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론 · 들어가며
관계는 중요하지만, 나 대신 살 수는 없다
‘우리’라는 말은 기댈 곳이 되기도 하고 한 사람의 목소리를 덮기도 한다. 함께 겪은 일과 누가 누구를 대신해 결정할 수 있는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따뜻한 말일 수 있다. 밤중에 일이 생겨 전화하면 도와줄 가치가 있는지부터 따지지 않던 사람이 있다. 무거운 말일 수도 있다. 다른 식으로 살고 싶다고 하면 상대는 그 세월을 내민다. 이미 서명했지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는 계약서처럼.
말은 같아도 상황은 다르다. 관계가 자유를 주는지 빼앗는지부터 판정하면 어떻게 일이 벌어졌는지 놓치기 쉽다. 그때 도와준 일도, 나중에 바뀌지 못하게 한 일도 사실이다. 앞의 일로 뒤를 변명할 수 없고 뒤의 일로 앞을 지울 수도 없다.
관계론은 이를 나누어 보려 한다. 관계의 좋고 나쁨부터 매기거나 이상적 연인, 부모, 친구의 기준표를 만들지 않는다. 한 사람이 한 말과 행동, 남긴 것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는가. 거듭되는 동안 어떤 말은 쉬워지고 어떤 말은 끝내 못 하게 되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자신을 대하는 방식도 다룬다. 스무 살의 규칙을 마흔에도 지키고, 예순의 생활을 상상하며 오늘을 정한다. 세 명의 자신이 협상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가 남긴 것들 속에서 오늘 선택하는 지금의 사람만 있다.
첫 글로 바로 가도 좋다. 책 한 권이 모르는 독자에게 가는 데서 시작한다. 이 길잡이는 마지막에 읽어도 된다. 약속과 기대, 이견과 떠남에 구체적인 얼굴이 생긴 뒤 이 관점이 익숙한 설명과 어떻게 다른지 돌아보면 된다.
함께 일해도, 대신 결정하는 ‘우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친구 둘이 작은 가게를 열기로 한다. 한 사람은 필요한 이에게 헌책을 팔고 싶고 다른 사람은 이웃이 앉아 쉬는 곳을 바란다. 가장 소중한 것을 먼저 하나로 합치지 않아도 가게를 열 수 있다. 매입과 임대료와 영업시간은 의논하되,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까닭은 각자의 답으로 남는다.
가게에는 공동 규칙과 습관과 어려움이 생기고 “우리는 늘 이렇게 했다”는 말도 남는다. 이후 행동을 실제로 제약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눈을 뜨고 입을 얻어 두 사람의 인생을 대신 정할 자격까지 얻지는 않는다. 제약은 각자의 인정이나 이미 받아들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리’라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이 관계 밖에서 자신을 완성한 뒤 타인을 만난다는 뜻도 아니다. 말하기, 요리, 믿는 것, 두려워하는 것에는 곳곳에 타인의 흔적이 있다. 그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림을 안 그렸을 수 있고 그 친구가 없었다면 이직할 엄두도 못 냈을 수 있다. 관계는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깊이 참여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도왔다는 것이 오늘 나 대신 결정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조건을 준 일과 내가 사는 한 걸음을 대신한 일은 다르다. 감사가 이후의 인생을 넘기는 일로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개인과 관계 중 형성상 무엇이 먼저인지도 여기서 판정하지 않는다. 이미 오가는 두 사람의 선택이 어떻게 대우받는지 본다.
원논문은 공동체와 공동생활을 중시하는 생각과 맞닿으면서도 답하지 못한 질문을 남긴다. 사람은 독립적이라는 말 하나로 공동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상이 말하는 인격이나 전체를 모두 개인 위에 군림하는 새 주인으로 보지도 않는다. 이름이 비슷해도 같은 것을 논하는지는 따져야 한다.
약속했는데, 왜 바꿀 수 있는가
어려운 것은 함께 한 일보다 함께 약속한 일일 때가 많다. 입원한 친구의 아버지를 돌보겠다고 했고 친구는 그 말을 믿고 근무 일정을 잡았다. 나중에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바꿀 권리가 있다는 말만으로 친구의 근무표가 저절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반대로 상대가 기대어 일정을 짰다고 이후의 몸과 결정 전부를 붙들 수도 없다. 약속에 무게가 있다는 것과 영원히 붙잡을 자격을 상대에게 주었다는 것은 다르다. 앞을 인정하다가 뒤까지 모르게 받아들이기 쉽다.
이 관계론은 뚜렷한 선택을 한다. 약속의 구속은 한쪽으로는 내가 여전히 그 약속을 인정하는 데서, 다른 쪽으로는 그 말이 이미 타인의 생활에 남긴 작용에서 온다. 아직 인정하는 약속을 언제든 무효처럼 다룰 수 없고, 변했다는 말로 상대 쪽을 지울 수도 없다. 바꿀 수 있음과 남은 사실이 여전히 유효함은 함께 놓인다.
공동으로 한 약속에 관한 길버트의 설명 같은 중요한 해석과는 다르다. 거기서는 함께 무언가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서로 이행할 의무도 생긴다. 따로 정하지 않았다면 한쪽 혼자 해제할 수 없다. 이 관계론은 그 규범의 출처를 택하지 않고 자신의 이탈과 상대 처지에 남은 영향을 구분한다.
누가 자유를 더 아끼느냐로 끝낼 수는 없다. 상대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의무도 행동의 자유와 공존할 수 있는데 왜 떠날 수 있으면서 이행할 의무는 여전히 남는다고는 말할 수 없는가. 원논문은 이 반문을 남겼다. 자기 선택을 다른 약속론의 완전한 논박으로 쓰지 않는다. 좋은 말로 가장 어려운 한 걸음을 생략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계약이나 법, 공동 양육의 약속을 취소한다는 말도 아니다. 이미 성립한 제도적 요구를 사적 관계에 관한 산문으로 지울 수 없다. 제도로 둘 사이의 일을 모두 정산하지 않을 때, 한마디 약속이 오늘의 판단에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묻는다. 셋째 글은 식사 배달과 금연, 이십 년의 월초 식사를 함께 놓고 풀어 본다.
모든 관계를 같은 저울에 올리지 않기
이 관계는 나를 자라게 하는가, 가두는가. 실제로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총점 하나만 기다리면 가장 중요한 세부가 밀려나기 쉽다.
스승이 제자에게 기계 소리를 듣는 법을 정말 가르쳤고 제자는 나중에 스스로 고장을 찾아냈다. 같은 스승이 “나 없이는 넌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다른 곳에서 배울 길을 어렵게 했다. 배운 기술도 막힌 길도 진짜다. 둘을 빼고 더해 대체로 괜찮다고 한 뒤 막힌 곳은 더 안 물어도 된다고 할 수 없다.
원논문은 하이데거의 돌봄 논의와 비춘다. 상대가 신경 쓸 일을 가져와 끝내 주다가 그를 옆으로 밀어내는 도움도 있고, 자신의 일을 그에게 돌려주는 도움도 있다. 질문의 층위는 같지 않지만 구분은 구체적이다. 대신 끝내는 일과 상대가 더 잘 스스로 하게 하는 일은 언제나 같지는 않다.
반대로 안 도와주는 일을 모두 공간을 남긴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가져갔는지 봐야 한다. 나중에 무엇이 자랐는지도 준 사람이 혼자 정할 수 없다. 열심을 곧 침입으로, 거리를 곧 존중으로 보지 않는다. “그때 고생해서 나중에 잘됐다”로 당시의 상처를 뒤늦게 보증하지도 않는다.
출발 문턱도 낮다. 서로 알고 호의가 있는 두 사람의 만남은 두텁다. 그러나 관계가 거기서만 시작하지는 않는다. 만난 적 없는 저자의 글 한 쪽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 일도 살필 만하다. 처음부터 상호 인정과 답변을 요구하면 일방적 도움, 일방적 압박, 보내지 못한 답장을 빼 버리게 된다.
모든 영향이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왔는지 가리킬 수 있고 실제로 다른 사람의 상황에 들어간 작용을 본다. 돌이나 날씨, 모호한 인과를 모두 같은 인간관계로 부르지 않는다. 낯선 사람에게 길을 한 번 물었다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까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영향이 있다고 늘 성장을 돕거나 통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론이 모든 문제를 맡지는 않는다. 관계마다 남을지 갈지 정하지 않고 사과 한 번으로 갈등이 풀렸다고 하지 않으며, 답이 늦다고 마음에 내가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보이는 말과 행동, 배치와 제한을 분명히 하면서 아직 안 보이는 곳도 남긴다.
원논문에는 우애, 예, 신의, 증여, 자기 동일성 같은 전통과의 대화가 열세 개 있다. 여기서는 몇 군데만 골라 이 길이 어디서 갈리는지 보였다. 전체 비교는 논문에 있지만 그것을 먼저 알아야 뒤의 산문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사람도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줄지 않는다. 한 관계를 끝냈다고 모든 사람을 문밖에 세운 것도 아니다. 관계에는 혼자서는 못 얻는 질문과 도움과 만남의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이 귀한 것은 상대가 내 기대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가 중요한 까닭은 끝내 나 대신 살아 주어서가 아니다.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만남 속에서도 내가 더 분명하게 자신이 될 수 있고 상대에게도 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말 그랬는지는 ‘우리’ 한마디로 답할 수 없다.
원논문으로
일곱 편의 본문은 원논문 1~7에 대응한다. 길잡이는 제0편을 바탕으로 이 관계론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철학 전통과 나눈 몇 가지 대화를 소개한다. 여덟 편 모두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며 모든 기술적 논증을 문단마다 옮긴 것은 아니다. 한국어는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으며 각 글에 원논문 링크를 둔다. 사적인 인간관계에 관한 논의는 법적 요구, 안전을 위한 지원, 당사자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하지 않는다. 이미 성립한 제도적 규칙을 대체하지 않으며 남을지, 떠날지, 연락을 다시 시작할지도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