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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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서예 · 중국 서예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 흰 글자 안의 검은 모양부터 보기

‘長廊四起’, 긴 회랑이 사방으로 뻗는다는 구절의 ‘四’는 옆으로 펼쳐지면서도 키가 커지지 않는다. 그림 1 가운데 열에서 ‘廊’(회랑) 아래, ‘起’(일어나다) 위에 있다. 흰 테두리 안에서 짧은 획들이 검은 부분을 작게 나눈다. 왼쪽은 좁고 오른쪽은 가로로 더 길다. 그 검은 곳에 시선이 머물면 ‘四’는 네 변으로 둘러싼 윤곽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의 구성

‘長廊四起’, 긴 회랑이 사방으로 뻗는다는 구절의 ‘四’는 옆으로 펼쳐지면서도 키가 커지지 않는다. 그림 1 가운데 열에서 ‘廊’(회랑) 아래, ‘起’(일어나다) 위에 있다. 흰 테두리 안에서 짧은 획들이 검은 부분을 작게 나눈다. 왼쪽은 좁고 오른쪽은 가로로 더 길다. 그 검은 곳에 시선이 머물면 ‘四’는 네 변으로 둘러싼 윤곽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이웃인 ‘高’(높다)에도 둘러싸인 부분이 있지만, 작은 공간들을 위아래로 쌓는다. 왼쪽의 ‘臺’(높은 대)는 더 많은 짧은 획을 겹친다. 세 글자는 비슷한 높이에서 만나지만 내부를 같은 방식으로 나누지 않는다. 양옆의 높이와 밀도 덕분에 ‘四’의 납작한 너비가 더 뚜렷해진다.

‘四’와 위아래 및 좌우의 이웃 글자. 각 열은 위에서 아래로, 열 사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그림 1. 이기(李祺)가 소장했던 탁본의 궁전 묘사 부분. 가운데 열은 ‘廊四起棟’, 곧 회랑/넷/일어나다/용마루 또는 지붕의 큰 들보이다. ‘四’ 오른쪽은 ‘高’, 왼쪽은 ‘臺’이다. 세 이웃 열을 원래 위치대로 남겼으며 위쪽 가장자리에는 앞선 줄 글자의 끝부분이 조금 들어 있다.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박물원 디지털 사진에서 잘라냄. 공식 고해상도 뷰어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여기서는 획이 희고 글자 안의 빈 곳이 검다. 지금 보는 것은 명대 이기가 소장했고 현재 베이징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송대 탁본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한 책이다. 이 종이에 구양순이 직접 먹을 놓은 것은 아니다. 흰 글자는 돌에 새긴 홈에 해당한다. 돌에 밀착시킨 종이에 먹을 묻히면 오목한 부분은 먹이 닿지 않아 종이색으로 드러난다. 획 사이에 깎이지 않고 남은 돌 표면은 탁본에서 검은 모양을 얻는다.

이 책에서 먼저 볼 만한 것은 바로 이 검은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구양순 해서의 긴밀함은 글자마다 속을 가득 채우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길이가 다른 획들이 크기가 다른 공간을 둘러싸고, 가르고, 비워 둔다. 글자를 지탱하는 것은 이처럼 같지 않은 관계들이다.

먹은 글자 둘레에 놓인다

먼저 보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는지 분명히 하자. 음각 비문의 먹 탁본은 보통 종이를 적셔 돌에 붙이고 두드리거나 솔로 눌러 요철에 밀착시킨 뒤, 높은 돌 표면에 해당하는 종이 부분에 먹을 묻혀 만든다. 떼어 낸 종이의 글자는 바른 방향으로 읽힌다. 새긴 획은 밝고 주변은 어둡다. 홈을 먹으로 채운 뒤 찍어 내는 방식과 다르며, 글자가 좌우로 뒤집히지도 않는다. 고궁박물원 ‘탁편’, 세르누시 미술관의 탁본 기법 설명

따라서 그림 1의 ‘四’ 안에 있는 검정은 구양순이 칠해 넣은 먹 덩어리가 아니다. 획 사이의 거리를 보이게 한다. 흰 부분의 폭과 검은 부분의 폭을 함께 보아야 한다. 흰 윤곽만 한 획씩 따라가면 획마다 고립된 부품이 되기 쉽다. 조금 물러서 검은 곳을 보면 그 부품들이 어떻게 가까워지면서도 모두 막아 버리지는 않는지 알 수 있다.

바로 위 ‘廊’에서는 왼쪽 사선이 아래로 길게 내려가고 오른쪽에는 긴 세로획이 따로 선다. 그 사이로 흰 획과 좁은 검정이 번갈아 나타난다. ‘四’에서는 높이가 갑자기 줄고 주변의 검정이 넓어진다. 아래의 ‘起’는 끝부분이 오른쪽으로 펴지고, ‘棟’은 가운데 세로획과 좌우 사선으로 다시 글자를 벌린다. 네 글자의 중심은 대체로 이어지지만 가장자리는 계속 달라진다. 모두를 같은 크기의 흰 덩어리로 만들지 않아도 열을 따라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이 탁본은 잘라서 책으로 꾸몄기 때문에 비문의 부분들이 책장에 나뉘어 놓였다. 이미지의 구획선과 이음매도 구별해야 한다. 가까이에서는 글자 내부와 이웃 관계를 비교할 수 있지만, 책장의 바깥 가장자리와 페이지가 바뀌는 곳은 당대 석비의 원래 행 끝이 아니다. 페이지 전체를 볼 때 이 서예에는 돌에 새기기, 종이에 탁본하기, 책으로 꾸미기의 크기가 함께 담겨 있다.

《구성궁예천명》은 위징(魏徵)이 글을 짓고 구양순(歐陽詢)이 썼으며 632년에 비를 세웠다. 구성궁의 건축, 당 태종의 피서, 단맛 나는 샘의 발견을 기록하고 찬양과 경계로 끝맺는다. 이 글은 이 책의 공개 사진에서 보이는 몇 대목을 자세히 읽는다. 다른 탁본을 보태 원래 비 전체를 본 듯한 인상을 만들지는 않는다. 고궁박물원 소장품 설명

‘水’에서 ‘架’로: 열린 곳에도 모양이 있다

궁전 부분의 오른쪽 페이지. 왼쪽 끝 열은 ‘池跨水架楹分’이며 오른쪽 이웃 세 열도 남겼다
그림 2. 같은 펼침면의 오른쪽 페이지. 각 열은 위에서 아래로, 열 사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왼쪽 끝 열의 셋째 글자는 ‘水’(물), 넷째는 ‘架’(걸치거나 세우다)이다. 오른쪽 이웃에는 ‘殿’(전각), ‘絕’(끊다), ‘壑’(골짜기)이 있고 더 오른쪽에는 ‘壽’(장수), ‘宮’(궁전)이 있다. 모두 원래의 이웃 위치를 유지한다.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디지털 사진에서 잘라냄. 공식 고해상도 뷰어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그림 2의 ‘水’는 왼쪽 끝 열에서 ‘跨’(가로지르다) 아래에 있다. 가운데 한 획이 아래로 내려가고 양옆 사선이 중간에서 뻗어 나간다. 바깥 테두리가 없으므로 검정이 밖에서 흰 획 사이로 들어와 폭과 뾰족한 정도가 다른 틈을 만든다. 특히 오른쪽 아래로 뻗는 흰 획의 위와 아래에서 검은 공간이 열리는 방향은 서로 다르다.

이어지는 ‘架’에서는 위쪽 ‘加’의 짧은 획들이 모인다. 아래쪽 ‘木’(나무)은 세로획을 아래로, 사선을 양쪽으로 보낸다. ‘水’에 없는 가로 방향의 층이 하나 더 있지만, 글자 전체를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 오른쪽 위 작은 ‘口’(입)의 검은 속에서 아래 세로획 양옆의 검정으로, 눈은 비교적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옮겨 간다.

오른쪽 이웃 ‘殿’과 그 아래 ‘絕’, ‘壑’에서는 여러 구성 요소가 제자리를 차지하여 흰 선 사이의 검정이 잘게 나뉜다. ‘水’는 획이 적어 검정이 밖에서 크게 들어올 수 있고, ‘壑’은 획이 많아 검정이 좁은 틈과 작은 면으로 갈린다. 그래도 둘은 비슷한 글자 자리를 차지한다. 획수에 비례하여 글자 크기를 늘리지 않는 것이다. 이 관계 덕분에 성긴 글자는 허전하게 떨어져 보이지 않고 빽빽한 글자도 눈길이 통하지 않는 덩어리가 되지 않는다.

‘중심을 조이고 사방으로 펼친다’는 말은 요령으로만 읽으면 금방 끝난다. 이 페이지로 돌아오면 확인할 대상이 생긴다. ‘水’의 획은 어디서 만나는가. ‘架’의 위쪽은 ‘木’ 위에 어떻게 놓이는가. ‘壑’은 아래쪽을 어떻게 가로획으로 마무리하는가. 모으고 여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모든 글자에 같은 중심과 같은 네 모서리를 그려 줄 수 없다.

비문은 여기서 궁전을 묘사한다. 그림 1~3과 관련된 이어지는 대목 전체를 통용 간체자로 옮기고 현대식 문장부호를 붙였다. 인쇄상의 문단과 문장 구분은 책의 열 배치를 흉내 내지 않는다.

此则隋之仁寿宫也。冠山抗殿,绝壑为池,跨水架楹,分岩耸阙,高阁周建,长廊四起,栋宇胶葛,台榭参差。仰视则迢递百寻,下临则峥嵘千仞,珠璧交映,金碧相晖,照灼云霞,蔽亏日月。观其移山回涧,穷泰极侈,以人从欲,良足深尤。

이곳은 본래 수나라의 인수궁이다. 산마루에 높은 전각을 세우고 깊은 골짜기를 막아 못을 만들며, 물을 가로질러 기둥을 세우고 바위를 갈라 높은 문루를 올렸다. 높은 누각이 둘러서고 긴 회랑은 사방으로 뻗었다. 건물은 서로 얽히고 대와 정자는 높낮이가 제각각이다. 올려다보면 건물은 멀리 백 심의 높이에 이르고, 내려다보면 험한 골짜기는 천 인의 깊이로 떨어진다. 구슬과 옥이 서로 비치고 금빛과 푸른빛이 함께 빛난다. 그 광채는 구름과 빛깔 고운 구름을 비추고 건물은 해와 달을 가린다. 산을 옮기고 시냇물을 돌리며 사치를 극도로 부리고 사람의 힘을 욕망에 따르게 한 것을 보면, 참으로 깊이 꾸짖을 만하다. ‘尋’(심)과 ‘仞’(인)은 옛 길이 단위로, 여기서는 엄청난 높이와 깊이를 표현한다.

이 대목은 건축을 먼저 지극히 화려하게 드러낸 다음 그 대가를 묻는다. ‘長廊四起’의 ‘四’가 뜻하는 것은 사방이다. 그러나 그림 1의 납작하고 가로로 펼쳐진 ‘四’는 구체적인 글자 모양으로도 보아야 한다. 사방은 의미가 주는 방향이고, 넓고 낮은 모양은 탁본 종이에 드러난 이 글자의 모습이다. 언어가 대상과 판단을 제공한다면, 자세히 보는 일은 문장에 한 글자씩 눈에 보이는 무게를 더한다.

‘해와 달을 가린다’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밀도

‘灼雲霞蔽虧日’과 그 바로 오른쪽의 세 열
그림 3. 궁전 묘사가 이어지는 오른쪽 페이지의 네 열. 왼쪽 끝은 ‘灼雲霞蔽虧日’, 곧 빛나다/구름/빛깔 고운 구름/덮다/가리다/해이다. 그 오른쪽은 ‘暎金碧相暉照’, 비치다/금빛/푸른빛/서로/빛나다/비추다이다. ‘日’은 왼쪽 열 맨 아래에 있고, 다음 ‘月’(달)은 맞은편 왼쪽 페이지로 이어져 이 그림에는 없다.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디지털 사진에서 잘라냄. 공식 고해상도 뷰어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왼쪽 끝 열을 ‘灼’부터 아래로 읽으면 ‘雲’, ‘霞’, ‘蔽’, ‘虧’, ‘日’이 이어진다. ‘雲’과 ‘霞’는 위에 비 우(雨) 부분을 공유하지만 아래는 매우 다르다. ‘雲’의 아래는 옆으로 펼쳐지고, ‘霞’의 아래는 꺾임이 많아 좌우에 작은 검은 공간을 끼운다. 비슷한 덮개를 얹었다고 그 아래 공간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蔽’는 다시 다른 구성을 보인다. 위의 풀 초 부분이 가로로 자리 잡고, 아래에는 왼쪽과 오른쪽 부분이 나란히 놓이며 흰 획이 사선으로 벌어진다. 다음 ‘虧’는 왼쪽이 복잡하고 오른쪽은 획이 적으며, 길게 꺾인 획이 아래로 내려온다. 빽빽한 쪽과 비교적 열린 쪽이 함께 놓여, 좁고 긴 범위 안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친 무게가 보인다.

열 끝의 ‘日’에서는 변화가 갑자기 분명해진다. 흰 테두리가 더 작고, 안의 검정을 나누는 것은 가로획 하나뿐이다. 앞서 여러 층으로 꺾이던 형태가 적은 수의 변으로 정리된다. 주변의 넓은 검정은 작은 글자를 삼키지 않고 오히려 짧은 높이와 응집력을 드러낸다.

이 열의 중요한 점은 복잡한 글자 다음에 단순한 글자가 나온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雲’, ‘霞’, ‘蔽’, ‘虧’가 각각 어떻게 복잡한지를 보아야 한다. 위아래로 쌓거나 좌우로 나란히 놓고, 한쪽을 조밀하게 하거나 다른 쪽을 성기게 한다. ‘日’을 본 뒤 돌아오면 가느다란 검은 틈은 ‘많은 획’ 사이에 남은 바탕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박물원은 ‘蔽虧’와 앞의 ‘四’가 보존된 상태를 이 옛 탁본의 중요성을 식별하는 특징으로 든다. 이 책에는 흰 획 사이에 뚜렷한 검은 경계가 상당히 남아 있다. 돌의 홈이 닳거나 후대에 다시 파이면 종이에 옮겨지는 경계도 달라진다. 오래된 탁본의 가치에는 특정 시기의 돌 표면 모양을 보존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지금도 비석이 남아 있다고 해서 오늘 뜬 모든 글자가 이 오래된 종이보다 처음 새긴 모습에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

회백색 작은 반점, 가로로 난 옅은 흔적, 글자 가장자리의 패임도 모두 같은 종류는 아니다. 돌 표면, 종이, 먹의 묻음, 이후의 보존이 이미지에 함께 작용한다. 여기서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것은 경계와 간격이다. 어떤 반점 하나의 원인을 정하려면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 이런 한계가 있어도 ‘四’의 납작함, ‘虧’의 편중, ‘日’ 내부의 검정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다.

‘文德懷’의 성김과 빽빽함이 바뀌는 방식

다음 대목은 태종을 찬양한다. 그림 4와 관련된 문장은 다음과 같다.

皇帝爰在弱冠,经营四方,逮乎立年,抚临亿兆,始以武功壹海内,终以文德怀远人。

황제는 스무 살 무렵부터 천하의 일을 경영했고, 서른 살 무렵에는 수많은 백성을 다스렸다. 처음에는 무공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이어 문교와 덕 있는 정치로 먼 곳 사람들을 따르게 했다. ‘弱冠’과 ‘立年’은 각각 스무 살과 서른 살이라는 전통적인 인생 단계를 가리키며, ‘亿兆’는 수많은 백성을 뜻한다. 이는 비문이 황제를 칭송하는 말투이다.

태종을 찬양하는 이웃 세 열. 가운데 열 아래 절반이 ‘文德懷’이다
그림 4. 오른쪽부터 ‘始以武功壹海/內終以文德懷/遠人東越青丘’. 열의 경계는 문장 경계가 아니다. 내용은 ‘처음 무공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이어 문덕으로 먼 사람들을 따르게 하며, 동쪽으로는 청구를 넘는다’로 이어진다. 가운데 열 넷째 글자 ‘文’(문교), 다섯째 ‘德’(덕), 여섯째 ‘懷’(따르게 하다). ‘懷’ 다음에는 왼쪽 위 ‘遠人’으로 옮겨 읽는다. 원래의 ‘壹’을 유지했다.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디지털 사진에서 잘라냄. 공식 고해상도 뷰어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가운데 열에서 ‘文’을 찾자. 위의 점과 가로획은 비교적 짧고, 아래 두 사선은 좌우로 갈라져 가장 넓은 곳이 아래 절반에 놓인다. 사선 사이로 검정이 아래에서 쐐기처럼 들어오고, 바깥쪽에는 이웃 글자와의 거리가 남는다. 펼쳐지는 방향이 뚜렷하며 사방으로 고르게 부풀지 않는다.

바로 아래 ‘德’는 곧 조밀해진다. 왼쪽 彳 부분은 짧은 사선들과 아래로 향하는 획으로 서고, 오른쪽은 여러 구성 요소를 겹친다. 그 아래 ‘懷’는 왼쪽이 더 좁고 오른쪽이 더 길다. 내부의 가는 획들이 모인 뒤 아래에서 다시 바깥으로 펴진다. 같은 열의 ‘文德懷’는 열린 형태에서 조밀한 형태로 나아가며 좌우 부분의 비율도 바꾼다.

오른쪽 ‘功’(공적)과 왼쪽 ‘越’(넘다)에도 저마다 긴 선과 꺾임이 있다. 세 열을 함께 놓아야 ‘文’의 긴 사선이 이웃과 떨어진 독무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뻗은 끝은 주변 글자들이 남긴 검은 곳 안에 멈춘다. 한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과 이웃에게 내어 주는 공간은 동시에 정해진다.

이러한 거리 조절이 이 책의 구양순 해서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반듯함이 정지된 격자가 되지 않는다. 중심은 이어져도 내부는 비대칭일 수 있다. 열의 방향은 분명해도 윤곽의 너비는 달라진다. 이런 차이를 본 뒤에야 ‘엄정함’은 칭찬 한마디를 넘어, 크기와 방향과 공간이 함께 이루는 결과가 된다.

다시 ‘四’로 돌아가자. 안의 검정은 흰 획의 배경일 뿐 아니라 획들이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우리와 쓰기 행위 사이에는 여전히 새김과 탁본이 있다. 이 오래된 종이가 그 관계를 오늘까지 전했기에, 궁전과 황제에 관한 문장을 읽은 뒤에도 글자 안에 남겨진 작은 검은 모양을 계속 볼 수 있다.

선택해서 함께 읽기: 검정과 흰색 사이의 어느 단계를 따라갈 수 있을까

먼저 그림 2의 ‘水’, 다음 그림 3의 ‘霞’를 보자. 이번에는 가볍다, 무겁다, 빠르다, 느리다는 말을 서둘러 붙이지 않는다. 각각 한 곳만 짚는다. 흰 획은 어디서 만나고, 검정은 어디로 들어오며, 어디에서 둘러싸이는가.

《木头里留着那一年的旱》, ‘나무에는 그해의 가뭄이 남아 있다’에서 나는 나이테를 읽을 때 재료와 순서를 확인해야 하며, 좁은 나이테만 보고 가뭄의 해를 배정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SAE(Self-as-an-End)의 ‘인과의 아름다움’은 여기서 묻는다. 눈앞의 모양은 어떤 식별 가능한 과정을 거쳐 왔는가.

이 책에서 먼저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단계는 돌에 새긴 선이 탁본 종이에서는 밝게, 그 선 사이의 돌 표면은 어둡게 나타나는 과정이다. 이를 알고 ‘四’ 안의 검정을 다시 보면 숫자만 읽히지 않는다. 탁본이 글자 모양을 전하는 방식도 보인다.

모든 흔적을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 확인할 수 있는 한 단계를 정확히 말하고, 나머지는 관찰과 연구에 열어 둘 수 있다. 오래된 종이의 내력은 눈앞의 흑백을 더 구체적으로 만든다. 그 아름다움은 여전히 글자마다 서로 다른 배치 속에서 생겨나야 한다.

선택한 탁본, 본문과 이미지
  • 대상은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이기 구장 북송 탁본, 등록번호 新00044517이다. 흰 종이 테두리를 붙여 잘라 장황한 26개 펼침면의 책이며, 반쪽 면은 각각 20.9×13.9cm이다. 632년은 당대 석비의 건립 연도이지 이 종이에 탁본한 연도가 아니다. 글을 지은 위징과 글씨를 쓴 구양순을 구분한다.
  • 세부 그림 네 장과 펼침면 전체 세 장은 모두 같은 책을 찍은 박물원의 사진 세 장에서 나왔다. 디지털 목록의 이미지 항목 다섯 개에는 중복이 있다. 26개 펼침면 전체를 살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 처리는 공식 표시용 이미지 조각을 원래 좌표로 결합하기, 직사각형 자르기, 비율을 유지한 축소, JPEG 저장뿐이다. 획 보완, 손상·인장 제거, 색 변경, 선명화, 명암 반전은 하지 않았다. 이웃 글자의 위치를 유지했으며 이음매, 종이색, 수장 인장을 구양순의 붓질로 보지 않는다.
  • 인용은 통용 글자를 쓰되 ‘壹’을 남겼고 옥벽에는 ‘璧’을 썼다. 사진의 ‘暎’은 ‘映’(비치다)에 해당한다. ‘雲·虧·臺·棟·懷’는 간체자 ‘云·亏·台·栋·怀’에 대응하며 여기서는 구름, 가리다, 높은 대, 지붕 들보, 따르게 하다로 읽는다. 두 고문 대목은 모두 완역했다. 인쇄 문장부호는 원래 비석이나 책의 열 구분을 재현하지 않는다.
  • 고문은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이 별도로 소장한 송대 탁본의 목록 판독문과 대조했다. 그 탁본의 사진, 치수, 판본 판단은 이 대상에 가져오지 않았다. 베이징 고궁 234546 페이지는 샘의 발견을 ‘정관 7년’으로 서술하여 같은 페이지의 건립 연도 및 비문 첫머리의 ‘6년’과 충돌한다. 이 글은 632년을 사용하며 그 표현으로 다른 연대기를 만들지 않는다.
  • 실물을 현장에서 조사한 기록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의 세부 읽기이다. 이 이미지의 일반 공개나 상업적 재사용에 대한 박물원의 별도 서면 허가는 받지 않았다. 출처, 자른 좌표, 이용 허가 상태는 동봉한 이미지 설명에 기록했다.

궁전 부분 펼침면 전체, 구름 부분 펼침면 전체, 문덕 부분 펼침면 전체. 각각 별도로 촬영한 펼침면이며 석비 전체를 복원한 그림이 아니다. 오른쪽 페이지를 먼저 읽고 왼쪽으로 옮긴다. 각 페이지에서 열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

이어 읽기

참고 자료 · 中文 / English

来源与校读记录

核验日期:2026年10月19日。本文图像始终为北京故宫博物院藏李祺旧藏本,新00044517;文字旁证与其他拓本不混同。

本件的身份与图像

1. 故宫博物院《宋拓唐九成宫醴泉铭》。撰稿:施安昌。著录李祺旧藏北宋拓本、白纸镶边剪裱、26开,每半开20.9×13.9厘米;碑刻魏徵撰、欧阳询书,632年六月立。馆方以“四”“蔽虧”的保存状况说明本件价值。网页照片仅400像素宽,本包不将其放大冒称高清。
2. 故宫数字文物库本件记录。藏品号新00044517与上项一致。页面有5个影像入口,实际为3个不同对开,另2幅重复同页。本包只取3个不同对开。
3. 本包采用以下官方公开缩放图,按DeepZoom原坐标拼回单张摄影影像,再裁切。公开显示层原幅分别约4800×3300像素;原幅尺寸、区块与裁切坐标详见IMAGE_MANIFEST.json。
- 宫殿建筑段,右页“成之宫此则隋……”;左页含“长廊四起”。
- 云霞段,右页含“照灼云霞蔽亏日”;左页“月观其移山回……”。
- 文德段,右页“立年抚临亿兆……”;左页“南逾丹徼……”。

这里的“宫殿段”“云霞段”“文德段”只是本包定位标签,不是馆方册页名称或原碑的段落标题。图像只来自本件,没有其他旧拓、今碑照片、翻刻本、临本或AI生成字迹。

文本与年代

4. 国立故宫博物院《唐歐陽詢九成宮醴泉銘宋拓本 冊》释文。这一记录属于台北另藏宋拓本(贈拓000368),仅用于核对古文词句和历史异体。它的损字、“四”字状态、尺寸、开数、收藏史与许可不移植到本文李祺本。本文古文为公有领域作品,标点及现代字形为阅读辅助。
5. 北京故宫234546页有一处内部冲突:前段写贞观六年(632)六月立碑,后段转述泉源时写“贞观七年四月”。本文遵循碑文开头“维贞观六年孟夏之月”和立碑著录,不把“七年”复述为本次事件的年份;不无证据为这一差异补造解释。
6. “珠璧交映”的“璧”指玉璧。正文不沿用部分网络转录的“珠壁”。“始以武功壹海内”保留“壹”;“文德怀远人”说明的是碑文的颂扬话语,不当作独立验证过的帝国政治事实。

刻拓机制

7. 故宫博物院词条《拓片》:纸墨捶拓的基础说明。
8. 巴黎赛努奇博物馆《Chine. Empreintes du passé》展览说明:湿纸贴合石面凹凸、再施墨形成图像的机制。本文说明凹刻字的常见墨拓过程,不据此臆测本册每次捶拓的具体工具、湿度、力度或工匠身份。
9. 故宫《宋拓魅力》展览说明:刻石磨损、拓本作为字形证据,以及钩刻、捶拓、纸墨共同参与传承的说明。

SAE附读

10. 秦汉《木头里留着那一年的旱》,美学射线05,2026年9月28日。已完整阅读正文,选择其中“痕迹须通过材料与可核关系来解释”的论述,专门用于区分拓本的纸上色差、石面凹凸和传拓时间,不把年轮、石阶与书法强作同一种美。

图像使用条件

11. 故宫博物院网站使用条款及上述数字文物库高清页的著作权声明。没有发现可自动套用于本组图的CC许可。本包为本地审阅材料;另行发布、传播或商业使用之前须核实所需许可。台北故宫其他藏品页的CC标识与本组北京故宫图像无关。

이미지 출처와 이용 안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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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image guide

All seven files show the same object: the Northern Song rubbing formerly owned by Li Qi, accession 新00044517, Palace Museum, Beijing. They are photographs of a paper rubbing cut and mounted into an album. They are neither photographs of the stone nor Ouyang Xun’s autograph ink on paper.

Read down each column and move from right to left; in an entire opening, read the right page before the left. Album boundaries do not reproduce the original stele’s full columns. None of the details relocates a character.

- Figure 1: the middle column reads 廊四起棟, “corridor / four / rise / roof beam.” 四, “four,” is second down. 高, “high,” is directly to its right; 臺, “terrace,” is to its left. The historical forms 棟 and 臺 appear in the simplified transcription as 栋 and 台.
- Figure 2: the leftmost column reads 池跨水架楹分, “pool / span / water / erect / columns / divide.” The characters discussed are 水, “water,” third down, and 架, “erect or support,” fourth down. The adjacent column contains 殿, “hall,” 絕, “cut off,” and 壑, “ravine.” Their ordinary lexical meanings identify them; the complete passage is translated in each essay.
- Figure 3: the leftmost column is 灼雲霞蔽虧日, “shine / clouds / rosy clouds / cover / obscure / sun.” The crop places 雲 second, 霞 third, 蔽 fourth, 虧 fifth, and 日 sixth. 月, “moon,” continues at the top of the opposite page, outside this crop. 暎 in the adjacent column is a historical form corresponding to 映, “reflect.”
- Figure 4: the middle column is 內終以文德懷, “within / ultimately / by / civil culture / virtue / win over.” 文 is fourth, 德 fifth, 懷 sixth; 遠人, “distant peoples,” begins the column immediately to the left. The complete clause is translated in each edition. 壹, “unify,” is retained in the right column rather than silently changed to 一.
- The three whole-opening images correspond to the palace, clouds, and civil-virtue passages. They are orientation aids, not a complete album or reconstructed stele. Pale damaged or altered-looking areas visible elsewhere in the openings are not used as models for stroke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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