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같은 두 구축
기록을 노리는 경기와 우승을 가리는 경기는 모두 달리기라고 불린다. 그러나 둘이 만들어 내는 것은 다르다. 하나는 결승선에 찍히는 숫자를 최적화하고, 다른 하나는 그날의 순위를 나눈다. 페이스 조절 시스템은 이 차이를 무대 앞으로 끌어낸다.
이 글의 목차
1. 하나의 이름, 두 가지 경기
세계기록 경신을 목표로 하는 10,000m 경기와 올림픽 10,000m 결승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같은 세계기록표에 오른다.
그런데 두 경기는 통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변수에서 서로 다르다.
기록을 깨려는 경기에서는 주최자가 합법적으로 페이스메이커를 고용할 수 있다. 매 바퀴 목표 속도를 미리 정하고, 허가받은 페이스 조명을 사용할 수 있다. 기록이 잘 나오는 트랙, 낮은 고도, 서늘한 시간대를 고를 수도 있고, 순위 상금과 별도로 시간이나 기록 경신에 따른 보너스를 걸 수도 있다. 선수의 일은 최대한 오래 바람을 피하며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자리에 머물고, 온 힘을 쏟아 미리 정해 놓은 시간에 다가가는 것이다.
챔피언십에는 대개 고용된 ‘토끼’, 즉 페이스메이커가 없다. 선수는 자신의 위치와 다음 라운드 진출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여러 라운드를 치르며 쌓이는 피로, 상대에게 둘러싸이거나 진로가 막힐 가능성, 경쟁자의 능력도 고려해야 하며, 마지막 질주에 쓸 힘도 남겨 두어야 한다. 세계육상연맹도 챔피언십 10,000m를 설명하면서 이런 경기는 페이스메이커 없이 치르며, 선수들이 체력을 아꼈다가 마지막 몇 바퀴에서 승부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고 명시한다.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첫 바퀴부터 평균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라, 힘을 비축하며 막판에 속도를 높일 때를 기다리는 일인 경우가 많다.
이것은 구조적으로 다른 두 가지 경기다. 목표 함수부터 다르다. 하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를 이기는 것이다. 허용되는 도움도 다르고, 최적의 레이스 운영 방식도 다르다. 생리학 자료와 경기 자료 모두 두 경기가 성적을 만들어 내는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세계육상연맹은 현행 규정에서 이 두 경기를 별개의 종목으로 나누지 않는다.
10,000m는 그저 10,000m다. 규정이 구분하는 것은 경기가 적법한지, 어떤 도움을 허용하는지, 그 성적을 기록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다. 규정이 구분하지 않는 것은 그 경기가 무엇을 위해 조직되었느냐는 점이다. 시간을 쫓으려는 것인가, 순위를 다투려는 것인가. 공개된 규정에서는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을 나란히 놓고 두 경기 유형으로 구별하는 분류를 찾아볼 수 없다.
이 글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실제 작동 방식이 구조적으로 다른 두 구축이 있다. 그런데 둘은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기록표를 공유한다. 구축은 자신의 공식 매체에서 둘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정식 규정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로 이름 붙이기를 거부한다. 그런 다음 하나로 통합된 기록표로 둘을 다시 합친다.
앞선 제17편에서는 구축이 최종 결론을 낼 수단을 마련해 놓고도 쓰지 않기로 하는 일을 다루었다. 이번에는 그 곁에 놓인 또 다른 일을 다룬다. 구축은 차이를 볼 수 있고, 그 차이에 이름을 붙일 능력도 있지만, 이름 붙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우선 이 ‘이름 붙이지 않음’의 뜻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은 부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구축이 두 경기의 차이를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것은 보지 못한 것이다. 이 글이 다루는 일은 아니다. 이 글은 정확히 그 반대를 다룬다. 이 구축은 차이를 똑똑히 본다. 자신의 공식 문서에서 두 경기가 어떻게 다른지 거듭 설명해 왔다. 못 본 것이 아니다. 보고 나서도, 본 것을 규정 안에 두 개의 이름으로 고정하지 않기로 했다. 차이를 보는 일과 차이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별개다. 이 구축은 그 두 일 사이에 멈춰 서 있다.
2. 논의를 세우려면, 먼저 주장의 범위를 좁혀야 한다
더 나아가기 전에 지나치게 강한 주장 하나부터 좁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 전체가 설 자리를 잃는다.
그 지나치게 강한 주장은 이렇다.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의 성적은 애초에 비교할 수 없으며, 둘은 서로 다른 스포츠다.
그것은 과도한 주장이다. 규정과 기록 제도는 오히려 둘을 같은 종목에서 나온, 비교 가능한 시간으로 취급한다. 게다가 챔피언십에서도 얼마든지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세계기록까지 세울 수 있다. 기록 도전 경기에도 여전히 실제 경쟁이 있다.
2024년 파리 올림픽 남자 1,500m는 분명한 반례다. 상업적으로 고용된 페이스메이커는 없었지만, 잉에브릭트센이 자발적으로 빠르게 선두를 달리며 경기 전체의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호커는 세계기록보다 불과 1초65 느린 3분27초65로 우승했다. 토끼를 고용하지 않은 챔피언십 결승을 선두에 나선 선수가 경기 안에서 거의 기록 도전 경기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논의가 정말로 버틸 수 있는 주장은 무엇인가.
두 성적은 아예 비교할 수 없다는 주장이 아니다. 같은 종목의 이름 아래 규정이 성적을 만들어 내는 두 가지의 구조적으로 다른 메커니즘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측정된 시간 하나를 곧바로 동일한 경기 능력의 무조건적인 측정값으로 받아들이면, 경기 구조라는 핵심 변수가 사라진다.
이렇게 좁힌 주장은 강도는 조금 낮지만 훨씬 단단하다. 생리학 자료와 경기 자료는 성적의 생성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쪽을 지지한다. 반면 세계육상연맹의 규정 체계는 규정상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쪽을 명백히 부정한다. 둘 다 규정에 맞기만 하면 여전히 같은 기록 체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표현은 서로 다른 두 스포츠가 아니다. 규정상 하나의 종목 아래, 서로 다른 목표 함수에 따라 성적을 만들어 내는 두 개의 매우 안정적인 경기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좁힌 주장 안에 머물러야 이 글은 증거가 뒷받침하지 않는 단정으로 미끄러지지 않는다. 이하의 모든 자료는 이 한정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지, 앞서 말한 지나치게 강한 주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범위를 좁히면 이 글과 흔히 듣는 불평 하나 사이에도 선이 그어진다. 요즘 기록은 토끼와 조명과 빠른 신발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니 진짜 실력이 아니라는 불평이다. 이 글의 뜻은 그렇지 않다. 기록 도전 경기에서 나온 성적이 진짜 실력인지 아닌지를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성적은 선수가 실제로 달려서 얻었다. 토끼가 바람을 막아 주었어도 다리는 본인이 움직여야 한다. 이 글이 말하려는 것은 더 차분하고 더 구조적인 문제다. 체계적으로 다른 두 경기가 같은 표를 쓸 때, 그 표의 숫자 하나만 보아서는 이제 어떤 구조 안에서 나온 성적인지 알 수 없다. 어떤 성적을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다. 그 표에서 변수 하나가 빠졌다는 지적이다.
3. 페이스메이커는 참가 선수다. 경기장 밖의 서비스가 아니다
두 구축을 이해하려면 우선 규정 속에서 페이스메이커가 정확히 어떤 지위를 갖는지 살펴야 한다. 그 지위는 직관과 조금 다르다.
현행 도움 관련 규정이 금지하는 페이스 조절은 다음과 같다. 같은 경기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제공하는 것, 이미 한 바퀴 추월당했거나 곧 한 바퀴 추월당할 선수가 제공하는 것, 그리고 허가되지 않은 기술 장치가 제공하는 것이다.
이 선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잘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페이스를 맞춰 주느냐가 기준이 아니다. 이 경기의 적법한 참가 선수인가, 정상적인 경쟁 위치에서 도움을 주는가가 기준이다.
도로 경기 규정은 이 점을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주최자가 고용한 페이스메이커도 엄연한 참가 선수라고 명시하며, 다른 엘리트 선수들과 함께 출발 총성에 맞춰 출발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합법적인 페이스메이커는 경주로 바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영요원이 아니다. 법적 지위로는 참가 선수이고, 경제적 기능으로는 페이스메이커다. 대회에 등록해 출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전 구간을 완주하면 원칙적으로 공식 성적을 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우승할 수도 있다. 세계육상연맹의 자료에는 애초에 페이스메이커로 나섰다가 결국 경기를 이긴 사례도 있다.
이러한 지위 설계야말로 두 구축이 한 기록표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토대다. 페이스메이커가 규정상 참가 선수이므로, 그가 있는 기록 도전 경기도 규정상으로는 정상적인 경기다. 따라서 그 성적은 공식 기록에 들어갈 수 있다. 구축은 토끼를 경기 바깥의 도구로 취급하지 않았다. 경기 안의 참가 선수로 만들었다. 그 결과 토끼의 도움을 받아 나온 성적과 토끼 없이 나온 성적 사이에는 규정상 차이가 없다.
교묘한 설계다. 두 구축이 한 표를 쓰게 만드는 장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자. 규정이 페이스메이커를 경기 바깥의 보조 도구로 정의했다면, 페이스메이커가 있는 경기는 도움을 받은 경기가 된다. 그 성적도 도움이 없는 경기와 따로 적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규정은 그렇게 정의하지 않았다. 페이스메이커를 참가 선수 명단에 넣었다. 그러자 페이스메이커의 존재는 규정상 외부의 보조가 아니라, 경기 내부의 정상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다. 토끼가 참가 선수인 이상, 토끼를 고용하는 것은 경기 중 어느 선수가 선두에서 달리며 바람을 막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기 내부의 일이다. 밖에서 덧붙인 것이 아니다. 이 지위에 대한 정의는 단 한 줄로,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 사이에 그을 수도 있었던 선을 지워 버렸다.
금지된 세 가지 페이스 조절은 거꾸로 그 지위의 경계를 보여 준다. 경기 밖의 사람이 들어와 페이스를 맞추는 것은 안 된다. 참가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바퀴 추월당한 선수가 여력이 남은 페이스메이커로 돌아오는 것도 안 된다. 정상적인 경쟁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도움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예외 조항에 들지 않는 기술 장치도 안 된다. 역사적으로 정말 민감했던 것은 사람들이 속도를 미리 의논해 두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교대하거나, 체력이 남은 주자를 계속 투입하거나, 외부 장치를 이용해서 같은 경기 안의 정상적인 경쟁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보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였다.
4. 배니스터의 경기, 인정받지 못한 것은 그 전해였다
페이스메이커라는 지위의 미묘함은 배니스터의 1마일 4분 벽 돌파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 사건에는 널리 퍼진 잘못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먼저 실제로 일어난 일부터 보자. 1954년 5월 6일, 옥스퍼드 이플리 로드에서 브래셔가 초반 선두를 맡았고, 이어 채터웨이가 페이스를 넘겨받았다. 막판 스퍼트는 배니스터가 혼자 마무리했다. 기록은 3분59초4였다. 이 경기는 옥스퍼드대와 아마추어육상협회가 겨루는 정식 대회의 틀 안에 편성되어 있었다. 배니스터 한 사람만 따로 시간을 재는 훈련 테스트가 아니었다.
잘못 퍼진 이야기는 이렇다. 1954년 그 기록이 나온 뒤, 당국이 진짜 경기였는지 정식으로 조사했고, 청문회를 거친 뒤에야 승인했다는 것이다.
자료는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다른 사건을 1954년으로 옮겨 붙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영국 당국이 진정한 경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실제로 기록 인정을 거부한 해는 1954년이 아니라 1953년이다.
1953년 6월 27일, 모츠퍼 파크에서 배니스터는 4분 벽 돌파에 도전해 4분02초를 기록했다. 그때는 맥밀런이 먼저 페이스를 이끌었고, 브래셔는 특별한 방식을 썼다. 먼저 천천히 달려 배니스터에게 한 바퀴를 추월당한 뒤, 비교적 체력이 온전한 상태에서 다시 배니스터 앞에 나서서 이끈 것이다. 이후 영국 아마추어육상평의회는 이 성적을 영국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핵심 이유는 이 경기가 규정에서 말하는 진정한 경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953년의 선례를 보면 1954년 경기가 형식을 그토록 조심스럽게 갖춘 이유를 알 수 있다. 1954년에는 두 조력자가 출발 총성이 울릴 때부터 같은 적법한 경기의 선수였다. 한 바퀴 추월당한 뒤 체력이 남은 상태로 돌아오는 수법은 다시 쓰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서는 비판과 판정을 구분해야 한다. 비판은 브래셔와 채터웨이가 사전에 배니스터를 돕는 역할을 맡았고, 자신이 우승하는 일을 첫째 목표로 삼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판정의 경우, 1954년 영국 평의회가 진정한 경기가 아니라며 공식적으로 인정을 거부했다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오히려 3분59초4는 공식 세계기록의 계보에 들어갔다.
당사자의 증언은 바로 그 긴장을 짚어 낸다. 채터웨이는 자신의 회고에서, 1954년 이후 평의회에는 자신과 브래셔가 진짜 경쟁자였는지를 다시 문제 삼을 배짱이 없었다고 썼다. 그리고 실제로 이길 의사가 있었느냐를 기준으로 하면 자신들은 물론 진짜 경쟁자가 아니었다고, 매우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 말이 결정적이다. 주관적 목적에서 채터웨이와 브래셔는 분명 페이스메이커였다. 이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규정에 따른 처리에서 이 성적은 1953년처럼 거부되지 않았다. 명목상 참가 선수가 처음부터 이길 의사가 없었다면, ‘진정한 참가 선수’라는 말에는 의미상의 긴장이 생긴다. 채터웨이의 솔직한 고백은 그 긴장을 환한 빛 아래 드러냈다.
여기에는 정직하게 빈자리 하나를 남겨 두어야 한다. 1954년 성적이 인정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인정 이유를 온전히 담은 서면 자료는 확보하지 못했다. 1953년과 1954년의 결정적인 차이는 두 조력자가 1954년에는 총성이 울릴 때부터 같은 적법한 경기의 선수였다는 점이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다만 어떤 이유들을 근거로 승인했는지 항목별로 적어 놓은 회의록은 찾지 못했다. 결과는 확인되었다. 그렇다고 판정의 완전한 이유까지 확인된 사실인 양 내놓을 수는 없다.
5. 토끼 한 명을 고용하던 일에서 생산 시스템을 만드는 일로
배니스터 시대의 페이스 조절은 아직 친구 몇 명이 도와주는 일이었다. 1990년대 이후 가장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페이스메이커가 느닷없이 발명되었다는 점이 아니다. 기록 경신이라는 일이 상업 순회대회를 통해 제도화되었다는 점이다.
1998년에 시작한 골든리그는 오슬로, 로마, 모나코, 취리히, 브뤼셀, 베를린의 하루짜리 대회들을 고액 상금과 텔레비전 중계, 최정상급 선수들로 이루어진 연속적인 상업 체계로 묶었다. 세계육상연맹 자체의 골든리그 기록 자료에도 이 상업 대회들에서 나온 세계기록이 실려 있다. 이를테면 엘 게루주가 1998년 로마에서 세운 1,500m 3분26초00이다.
이런 기록 지향의 상업 대회에는 전형적인 구성 요소들이 있다. 목표 시간을 미리 정한다. 한 조 또는 여러 조의 페이스메이커가 구간별로 페이스를 이어 맡는다. 기록에 도전하는 주자는 최대한 오래 바람을 피하고 안정된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자리에 머문다. 대회는 낮은 고도, 빠른 트랙이나 평탄한 도로를 고른다. 일기예보를 보며 더 적합한 출발 시간대를 선택하고, 순위 상금 외에 시간 또는 기록 경신 보너스를 둔다. 모든 경기에서 이 요소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들이 하루 동안 치르는 대회와 빠른 기록을 노리는 마라톤에서 반복해서 등장한다.
여기서도 지나치게 강한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1990년대의 기록 도전 경기에는 가령 5만 달러처럼 일률적인 세계기록 보너스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것을 통일된 제도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보상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시리즈 전체 상금, 개별 대회의 순위 상금, 초청 출전료, 시간 보너스, 그리고 대회나 후원사가 별도로 내건 기록 경신 보너스다. 뒤의 몇 항목은 대회별로 또는 계약별로 정하는 경우가 많고, 과거 계약이 반드시 공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형태의 기록 경신 보너스와 시간 보너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 대회에서 거꾸로 추론하여 세계기록에 일률적인 현금 가격표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다음에는 페이스 조명이 등장했다. 이 시스템은 2017년 무렵 개발되었고, 2018년 6월 1일 처음 경기에 쓰였으며, 2020년 세계육상연맹 규정에서 전면적으로 허용되었다. 표준 400m 트랙 안쪽에 약 400개의 불빛을 약 1m 간격으로 설치하고, 소프트웨어가 목표 시간에 맞춰 불빛을 앞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면 추상적인 랩타임 표는 계속 눈에 보이며 트랙 위를 움직이는 위치로 바뀐다. 선수는 목표에 얼마나 못 미치는지 머릿속으로 환산할 필요가 없다. 그 빛을 따라 달리면 된다.
이 빛이 하는 일은 앞선 제8편에서 이야기한 문과 견주어 볼 만하다. 그때는 폼 매트라는 물질적 조건이 배면뛰기의 가능성을 열었다. 여기서 페이스 조명이라는 기술이 여는 것은 다른 무엇이다. 오래도록 선수 자신의 몫이었던 과제, 곧 자신의 속도를 판단하는 일에서 선수를 풀어 준다. 페이스 조명이 없던 시절, 기록을 쫓는 선수는 몸의 감각, 앞에서 이끄는 페이스메이커, 매 바퀴 전달되는 시간 정보를 종합해 지금 충분히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 판단해야 했다. 그것은 기술이었다. 자기 지각의 기술이었다. 페이스 조명은 그 기술을 빛 하나를 따라가는 단순한 일로 바꾸었다. 선수가 아낀 것은 체력이 아니라 판단의 일부다. 이 판단의 일부를 외부 장치가 대신해도 되는가. 바로 그것이 다음 절에서 다룰 논쟁의 핵심이다.
이 빛에 관한 통념 하나는 걷어 내야 한다. 규정의 빈틈을 파고든 불법 전자 토끼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 세계육상연맹의 도움 관련 규정은 기술 장치에 의한 페이스 조절을 금지하면서도, 경과 시간과 해당 기록의 페이스를 표시하는 전자 조명을 허용되는 예외로 명시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규정은 기술을 통한 페이스 조절을 무조건 금지하는 구조가 아니다.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특정한 시각적 시간 표시 시스템에는 명시적인 예외를 두는 구조다.
또 하나 걷어 낼 통념이 있다. 페이스 조명은 챔피언십이 아닌 경기에서만 쓸 수 있고, 정식 챔피언십에는 절대 등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늘날 규정에 관한 명제로서는 이미 성립하지 않는다. 초기에 주로 하루 동안 치르는 대회와 기록 도전에서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25년 유럽실내선수권대회는 이미 페이스 조명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챔피언십에서 사용하느냐는 대회 운영상의 선택과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의 문제다. 영구히 기록 도전 경기 전용으로 묶어 놓은 법적 금지선의 문제는 아니다.
6. 그 빛을 외부의 도움으로 보아야 할까
페이스 조명을 허용해야 하느냐는 양쪽의 논거가 모두 분명한 논쟁이다. 세계육상연맹은 결국 한쪽을 택했다. 이 절에서는 양쪽을 나란히 놓되, 어느 쪽이 옳은지 판정하지 않는다.
허용을 주장하는 쪽은 그 빛이 모든 참가 선수가 볼 수 있는 경과 시간 정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형 화면, 시계, 랩타임을 불러 주는 사람에게서 얻던 정보를 트랙 위로 옮겨 공간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빛은 선수를 밀지도 당기지도 않는다. 특정 선수 한 명에게만 기계적 에너지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규칙은 투명하며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세계육상연맹이 최종적으로 채택한 규정상의 입장은 이것이다.
제한을 주장하는 쪽은 계속 눈에 보이는 시각적 목표가 선수 스스로 속도를 가늠하며 생기는 오차를 끊임없이 없애 준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선수와 페이스메이커, 시간 정보가 함께 수행하던 일, 곧 페이스 조절을 자동화한다는 것이다. 페이스 조명을 이용해 나온 일부 기록은 랩타임 편차가 극히 작고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면 기록을 역사적으로 비교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과거의 기록 보유자는 속도 판단의 일부를 스스로 떠맡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 몫이 빛 하나에 외주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실험 하나로 끝낼 수 없다. 페이스 조명이 일정하게 몇 초를 벌어 준다고 말해 줄 믿을 만한 실험은 없다. 최정상급 세계기록을 놓고 무작위 배정과 눈가림 방식의 기술 비교 실험을 할 수는 없다. 신발과 날씨, 페이스메이커와 선수의 컨디션이 늘 동시에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빛이 정확히 얼마나 도왔는지는 앞선 글들에서 다룬 인과를 가려낼 수 없는 문제들처럼 계산이 되지 않는다.
눈여겨볼 것은 이 논쟁의 진짜 성격이다. 빛이 도움을 주느냐를 다투는 것이 아니다. 도움은 분명히 준다. 다투는 것은 그런 도움이 이 스포츠 내부에서 받아들여야 할 경쟁 관계에 여전히 속하느냐는 점이다. 페이스메이커 논쟁과 이 논쟁은 같은 질문이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7. 같은 선수의 장부, 그리고 하나로 합친 표
이제 두 구축을 합쳐 놓은 기록표를 보자. 구체적인 차이는 얼마나 큰가.
여자 5,000m는 가장 깔끔한 사례다. 체벳이 2025년 세운 기록에서 다섯 개의 1,000m 구간 중 가장 느린 구간과 가장 빠른 구간의 차이는 약 7초22에 불과했다. 가장 빠른 구간은 바로 마지막 1,000m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계식 메트로놈처럼 완전히 같은 속도로 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대부분의 구간에서 매우 안정된 페이스를 유지하다 의도적으로 막판에 속도를 높였다. 이는 연구자들이 기록형 장거리 달리기의 구조로 설명하는, 양 끝은 조금 빠르고 가운데는 고른 형태와 정확히 들어맞는다.
챔피언십과 비교해 보자. 같은 체벳이 2025년 도쿄 세계선수권 여자 5,000m에서 우승할 때의 기록은 14분54초36이었다. 세계기록은 13분58초06이었다. 우승 경기의 마지막 400m는 약 57초6이었고, 전체 거리를 400m씩 나눈 평균 시간은 약 71초55였다. 마지막 구간을 도는 데 걸린 시간은 전체 평균보다 거의 20% 짧았다.
같은 사람이 같은 해에 만들어 준, 거의 이상적인 자연적 비교다. 기록을 노리는 환경에서는 13분58초, 챔피언십 우승에서는 14분54초. 사이에는 56초가 있다. 이 56초를 전부 컨디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경기의 목표 자체가 최적의 전략을 바꾸기 때문이다.
여자 10,000m에서도 체벳은 더 깔끔한 동일 선수 비교를 제공한다. 2024년의 기록 경신 경기는 명시적으로 세계기록 도전을 위해 조직되었고, 목표 페이스 시스템을 사용했다. 성적은 28분54초였다. 반면 2025년 도쿄 세계선수권에서 체벳 본인이 우승한 성적은 30분37초였다. 같은 사람이 기록을 노리는 환경에서는 28분54초, 챔피언십 우승에서는 30분37초를 달렸다. 차이는 103초다. 이 103초를 모두 컨디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경기의 목표가 최적의 전략을 바꾼다. 핵심 원인은 여기에 있다.
다만 여기서 차이를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기록 도전 경기는 일정한 속도, 챔피언십은 느긋하게 달리다가 마지막 400m 전력 질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앞서 본 2024년 파리 남자 1,500m가 반례다. 우승 후보가 승패를 마지막 질주에 맡기고 싶지 않아 스스로 개인 한계에 가까운 페이스까지 끌어올리는 챔피언십도 있다. 거꾸로 세계기록도 수학적인 등속 운동보다는, 조금 빠르게 출발해 대부분의 구간은 안정되게 달리고 마지막에 다시 빨라지는 굴곡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학술적으로 더 정확히 말하면 두 경기 유형의 구간별 페이스는 확률분포가 다르다. 서로 겹치지 않는 두 유형인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차이를 하나의 통합 기록표가 지워 버린다. 체벳의 28분54초와, 가령 챔피언십 환경에서 나온 어떤 10,000m 기록은 같은 표에 들어가 같은 자리를 차지한다. 표는 어떤 경기 구조 안에서 나온 성적인지 적지 않는다. 시간만 적는다. 그렇게 성적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변수인 경기 구조는 기록표의 층위에서 사라진다.
체벳이라는 동일 선수를 비교한 것은 가장 손쉬운 반박 하나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을 놓고 한 사람은 기록 도전 경기에서 빨랐고 다른 사람은 챔피언십에서 느렸다고 하면, 두 사람의 능력이 달랐을 뿐이라고 언제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체벳은 같은 사람이고, 연이은 두 시즌에 똑같이 전성기의 기량을 보이고 있었다. 28분54초와 30분37초 사이의 100초가 넘는 차이는 능력 차이에서 나올 수 없다. 같은 몸이기 때문이다. 격차가 너무 커서 전부 컨디션 차이에서 나올 수도 없다. 남는 가장 큰 설명은 경기 구조 자체다. 기록을 깨려고 조직한 경기와 우승을 위해 치르는 경기는 같은 사람이 달려도 100초 넘게 벌어지는 두 시간을 낳는다. 그리고 그 두 시간은 같은 표에 들어간다.
8.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세계기록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이 정말로 구조적으로 다른 두 구축이라면, 그 결과 하나가 눈에 보여야 한다.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세계기록이 좀처럼 나오지 않아야 한다. 역사적 빈도는 정확히 이 점을 뒷받침한다.
통계의 범위를 분명히 하자. 세계 규모의 성인 실외 챔피언십은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뜻한다. 결승만 세고 예선과 준결승은 세지 않는다. 공식 세계기록만 센다. 남녀 1,500m, 5,000m, 10,000m, 이렇게 여섯 종목에서 세계기록의 변천과 챔피언십 결승 날짜를 대조하면, 세계 규모 챔피언십 결승에서 확인되는 세계기록은 단 일곱 번이다.
종목별로 해당 종목이 세계 규모 챔피언십에 포함되고 세계기록 체계도 비교 가능해진 이후의 결승 수를 분모로 삼으면, 여섯 종목의 챔피언십 결승은 모두 약 225경기다. 그 가운데 세계기록이 나온 경기는 일곱 번, 약 3.11%다.
더 날카로운 결과가 하나 있다. 그 일곱 번의 세계기록은 모두 올림픽에서 나왔다. 1983년에 시작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이 여섯 종목의 결승에서 세계기록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현대 세계선수권 시대에 들어선 뒤 세계 규모 챔피언십 결승에서 나온 유일한 사례는 2016년 리우의 아야나가 세운 여자 10,000m 기록인데, 그것도 올림픽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3%만으로 챔피언십의 메커니즘이 세계기록을 억누른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다른 교란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기후, 경기 일정의 라운드 수, 상금, 당시 기록 자체가 얼마나 깨기 어려웠는지, 훈련 수준, 러닝화, 그리고 세계기록 자체가 갈수록 생리적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있다. 모두 챔피언십 결승에서 기록을 깰 확률을 낮출 수 있으며, 이를 단순히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의 차이로 환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3%는 적어도 단순한 명제 하나를 반박한다. 모두 1,500m, 5,000m, 10,000m라고 부르고 같은 기록표에 올린다면,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도 비슷한 빈도로 기록에 다가가야 한다는 명제다.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다. 기록 경신은 거의 언제나 기록을 깨기 위해 따로 조직한 경기에서 일어나며, 챔피언십 결승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두 구축은 같은 이름으로 불리면서도, 공동으로 가진 기록의 선에 아주 다른 빈도로 닿는다.
9. 다른 스포츠는 다른 답을 내놓았다
육상은 이 차이에 이름 붙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같은 문제에 다른 답을 내놓은 스포츠도 있다. 나란히 놓고 보면 육상의 선택이 어디에 놓이는지 알 수 있다.
수영은 절반만 들어맞는 비유다.
수영에도 기록을 노린 구간별 페이스와 챔피언십 결승의 구간별 페이스 사이에 차이가 있다. 세계수영연맹의 기록은 규정을 충족하는 여러 공식 대회에서 세울 수 있으며, 반드시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결승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세계선수권 결승에서도 선수들이 스스로 기록을 노리는 페이스로 헤엄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영에도 기록이라는 목표와 우승이라는 목표가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수영을 육상의 페이스메이커 문제와 곧바로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수영 선수는 각자 독립된 레인에서 헤엄치기 때문이다. 선수 1m 앞에서 계속 물의 저항을 줄여 주고 페이스를 알려 주는 사람을 고용할 수는 없다. 수영의 또 다른 장부는 주로 예선, 준결승, 결승을 거치며 쌓이는 피로와 전술적인 관찰, 기록이라는 목표에서 생긴다. 합법적으로 고용된 토끼가 구성하는 장부가 아니다. 따라서 수영은 기록 목표와 우승 목표의 차이를 보여 주는 좋은 비유지만, 페이스메이커 제도와 구조가 같은 사례는 아니다.
사이클은 육상이 택하지 않은 또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두 구축에 아예 서로 다른 종목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사이클 규정에서 여러 선수가 동시에 출발하는 도로 경기는 하나의 종목이다. 위치, 팀의 협력, 공기 저항, 무리에서 빠져나가는 공격, 마지막 질주가 바로 그 종목의 내용이다. 개인 도로독주는 별개의 종목이다. 선수들은 시간 간격을 두고 한 명씩 출발하며, 가장 짧은 시간으로 성적을 가른다. 거리가 비슷하다고 해서 두 종목을 ‘누가 가장 빨리 달렸는가’라는 단일한 기록의 논리 안에 구겨 넣지는 않는다. 이름이 둘이고, 장부도 둘이다.
특히 사이클이 외부의 도움을 다루는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수 바로 뒤를 따라가는 차량도 주변 공기 흐름을 바꾸어 공기역학적 이득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사이클 관리기구는 개인 도로독주 선수와 후방 차량 사이의 최소 거리를 25m로 늘려, 뒤따르는 차량의 기류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 했다. 여기서 제도가 인정한 것은 페이스 조명이나 페이스메이커와 뿌리가 같은 문제다. 외부의 정보나 물체는 어느 순간부터 단순히 경기 진행을 돕는 것을 넘어, 측정하려는 경기 능력 자체를 바꾸기 시작하는가.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사이클을 근거로 육상도 장부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위에 관한 주장이지, 역사적 필연이 아니다. 사이클은 둘을 나누었지만, 육상의 전통은 바로 둘을 한 종목 안에 묶는 데 있다. 세계기록과 올림픽 우승, 전술 능력이 함께 육상이라는 종목의 100년 넘는 역사를 이루었다. 장부를 정식으로 나누면 오히려 이 100여 년의 기록 연속성이 끊긴다. 그러므로 육상이 장부를 나누지 않는 것은 생각을 못 해서도, 할 수 없어서도 아니다. 둘을 하나로 묶어 온 전통을 지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이 연작 안에서 보면 무게가 있다. 사이클은 장부를 나누는 일이 가능함을 입증했다. 하나의 스포츠는 가장 빠른 시간을 내는 능력과 상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기는 능력이 서로 다른 기술이며, 각기 이름 하나와 장부 하나를 받을 만하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육상은 그 길을 가지 않았다. 100년 넘는 세계기록과 올림픽 우승, 전술 대결을 모두 하나의 종목사 안에 담았다. 이렇게 해서 얻는 실제 이익은 기록의 연속성이다. 배니스터의 3분59초부터 오늘의 모든 1마일 기록까지 끊어지지 않는 선 하나가 이어지므로, 계속 비교할 수 있다. 장부를 나누면 그 선은 끊겨 더 짧은 두 선이 된다. 따라서 육상이 통합을 유지한 것은 경기 구조라는 변수를 흐릿하게 남겨 두는 대가로 기록의 연속성을 얻은 것이다. 부주의가 아니라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내줄지 정한 선택이다.
10. 이름 붙이기를 거부당한 차이
이제 이야기를 모아 보자.
두 구축이 있다. 하나는 기록의 구축이다. 주최자는 같은 경기에 나서는 페이스메이커를 합법적으로 고용하고, 목표 랩타임을 정하고, 허가받은 페이스 조명을 쓸 수 있다. 유리한 트랙과 기후, 시간대를 고를 수 있고, 금전적 유인을 시간이나 기록에 직접 연결할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챔피언십의 구축이다. 대개 고용된 토끼는 없다. 선수는 진출을 가리는 라운드와 눈앞의 경쟁자, 우승자는 단 한 명이라는 조건에 맞선다. 가장 합리적인 전략은 힘을 아끼고, 위치를 바꾸고, 막판 가속을 기다리는 일인 경우가 많다.
두 구축이 성적을 만드는 메커니즘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세계육상연맹 스스로도 자신의 공식 매체에서 이 차이를 반복해 설명해 왔다. 챔피언십에는 페이스메이커가 없다고 말하고, 기록 도전은 대개 페이스메이커가 있는 경기라고 말한다. 둘이 서로 다른 논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 한 가지 일을 했다. 정식 규정에서 이 두 경기에 서로 다른 종목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했다. 그런 다음 하나의 통합 세계기록표를 사용해, 다른 메커니즘으로 생성된 성적들을 다시 하나로 합쳤다.
이것이 이 글의 잔여항이다. 그 모습은 앞서 만난 모든 잔여항과 또 다르다.
앞선 잔여항 가운데에는 구축이 담지 못하는 것도, 계산해 내지 못하는 것도, 닿지 못하는 것도, 스스로 자리를 남겨 둔 것도 있었다. 이 글의 잔여항은 규정이 이름 붙이기를 거부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그 차이 자체다. 경기 구조는 성적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주는 변수다. 구축은 그것을 본다. 공식 매체에서 설명한 적도 있다. 이름을 붙일 능력까지 있다. 사이클은 실제로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 구축은 이름 붙이지 않기로 했으며, 기록표의 층위에서는 그 차이를 지워 버렸다.
그리하여 그 차이는 잔여항이 되었다. 매 경기 안에 실제로 존재하고, 28분54초와 30분37초를 체계적으로 갈라놓지만, 하나로 통합된 기록표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표는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동일한 능력의 무조건적인 측정값으로 취급하여 같은 자리에 넣었다. 지워진 것은 그 성적을 만들어 낸 경기 구조다.
이것은 구축이 차이를 처리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앞에서는 구축이 차이를 하나의 결론으로 매듭짓지 못하는 경우를 보았고, 결론을 열어 두기 위해 스스로 자리를 남겨 두는 경우도 보았다. 여기에는 세 번째 방식이 있다. 구축은 차이를 완전히 볼 수 있고, 충분히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인정하지 않기로 하며, 다른 두 가지가 한 이름과 한 표를 같이 쓰게 한다. 나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나누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 선택은 세 층의 구조 속에 놓인다. 이 글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바로 이 구조 자체다. 첫째 층에서 규정은 차이에 이름 붙이기를 거부한다. 기록 도전 경기와 챔피언십이라는 두 범주를 세우지 않는다. 둘째 층에서는 경기의 조직이 끊임없이 그 차이를 만들어 낸다. 한쪽에는 토끼를 고용하고, 조명을 설치하고, 날씨를 고르는 기록 도전 경기가 있다. 다른 쪽에는 토끼 없이 여러 라운드를 치르며 전술을 겨루는 챔피언십이 있다. 셋째 층에서 기록표는 둘을 다시 합친다. 두 구조 안에서 나온 시간을 같은 표, 같은 기록의 계보에 넣는다.
규정은 인정하지 않고, 경기는 만들어 내며, 표는 합친다. 세 층은 동시에 돌아가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 규정은 하나의 종목이라고 말한다. 경기는 두 종류의 경기라고 말한다. 표는 비교 가능한 시간들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이 구축은 세 층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았다. 그저 세 층이 이런 상태로 함께 존재하도록 두었다.
이 구축은 당신의 바람막이가 되어 줄 사람을 고용하고, 400개의 불빛을 깔아 페이스를 표시해 줄 수 있다. 서늘한 밤과 가장 빠른 트랙을 골라 줄 수도 있다. 이 모든 도움을 적법한 규정 안에 적어 넣고, 당신이 달려 낸 시간을 공식 기록에 올릴 수 있다. 그러다가 다른 경기에서는 그 도움을 모두 거둬들여, 당신 혼자 상대와 피로, 자리싸움을 감당하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서로 다른 두 경기라는 사실을 구축은 똑똑히 안다. 그런데 장부를 적을 때는 두 경기에서 나온 시간을 같은 줄에 쓴다. 차이에 이름을 주지 않았기에, 그 차이는 이 표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초 속에 조용히 남았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