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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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조각 · 서양 조각

드가의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 멈춰 서 있어도 춤은 몸에 남는다

춤추지 않아도 서 있는 몸에는 춤이 남는다. 등 뒤를 돌아보고 정면으로 돌아오면, 가려진 손이 보는 방식을 바꾼다.

이 글의 구성

먼저 발을 보자.

한 발은 앞으로 나가 있고, 다른 발은 몸 아래에 남아 있다. 두 발끝은 모두 바깥을 향한다. 발이 놓인 곳은 네모난 나무 받침이다. 도약을 준비할 때처럼 무릎을 깊이 굽히지는 않았다. 치마는 사방으로 퍼지지만 두 다리는 땅에 단단히 닿아 있다. 시선을 올리면 들린 턱과 뒤로 열린 어깨, 몸 양옆에서 뒤로 물러난 두 팔이 보인다. 손은 가려져 있고, 가슴 앞에도 관객을 맞아들이는 몸짓은 없다.

소녀는 춤추지 않는다. 하지만 춤은 이미 소녀가 서 있는 방식을 빚어 놓았다.

드가의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 원본 밀랍상, 비스듬한 앞쪽에서 본 모습. 소녀는 몸에 붙는 연노란색 상의와 회색 망사 치마를 입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채 두 팔을 등 뒤로 뻗고 있다.
그림 1 에드가 드가,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 1878–1881년. 채색한 밀랍, 점토, 금속 골조, 직물, 머리카락 등의 혼합 재료와 나무 받침. 받침을 제외한 높이 98.9cm. 미국 국립미술관, Collection of Mr. and Mrs. Paul Mellon, 소장품 번호 1999.80.28. 이 글의 이미지는 모두 이 원본 밀랍상을 미술관에서 촬영한 사진이며, 이미지 이용 조건은 CC0이다. 소장품 기록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드가는 잠깐의 멈춤 속에서 춤이 몸에 어떻게 남는지 보여 준다. 바깥으로 돌린 발, 앞뒤로 벌어진 다리, 들어 올린 턱, 뒤로 뻗은 두 팔이 함께 이 자세를 지탱한다. 여기서 가벼움에는 땅이 있고, 받침이 있으며,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몸이 있다.

작품이 등장한 곳은 19세기 후반의 파리였다. 발레는 도시의 무대 문화를 이루는 한 부분이었고, 그 무대 뒤에는 오랜 연습과 생계의 압박이 있었다. 1881년 드가는 이 밀랍상을 제6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공개 전시한 조각은 이 작품 하나뿐이다. 모델 마리 반 후템은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파리 오페라에서 무용을 배우던 학생이었다. 이 배경을 알면 눈앞의 자세가 구체적인 세계와 이어진다. 소녀는 무용수가 되는 법을 배우면서, 한 직업이 요구하는 조건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미술관 작품 해설

1. 두 발이 가벼움을 땅에 붙들어 둔다

나무 받침을 빼면 인물의 높이는 약 99cm다. 사진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 실제 사람 크기처럼 보이기 쉽다. 크기를 기억한 채 나무 받침과 두 발을 다시 보면, 작품을 바라보는 거리도 좀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림 1에서 소녀의 오른쪽 다리는 우리가 보는 화면의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뻗어 있고, 다른 다리는 수직에 더 가깝다. 두 다리는 나란히 놓인 두 기둥이 아니다. 한쪽은 자세를 펼치고, 다른 한쪽은 몸을 붙잡아 둔다. 그래서 치마 아래 빈 공간도 기울어져 한쪽은 넓고 다른 쪽은 좁다. 눈은 뻗은 다리를 따라 신발 끝으로 갔다가, 더 곧게 선 다리를 따라 몸통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오가는 동안 몸이 어디에 내려앉아 있는지가 느껴진다.

여기서는 발끝으로 온몸을 높이 밀어 올리지 않는다. 신발의 윤곽을 따라가면 발이 앞으로 뻗어 나가 나무 받침과 맞닿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바깥으로 뻗는 움직임과 땅에 닿는 모습을 함께 본다. 무대 사진 속 도약이나 회전의 순간에 익숙한 눈으로 이 나무 받침 위의 두 발을 마주하면, 서 있는 데도 꽤 풍부한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술관의 요청으로 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한 전문 무용수 타라 허턴은 소녀의 자세를 조금 이완된 4번 발 포지션으로 보았고, 거기에서 긴 연습을 마친 뒤와 같은 피로를 읽었다. 무용수의 경험에서 나온 하나의 해석이다. 미술관 음성 해설 원문 조각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발 포지션의 이름부터 배울 필요는 없다. 두 발 사이의 앞뒤 거리, 바깥으로 돌아간 발끝의 방향, 무너지지 않은 상체만으로도 하나의 자세에 휴식과 훈련이 함께 남을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른쪽 다리는 앞으로 뻗지만 몸 전체를 앞으로 데려가지는 않는다. 팔은 뒤로 향하고 상체는 여전히 들려 있다. 몸의 각 부분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데도 소녀는 서 있다. 이 정지는 서로를 잡아 주는 방향들로 이루어져 있다.

2. 옆으로 가면 손이 나타난다

정면에서는 얼굴이 먼저 눈길을 붙잡기 쉽다. 들어 올린 턱에서 자부심을 떠올릴 수도 있고, 내리깐 눈꺼풀에서 피로를 읽을 수도 있다. 몸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우리는 소녀에게 어울릴 기분 하나를 고르기 시작한다.

옆모습은 그 선택의 속도를 늦춘다.

같은 밀랍상의 측면 전신 사진. 앞으로 나온 가슴과 배, 위로 들린 턱, 뒤로 뻗은 두 팔의 방향이 동시에 보인다. 두 손은 치마 뒤쪽 낮은 곳에서 맞잡고 있다.
그림 2 측면 전신. 얼굴에만 머무르지 말고 턱, 가슴과 배, 팔, 두 발을 차례로 따라가 보자.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턱은 앞쪽 위로 내밀어져 목 앞쪽이 길어지고, 가슴과 배의 윤곽은 앞으로 부푼다. 반대편에서는 거의 곧게 펴진 두 팔이 어깨에서 아래로, 뒤로 내려와 치마 뒤에서 손을 모은다. 앞쪽의 곡선과 뒤쪽의 긴 사선이 함께 드러난다.

이 각도에서는 ‘고개를 든다’는 것이 더 이상 머리만의 일이 아니다. 머리를 드는 방식, 어깨를 뒤로 여는 방식, 팔을 뒤로 뻗는 방식이 함께 전체 자세를 이룬다. 얼굴만 따로 잘라 내면 하나의 표정을 얻기 쉽다. 온몸을 보아야 그 표정이 어떤 서 있는 자세와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

등 뒤로 더 돌아가면, 처음에는 가려져 있던 손이 가까이에서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동작이 된다.

같은 밀랍상의 뒷면 전신 사진. 머리 뒤에는 옅은 색 리본이 묶여 있고, 두 팔은 몸통 양옆에서 아래로 내려와 뒤로 모인다. 두 손은 망사 치마 뒤에서 맞잡고 있다.
그림 3 뒷면 전신.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손가락이 맞닿는 모습과 팔과 등의 관계가 두드러진다.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두 팔은 아래로 길게 뻗다가 손목에서 꺾이고, 두 손은 가로로 모인다. 그 윤곽은 밑부분이 오므라든 긴 곡선 같아서 등과 치마의 일부를 안에 감싼다. 머리 뒤로 옅은 색 리본이 늘어지고, 그 아래에는 상의가 잘록해지는 허리가, 더 아래에는 손이 있다. 질감도 너비도 다른 형태들이 등을 따라 위아래로 놓인다.

이 뒷모습은 정면 사진에 빠진 내용을 채우는 ‘보충 설명’이 아니다. 뒷모습을 보면 작품에서 주목하는 부분이 달라진다. 읽어 낼 얼굴이 없어지자 우리는 두 손이 어떻게 맞닿는지, 위팔과 몸통 사이에 얼마만큼의 틈이 있는지, 치마의 천이 몸과 손에 어떻게 둘러싸이는지를 살피기 시작한다. 인물의 표현력이 얼굴에서 몸의 여러 부분 사이의 관계로 옮겨 간다.

3. 치마는 조각해 만든 치마가 아니다

멀리서 보면 노란 상의, 어두운 몸, 회색 치마를 하나의 온전한 사람으로 묶어 보기 쉽다. 머리와 어깨 가까이 다가가면 재료의 경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같은 밀랍상의 머리와 목, 어깨와 가슴을 가까이 찍은 사진. 밀랍층이 머리카락과 상의의 일부를 덮고 있으며, 군데군데 머리카락의 가는 결, 직물의 가로 무늬, 옅은 색 리본의 접힌 부분이 보인다.
그림 4 미술관이 촬영한 머리와 어깨의 세부 사진. 천의 결, 머리카락, 밀랍층, 리본의 접힌 면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빛을 반사한다.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상의 표면에는 울퉁불퉁한 노란 밀랍층도 있고, 촘촘한 가로 결이 드러난 곳도 있다. 옷 가장자리의 잘고 불규칙한 높낮이는 어깨의 더 넓은 굴곡과 이어진다. 땋은 머리는 어떤 곳에서는 짙은 조형 재료 덩어리처럼 보이고, 다른 곳에서는 가는 머리카락을 구분할 수 있다. 머리에 묶인 옅은 리본은 직물 특유의 꺾임과 처짐을 간직하며, 빛을 받는 곳은 부드러운 면들로 나타난다.

이 차이를 모두 조각가가 흉내 내어 만든 것은 아니다. 드가는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과 진짜 옷을 사용하고, 그 일부를 밀랍으로 덮었다. 상의는 몸에 달라붙어, 몸에 걸친 물건인 동시에 몸의 표면을 만드는 데도 참여한다. 망사 치마는 바깥으로 펼쳐지고, 그물코와 겹친 층은 얇은 틈 사이에 빛을 머금는다. 재료 기술 연구

하나의 작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두 방식으로 대상을 알아본다. 종아리를 보면 재료로 빚은 몸이라는 것을 안다. 치맛단을 보면 눈앞에 있는 것이 실제 천이다. 눈은 이 둘을 한 소녀로 연결하면서도, 계속해서 재료의 차이를 의식하게 된다. 소녀는 살아 있는 사람을 닮았다. 그 ‘닮음’ 속에 만드는 과정의 흔적도 밖으로 드러나 있다.

이는 작품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도 바꾼다. 다리와 몸통은 단단하게 모인 부피를 이루지만, 치마는 윤곽을 주위로 밀어내고 가장자리는 느슨하며 안쪽에는 빛이 통과하는 작은 틈이 많다. 몸 주위의 폭 가운데 일부는 몸 자체가 아니라 천이 펼쳐지면서 생긴 것이다. 몸에 붙었다가 떨어지고, 꽉 찼다가 비쳐 보이는 일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번갈아 일어난다.

현재의 치마에는 원래 직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1881년 당시의 전체 모습은 아직 확정할 수 없다. 오늘 보이는 갈색 밀랍 표면과 오래된 직물의 색 역시 첫 전시 때의 색과 곧바로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눈앞의 재료들 사이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 재료들이 함께하기에 작품은 여기 서 있다. 기술 연구 · 첫 전시 당시 모습에 관한 연구

4. 소녀의 외모를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1881년의 관객이 모두 이 소녀를 반긴 것은 아니다. 밀랍과 실제 머리카락, 진짜 옷이 미술 전시장에 들어오면서 정식 조각 작품의 재료에 대한 기대를 흔들었다. 무용 학생의 몸 역시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이상적인 모습으로 다듬어져 있지 않았다. 작품은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되었는데, 이 방식 때문에 밀랍 인형이나 표본을 떠올린 관객도 있었다. 첫 전시 형태와 유리 진열장 연구 · 당시 비평과 이후의 해석

어떤 비평은 아름답고 추하다는 판단을 넘어섰다. 폴 망츠(Paul Mantz)는 마른 팔과 앞으로 내민 얼굴에서 도덕적 타락을 읽었고, 심지어 그 얼굴을 온갖 악덕의 전조로 여겼다. 미술관의 연구는 이런 판단을 인용하면서도, 작품을 곧바로 드가가 ‘범죄자의 관상’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데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다. 비평가가 소녀에게서 본 것이 곧 작가가 우리에게 보이려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NGA 도상 해석 연구

여기서 질문은 더 정확해진다. 우리는 이 조각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 형태나 표면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소녀의 얼굴을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안다고 여겨도 될까. ‘나는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에서 ‘이 아이는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로 넘어가는 순간, 미적 판단은 인격에 대한 판결이 된다. 오늘날 소녀를 ‘귀엽다’고 부른다고 해서 이해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밀랍과 실제 옷은 이 질문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소녀에게는 조각으로 빚어진 흔적이 있고, 동시에 일상에서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이 걸쳐져 있다. 대리석상에 익숙한 사람이 실제 머리카락과 천으로 된 치마를 마주하면, 그동안 안정적이던 감상의 거리가 흐트러질 수 있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질 수도 있고, 더 서둘러 훑어보고 평가하려 할 수도 있다. 재료는 인물을 우리 가까이 데려온다. 가까워진 뒤 어떻게 볼 것인가는 관객 자신의 문제가 된다.

파리 오페라의 사회적 배경을 생각하면 이렇게 바라보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어린 무용수의 훈련, 가족의 수입, 권력 있는 남성 관객 사이에는 불평등한 관계가 있었다. 이는 그 직업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이지, 어느 한 소녀의 모든 경험을 대신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다. 마리는 이름을 가진 모델이다. 하나의 사회적 결론을 위해 준비된 이름 없는 사례가 아니다. 19세기의 어린 무용수들

5. 정면으로 돌아와도 등 뒤의 손은 남아 있다

이제 다시 정면으로 돌아가 보자.

같은 밀랍상의 비스듬한 정면 전신 사진. 그림 1보다 사진 속 두 다리가 더 가까워져 겹쳐 보이고, 팔도 몸 뒤로 더 많이 가려져 있다.
그림 5 비스듬한 정면 전신. 두 다리는 일부가 겹치고 손은 몸에 가려져 있다.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그림 1과 비교하면 그림 5에서는 사진 속 두 다리가 더 가까워져 일부가 겹친다. 하지만 돌아온 지금 눈여겨볼 것은 윤곽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두 손은 다시 몸 뒤로 숨었지만, 우리는 이미 그 손이 어떻게 모여 있는지 안다.

그 ‘앎’이 보는 행위에 남는다. 눈앞에 팔의 일부만 보여도 우리는 그것을 등 뒤의 손에 연결할 수 있다. 뒤로 열린 어깨를 보면 그 뒤로 아래를 향해 길게 내려가는 두 선이 있다는 것도 기억한다. 뒷면은 이 사진에 담겨 있지 않지만, 더 이상 빈 곳은 아니다.

처음 정면을 보았을 때는 얼굴이 무엇을 표현하는지만 물었을지 모른다. 다시 돌아온 지금은 얼굴 앞의 공간, 몸통의 두께, 등 뒤의 두 손이 모두 하나의 몸에 속한다. 앞서 본 부분이, 지금 그것을 볼 수 없을 때의 이해에도 참여한다. 조각의 두께 역시 이렇게 되돌아보는 동안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드가는 우리에게 한창 펼쳐지는 춤을 주지 않았다. 춤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춤으로 빚어진 지점에 시선을 멈추게 했다. 서 있는 것 자체가 눈여겨볼 일이 된다. 한 사람이 잠시 움직이지 않아도, 그가 배우고 연습한 동작은 땅과 관계 맺는 방식에 여전히 남아 있다.

더 읽고 싶다면: SAE로 다시 보기

이 치마가 망사가 아니라 빛을 통과시키지 않는 밀랍 한 덩어리라면, 소녀는 여전히 이렇게 가벼워 보일까.

먼저 그림 2와 그림 3에서 치마의 아래 가장자리를 찾아보자. 중심부는 여러 층이 꽤 촘촘하게 겹쳐 있지만, 가장자리에서는 작은 그물코와 느슨한 실이 보인다. 다리도 이 얇고 고르지 않은 테두리 아래로 드러난다. 이 차이를 기억하며 재료에 관한 사고 실험을 하나 해 보자. 치마의 길이와 바깥 윤곽은 그대로 둔 채, 모든 그물코와 층 사이의 틈을 메워 빛이 통하지 않는 밀랍 덩어리로 만든다고 상상한다. 우선 이 한 가지 변화만 마음속에 남겨 두자. 얼굴도 발 위치도 바꾸지 않고, 자세를 새로 짜지도 않는다.

윤곽은 여전히 무용복 치마로 알아볼 수 있겠지만, 다리와의 관계는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망사 치마는 가장자리로 빛이 통과하고 층이 안쪽으로 겹쳐지며, 그 아래 다리는 느슨한 테두리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속이 꽉 찬 치마로 바뀌면 바깥 덩어리와 다리 사이에는 더 단단한 부피의 경계가 생긴다. 실제 무게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위쪽의 이 덩어리가 두 다리 위를 어떻게 누르는 듯 보이는지에 대한 느낌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림 2와 그림 3으로 돌아가, 치맛단의 어느 부분 때문에 그렇게 판단했는지 살펴보자. 이는 비교를 위한 가정이지, 개조한 작품을 실제로 측정한 결과가 아니다. 대체로 같은 외형만으로는 왜 같은 감상 경험이 생기지 않는지를 구별해 보려는 것이다. 재료보다 자세가 줄곧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면, 두 다리의 벌어짐이나 몸통의 방향으로 그 생각을 설명해도 된다. 이 글이 강조하는 치마의 시각적 무게감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 비교는 다시 두 발로 우리를 데려간다. 소녀의 서 있는 모습이 오래 보아도 흥미로운 까닭은 자세가 독특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꽉 찬 정도가 서로 다른 형태들이 결국 두 신발과 나무 받침이 맞닿는 곳에 자리 잡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조각에서 느끼는 가벼움에도 재료의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을 알아본다고 가벼움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여기는 SAE(Self-as-an-End) 미학으로 들어가는 작은 입구가 될 수도 있다. 치맛단에 빛이 통하는 방식과 층이 포개지는 방식처럼 구체적으로 짚을 수 있는 관계에서 출발해, 어떤 아름다움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더 물어보는 것이다. SAE 미학 총론 · 지각의 아름다움

이미지와 자료 안내

이 글은 미국 국립미술관이 제공한 동일한 원본 밀랍상 사진 다섯 장을 바탕으로 작품을 자세히 읽는다. 모두 긴 변이 4000픽셀이며, 여러 각도의 전신 사진과 미술관이 촬영한 머리·어깨 세부 사진을 포함한다. 파일은 공식 다운로드 당시의 상태를 유지했고, 색 보정이나 재압축, 덧그리기, 이미지 생성을 하지 않았다. 사진의 조명, 렌즈, 구도는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므로 현장에서 관찰한 기록과 같게 취급할 수는 없다.

드가 사후에 제작된 청동 주조상의 사진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 주조상들에는 저마다 제작과 소장의 역사가 있으며, 여기서 보는 밀랍과 실제 머리카락, 옷의 표면과 혼용할 수 없다. 이미지별 출처와 이용 조건은 이미지 목록, 역사적 사실과 연구의 출처는 참고 자료에 정리했다. 작품 해석은 이 글이 제안하는 읽기이며, 미술관의 보증이나 지지를 뜻하지 않는다.

참고 자료 (영어)

English

Checked on 15 October 2026. Historical information comes chiefly from the National Gallery of Art’s collection record and technical and historical studies. The visual readings are the essay’s own proposals, based on the five accompanying photographs.

1. Collection record and audio transcripts: identification, date, dimensions, materials and exhibition history; dancer Tara Hutton’s professional interpretation of the position and apparent fatigue.

2. Technical Notes: internal construction, wax, real clothing and hair, and research on the surviving skirt.

3. Original State: incomplete evidence of the 1881 appearance, debates about the skirt and pose, and the glass display case.

4. Iconographic Interpretations: contemporary criticism and later interpretations. Critics’ prejudices are not evidence of the model’s character.

5. Young Dancers in Nineteenth-Century Art: the model and the professional and social circumstances of young dancers.

6. Edgar Degas Only Made One “Little Dancer.” And It’s Ours.: the museum’s 2023 account of making and conserving the work, distinguishing the original wax from posthumous bronze casts.

7. SAE Judgment and Aesthetics — In Tribute to Kant: Han Qin’s framework for aesthetics; further reading beyond the essay’s optional material comparison.

8. The Beauty of Perception: further reading on perception. The imagined replacement of the skirt is this essay’s thought experiment, not an existing example from the paper.

이미지 출처와 이용 안내 (영어)

이 사이트에는 세부와 다른 각도를 포함해 읽기에 적합한 크기의 WebP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미술관 작품 페이지로 이동하며, 전체 해상도 원본은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래 크기, 파일명, 자르기 좌표와 해시는 보관된 원본 자료의 기록으로, 웹 미리보기의 사양이 아닙니다.

English

Edgar Degas, Little Dancer Aged Fourteen, 1878–1881, NGA 1999.80.28. The original mixed-media wax sculpture, not a later bronze cast.

All photographs: Courtesy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Collection of Mr. and Mrs. Paul Mellon. The collection gallery marks these images as public domain; the museum’s open-access terms provide them under CC0. Their use does not imply museum endorsement.

The original JPEG files were supplied by the museum’s IIIF service at a longest side of 4,000 pixels and are preserved unchanged. Figure 4 is a museum photograph of a detail, not a crop made for this essay. All five photographs show the same wax sculpture; no bronze or plaster casts are mixed in. Museum gallery numbers differ from the essay’s figure numbers. The website supplies lightweight WebP images; clicking a photograph opens the museum’s collection page. The unchanged JPEGs are archived offline, not hosted on the website.

- Figure 1: three-quarter front view, 2822 × 4000 pixels. Original image. File: images/01_three_quarter.jpg; museum gallery image 1.
- Figure 5: oblique front view with overlapping legs, 2902 × 4000 pixels. Original image. File: images/02_oblique.jpg; museum gallery image 4.
- Figure 2: full-length profile facing right in the image, 2906 × 4000 pixels. Original image. File: images/03_profile.jpg; museum gallery image 6.
- Figure 3: full-length back view, 2906 × 4000 pixels. Original image. File: images/04_back.jpg; museum gallery image 9.
- Figure 4: head, neck and upper torso detail, 3215 × 4000 pixels. Original image. File: images/05_head_material.jpg; museum gallery image 12.

The accompanying image_manifest.json records the download sources and SHA256 hashes. Checked on 15 October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