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론 · 01
그 말은 모르는 사람에게서 왔다
저자는 내가 책을 읽었는지 모르지만 글은 나를 바꾸었다. 관계는 서로 알아보는 데서만 시작하지 않으며 둘 대신 말하는 ‘우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오랫동안 읽어 온 책이 있다. 표지는 들뜨고 어느 쪽에는 옛날 접어 둔 자국이 남았다. 저자는 나를 모른다. 편지도 댓글도 안 썼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한 문장은 내게 남았다. 어떤 일을 만나 떠올리고, 또 어느 날에는 틀린 것 같아 책을 다시 펼친다.
이것도 관계일까. 평소 누구와 관계가 있다고 하면 서로 알아야 하고 오가는 일도 있어야 할 듯하다. 독자와 저자는 너무 비대칭적이다. 한 사람은 영향을 받고 다른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빼면 실제로 일어난 많은 일을 지운다. 모르는 이의 말이 이전에 안 보이던 것을 보게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시작 문턱을 낮춘다. 한 사람의 행동이나 남긴 것이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이후 보고 생각하고 해낼 조건을 바꾼다. 누구에게서 어떤 작용이 왔는지 짚을 수 있다면 관계가 있다. 오후 한때로도 충분하다. 우정이나 친밀함이나 공동 약속으로 자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짚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증거를 낼 사람이 있다는 뜻과 다르다. 저자가 나를 몰라도 영향은 사라지지 않고 남에게 안 보여도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아직 불분명하면 모른다고 남겨 둘 수 있다. 모든 희미한 연결을 끌어올 필요도 없다. 세상의 인과가 전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말은 아니다.
플라톤을 읽는 것도 같다. 작용하는 것은 사람이 남긴 글이지 종이가 직접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도 옛 저자가 나에게 약속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답할지 상상해도 실제 답으로 기록할 수 없다. 관계가 일방향일 수는 있지만 반대편 목소리를 지어낼 허가는 아니다.
그래서 서로 알아보는 일이 먼저일 필요가 없다. 낯선 이의 행동이 내 오후를 바꾸며, 원하는 바를 잘 말하지 못하는 아이도 이미 사람들과 오간다. 온전한 이유를 말하지 못한다고 어른의 배치를 기다리는 물건으로 낮출 수는 없다. 표현 능력과 이미 사람이라는 사실은 다르다.
‘우리’는 두 사람 대신 서명할 수 없다
중요한 관계는 다른 한 사람처럼 말하기 쉽다. “우리 관계에서는 네가 그러면 안 돼.” “가족을 위해서 너 자신은 생각하지 마.” 두 사람 위에 제삼의 심판자가 나타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누구도 되물을 수 없는 듯하다.
하지만 관계에는 살아갈 자기 하루도 결과를 대신 견딜 몸도 없다. 남은 습관과 정해 둔 방식, 말없이 통하는 이해, 규칙, 다음번의 기대는 실제다. 무거울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둘 대신 최종 결정하는 입이 생기지는 않는다.
함께 정한 일을 아무 때나 없던 말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둘은 같은 약속을 각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공동 절차를 인정할 수 있다. 제약은 이 구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정한 것에서 오지 관계 자체가 위의 의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바꾸든 아니든 이미 남긴 결과는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두 뜻 사이를 미끄러진다. 함께 일을 하는 우리와 각자의 생활이 있음을 인정하는 우리다. 동시에 있을 수 있지만 대신하지는 못한다. “사랑하니까 그 도시로 이사하는 데 동의해야지”는 뒤의 뜻으로 앞의 이견에 결론을 낸다. 사랑이 두 사람의 이사 동의서에 서명한 것은 아니다.
저자와의 거리는 오히려 이를 선명하게 한다. 책에서 힘을 얻어도 판단을 저자에게 넘길 필요는 없다. 출발의 길은 책이 주었지만 자라난 시선은 내 것이다. 가까운 관계도 같다. 자신이 되도록 도운 사람이 내 가치를 생산한 것도 관계가 가치를 수여한 것도 아니다.
둘을 나누어 보자. 상대가 사람으로서 목적으로 대우받을 자격은 시험에 합격해야 생기지 않는다. 반면 이번 교류에서 대신 결정하지 않았는지는 해냈을 수도 놓쳤을 수도 있다. 미숙한 아이도 사람의 지위가 줄지 않으며 아이를 인정하려고 부모가 자신을 지울 필요도 없다.
눈을 열어 주기도, 자를 밀어 넣기도 한다
그 책을 다시 보자. 어느 쪽은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도 볼 수 있다고 깨닫게 한다. 이것도 부딪힘이다. 다른 쪽에서는 저자가 어떤 이들의 처지를 못 봤다며 화가 난다. 이것도 부딪힘이다. 영향은 말다툼 때만 생기지 않는다. 공명, 깨달음, 오해, 반대 모두 다음 걸음을 바꿀 수 있다.
그렇다고 반대마다 갈등이라 하거나 모든 만남을 양쪽이 함께 판단을 바꾸는 과정이라 할 수는 없다. 책에 감동해도 저자가 모르면 함께 묻고 답하는 과정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반대로 부모와 성인 자녀는 신분이 대등하지 않아도 특정 일에서 서로를 정말 듣고 판단을 바꿀 수 있다.
신분이 과정을 보장하지도 미리 배제하지도 않는다. 친구가 꼭 듣는 것은 아니며 교사도 명령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 어떻게 말하고 받았는지, 상대의 질문이 실제로 들어왔는지를 보아야지 관계 전체에 먼저 표지를 붙일 일은 아니다.
어떤 영향은 자리를 내주고 어떤 영향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앞은 스스로 보고 판단을 키우게 하며 뒤는 외부의 자를 밀어 넣어 본인 대신 정하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함양과 식민화는 작용의 방향이다. 사람을 선인이나 악인으로 판정하는 이름이 아니다.
한 행동에 두 방향이 함께 들기도 한다. 선생님이 그림 보는 법을 잘 가르쳐 학생은 못 보던 세부를 본다. 같은 수업에서 자기 취향의 유파만 예술이라고 가르친다. 한쪽은 눈을 열고 다른 쪽은 자를 넣으려 한다. 상쇄해서 총점으로 만들 수 없다.
둘 다 아닌 교류도 많다. 길을 묻고 거스름돈을 건넸다고 성장을 돕거나 지배한 큰일은 아니다. 그런데 “데려다주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를 더하면 달라진다. 요청에 더해 상대의 거절이 무엇을 뜻하는지까지 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방향과 결과도 다르다. 자리를 주어도 그때 바로 쓰지는 못할 수 있다. 판단을 차지하려는 시도도 간파하고 거절할 수 있다. 방향은 말과 배치, 이견에 대한 반응으로 본다. 상대 마음에서 실제 무엇이 되었는지는 이후 이해와 행동을 봐야 한다. 행위자가 완성했다고 선언할 수 없다.
그래서 “다 너를 위해서”는 결론이 아니다. 나중의 성공도 당시 모든 것을 옳게 만들지 않는다. 책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독자의 질문을 막았다고 그의 행동 전부를 책에 돌릴 수도 없다. 각 작용이 실제로 한 일을 따로 보아야 한다.
기대한다고, 상대가 약속한 것은 아니다
여러 번 오가면 기대가 자란다. 세 권을 읽고 네 번째를 기다린다. 친구가 몇 주말 계속 오면 다음 주 자리도 비운다. 반마디로 알아듣던 이가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기대는 내게 진짜이며 시간을 바꾸고 한 번의 지각을 유난히 아프게도 한다.
그러나 내 기대가 상대의 약속을 대신할 수는 없다. 남기를 바란다고 남겠다고 한 것은 아니며 이해했다고 느껴도 그렇게 이해받는 데 동의한 것은 아니다. 기대를 말하고 의논의 재료로 삼을 수 있다. 상대가 진지하게 받거나 함께할 일을 명확히 정할 수도 있다. 기대만으로 그 일이 이미 일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상대 판단을 차지하려는 시도와 기본권 침해도 따로 보아야 한다. 통제 방향의 설득이 이미 모든 권리 경계를 넘었다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거절, 철회, 이탈의 길을 완전히 막았다면 선의로 느꼈다고 경계 침범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후 기분이 좋은지에 판정을 맡길 수 없다.
심각한 일을 가볍게 하려는 구분은 아니다. 기본 조건이나 실제 이탈의 길이 실질적으로 압박받으면 보호와 처리를 둘의 대화에만 둘 수 없다. 남긴 작용은 관계로 분석할 수 있지만 서로 이해하는 일로 필요한 보호를 대신한 척해서는 안 된다.
관계를 역할에서 깨끗이 떼어 낼 수 없는 때도 있다. 교사와 학생, 상사와 부하에는 제도와 그 밖의 교류가 있다. 이미 정해진 역할을 알아야 누군가 더 얹은 기대가 보인다. 직무대로 사실에 맞게 평가하는 일과 평가를 빌려 동의하게 하는 일은 다르다. 뒤의 대인 작용을 살피는 것이지 제도 규칙의 총결산은 아니다.
사람이 많아져도 뭉뚱그린 ‘우리’에 숨을 수 없다. 부모가 아이 앞에서 싸우면 각자가 아이에게 작용을 남긴다. 제삼자에게 압박하는 말을 전해 달라면 발화자와 전달자 각각의 몫이 있다. 남을 거쳤다고 내 몫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작은 모임에도 모두의 결과를 삼킬 공동 인격은 없다.
관계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스침마다 정을 붙이려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다고 실제 영향을 지우지 않으려는 것이다. 관계의 권한을 낮추는 것도 친밀함을 가볍게 보려는 것이 아니라 대신 인생을 살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모르는 이에게서 온 말이 오래 곁에 있어도 오늘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나 대신 답하지 못한다.
원논문으로
일곱 편의 본문은 원논문 1~7에 대응한다. 길잡이는 제0편을 바탕으로 이 관계론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철학 전통과 나눈 몇 가지 대화를 소개한다. 여덟 편 모두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며 모든 기술적 논증을 문단마다 옮긴 것은 아니다. 한국어는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으며 각 글에 원논문 링크를 둔다. 사적인 인간관계에 관한 논의는 법적 요구, 안전을 위한 지원, 당사자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하지 않는다. 이미 성립한 제도적 규칙을 대체하지 않으며 남을지, 떠날지, 연락을 다시 시작할지도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