독점을 오늘 하나 그만둘 여지도 있다. 두 일은 경쟁하지 않고 함께 해 나갈 수 있다.

8. 같은 식탁에서 남음과 부족함을 보기

제73장에서는 하늘의 도에서 행동의 절도를 생각했고 여기서는 배분의 방향을 생각했다. 어느 쪽도 세계가 자동으로 공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이유로 삼지 않는다.

끝부분은 제2장과 제10장의 불시와 불거에 닿는다. 제3장에서 생각한 현명하다는 이름과 경쟁의 문제도 여기서는 일의 성과에서 자기 지배권을 끝없이 늘리지 않는다는 모습이 된다.

다음 장은 물과 나라의 오욕을 떠안는 사람의 이야기로 간다. 좋은 것을 나눌 때 손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어려움이 왔을 때도 자리에 남을 수 있는지가 질문이 된다.

남음과 부족함을 따로 떨어진 추상어로 두면 그 사이를 누가 떠받치는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식탁으로 돌려놓으면 다음 한 그릇을 어디에 놓을지는 누군가의 생활이 조금 편해지느냐는 구체적인 물음이 된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9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 제8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