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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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임을 막은 것은 불문율이었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글이다. 원문 사이트에서는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자와 번체자를 전환할 수 있다.

우주력 3세기, 은하연방.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라는 군인이 우주해적 토벌에 큰 공을 세우며 소장까지 진급한다. 그리고 전역해 정계에 들어선다.

그는 인기가 많았다. 간신히 당선될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경쟁자라고 할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인기였다.

사람들이 그를 영웅으로 여긴 것은 실제로 영웅이 할 법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군기를 바로잡고 해적을 소탕했다. 선전으로 만들어낸 공적이 아니라, 확인할 수 있고 구체적인 성과가 남은 일들이었다. 그가 나서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곪아 있었고,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이기도 했다.

그는 한 계단씩 올라갔고, 마침내 두 자리를 동시에 차지했다. 국가원수와 은하연방 수상.

당시 은하연방은 민주공화국이었다. 그 체제에서 한 사람이 두 자리를 모두 거머쥐는 일은 당연히 허용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적힌 조문이 하나도 없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작품의 도입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따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은하연방에서 국가원수와 연방 수상의 겸임을 금지한 것은 불문율이었다. 누구나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도 그런 짓을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글로 남겨야 한다고 여긴 사람도 없었다.

겸임을 금지한 것은 법률이 아니라, 글로 쓰이지 않은 관행이었다.

평온한 시절에 불문율은 법만큼, 때로는 법보다 더 잘 작동한다. 집행할 필요조차 없다. 아무도 거기에 부딪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벽처럼 버티고 서 있지만, 실은 땅바닥에 그어놓은 선이다.

루돌프는 그 선을 넘어갔다.

넘어가면서도 이것이라고 집어낼 수 있는 어떤 규정도 어기지 않았다. 서류를 꺼내놓고 “당신은 몇 조를 위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반대자들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건 부적절하다”, “말도 안 된다”, “지금껏 그런 사람은 없었다”뿐이었다. 절차상으로 완전히 합법인 행위 앞에서 그런 말은 아무 힘도 없었다.

거기에 압도적인 대중의 지지까지 있었다.

이 전제정치는 외부에서 쳐들어온 것도,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은 것도 아니다. 이전 체제 자체의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태어났다.

우주력 310년, 루돌프는 “신성불가침”의 은하황제로 즉위한다.

수도는 발할라 성계의 행성 오딘에 둔다.

이때 그가 한 일이 있다. 우주력을 폐지하고, 그해를 제국력 원년으로 삼는다.

인류가 310년 동안 써온 기년법을 없애고, 그가 즉위한 해부터 시간을 다시 세게 한 것이다. 실용적인 가치는 전혀 없다. 무슨 문제를 해결하지도, 무언가를 생산하지도 않는다. 순전히 상징적인 조치다.

동시에 아주 구체적인 효과도 있다. 이제 누구든 루돌프 이전의 일을 말하려면, 먼저 연도를 한 번 환산해야 한다.

연방 쪽 사정

여기서 잠깐 멈춰 은하연방의 사정을 충분히 살펴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후 500년은 그저 나쁜 사람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다.

루돌프가 집권하기 전의 은하연방은 정말로 썩어 있었다.

부패했고, 굳어 있었고,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할 만큼 비효율적이었다.

우주해적이 활개 쳤지만 연방에는 대책이 없었다. 추상적인 치안 문제가 아니다. 항로가 위험하고, 화물이 도착하지 않으며, 변방 성역의 주민들이 물자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은 의회에서 입씨름을 했고 군기는 풀려 있었다.

사람들은 고통받았다. 안전은 보장되지 않고, 살림은 나빠지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구체적인 고통이었다. 민주적 체제가 대처하기 가장 어려운 종류의 실패다. 일이 터지면 책임이 수백 명에게 흩어지고, 그 결과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이것은 이야기 뒤에 세워둔 배경이 아니다. 루돌프가 등장할 수 있었던 조건의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군기를 세우고 해적을 토벌하며 일을 해내는 사람이 나타났다. 대중이 그를 떠받든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속은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의 무능 끝에, 마침내 일을 하는 사람을 본 것이다.

실제로 집권 초기의 루돌프는 일을 했다.

그의 통치는 효과가 있었다. 연방이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여럿 해결했다. 집권 후 몇 년 동안은 앞선 수십 년의 어느 때보다 질서가 잡혔고, 나아갈 방향이 보였으며, 생활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느낄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지지자들이 얻은 것이 진짜였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받았다가 빈손으로 끝난 사람들이 아니다. 눈앞의 생활이 실제로 좋아졌다. 그리고 그 개선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내주었다.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하는 체제에 수십 년 동안 거듭 배신당한 끝에 그런 선택을 했다.

법조문 속, 중국어 일곱 글자

즉위 이후의 일은 몇 단계로 진행된다.

제국의회가 영구 해산된다. 헌법의 효력이 정지된다. 공신들은 귀족에 봉해져 새로운 계급을 이룬다.

그리고 제국력 9년, ‘열악유전자배제법’이 공포된다.

작품은 이 법의 처분 대상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

빈곤층.

반체제 인사.

그리고 노동 의욕이 없다고 당국이 주관적으로 판단한 사람.

‘당국이 주관적으로 판단한다’는 말, 중국어 원문으로 ‘由当局主观判断’ 일곱 글자가 법조문에 들어 있다.

이 문장을 똑바로 봐야 한다. 집행 과정에서 빗나간 것도, 말단 기관이 권한을 남용한 것도, 좋은 법을 나쁜 사람이 비틀어 쓴 것도 아니다. 법문에 명시된 권한 부여 조항이다. 판단 기준은 주관적이며, 판단 권한은 당국에 있다.

법이 객관적인 기준을 정해놓았다면, 적어도 다툴 여지가 있다. 이 사람은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내놓을 수 있다.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고, 집행자가 잘못 판단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기준이 객관적이라는 것은 집행자 역시 그 기준에 묶인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준을 ‘당국의 주관적 판단’으로 정한 법은 다툼이 성립할 자리 자체를 없앤다. 대조할 대상이 없으니 틀렸다고 할 수도 없고, 틀렸다고 할 수 없으니 이의를 제기할 내용도 없다.

앞의 세 범주, 장애와 빈곤과 반체제에는 그래도 윤곽이 있다. 마지막 범주에는 윤곽이 없다. 누구든 담을 수 있다.

법 안에 이런 주머니가 하나만 있으면, 앞선 모든 조항의 경계가 무력해진다.

루돌프가 이 법을 정당화한 논리는 대략 이렇다. 우주의 법칙은 우수한 자가 살아남고 열등한 자가 도태되는 것이다. 인간 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 열등한 자가 일정 수를 넘으면 사회는 활력을 잃고 점차 쇠약해진다. 따라서 인류라는 종을 약화하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은 통치자의 신성한 의무다.

이 논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내부적으로 앞뒤가 맞는다.

‘우승열패는 자연법칙이다’라는 전제에서 ‘인간 사회도 예외일 수 없다’로, 다시 ‘열등한 자가 많으면 사회가 쇠약해진다’로, 끝내 ‘그러므로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의무다’로 이어진다. 각 단계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반박하려면 첫 문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첫 문장은 자연에 관한 평범한 상식처럼 들린다.

작품은 시작부터 이것을 놓아둔다. 파국적인 행위가 지극히 평범하게 들리는 전제에서 출발해 한 걸음씩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이 어느 걸음도 방향을 꺾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40억

이 법과 함께 사회질서유지국이라는 기관이 만들어진다.

정치범과 사상범을 탄압하는 곳이다.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재판도 없이 사실상 처형하는 것이 그 수단에 포함된다.

희생자는 40억 명이다.

이 숫자에는 논평이 필요 없다.

앞 절의 일곱 글자와 나란히 놓기만 하면 된다. 기준은 주관적이고, 판단 권한은 당국에 있다. 당국은 그 판단을 40억 번 행사했다.

작품은 한 가지 일을 더 기록한다. 훗날 이 기관의 초대 국장이 공화주의자들의 습격으로 죽는다. 루돌프는 그를 애도한다며 용의자 2만 명을 전원 처형한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2만 명을 죽인다. 이 환산 비율 자체가 바로 그 논리의 산물이다. 인류라는 종에 기여한 정도로 사람에게 서열을 매길 수 있다면, 서열이 높은 한 사람의 죽음을 서열이 낮은 2만 명으로 갚는 것도 당연해진다.

그는 자신이 등장한 의미를 지웠다

루돌프를 다루는 작품의 시선이 가장 싸늘해지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자신이 높이 평가한 사람들을 귀족에 봉했다. 당시로서는 공신에게 상을 내리는 일로 보였을 것이다. 새 왕조를 세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만한 일이다.

그 결과 사회의 계층이 고정되었다.

계층 사이의 이동이 사라지면 사회 전체가 정체하기 시작한다. 바로 그가 권력을 잡을 수 있게 했던 병이다.

그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체제가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것은 500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체제였다.

500년 뒤 골덴바움 왕조의 부패는, 한때 루돌프를 불러들였던 은하연방의 부패와 같은 모습이 된다.

이 글이 하지 않으려는 것

여기까지 오면 손쉽게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이 있다. 그러니 민주주의는 취약하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유를 내줄 수 있다. 그러니 경계해야 한다.

이 연재는 그 결론을 내놓지 않는다.

틀려서가 아니다. 작품 자체가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품은 100화가 넘는 동안 문제를 계속 복잡하게 만든다. 민주적 절차가 낳은 전제정치를 그리면서, 전제체제 안에서 진심으로 백성을 위해 일하는 군주도 그린다. 민주적 체제에서 선거로 뽑힌, 누구보다 뻔뻔한 정치인도 그린다.

판단할 재료를 충분히 내놓고서도, 독자를 대신해 마지막 걸음을 내딛지는 않는다.

이 글도 같은 일만 하려 한다. 루돌프가 집권한 절차를, 그 불문율을, 법조문 속 일곱 글자를, 40억이라는 숫자를, 그리고 자신이 등장한 의미를 스스로 지워버린 과정을 펼쳐놓는 일.

이것들은 드러난 형상이지, 판결이 아니다.

500년이 흘렀다.

골덴바움 왕조는 옛 은하연방만큼 썩었다. 그 왕조 안에서, 가난한 하급 귀족 집안 출신의 스무 살 갓 넘은 청년이 나타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뒤엎고 다시 시작하려 한다.

그가 하려는 일은, 한때 루돌프가 하려 했던 일과 생김새가 꽤 닮았다.

다음 글로 이어진다.

대상 작품: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은하영웅전설》과 원작 OVA 본편 110화. 결말까지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작품 속 말의 한국어 표현은 이 글의 재서술이며, 공식 번역 인용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