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 108 · 진리의 경계 긋기
튜링, 그 사과
테이프, 정지 문제, 전쟁의 협업, 모방 게임, 그리고 검사되지 않은 사과. 박해받지 않을 권리를 얻으려고 쓸모를 먼저 증명할 필요는 없다.
1. 세 개의 사과
사람들은 세 개의 사과를 한 이야기로 묶곤 한다.
첫째는 뉴턴의 사과다. 열매가 떨어지고 땅과 하늘을 잇는 질문이 생긴다. 한 번 맞고 만유인력 법칙을 얻었다는 마법은 아니다. 둘째는 컴퓨터 회사의 로고다. 디자이너는 베어 문 자국이 사과임을 알아보게 하려는 것이지 튜링을 기리는 뜻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튜링이 죽은 뒤 그의 방에 남아 있던 먹다 만 사과다. 사인은 시안화물 중독으로 확인되었지만 사과는 검사하지 않았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첫 문장에서는 치명적인 한입을 확실한 사실처럼 써서는 안 된다.
전설은 한 사람의 생애를 기억하기 쉬운 모양으로 모은다. 사과는 기념 포스터에 그릴 수 있다. 종이테이프와 논증, 오랜 협업과 형사 재판은 한 화면에 담기 어렵다.
앨런 튜링은 계산을 이해하는 길을 열었고 전쟁 중 암호 해독에 기여했다. 국가는 뒤에 그가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하고 호르몬 처치를 받게 했다. 이 대비는 분노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의 권리를 전쟁 공헌으로 사야 했던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고 어떤 나라도 돕지 않았더라도 박해는 잘못이었다. 이를 잊으면 추모하는 쪽에서도 그를 다시 ‘쓸모 있는 천재’라는 증명서로 줄이게 된다.
2. 테이프
1936년 튜링은 계산 가능한 수와 결정 문제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 안의 기계는 책상 위에 놓인 장치가 아니다. 규칙을 따라 계산한다는 말을 조사할 수 있을 만큼 명확히 만드는 방법이다.
계속 늘일 수 있는 테이프를 생각해 보자. 칸마다 기호가 들어간다. 헤드는 현재 칸을 읽고 쓰고 좌우로 움직인다. 유한한 상태와 규칙이 지금의 기호와 상태를 바탕으로 다음 행동을 정한다.
기호가 반드시 0과 1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단순화다. 핵심은 국소적이고 명확하며 반복할 수 있는 단계다. 기계는 영감으로 규칙을 건너뛰지 않으며 계산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뜻인지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다음에는 보편 기계가 있다. 같은 종류의 다른 기계가 따르는 규칙을 부호화해 넣으면 그 기계의 동작을 모의할 수 있다. 일을 바꿀 때마다 전혀 다른 장치를 만들 필요 없이 지시를 바꾸면 된다.
여기서 정리와 논제를 구별해야 한다. 형식화된 기계를 모의할 수 있다는 것은 수학적 결과다. 모든 효과적인 기계적 계산이 이런 모델로 표현된다는 것은 처치–튜링 논제다. 우주의 모든 과정이 테이프 기계라고 증명한 것은 아니다.
바흐는 제한된 재료로 복잡한 음악을 만들었고 뉴턴은 낙하와 천체를 연결했다. 튜링은 계산을 몇 가지 행동으로 나누어 그것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정확하게 물을 수 있게 했다.
3. 멈출 것인가
결정 문제는 정확히 말하면 임의의 일차 논리식이 보편적으로 타당한지 판정하는 기계적 절차가 있는가의 문제다. 힐베르트의 수학적 기대와 연결되지만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하는 기계를 요구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튜링은 1936년 부정적인 결과를 보였고 처치도 그해 독립적으로 관련 결론을 얻었다. 오늘날에는 정지 문제가 이해하기 좋은 입구다. 어떤 프로그램이 주어진 입력에서 언젠가 멈출지 계속 실행될지 언제나 판정하는 프로그램이 있을까.
절대로 틀리지 않는 심판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심판이 멈춘다고 하면 끝없이 돌고, 멈추지 않는다고 하면 바로 멈추는 반대 프로그램을 만든다. 적절한 자기 참조를 구성하면 심판의 어느 답이든 뒤집힌다.
속도나 테이프가 부족한 문제가 아니다. 정해진 계산 체계 안에서 모든 프로그램과 입력에 통하는 정지 판정기는 없다. 원래 논문의 논증은 현대 교과서의 제시 방식과 정확히 같지 않다. 지금의 설명은 원문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다.
많은 개별 프로그램은 정지 여부를 알 수 있다. 범위를 제한하면 믿을 만한 알고리즘도 있다. 보편 판정기가 없다는 말은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다는 말도, 인간의 직관이 언제나 기계보다 우월하다는 증명도 아니다.
경계의 힘은 정확함에서 나온다. 이를 삶과 사회와 우주 전체에 통하는 구호로 바꾸면 오히려 튜링이 해낸 일의 정밀함을 잃는다.
4. 전쟁
1939년 튜링은 블레츨리 파크의 전시 업무에 합류했다. 에니그마는 가능한 설정이 상상을 넘는 자물쇠처럼 보였다. 과제는 복잡함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 가운데 실제로 불가능한 것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한 글자는 자기 자신으로 암호화되지 않는다. 전문에는 예상할 수 있는 표현이 들어갈 수 있다. 배선은 서로 모순되면 안 된다. 봄브는 이런 조건들을 결합해 불가능한 설정을 대거 걸러 냈다. 독일어 문장을 마법처럼 모두 이해하는 장치는 아니었다.
외로운 천재가 혼자 이긴 전쟁이 아니다. 전쟁 전 폴란드 수학자들의 돌파와 정보 공유가 중요했다. 튜링이 영국 봄브의 핵심 설계를 제시했고 고든 웰치먼이 중요한 개선을 더했으며 기술자들이 제작하고 운용 인력이 계속 돌렸다.
통신 감청, 언어 분석, 노획 자료, 해상 작전, 정보를 결정으로 바꾸는 사람도 필요했다. 기계는 사람에게, 사람의 업무는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영웅 서사에서 빠지기 쉬운 긴 반복 작업이 그 사이를 이었다.
기여는 막대했다. 다만 전쟁을 정확히 몇 년 줄였고 몇백만 명을 살렸다는 수치는 일어나지 않은 역사와 비교한 추정이지 직접 셀 수 있는 실적이 아니다. 공헌을 인정하는 데 거짓 정밀함은 필요하지 않다.
전후 그는 국립물리연구소에서, 나중에는 맨체스터에서 컴퓨터 연구를 했다. 비밀의 저택에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비극만 기다린 것이 아니다. 설계와 논쟁, 프로그램, 미완의 질문이 있었다.
5. 모방 게임
1950년 「계산 기계와 지능」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생각을 정의하고 진짜 생각이 무엇인지 다투다가 다시 정의로 돌아오면 대화가 그 안에 갇히기 쉽다.
튜링은 입구를 바꾼다. 질문자가 글로 대화하며 상대를 식별하고, 그 상황에서 기계가 어떻게 수행할지 살펴본다. 논문은 사람들 사이의 모방 게임에서 출발한 뒤 기계를 도입한다. 사람을 속이면 영혼이 있다는 한 줄짜리 선언이 아니다.
날카로운 부분은 우리의 기준을 설명하게 한다는 데 있다. 동료의 응답은 이해이고 기계의 응답은 단순한 작동인 까닭은 무엇인가. 대화의 증거가 비슷하다면 재료를 안다는 이유로 한쪽을 미리 탈락시킨 것은 아닌가.
그러나 대화 시험을 통과했다고 의식이나 도덕적 지위가 자동으로 입증되지는 않는다. 시간, 조건, 질문과 수행 범위에 따라 결과의 뜻이 달라진다. 한 대화에서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같다는 뜻이 아니다.
흄과 비교하면 도움이 된다. 우리는 관찰한 것에서 관찰보다 큰 판단으로 자주 넘어간다. 그렇다고 흄이 모든 인과 지식을 지운 것도, 튜링이 생각을 사기로 만든 것도 아니다. 비교는 건너가는 다리이지 두 철학이 같다는 증명은 아니다.
무엇을 보았는가. 어디까지 추론했는가. 무엇은 시험하지 않았는가. 튜링은 후대의 인공지능 논쟁을 닫지 않았다. 서로의 주장을 점검할 수 있는 자리로 그 일부를 옮겼다.
6. 괴델과 함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1931년, 튜링의 논문은 1936년이다. 같은 해도 아니고 완전히 같은 문장을 두 번 증명한 것도 아니다.
무모순이며 효과적으로 공리화되고 충분한 산술을 표현하는 이론에는 괴델식 증명 능력의 한계가 있다. 튜링의 결정 불가능성은 특정한 문제군을 일반 알고리즘으로 풀 수 있는가를 다룬다. 깊이 연결되어도 전제와 대상과 결론을 섞으면 안 된다.
입구로는 어떤 증명 규칙도 산술을 다 담지 못한다는 것과, 일반 프로그램 하나로 모든 정지 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란히 놓을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독자를 위한 약도이지 형식적 정의는 아니다.
괴델을 경계 너머를 바라보기만 하는 플라톤주의자로, 튜링을 만들기만 하는 기술자로 나누어도 곤란하다. 전자의 증명에는 정교한 구성이 들어 있고 후자의 기계는 먼저 추상 수학이다. 둘 다 창조적인 작업으로 한계를 보이게 했다.
한계는 연구를 그만두라는 명령이 아니다. 만능 답이 없어도 유용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정리를 증명하며 방법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것과 여기서 가능한 것을 구별하는 일도 생산적이다.
도구가 모든 것을 못 한다는 말과 아무것도 못 한다는 말은 멀리 떨어져 있다. 튜링은 부정적인 결과 옆에 주저앉지 않았다. 작동하고 다른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계속 설계했다.
7. 소크라테스와 함께
소크라테스 곁에 놓으면 비슷한 질문이 들린다. 안다고 말하는 당신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사람과 사례에 부딪쳐 어디서 성립하지 않는지 찾는다. 튜링은 대화 실험을 마련해 기계의 지능을 당연하게 배제하던 기준이 검토를 받게 한다.
같은 방법은 아니다. 윤리적 문답은 통계 시험이 아니고 모방 게임은 모두를 무지의 빈터에 보내려는 것만도 아니다. 튜링은 학습하는 기계를 비롯한 건설적인 연구 방향을 제시했다.
공통점은 익숙한 단어가 생각을 전부 대신하지 못하게 하는 태도다. ‘그저 기계’라고 하면 그저가 무엇을 제외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일도 기능 목록을 대조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의 생애는 이 질문을 아프게 만든다. 사회는 그가 하는 일의 가치는 인정하면서 성적 상대가 누구인지로 삶을 제한했다. 암호 해독의 쓸모는 이해했지만 해독자의 사생활은 존중하지 않았다.
그의 존엄은 정지 정리에서 따라 나오는 결론이 아니다. 수학이 먼저 보증해 줄 필요는 없다. 사람을 기여 목록으로 줄일 수 없다는 것, 이 역사를 읽는 윤리적 출발점은 거기에 있다.
8. 유죄 판결
1952년 튜링이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신고하자 수사 과정에서 아널드 머리와의 성관계가 드러났다. 3월 유죄 판결 당시 그는 마흔한 살이 아니라 서른아홉 살이었다. 당시 법은 남성들 사이의 특정한 합의된 성행위를 범죄로 삼았다.
중대한 외설이라는 죄명은 오스카 와일드에게도 쓰였다. 튜링은 감옥 대신 호르몬 처치를 조건으로 한 보호관찰을 받아들였다. 이를 선택이라 부른다면 두 길 모두 국가가 강요한 것이며 자유롭게 동의한 환자의 치료 결정이 아니었다는 점을 덧붙여야 한다.
흔히 화학적 거세라고 부르는 처치는 몸을 손상하고 자율권을 침해했다. 비밀 암호 업무에 참여할 자격은 잃었지만 맨체스터 연구는 이어 갔다. 그 뒤를 친구도 활동도 없는 죽음의 대기실로 쓰면 안 된다.
중국 독자는 역사 쓰기를 계속하려고 형벌을 견딘 사마천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시대와 처벌, 개인의 처지가 다르다. 연구가 튜링의 유일한 동기였다고 단정하거나 제도가 강요한 용기를 아름답게 찬양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형태 발생 연구는 유죄 판결 전부터 시작되었다. 1952년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고 뒤에도 계속했다. 반응과 확산에서 무늬가 어떻게 나오는가. 생물의 형태는 어떻게 자라는가. 처벌받은 뒤에야 찾은 위안이 아니었다.
그는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농담도 했다. 그것이 박해를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죽은 사람에게 확인되지 않은 심리 진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상처받은 사람은 피해 기록보다 크다.
9. 그 사과
1954년 6월 8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사망일은 7일로 기록된다. 마흔한 살이었다. 시안화물 중독이 확인되었으며 검시 조사에서는 자살로 판단했다. 어머니는 실험 중 사고였다고 믿었다. 검사하지 않은 사과로 행위의 과정을 확실하게 재연할 수는 없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공식 판단을 지우거나 박해를 용서하는 일이 아니다. 증거의 빈자리를 완벽한 비극 장면으로 메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마지막에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우리 이야기의 필요가 결정할 수 없다.
2009년 영국 정부가 사과했고 2013년 사후 왕실 사면이 이루어졌으며 2021년에는 초상이 담긴 50파운드 지폐가 나왔다. 공적 기억은 방향을 바꾸었지만 어느 일도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지 못했다.
바로잡음이 가장 유명한 사람에게만 주어져서도 안 된다. 암호를 풀지 않고 지폐에 얼굴이 실리지 않은 사람도 합의된 친밀한 관계 때문에 처벌받아서는 안 됐다.
이 연작의 상상 속 다리에서 튜링은 다른 이들 곁에 선다. 흄이 백개먼을 치우고 키르케고르가 돌아보며 쇼펜하우어의 개가 다가온다. 사람들 앞에서 독사과를 베어 물게 하지 않을 것이다. 확인된 역사도, 그를 이해하기 위해 치를 대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기호를 가득 적은 종이를 들고 있다고 해 보자. 아직 마치지 못한 말이 있고 누군가 자리를 내어 준다. 허구가 역사를 보상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다시 죽음만의 상징으로 만들지 않을 수는 있다.
뒤늦게 인정받은 국가의 공로자만도, 천재는 불행해야 한다는 우화도 아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나이 들어 갈 수 있어야 했던 한 사람이다.
사과에 시안화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가 없다는 것은 안다. 이 두 문장을 구별하는 일도 정직하게 기억하는 방법이다.
읽기 안내와 출처
보편성, 처치–튜링 논제, 정지 문제, 일차 논리의 타당성을 구분했다. 대각 논증은 현대적인 설명이지 1936년 원문의 재현이 아니다. 괴델과의 비교는 정리를 같게 보거나 수학에서 윤리를 도출하지 않는다.
암호 해독은 공동 작업이었다. 유죄 판결 당시 서른아홉 살이었고 형태 발생 연구는 그전에 시작됐다. 사인, 검시 판단, 검사하지 않은 사과는 서로 다른 증거 문제다. 다리는 상상이며 사망 과정의 재연이 아니다.
튜링: 계산 가능한 수, 기록 B/12 · 튜링: 「계산 기계와 지능」(1950) · 영국 국립 컴퓨팅 박물관: 봄브 · 앤드루 호지스: 1952–1954년의 튜링과 사료 · 애플 로고 디자이너 롭 자노프 인터뷰 · 영국 정부: 2013년 사후 사면 · 영란은행: 2021년 튜링 지폐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