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성공할수록,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는가
악인이 없는 문제
성과 기준이 분명하고 보상도 공정한 회사가 있다고 해 보자. 상사는 모욕하지 않고, 조직은 직원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한 사람은 다음 승진에 필요한 역량은 정확히 말하면서도 자신이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답하지 못한다. 회사가 선택을 금지한 적은 없다. 다만 조직의 목표가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어느 순간 자신의 목표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Self-as-an-End, 곧 SAE는 이 장면에서 시작한다. 먼저 묻는 것은 경영자가 선한가 악한가가 아니다. 이 구조가 여전히 한 사람을 자기 삶의 목적을 세우는 최종 주체로 인정하는가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만드는 일에는 반드시 폭력적인 명령이나 나쁜 의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존중을 구조의 문제로 보기
학교는 학생을 합격률로, 병원은 환자를 회전율로, 플랫폼은 사용자를 체류 시간으로 읽는다. 이런 수치는 일을 운영하는 데 필요하다. 문제는 부분적인 설명이 사람 전체에 대한 최종 판정이 될 때 생긴다. 성과가 없거나 표준 경로에서 벗어난 사람은 더 이상 한 명의 주체가 아니라 고쳐야 할 결함이나 처리해야 할 비용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SAE에서 존엄은 좋은 말을 듣는 기분에 그치지 않는다. 실패하거나 반대하고, 잠시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지위다. 제도가 그 지위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친절한 문화만으로는 사람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할 수 없다.
시스템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복잡한 사회에는 규칙과 전문성, 행정과 기반 시설이 필요하다. 때로는 힘 있는 사람의 호의보다 익명적인 절차가 약자를 더 잘 보호한다. SAE의 질문은 시스템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며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이다.
제도는 안전과 교육, 정보와 공정한 절차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 대신 결정할 수는 없다. 공동의 일을 조정할 수는 있어도 참여자의 존재 이유를 조직의 사명 안에 써 넣어서는 안 된다. 동의가 있었다는 사실도 충분하지 않다. 구조가 단 하나의 길만 현실적인 것으로 남겨 두었다면 사람은 그 길을 진심으로 원하게 될 수도 있다.
첫 번째 SAE 점검
어떤 조직이 효율적이고 선진적으로 보일수록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이 시스템이 성공했을 때 그 안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거절하고 방향을 바꾸며, 당장 유용하지 않아도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가. 아니면 성공할수록 삶의 모양이 비슷해지고 출구의 비용이 커지는가.
SAE는 모두에게 올바른 삶을 처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워 두어야 할 자리를 지킨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라는 질문의 마지막 답은 시스템이 차지할 수 없다. 제도는 강력하고 유능할 수 있지만, 사람의 목적을 대신 만들어 내는 권력까지 가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