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론 · 독립 특론
그 길이 막힌 뒤
자리는 동결되었고 어머니는 다시 입원했다. 2년 동안 원한 일을 아직도 원하는가. 어려움은 대신 답하지 않는다. 버티고, 길을 바꾸고, 멈추는 일을 먼저 높은 것과 낮은 것으로 나눌 필요도 없다.
3월, 회사에서 이메일이 왔다. 새로 만들기로 했던 모든 자리를 동결한다는 세 줄짜리 안내였다.
그는 두 번 읽었다. 그중에는 2년 동안 옮기고 싶었던 자리도 있었다. 보고서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보고서로 결정하는 사람들 곁에서 숫자의 출처와 말해 주는 것, 말해 주지 못하는 것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발표 원고를 준비하고 이동을 알아보며 필요한 사람의 조건도 확인했다. 이메일은 그의 이름도 서랍 가득한 원고도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신설 자리를 한꺼번에 동결했다.
옆자리 동료도 같은 메일을 받았다. 읽고 닫은 뒤 하던 일을 계속했다. 누가 더 잘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 메일이 막은 일이 서로 달랐을 뿐이다.
그해 회사는 여전히 팀별 하위 10퍼센트를 부적격으로 평가하고 다음 해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자주 병원에 갔다. 밤에 곁을 지키고 아침에 돌아와 옷만 갈아입고 출근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그 자리를 생각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말할 곳은 점점 찾기 어려웠다. 남들은 지금 일자리는 있지 않으냐고 했다.
현재 일자리는 있었다.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갈 수 없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두 말 다 참이었다.
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답은 아니다
우리는 밖에서 생긴 일과 그것이 자기에게 닥쳤을 때의 느낌을 같은 말로 부르곤 한다. 해고, 병, 오지 않은 기회를 모두 역경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셋을 나누어 보자. 외부에서 일어난 일, 자신이 진지하게 여기는 일, 둘이 맞지 않을 때 마음과 몸에 일어나는 경험이다. 이 글에서 역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경험이다.
동료는 그 자리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동결이 자기 계획을 막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가운 사람도 아니고 그의 슬픔이 과장된 것도 아니다. 조건의 일부는 같아도 닿는 곳은 다르다. 남이 똑같이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자기 괴로움이 틀렸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
괴롭다고 모든 판단이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동결이 폐지를 뜻하며 내년에도 안 열릴 것이라고 여겼다. 인사부에 물으니 폐지된 것은 아니고 언제 재개할지 모른다는 답이었다. 여전히 어렵지만 새벽마다 되풀이한 생각과 꼭 같지는 않았다. 경험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고, 그 안의 짐작은 틀릴 수 있다.
반년 동안 밤에 자주 깨고 식사도 줄었다. 깨어 있으면 생각은 내년으로 달렸다. 자리는 안 열리고 해고 규칙은 더 엄격해지고 어머니는 다시 입원할 것 같았다. 몸의 피로, 기억 속 피로, 예상하는 피로는 사실 한 번 확인했다고 함께 물러가지 않는다. 이메일 내용을 확인한 날 곧바로 잠이 편해진 것도 아니었다.
병원 복도에서 누나는 그 자리가 없어져도 지금 일은 괜찮지 않느냐고 했다. 걱정하는 말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 말 때문에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남은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자신은 2년 동안 원했다. 지금도 원하는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 여러 겹은 같은 밤에 함께 나타날 수 있지, 순서대로 통과해야 할 단계가 아니다.
2년을 원했다고 반드시 자기 것이라는 증거도 아니다. 보고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숫자를 분명히 이해하기를 바랐다. 동시에 보고서만 만드는 사람은 가망 없다는 말도 일찍부터 들었다. 옮기고 싶은 마음 중 얼마가 앞의 관심이고 얼마가 뒤의 말에서 달아나려는 것인지 늘 구별되지는 않았다. 막혔을 때 아프다는 것만으로 어느 부분이 다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반대로 아프지 않다고 잘 살고 있다는 뜻도 아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원대로 살면서 별 어긋남을 못 느꼈을 수 있다. 순조로움은 자기 길을 찾은 결과일 수도, 누가 골라 준 길인지 아직 묻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다.
동결은 누군가 결정한 일이지만 어머니의 병은 일부러 그를 시험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관련되어도 그들에게는 그들의 목적이 있다. 그의 기회를 남겨 주지 않았다고 곧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사람을 일정 비율로 제거할 숫자로 다루는 규칙인지 보려면 실제 작동을 살펴야지 그가 고통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병도 나중에 무언가를 깨달았다고 일부러 보낸 스승이 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세상이 모든 길을 열어 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는 것과 마땅히 당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어려움 속에서 돌아볼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은 그 어려움에 감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번은 서랍의 원고 이야기를 하다가 웃었다. 2년 동안 준비했는데 들은 사람은 자기뿐이라고 했다. 그러고 돌아가 한 장을 고쳤다. 웃었다고 이미 놓았다는 증거가 아니고 안 웃었다고 더 진지한 것도 아니다. 웃으면서도 여전히 아쉬울 수 있다.
길을 바꾸어도 원하는 일은 남을 수 있다
가을에 어머니가 다시 입원했다. 몇 시간 복도에서 기다렸다. 누가 옆에 앉아 문제를 내준 것은 아니지만 질문이 돌아왔다. 아직도 자기가 원하는 일인가. 그 자리에서만 할 수 있는가. 지금 돈과 몸이 허락하는 변화는 어느 정도인가.
순서대로 다 채워야 할 서식은 아니다. 전부 답하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회사에 물었다. 비슷한 자리가 두 곳 있었지만 급여가 적었다. 어머니에게 돈이 필요한 지금은 감수하기 어려웠다. 다른 길이 있음을 아는 것과 지금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겨울에는 이동 신청을 더 하지 않았다. 대신 현재 팀에서 조금 해볼 수 있는지 상사에게 물었다. 그의 보고서를 사용하는 두 부서에 매달 한 번씩 숫자의 출처와 오해하기 쉬운 곳을 설명하는 것이다. 상사는 허락했다. 다른 회사로 가지 않는 것은 잠시 미루는 일이고, 설명을 시작하는 것은 방법을 바꾸는 일이다. 같은 달에 둘 다 일어날 수 있다. 멋진 이름 하나로 전부 덮을 필요가 없다.
크림전쟁 당시 메리 시콜은 런던에서 종군 간호를 여러 경로로 지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문 앞에서 계속 기다리지는 않았다. 자서전에 따르면 직접 비용과 부담을 감수하고 크림으로 갔다. 동업자와 가게를 열어 물자를 공급하고 병자와 부상자도 돌보았다. 장사를 한 것도, 돌본 것도 사실이다. 앞의 일을 지워야 뒤의 일이 의미를 얻는 것은 아니다.
진정 원하면 누구나 길을 찾는다는 사례가 아니다. 자비로 떠날 수 있는 데에도 조건이 있다. 다만 지원 통로 하나를 떠나는 것이 원한 일을 버리는 것과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기록된 행동을 읽을 뿐, 마음속에서 갑자기 깨달았다고 써 넣지 않는다. 나중에 해냈다는 이유로 다른 막힌 사람에게 같은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방법만이 아니라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이듬해 봄에도 설명을 계속했다. 누나가 이동을 묻자 더 분명히 답했다. 전에는 그 자리에 가서 숫자를 전문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자기 손에서 나가는 보고서마다 사용자가 가능한 한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 자리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아니게 되었다.
처음부터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사실이 아니다. 2년 동안 원했고 괴로웠다. 바뀐 것은 추구한 일의 내용이지 과거가 아니다. 막힌 적 없던 사람처럼 보이려고 지우지 않았다. 당시 남의 시선이 얼마나 그 마음을 받쳤는지는 여전히 다 가리지 못했다. 모든 의문을 없앤 뒤에야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밖에서는 신청을 그만둔 것만 보인다. 안에는 시간 부족, 방법 변경, 내용 수정, 정말 그만 원하게 된 경우가 모두 있을 수 있다. 자신도 천천히 구별해야 한다. 신청서 하나가 없다고 남이 드디어 성숙했다거나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었다고 판정할 수는 없다.
고열로 못 일어나는 것은 할 수 없음이지 다시 포기하기로 한 결정이 아니다. 피로도 이번 계획을 조정할 이유가 될 수 있다. 멈추려면 먼저 더는 원하지 않는다고 증명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지탱할 수도 없을 때까지 소진되어야만 덜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자신을 유지할 수조차 없는 극단적인 곤경을 논의 범위에 넣지 않는다. 여기서 말한 지속을 그런 처지의 사람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멈춤을 보류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정말 원하지 않으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아직 원하지만 조건에 눌려 못 한다면 그 말도 남겨 둘 수 있다. 포기를 기다림이라고 하거나 더 못 버팀을 마침내 깨달았다고 부르지 않는다. 듣기 좋은 이름을 고르기보다 했던 일과 원했던 마음을 지워 버리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래도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것
선배가 어깨를 두드리며 어려울수록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고 했다. 좋은 뜻임을 안다. 그러나 어깨를 두드린다고 그가 계속해 나갈지를 대신 정해 줄 수는 없다. 계속한다면 자기에게서 온다. 지금은 이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아직 말할 수 없다는 데서 온다. 다시 묻거나 바꿀 수 있고, 그렇게 말해도 실행할 힘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남이 대신 서명해 준 보증서가 아니다.
그 몇 년 동안 누나와 한 주씩 번갈아 어머니의 진료에 동행했다. 각자 다른 걱정이 있지만 가능한 일 하나에 합의했다. 자기 차례에는 일을 옮겨 놓으려 했다. 타인에게 향한 자기 관심이다. 어머니를 위해 한다고 판단까지 어머니에게 넘기는 것은 아니며, 누나 차례를 어떻게 짤지 대신 정할 권리도 없다.
연초에 한 젊은 동료가 산정 기준 설명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두 번 함께 본 뒤 일이 몰려 몇 달 동안 이어 가지 못했다. 그 시간만으로 마음이 없어졌다고 할 수 없다. 여전히 마음에 둔다는 말만으로 계속 돕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실제 계획 안에 그녀가 들어오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는 상사와 다음 해 1분기 보고서를 그녀와 함께 만들기로 정했고 그녀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관심이 향하는 곳을 보여 주는 것은 그런 일이지 자신을 달래는 말 한마디가 아니다.
계획이 있어도 내년에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녀도 시간이 없거나 생각이 바뀔 수 있다. 그의 역경 속 삶이 여전히 의미 있음을 증명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주는 것은 시도할 조건이다. 올지, 어디까지 배울지, 이후 어디로 갈지는 그녀의 몫이다.
앤 설리번도 헬렌 켈러를 가르치며 준비한 방법을 바꾸었다. 1887년 4월 10일 편지에는 정해진 수업을 잠시 거두고 아이가 실제로 언어를 어떻게 배우는지 생각하며 일상으로 배움을 옮긴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준비했다고 아이에게 그 방법의 유용성을 증명하라고 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교사가 계획을 바꾸어 더 맞는 조건을 주려 한 일이다. 아이가 배우는 단계를 교사가 대신한 것은 아니고, 조건을 주었다고 보증서가 생기지도 않는다.
자기 길이 막혀도 타인에게 향하는 방향까지 반드시 끊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을 위한 일이 더 높거나 더 진실하지는 않다. 그 몇 달 그는 일하고 병상을 지키고 보고서를 마쳤다. 지하철에서 졸아 역을 지나친 적도 있다. 얼마나 줄 수 있는지에는 자신도 넣어야 한다. 자신 역시 사람이지 남이 필요할 때마다 계속 뽑아 쓸 자원이 아니다.
피해받는 사람을 보호하려고 인생 수업을 들을 준비부터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피해를 막았다고 그의 미래를 정할 수도 없다. 어렵게 도왔으니 왜 내가 말한 대로 살지 않느냐고 청구할 수는 없다. 남의 감사는 자기 지속의 비용을 갚는 영수증이 아니다.
나중에 계약이 갱신되지 않은 동료가 찾아왔다. 그는 그 동료를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고 추천서를 써 주었다. 몇몇 저녁에는 아래층에서 함께 밥을 먹었고 구직 이야기보다 다른 이야기를 더 했다. 남이 조건을 조금 낫게 해주거나 잠시 곁에 앉을 수는 있다. 그 경험의 의미를 대신 인정하지는 못한다. 대신할 수 없다고 멀리 서서 보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는 나중에 한 번 다시 열렸다. 그는 신청하지 않았다. 계속 보고서를 한 장씩 제출했다. 매번 먼저 누가 읽을 것인지 생각했다.
끝내 버티면 성공한다는 결말이 아니다. 원래 그 자리를 얻지 못했고 당시의 바람을 오해라고 바꾸지도 않았다. 다만 세 줄짜리 메일 하나가 자기의 모든 질문에 대신 답하게 하지 않았다. 그 길은 닫혔다. 남은 일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서 여전히 천천히 자기 것으로 알아간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Qin, Han (2026), 《역경》에 바탕을 둔 독립 전문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3655654. 공개된 중국어 산문을 한국어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으며, 영어판도 별도의 독립 재서술이다.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에게 돌아오지만 아홉 편의 번호를 늘리는 열 번째 글은 아니다. 얼마나 견뎌야 할지 규정하거나 괴로움을 진단하지 않으며, 고통이 성장을 보장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을 유지할 수조차 없는 극단적 곤경은 논의 범위에 포함하지 않는다.
두 역사 사례는 아래의 자서전과 편지에 비추어 기록된 행동을 읽는다. 인물 전체의 내면이나 인격을 완성해 넣지 않는다. 원논문의 다른 역사 사례를 하나씩 모두 옮기지는 않았다. 메리 시콜, Wonderful Adventures 제8장. 앤 설리번, 1887년 4월 10일 편지, The Story of My Life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