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론 · 04
답장을 했다고, 내게 약속한 것은 아니다
답장 한 통은 기다림에 사연을 더한다. 그러나 바란다는 말과 소중하다면 이래야 한다는 말은 다르다.
도시에서 가르치는 한 여성이 산림에 관한 글을 읽고 저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산에서 숲을 지키는 저자는 짧게 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칠 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처음 이 년은 그녀가 더 자주 썼고 그는 드물게 답해 두 달씩 걸리기도 했다. 뒤의 오 년은 대체로 매달 오고 길이도 늘었다. 그녀는 산에 언제 눈이 오는지 알았고 그는 그녀가 읽는 책을 알았다. 월초면 집배원을 기다리게 됐다.
처음부터 기다린 것은 아니다. 매달 한 통이라는 제안이나 승낙도 없었다. 편지가 오고 날이 흐르면서 어느 날, 편지가 안 온 월초는 보통의 월초와 달라졌다.
기대는 진짜다. 저녁을 비우고 늦은 편지를 읽는 마음을 바꾸며 쉬웠던 말을 어렵게도 한다. 보장이 있어야 바랄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란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무엇을 약속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답이 왔다고 모든 것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답장은 새것을 가져온다. 산에 눈이 왔고 지난번 책을 기억하며 어떤 생각은 더 나누고 싶다고 한다. 모두 다음 편지에 들어간다. 두 달 무응답도 들어간다. 답과 침묵은 조건을 바꾸지만 승인 도장은 아니다. 답했다고 그녀의 이해에 동의하거나 편지 교류 전체에 관한 관점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물론 답장 안에 약속이 있을 수는 있다. 앞으로 월초마다 보내겠다고 쓰면 약속으로 대해야 한다. 응답은 보장이 아니라고 명확한 약속까지 지울 수 없다. 답한 사실과 안에 무엇을 썼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편지가 길어졌음은 보인다. 그래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아니다. 진지함과 가까움을 느끼고 이 세월을 어떻게 보는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자신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그가 정하는 단계까지 대신할 수 없다.
짐작하지 말고 공식 선언만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표정, 망설임, 습관, 세부로 서로를 이해한다. 차이는 그 이해를 상대가 고칠 수 있는가다. “너도 편지가 소중한 줄 알았어”에는 여지가 있다. “계속 답했으니 틀림없이 나와 같아”는 반대편을 대신 마무리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기대도 그에게 온다. 편지에 또 월초라고 한마디 쓰면 다음에 펜을 들 때 떠올릴 수 있다. 명령이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지만 혼자 마음속 일만도 아니다. 말이 다른 사람 생활에 들어가면 어떤 말은 쉬워지고 어떤 말은 어려워진다.
기대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가 매월 편지를 스스로 지키기로 하거나 둘이 앞으로의 방식을 명확히 정해 각자 맡을 역할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새로 생긴 것을 보아야 한다. 예전부터 기다렸다고 이미 성립했다고 거슬러 말할 수 없다. 기대만 보고 약속이나 역할에 따른 책임을 보태서는 안 된다.
반마디의 차이
한 번은 석 달간 답이 없었다. 그녀는 마침내 썼다. “이 편지가 소중하다면 제때 답할 거야.” 서운할 때는 당연한 말처럼 나오기 쉽다. 그러나 제때 답하기를 바란다는 말보다 한 걸음 더 간다.
“바란다”는 내 처지를 건넨다. 하겠다고 하거나 못 하는 이유를 말하거나 잠시 쉬고 싶다고 할 수 있다. “소중하다면 할 거야”는 제때 보내는 답장을 소중함의 증명으로 만든다. 소중하다면 따르라, 안 따르면 네 말은 무효다. 상대가 자기 몫으로 이해할 일을 반마디로 미리 끝낸다.
금지할 단어 몇 개의 문제가 아니다. 늦으면 걱정된다는 것은 내 처지, 산 우편길은 월초가 잘 통한다는 것은 조건이다. 안 쓰고 싶으면 알려 달라는 말은 마음을 언급하되 말할 길을 준다. 반대로 “내 생각에는”으로 시작해도 다른 이해를 전혀 허용하지 않으면 여지를 남긴 것은 아니다.
비판도 할 수 있다. 성의 없게 느껴진다거나 덜 중요해진 것 같아 걱정된다는 말이 틀릴 수도 있는 자기 해석을 내놓고 답을 기다리면 대신 확정한 것이 아니다. 감정을 지워야 말할 자격이 생기지는 않는다. 핵심은 그의 답이 이 이해를 바꿀 수 있는가다.
산림 현장에 일이 있었다는 설명을 듣고 석 달을 다시 본다면 앞서 섣불리 단정한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이후의 반박 불가능한 규칙은 아니다. 무슨 말도 무관심의 증거가 된다면 다르다. 설명은 핑계, 침묵은 묵인, 항의는 떳떳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된다. 말할 수는 있어도 답으로 자리 잡을 수 없다.
제삼자는 이런 해석이 그가 아니라고 답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소중하지 않잖아”나 “통제만 하려는 거야”로 어느 쪽 속마음도 대신 정할 수 없다. 대신 결정하는 방향으로 간 말과 실제로 상대에게 낳은 작용도 다르다. 압박을 보았다고 내면 전부를 보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관계가 어려운 곳이다. 덜 아껴서만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답을 너무 기다리다 허용할 답까지 써 두기도 한다. 기대를 남의 정의로 쓰지 않으려면 반마디 차이에도 거듭 주의가 필요하다.
그날의 웃음으로 다음 웃음을 요구할 수는 없다
칠 년째 처음 만났다. 작은 역 승강장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마주 웃었다. 말은 없었다. 그 편지들이 마침내 여기 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아낄 수는 있지만 웃음만으로 둘의 모든 것을 인증하지는 못한다. 예의, 긴장, 맞춰 줌일 수도 있고, 아무도 대신 정하지 않은 채 양쪽이 통하는 만남일 수도 있다. 표정을 보았다고 순간의 전부를 얻지는 않는다. 두 사람도 서로를 잘못 이해할 수 있다.
그때 양쪽 모두 자기 예상으로 상대를 결정하지 않고 상대 마음의 순간을 그에게 남겼다면 만족스러운 반응을 받은 데 그친 것은 아니다. 먼저 줬으니 돌려달라는 것도 아니다. 각자 상대를 그렇게 대하려던 것이 여기서 만났다. 못 만났어도 한쪽의 진지함이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오기 전 기대가 전혀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웃기를 바란다고 웃어야 한다고 정한 것이 아니며 만나기로 했다고 마음의 만남이 불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웃으라고 시키거나 미리 마주 웃기로 정해 마련하는 것은 기껏해야 겉의 표정이다. 배치만으로 안의 순간을 보장할 수 없다.
함께 제삼자를 깎아내리고 괴롭히며 우쭐한 눈빛을 주고받았다고 상호 인정이라 칭찬할 수도 없다. 그 묵계가 제삼자의 독립성을 지우는 데 기대면 바로 그 조건이 문제다. 둘이 잘 맞는다고 누군가를 재료로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꼭 부드럽지만은 않은 만남도 있다. 논쟁에서 서로 이유를 듣고 원래 판단이 열린다. 각자 말하기와는 다르지만 둘 다 상대가 자기 인생을 정해야 한다고 인정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서로에게 바뀌면서도 누르려 할 수 있고 양쪽이 다를 수도 있다. 함께 경험한 것, 판단이 바뀐 것, 대신 결정하지 않은 것은 서로 다르다. 앞의 일이 있었다고 뒤의 일까지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승강장 순간이 영원히 오해 안 하는 단계로 관계를 올리지도 않는다. 이후에도 늦고 다르고 아프며 다시 들어야 한다. 그 웃음을 증거 봉투에 넣었다가 편지가 늦으면 그때는 이해했는데 왜 이러냐고 낼 수 없다. 지난 만남은 미래에서 무한히 인출할 증서가 아니다.
나중에 그는 더 먼 산림 현장으로 옮겨 편지가 줄겠다고 썼다. 칠 년의 기다림은 즉시 물러나지 않고 그도 적응 속도를 대신 선언할 수 없다. 하지만 기다린다고 안 보낸 편지들이 자동으로 빚 한 묶음이 되지는 않는다. 따로 약속이 없으면 기대만으로 만들 수 없다.
다시 의논할 수도 편지 교류가 뜸해질 수도 있다. 답장 한 통은 더 성실히 읽을 이유를 주어도 상대 인생을 대신 결정하게 해 주지는 않는다. 진짜 만남이 있었다면 남길 만한 것은 그것일지 모른다. 오기를 바라고 실망을 말하고 논쟁할 수 있다. 그래도 당신의 답은 내가 미리 써 둔 것과 달라도 된다.
원논문으로
일곱 편의 본문은 원논문 1~7에 대응한다. 길잡이는 제0편을 바탕으로 이 관계론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철학 전통과 나눈 몇 가지 대화를 소개한다. 여덟 편 모두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며 모든 기술적 논증을 문단마다 옮긴 것은 아니다. 한국어는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으며 각 글에 원논문 링크를 둔다. 사적인 인간관계에 관한 논의는 법적 요구, 안전을 위한 지원, 당사자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하지 않는다. 이미 성립한 제도적 규칙을 대체하지 않으며 남을지, 떠날지, 연락을 다시 시작할지도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