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역상전이 별론 · 01
문은 있는데 왜 질문이 움직이지 않을까
법원도 의회도 남아 있다. 그래도 결정한 쪽이 스스로 닫을 수 없는 길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법원은 이미 판결했다. 선거를 해야 한다. 집정원도 공개적으로 법원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선거명령이 나오지 않았다. 두 문장 모두 신문에 남았다. 판결도 존중한다는 말도 각자 지면을 얻었다. 하지만 투표를 기다리던 사람은 언제 다시 한 표를 던질 수 있는지 여전히 몰랐다.
국가론이 설정한 가상 사례이지 현실의 어느 나라 뉴스가 아니다. 목적연합도시국, 줄여서 UCSE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이름에 ‘목적’이 들어갔다고 모든 결정이 자동으로 옳아지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나라가 같은 이름을 쓰고 계속 인민을 보호한다고 말하는 동안, 일이 어떻게 조금씩 달라지는지 보려 한다.
법원이 문을 닫았느냐고만 물으면 답은 아니다. 법관은 여전히 의견을 쓰고 의회는 회의하며 감찰청 간판도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문만이 아니다. 질문을 안으로 보내 실제로 결정하는 곳에 닿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보낸 뒤에도 결과가 질문받는 쪽의 동의를 영원히 기다려서는 안 된다.
위험도 진짜이고, 더 나아간 한 걸음도 진짜다
이야기의 제9년 봄, 서쪽의 목적민주공화국, 줄여서 DRP가 경계 강 건너 병력을 모았다. UCSE 방위청은 약 11만 명이며 72시간 안에 국경에 있는 한 주의 주도까지 진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나중에는 포격과 도강도 실제로 일어났다. 이 사례는 위험부터 사기였다고 써 놓고 모든 긴급조치가 이유 없었다고 가볍게 결론짓지 않는다.
수석집정관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닷새째 합동회의는 214 대 97로 확인했다. 방어를 준비하고 지휘를 집중하는 일이 평시의 순서를 하나하나 지키는 일과 충돌할 수는 있다. 그러나 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말과, 그 결정자가 앞으로 언제 다시 질문받을지까지 스스로 정해도 된다는 말 사이에는 한 걸음이 더 있다.
선포 열이틀째 집정원은 헌장 개정안을 냈다. 세 내용을 함께 놓고 보자. 전시에는 민중원 선거를 하지 않는다. 비상사태는 집정원이 스스로 연장하며 의회가 끝내려면 5분의 3이 필요하다. 법원이 비상명령의 헌장 위반을 선언하려면 열한 명의 법관 가운데 적어도 여덟 명이 찬성해야 한다. 이것들은 방어만 빠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하는 쪽을 누가 멈출 수 있는지도 바꾼다.
수정안은 가을 주민투표에서 58.3퍼센트의 찬성으로 발효했다. 당시에는 참가자가 50명을 넘는 집회에 허가가 필요했고 군사 관련 방송은 심사를 받아야 했다. 서탄 세 구역에는 투표소가 없어 등록 유권자 약 2만 6천 명이 투표하지 못했다. 숫자는 통과 결과를 적었지만 이런 참여 조건에 답해 주지 않는다. 다수가 개정에 찬성했다고, 앞으로 그것을 물을 길까지 함께 거둬도 된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위험은 일이 왜 급한지 설명하지만 이후 모든 장치에 무한한 이유를 주지는 않는다. 뒤로 미끄러지는 것은 방어 자체와 같지 않다. 그것은 더 얹힌 부분에 나타난다. 누가 자기 권한을 연장하고, 선거를 막고, 자신에 대한 민원을 넘겨받는가. 수석집정관이 속으로 진심이었는지 짐작할 필요도 없다. 국가가 다칠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에게 질문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을 할 수 있다.
국가 위에 한 단계 더 없다는 것은 이 일을 특히 어렵게 한다. 언제나 상급자가 와서 고쳐 주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이 후퇴의 원인도, 반드시 후퇴한다는 증명도 아니다. 살필 것은 안에서 원래 제한받던 권력이 어떻게 한 걸음씩 제한 바깥으로 연결되었는지다. 외부 위험은 조건을 만들었을 뿐 내부의 사람들을 대신해 이 선택들을 한 것이 아니다.
한 번의 굉음보다 몇몇 장치의 연결
원논문은 변화의 길을 넷으로 나눈다. 첫째는 예외가 조금씩 일상이 되는 것이다. 원래 비상사태는 60일마다 의회에서 다시 질문을 마주해야 했다. 나중에는 선포한 쪽이 스스로 연장한다. 한 번에 180일, 휴전 뒤에도 또 연장, 다시 연장한다. 매번 이유를 적는 칸이 있고 매번 임시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임시가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둘째는 적법한 절차를 따라 질문받을 조건을 바꾸는 것이다. 집정원 법무국은 비상명령 자체로는 선거를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헌장을 고치자고 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법을 찢어 버린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한 절차를 써서 다른 절차를 바꾸고, 어느 한쪽이 자기 점검 시기를 더 많이 스스로 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점검을 회복하는 법 개정은 물론 같은 방향이 아니다. 개헌이라는 이름만 볼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꾸었는지 봐야 한다.
셋째는 점검의 이름은 두고 작용을 좁히는 것이다. 방위군 민원은 방위청 내부 감사 부서로 옮겨졌다. 감찰청장의 임기가 끝난 뒤 의회는 후임을 뽑지 못했고, 집정원이 지정한 대행이 2년 동안 공개 보고서를 내지 않은 채 맡았다. 보상 규칙과 이해관계자의 심리 참여 배제 절차를 물으러 온 농가들은 최종심이 끝났으니 더 받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민원을 낼 수 있다는 것과 그 민원이 원래 장치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여기서도 절제가 필요하다. 누가 임명했는지, 같은 정당에 속하는지, 보고서를 몇 편 냈는지는 어느 하나만으로 점검이 통제되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더 조사해야 한다. 누가 받을지를 정하는가. 누가 종결할 수 있는가. 다른 곳으로 넘길 수 있는가. 요구된 시정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단서를 보았다는 것은 더 물을 이유를 얻었다는 것이지, 모두에게 씌울 결론을 이미 손에 넣었다는 뜻이 아니다.
법원에서는 서로 다른 두 일이 있었다. 일곱 법관이 구금 조항이 헌장에 어긋난다고 보았지만 새 문턱은 여덟 명을 요구했기에 선언은 성립하지 않았다. 640명은 계속 조항 아래에 남았다. 반면 선거 판결은 6 대 5로 유효하게 성립했는데, 집정원은 존중한다고 말하고도 선거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앞의 일은 성립 문턱에 막혔고 뒤의 일은 실행에 막혔다. 이를 ‘법원이 이제 쓸모없다’는 한 문장으로 뭉개서는 안 된다. 특히 집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이 독립 판단을 하지 않았다거나 판결이 효력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넷째는 되돌아갈 문마저 같은 쪽 손에 연결하는 것이다. 선거 날짜가 없고 국적 이탈 신청은 나이에 따라 접수가 중단된다. 민중원은 구성 지역의 탈퇴를 금지하고, 그 조항을 나중에도 개정할 수 없도록 하려는 안까지 통과시켰다. 나중에 실제 발효했는지는 계속 봐야 한다. 제안과 양원 중 한쪽의 통과, 최종 발효를 같은 일로 적을 수는 없다. 그래도 미래를 향해 미리 문을 닫으려는 방향은 이미 마주해야 할 문제다.
이 장치들은 서로를 돕기도 한다. 여덟 명의 문턱 때문에 일곱 표의 반대는 구금을 막지 못한다. 선거가 미뤄지면 앞선 결정들을 내린 다수파가 당분간 유권자를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된다. 민원이 원래 청으로 돌아가면 질문할 곳이 하나 줄어든다. 어느 한 건도 혼자 변화 전부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결되면 이미 내린 결정을 되물을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한 방향을 읽는 것이지 국가의 영원한 이름표를 다는 것이 아니다
네 길은 이 사례를 읽는 방식이지 역사가 반드시 밟는 네 단계가 아니다. 순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모두 나타나야만 걱정할 일도 아니다. 부당한 결정 하나가 유효한 심사로 시정되었다면 그 한 건만으로 나라 전체가 이미 바뀌었다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여러 제한이 서로를 받치고 있다면, 각자 절차의 이름이 붙었다고 공동 방향이 없는 척할 수도 없다.
다수에게 문이 열려 있다는 말도 모두의 처지를 대신하지 않는다. 국적이나 지역이나 입장으로 나눈 한 무리가 진정과 심사와 떠날 길을 동시에 잃었다고 해 보자. 수가 적으니 구조는 안 변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어떤 힘이,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갔는지를 봐야 한다. 전국에서 정상 운영하는 기관이 몇 개인지만 세어서는 알 수 없다.
반대자가 보였을 때도 더 자세히 물어야 한다. 방위군 총장은 도강 반대 의견을 쓴 다음 날 지휘에서 해임되었고, 한 병사는 감찰청에 편지를 보낸 2주 뒤 전출되었다. 시점이 가깝다는 것은 조사할 이유지만 기록에 없는 인과를 함부로 채워서는 안 된다. 반면 다른 평론가의 국적 박탈 결정은 그녀가 도강에 반대한 글을 명시적으로 열거했다. 자료가 어디까지 뒷받침하는지에 맞춰 말해야 한다.
이런 신중함은 판단을 약하게 하지 않는다. 누가 질문할 수 있는지, 질문이 결정의 핵심에 닿는지, 질문 뒤 보호받는지, 답이 무엇을 실제 바꿀 수 있는지, 서로 다른 문제에 각자의 자리를 준다. 기관 안의 누군가가 반대했고 법원이 판결을 쓴 것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것만으로 후퇴가 자동 소멸하지도 않지만 ‘다 똑같다’는 말로 지울 수도 없다.
이 산문은 철학적 경계를 논하는 글이지, 현행법을 요약한 안내서는 아니다. 원논문에는 토론할 제도 규칙의 제안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차례 연기가 독립적인 기한과 대체 질문의 길을 남겼는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같은 제안이다. 이미 널리 시행되는 법률이 아니다. 구체적 순간에 사실을 어떻게 인정하고 누가 어떻게 권한을 행사할지는 여전히 판단해야 하며, 그 판단에 답할 사람도 있어야 한다.
UCSE의 그 후퇴는 나중에 실제로 멈췄다. 그 결과를 거꾸로 써서 앞서 미끄러지지 않았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모든 위험 신호를 멸망 예고로 쓸 수도 없다. 우선 더 소박하게 물어보자. 법원이 말한 뒤 누가 그것을 실행하는가. 기한이 온 뒤 누가 연장을 거절할 수 있는가. 다음 선거는 선출될 사람의 동의를 먼저 받아야 하는가.
문은 있다. 다만 질문이 문 너머로 가기 점점 어려워진다. 이것을 보는 것은 나라에 영원히 바꿀 수 없는 표지를 새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간판에서 사람의 처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다. 결정한 그 자리들에 오늘도 닿는 길 가운데, 그들이 스스로 닫을 수 없는 길은 무엇인가.
원논문과 읽기 안내
국가론의 별도 논문 「역상전이」에 바탕을 둔 중국어 산문을 한국어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사례의 국가·표수·사건은 저자가 설정한 허구다. 원사례의 후퇴는 논문이 제안한 ‘되돌릴 통로가 닫힌 상태가 완성되었다’는 기준에 이르기 전에 멈췄고, 세 번째 글은 멈추지 않았을 경우를 따로 가정한다. 철학적 요구, 제안하는 제도 규칙, 구체적 상황에서 내려야 할 판단을 구분한다. 현행법을 설명하거나 현실 국가를 진단하거나 실제 외교적 대응을 처방하는 글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