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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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조각 · 서양 조각

생고댕스의 《쇼와 제54연대 기념비 예비 습작》: 관객도 모형 안에 놓다

위에서는 부대가 행진하고 아래에서는 작은 사람이 앉는다. 기념비 모형은 훗날 찾아올 사람의 자리도 시험한다.

이 글의 구성

이 흰 석고의 아래쪽에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람이 하나 있다.

그는 말을 탄 장교와 보병의 대열에 끼어 있지 않고, 부조 아래로 돌출된 좌석에 앉아 있다. 몸은 화면 오른쪽에 가까우며 다리는 앞 가장자리 너머로 늘어진다. 위쪽의 빽빽하고 거칠게 표현된 군대에 비하면 이 사람은 특히 작다. 그러나 그가 차지한 자리는 많은 병사보다 우리 쪽으로 더 튀어나와 있다.

주인공에게서 떨어진 이 작은 인물을 먼저 보고 모형 전체를 다시 보면 질문 하나가 더해진다. 기념비는 누구를 보이게 하려 하며, 나중에 찾아올 사람들은 어디에 머물게 하려 하는가?

흰 석고 모형의 비스듬한 측면 사진. 둥근 아치형 윗부분을 가진 수직 판에 말을 탄 인물과 빽빽한 보병 대열이 얕은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판의 오른쪽 두께가 또렷하다. 아래쪽의 휘어진 좌석은 앞으로 돌출되며 오른쪽 끝에 작은 인물이 앉아 좌석 가장자리 아래로 두 다리를 늘어뜨린다.
그림 1 오거스터스 생고댕스, 《쇼와 제54연대 기념비 예비 습작》, 1883년. 석고, 전체 높이 41cm, 너비 38.7cm. 미국 내무부 국립공원관리청, 생고댕스 국립사적지 소장. 미국 국립미술관 등록 번호 X.15232. 미술관이 제공한 비스듬한 측면 사진이며 퍼블릭 도메인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대상은 이 작은 습작 한 점이다. 소장품 기록과 정면 이미지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내가 보기에 이 습작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영웅의 이야기를 이미 얼마나 선명하게 묘사했는지가 아니다. 부조 안에서 전진하는 몸과 부조 앞에서 머무는 몸, 두 종류의 몸을 동시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위의 서사와 아래의 의자는 같은 설계에 속한다. 기념하는 이미지가 어떻게 사람들이 다가가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는가 하는 물음이 여기서는 이미 조각의 문제다.

쇼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흑인 병사들로 구성된 매사추세츠 제54의용보병연대의 백인 지휘관이었다. 1863년 7월 18일 부대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와그너 요새를 공격했고 쇼는 전사했다. 이 부대는 인종적 불평등 속에서 복무했으며, 흑인 병사들은 차별적인 급료와 진급 제한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을 기념하려는 계획은 오랫동안 논의되었고, 생고댕스는 1880년대 초 설계를 시작했다. 보스턴의 청동 기념비는 1897년에 제막되었다. 눈앞의 1883년 석고는 구상이 아직 발전하고 있던 단계에 속한다. 국립공원관리청: 기념비의 역사; 관련 역사 연구

1. 얼굴보다 먼저 조직이 보인다

이 비스듬한 측면 사진은 흰 판의 두꺼운 가장자리를 드러낸다. 위의 기마 인물과 보병들은 독립된 소상들처럼 한 줄의 단 위에 서 있지 않다. 같은 배경에서 솟고 꺼지며 나타나고, 뒤로는 여전히 그 판에 이어져 있다.

가장 알아보기 쉬운 것은 중앙의 말이다. 배는 비교적 넓고 볼록한 면을 차지하고 목은 위로 말머리에 이어지며 다리는 아래로 몇 개의 가늘고 긴 형태로 갈라진다. 기수는 이 넓은 형태 위에 곧게 솟아 있다.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워도 말과 사람의 조합에는 온전한 골격이 있다. 가로로 놓인 말의 몸이 수직의 상체를 받치고, 아래로 뻗은 다리가 이를 행진 대열의 하단에 이어 준다.

주변 병사들은 이처럼 넉넉하게 알아볼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머리, 몸통, 팔다리가 서로 밀집하고 어떤 윤곽은 옆 사람의 윤곽에 이어진다. 위쪽의 빽빽한 긴 선은 세워 든 총을 표시하고,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뻗은 다리는 걷는 동작을 보인다. 사람 수를 먼저 다 세지 않아도 이것이 하나의 부대임을 알아본다.

이것은 아주 구체적인 시각적 순서다. 중앙의 사람과 말은 먼저 완전한 한 단위가 되고, 병사들은 먼저 반복되고 밀집한 형태로 나타난다. 주의가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수는 더 높은 자리를 얻고 말은 더 크고 연속적인 면을 얻는다. 보병은 수와 밀도, 되풀이되는 방향으로 그 주변을 차지한다.

이 차이를 단순히 어느 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할 수는 없으며, 모두가 똑같이 두드러진다고 평평하게 만들 수도 없다. 모형은 지휘관 한 명과 부대 하나를 같은 이미지 안에 놓으면서도 개인적 중심과 집단적 배경 사이의 긴장을 남긴다. 총의 선과 다리를 따라 사람들을 계속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거친 습작에서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성격을 읽을 수는 없으며, 흐릿한 얼굴에 역사 속 이름을 하나씩 대응시킬 수는 더욱 없다.

그림 1에 드러난 판의 가장자리를 보면 가로로 펼쳐진 몸들이 얼마나 얕은 깊이 안에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각도를 비교하고 싶다면 소장품 페이지의 정면 사진도 볼 수 있다. 사람과 말은 화면 왼쪽으로 나아가고 대열은 그 주변에 펼쳐진다. 정면에서는 행진 방향을 따라가기 쉽고, 비스듬한 측면에서는 부조의 두께가 드러난다.

2. 얕은 부조는 어떻게 부대 하나를 담는가

말의 배와 오른쪽 판 가장자리의 관계를 보자. 정면의 형상은 몸의 두께를 가진 듯하지만, 판 가장자리는 서로 앞뒤 다른 위치에 있는 듯한 많은 사람이 상당히 압축된 표면 안에 들어가 있음을 일깨운다. 여기서 ‘멀고 가까움’의 상당 부분은 실제 사람들 사이의 간격을 그대로 축소해 옮긴 결과가 아니라, 가림과 돌출 정도로 조직된다.

부조는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 석고판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리다. 말의 배는 조금만 부풀어도 전경이 되기에 충분하다. 뒤쪽에 끊어져 나타나는 형태들은 각자 온전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도 대열의 연속으로 읽힐 수 있다. 머리 옆의 총 하나, 몸 아래의 다리 한 부분이 눈으로 하여금 가려진 부분을 이어 붙이게 한다.

그러나 모든 표면이 똑같이 선명하지는 않다. 큰 돌출부와 짧은 홈이 섞여 있고 일부 연결은 급작스러우며 가장자리도 고르지 않다. 흰 석고는 군복, 피부, 총, 말을 색으로 구별해 주지 않으므로 형태와 사진 속 명암에 의지해 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세부보다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어디가 넓은 면이고 어디가 가는 선인지, 어디가 성기고 어디가 빽빽한지 보게 된다.

이 상태를 서둘러 ‘생동감 있는 붓질’이라 부르지는 말자. 우리가 보는 것은 석고 실물 표면의 굴곡이다. 그것만으로 움푹 팬 곳 하나하나가 작가의 손에서 나왔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가장자리의 결손을 모두 의도적인 표현으로 볼 수도 없다. 습작이라는 성격은 아직 충분히 전개되지 않은 형태에 주목하게 하지만, 보존 상태를 창작 의도로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위로 보면 아치 아래에 가로로 펼쳐진 인체와 옷주름이 있다. 아래쪽 기수보다 배경에 더 붙어 있고 아치형 가장자리의 제약도 받는다. 군대는 비교적 규칙적인 아래 영역에 모이고 위쪽 형상은 다른 공간에 배치된다. 따라서 모형은 앞뒤뿐 아니라 위아래도 배분한다. 아래의 반복은 집단 행동에 속하고, 위쪽의 비교적 고립된 가로 형태는 기념의 우의가 들어갈 자리를 남긴다. 나중 버전의 상징물을 모두 여기에 덧붙이지 않아도 공간의 구분 자체는 이미 볼 수 있다.

이 작은 모형이 실제로 절약하는 것은 관계가 아니라 공간이다. 적은 깊이로 중심과 대열, 상부 형상을 배치한 뒤 남은 물리적 두께를 하단의 전혀 다른 구성 요소에 내준다.

3. 아래쪽에서 앞으로 나온 것은 의자였다

오른쪽의 두꺼운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 보면 판은 더 이상 곧은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하단에서 앞으로 휘어 나와 넓은 좌석 면을 만들고, 앞 가장자리는 다시 아래로 꺾여 더 낮은 기단으로 이어진다. 위쪽에서 배경에 붙어 있는 병사들에 비하면 이 부분이 차지하는 앞뒤 거리는 뚜렷이 늘어난다.

작은 인물은 바로 이 돌출된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 상체는 곧고 다리는 좌석 면에서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자세가 거칠게 표현되었어도 몸과 의자의 접촉은 분명하다. 엉덩이는 좌석 높이에 남고 무릎은 앞으로 나가며 그 아래 다리는 좌석 면에서 떨어진다. 이 꺾임은 넓은 형태를 ‘받침대’에서 몸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꾼다.

미술사학자 캐서린 그린솔은 이 1883년 모형을 논하면서 작은 인물을 부속 벤치에 앉은 관객으로 명확히 해석한다. 그린솔은 관객을 멀리 서 있게 한 건축가 리처드슨 사무소의 설계도 한 장과 비교하며, 모형에서는 사람을 기념비 자체의 좌석에 놓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관객을 참여시키기》, 2, 4쪽.

이 식별은 사진 속 두 종류의 깊이 차이를 특히 흥미롭게 만든다. 위의 공간은 이미 일어난 이야기를 표현하고, 아래의 공간은 앞으로 다가올 사람을 위해 남겨 둔다. 보병은 얕은 겹침으로 압축할 수 있지만, 앉은 자세가 성립하려면 좌석 면은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형상의 공간과 몸이 사용하는 공간은 같은 모형 위에서 서로 다른 요구를 따른다.

크기 비례의 차이도 있다. 아래의 작은 인물을 기준으로 삼으면 부조의 사람과 말은 매우 커 보인다. 반면 중앙의 기수만 바라보면 전체를 평범한 작은 인물상들의 모임으로 착각하기 쉽다. 벤치에 앉은 인물은 읽는 방식을 바꾼다. 우리는 큰 기념물의 모형을 보고 있으며, 그 안에는 인체의 크기를 알려 줄 기준이 하나 더 놓여 있다.

실제 석고는 높이가 41cm뿐이므로 우리가 그 안에 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진 속 작은 인물은 이 설계가 공공 공간에 들어섰을 때 좌석 가장자리가 사람 몸의 어디쯤에 올지, 부조가 그 뒤로 얼마나 높이 솟을지 상상하게 한다. 여기서 치수는 표찰의 숫자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상상하는 방식에도 참여한다.

더구나 이 사람은 고개를 들어 영웅을 응시하는 전형적인 관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진이 뒷받침하는 것은 앉은 자세와 위치이지 그의 시선이나 마음이 아니다. 좌석은 머무를 조건을 제공하지만 앉은 사람이 반드시 찬탄하거나 깊이 생각하거나 역사를 배우리라고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한계가 중요하다. 설계는 몸의 자리를 정할 수 있지만 미래의 사람 하나하나를 대신해 기념하는 일을 완수할 수는 없다.

4. 모형에 남은 것은 축소된 기념비만이 아니다

이 습작을 훗날 명작이 될 작품의 ‘작은 예고편’으로만 보면 아래의 벤치와 인물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속물이 되기 쉽다. 말이 닮았는지, 병사가 충분히 정교하게 새겨졌는지 묻느라 모형이 시험하는 전체를 놓치게 된다.

모형은 세 가지를 동시에 검토할 수 있게 한다. 기수와 보병이 한 부조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가는 형상의 조직이다. 아치형 윗부분과 수직 판, 하단의 좌석 면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는 기념물의 구성이다. 한 사람이 그 곁에 어떻게 앉는가는 기념물이 일상 공간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들은 아직 ‘미술품 자체’와 ‘미술품이 놓이는 환경’으로 나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작품의 거침에는 인식의 가치도 있다. 얼굴은 온전한 초상으로 읽기에 부족하지만 구도는 이미 높낮이와 밀도, 크기의 선택을 보여 준다. 표면은 아직 정교하지 않지만 의자가 바깥으로 뻗은 거리는 이미 용도를 알려 줄 수 있다. 모형은 설계자가 이런 관계들을 먼저 한데 놓고 성립하는지 살필 수 있게 한다. 거친 부분을 하나하나 미화하지 않아도 모형이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다.

역사적 배경 역시 이 배치가 단순한 조형 놀이에 그치지 않게 한다. 제54연대의 흑인 병사들은 북군을 위해 싸우면서 군대 안의 평등한 대우도 쟁취해야 했다. 기념 사업이 다루어야 했던 것은 그들과 백인 지휘관을 어떻게 함께 공공의 기억으로 불러들일 것인가였다. 눈앞의 습작은 이미 기마 인물 주변에 대열을 포함했지만, 그렇다고 화면 속 두드러짐과 물러남을 없애지는 않았다. 이를 인정하는 편이 모형을 곧바로 평등이 실현된 이미지라고 선언하는 것보다 실제로 주어진 형태에 더 가깝다. 국립공원관리청의 관련 연구

마찬가지로 벤치가 관객에게 자리를 제공한다고 해서 모두가 평등하게 공적 기념에 참여할 수 있음을 자동으로 증명하지는 않는다. 벤치가 먼저 제시하는 것은 보고 논의할 수 있는 설계상의 선택이다. 기념물 앞은 사람이 떨어져 서서 올려다보기만 하는 거리가 아니라 몸이 머무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이 습작을 독립적으로 볼 가치가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런 선택이 아직 조정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위의 군대는 계속 나아가고 아래의 사람은 이미 앉았다. 하나는 역사를 향하고 다른 하나는 기념이 일어나는 일상의 순간을 향한다. 작은 석고는 둘을 이어, 기념비를 설계하는 일에 사람이 그것과 함께 머무는 방식을 설계하는 일도 포함됨을 보여 준다.

선택 읽기: SAE로 다시 보기 — 작은 인물 하나가 없으면 무엇이 사라질까?

먼저 아주 작은 상상 하나만 해 보자. 부조와 아치, 벤치는 그대로 두고 오른쪽 아래에 앉은 작은 인물을 없앤다.

말과 병사의 이야기는 여전히 알아볼 수 있다. 앞으로 뻗은 좌석 면의 형태도 남는다. 그러나 이 설계를 잘 모르는 사람이 여전히 같은 속도로 그것을 벤치라고 알아볼까? 아니면 조금 넓고 특이하게 생긴 받침대로 먼저 볼까?

차이는 장식 하나가 줄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은 인물의 앉은 자세는 좌석 면과 앞 가장자리, 그 아래의 공간을 몸이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관계로 엮으며 기념물 전체에 크기의 기준도 준다. 인물을 없애도 석고 자체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석고가 나타내는 건축적 규모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약해질 수 있다.

두 번째로 비교해 보자. 작은 인물은 남기되 모형 옆으로 옮겨 바닥에 똑바로 세운다. 이 역시 크기를 알려 줄 수 있지만 인물과 기념비의 관계는 바뀐다. 그는 외부의 비례 기준이 된다. 원래의 앉은 자세에서는 기준이 되는 사람이 모형의 구성 요소 하나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두 배치 모두 ‘얼마나 큰가’를 알려 줄 수 있지만, 뒤의 경우만 ‘몸이 여기서 어떻게 머무를 수 있는가’도 함께 보여 준다.

이 비교는 판단을 이야기가 감동적인지에서 구체적인 조형 선택이 무엇을 하는지로 옮긴다. 작은 인물이 작품을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고만 말하는 대신, 식별과 크기 감각, 공간의 용도에 각각 어떤 기여를 하는지 살필 수 있다. SAE 미학으로 들어간다면 이는 아주 실질적인 경로다. 작품을 판단할 때 형태가 인간의 경험에 어떤 조건을 제공하는지 주목하되, 형태가 마련한 가능성을 모든 관객에게 이미 일어난 심리적 사실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SAE 미학 총론

이미지와 자료 안내

이 글은 미국 국립미술관이 제공한 동일한 1883년 석고 습작을 대상으로 하며, 공식 경로에서 내려받은 비스듬한 측면 사진 한 장을 싣는다. 크기는 3306 × 4096픽셀이며 다운로드한 파일 그대로 보존했다. 소장품 페이지에는 정면 이미지도 있어, 본문에서 언급한 정면의 방향은 그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면 이미지는 이 글의 이미지 파일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 글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 관찰이며 현장 관찰 기록이 아니다.

이 습작은 1897년 보스턴의 청동 기념비, 그리고 1900년으로 표기된 대형 착색 석고와는 서로 다른 실물이다. 이 글에는 뒤의 두 작품 사진을 섞지 않았으며, 완성된 버전의 얼굴, 상징물, 명문을 이 초기 모형에 옮겨 놓지도 않았다. 이미지 출처는 이미지 기록, 연구의 출처는 참고 자료에 있다.

참고 자료 (영어)

English

Preliminary Study for The Shaw 54th Regiment Memorial: official collection record.

The NGA record identifies the 1883 small plaster study, owned by the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National Park Service, Saint-Gaudens National Historic Site. It is distinct from both the Boston bronze and the later full-size plaster. Kathryn Greenthal’s study discusses the seated viewer and bench; National Park Service sources provide the regiment’s history.

Kathryn Greenthal, Engaging the Viewer, 2008, pp. 2 and 4.

National Park Service: the memorial’s history.

Expanding the Story.

Han Qin, SAE Judgment and Aesthetics is optional philosophical reading, not a historical source about this object. The close reading and proposed interpretations belong to this essay.

이미지 출처와 이용 안내 (영어)

이 사이트에는 세부와 다른 각도를 포함해 읽기에 적합한 크기의 WebP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미술관 작품 페이지로 이동하며, 전체 해상도 원본은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래 크기, 파일명, 자르기 좌표와 해시는 보관된 원본 자료의 기록으로, 웹 미리보기의 사양이 아닙니다.

English

Courtesy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National Park Service, Saint-Gaudens National Historic Site, Cornish, New Hampshire (X.15232).

The supplied photographs show the same object described in the collection record. Public Domain / CC0; museum image policy. Their use does not imply museum endorsement. The supplied originals are preserved in an offline archive. The site provides lightweight WebP images; clicking an image opens the museum’s collection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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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shaw_study.jpg: official image · 3306 × 4096 pi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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