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 108 ·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콩트, 균열을 시멘트로 메우다
달력은 사람에게 어떻게 자리를 정해 주는가. 실증철학에서 클로틸드까지, 유용한 질서가 모든 질문의 끝을 선언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묻는다.
1. 그 달력
1849년, 오귀스트 콩트는 달력 한 권을 출판했다. 1852년에는 이미 제4판이 나왔다.
일 년은 열세 달, 한 달은 네 주, 한 주는 이레다. 열셋에 스물여덟을 곱하면 364일이다. 남는 하루는 별도의 기념일로 두고, 윤년에는 하루를 더 둔다. 이 추가된 날들에는 요일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주간 순환 바깥에 놓는 것이다. 날과 주와 달에는 제자리가 생겼다. 사람의 기억도 그렇게 반듯하게 배열할 수 있을까?
달의 이름은 1월, 2월이 아니다. 모세,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이름이다. 성 바울도 들어 있다. 콩트가 종교적 인물을 모두 몰아낸 것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다. 초자연적 진리를 보증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배열하는 인류의 과거 속 인물로 자리 잡게 했다. 시인과 사상가, 과학자와 종교적 인물이 함께 시간의 칸으로 들어간다.
어떤 이름에는 한 달이, 어떤 이름에는 한 주가, 또 어떤 이름에는 하루가 주어진다. 한 사람이 표에서 차지하는 넓이는 표를 만드는 사람이 정한다.
이 달력은 주로 서양의 역사를 다뤘다. 콩트는 개별 인물을 기리는 방식을 과도적인 것으로 보았고, 세속 권력의 강제보다 점진적인 수용을 바랐다. 표를 만든 사람도 그 표에 잠정적인 자리를 남겨 두었다.
달력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백여덟 가지 삶을 배열하고 있다. 이름 하나를 넣을 때마다 수많은 이름이 밖에 남는다. 달력은 기억을 돕고, 연작은 만남을 청할 수 있다. 선택된 사람들을 인류가 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하지만 않으면 된다.
어려움은 더 먼 곳에 있다. 이 명단이 과도기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왜 세계를 아는 실증적 방식에 대해서는 최종 형태에 이르렀다고 여겼을까?
달력은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다.
인류가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정해 놓은 장도 다시 쓸 수 있을까?
초자연적인 권위가 없어도 사람들은 함께 사랑하고, 죽은 이를 애도하고,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류교를 세운다. 교리와 의식과 위계가 있고, 자신은 정신적 지도자의 자리에 선다. 지식이 정밀해져도 사라지지 않은 필요들이다. 그는 그것들에도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종이는 얇다. 그 뒤의 바람은 거대하다. 더는 아무것도 갈 곳 없이 남겨 두지 않겠다는 바람.
2. 무엇을 막으려 했는가
그가 자란 세계부터 보자. 태어나기 아홉 해 전에 혁명이 시작됐다. 옛 질서는 무너졌고 새 질서는 아직 발을 못 붙였다. 교회도 왕권도 예전의 권위를 잃었다. 이성이 약속한 세계는 오지 않았다. 사방이 틈이었다.
콩트는 1798년 몽펠리에에서 태어나 1814년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했다. 1817년부터 생시몽과 함께 일했고, 1824년에는 갈라섰다. 이미 1822년 그는 과학적 작업과 사회적·도덕적 삶의 재조직을 연결하고 있었다. 이 구상은 노년에 느닷없이 붙인 부록이 아니었다.
그는 바라던 교수직을 얻지 못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에서 보조교사와 입학시험관으로 일했지만 그 자리들도 잃었다. 친구와 후원자들의 도움이 집필을 이어 가게 했다. 지식에 안정된 자리를 마련하려던 사람의 일상은 거듭 발판을 잃었다.
1830년부터 1842년까지 『실증철학 강의』 여섯 권이 차례로 나왔다. 열두 해였다. 수학에서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으로 이어지는 책은 여러 지식의 관계를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지도로 만들려 했다.
그 그림에서 가장 유명한 길이 세 단계의 법칙이다.
콩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은 먼저 초자연적 행위자로 세계를 설명한다. 그다음에는 추상적 실체와 본질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마지막에는 현상 사이의 관계와 법칙을 연구한다. 이것은 사상의 발달에 관한 그의 학설이지, 모든 문화가 함께 승인한 연표가 아니다. 모든 학문이 같은 날 같은 단계에 들어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가 주로 내려놓으라고 한 것은 최초 원인, 목적 원인, 절대적 본질이었다. 과학이 던지는 모든 ‘왜’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 뇌우가 어떻게 생기는지 설명하는 일과 우주가 왜 반드시 이러해야 하는지 묻는 일은, 같은 의문사를 쓴다고 같은 작업이 되지 않는다.
이 절제에는 힘이 있다. 답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방법의 한계를 인정하는 편이, 완전하게 들리기만 하는 답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 정직하다.
그런데 콩트는 지금은 여기서부터 일할 수 있다고만 말하지 않았다.
실증적 상태를 이성적 발달의 최종 상태라고 불렀다. 동시에 우리의 지식은 인간의 구성, 처지, 역사에 언제나 상대적이며, 어떤 실재는 끝내 인식 범위 밖에 남을 수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문제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도를 고치는 일은 허용한다. 다만 지도를 만드는 가장 높은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고 여긴다.
균열은 남아 있었다. 묻고 싶은 것은, 어떤 종류의 균열이 미리 질문의 자격을 빼앗긴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3. 지식에 허용된 하나의 형식
『강의』 첫 강의부터 관찰에는 이론의 안내가 필요하고, 이론 역시 사실에 응답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연결하는 생각이 전혀 없다면 사실은 관찰로 조직될 수도 없다. 1844년의 『실증정신론』도 상상력을 추방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는 상상을 거부할 뿐, 자료가 모두 모이기 전에는 생각을 시작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의 과학은 창고가 아니다.
창고 밖에도 문턱은 남는다. 『실증정신론』 12절은 개별적이거나 일반적인 사실로 환원되지 않는 명제에 실제적이고 이해 가능한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이 문턱은 근거만 요구하지 않는다. 어떤 말이 들을 만한 자격을 갖는지도 결정한다.
긴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지식은 유한하고 상대적이다. 이론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말이 지식에 들어올 자격을 가지는지는 최종 배치를 마친 듯하다.
빈칸을 묻는 대신 왜 이 표만 써야 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될까. 그 질문도 설 곳이 있을까. 입을 열자마자 인류의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지는 않을까. 문을 잠시 닫는 것과 문틀을 덮어 버리고 여기에 문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플라톤의 벽, 아리스토텔레스의 바닥, 콩트의 시멘트. 벽은 답을 멀리 놓고, 바닥은 사물에 자리를 주며, 시멘트는 판자 둘이 맞지 않는 곳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 이 연작에서 읽기 위해 고른 세 그림이지, 세 사람의 생각 전부가 아니다.
콩트가 여섯 기초과학을 배열한 것은 사회학이 확대된 물리학이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미지의 자리가 채워졌다는 선언도 아니다. 복잡한 대상일수록 알맞은 방법을 요구한다. 『강의』는 모든 현상을 하나의 총괄 법칙에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기대에도 경고한다.
내성에 대한 비판 역시 특정 문제를 다룬다. 생각하는 지성이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는가? 그의 답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그에게 성찰 능력이 없었다고 판정할 수는 없다. 생각의 역사와 방법을 연구하는 일도 그의 작업이었다.
그러므로 시멘트는 사실도, 분류도, 이론도 아니다.
방법 하나가 빈말을 걷어 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질문의 집주인이 되면, 아직 할 말이 남은 사람을 불법 입주자로 만들 수도 있다.
시멘트는 ‘더 물을 필요 없다’가 굳어 버리는 순간이다.
4. 클로틸드
1826년 콩트는 심각한 건강상의 위기를 겪고 치료를 받았다. 1842년에는 1825년에 결혼한 카롤린 마생과 별거했다. 인류의 공동생활을 새로 짜려는 동안, 그의 일상도 달라지고 있었다.
1844년 그는 클로틸드 드 보를 만났다. 이후 더 가까워진 교류는 그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녀는 1846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성상이 되기 전에, 한 사람으로 나타나게 하자.
그녀는 글을 썼고 『뤼시』를 발표했다. 자신의 일과 삶을 원했다. 두 사람의 편지에서 그녀는 우정을 요청했고, 콩트의 연애와 공동생활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사랑받기’만이 그녀에게 허용된 행동은 아니었다.
콩트의 슬픔은 진짜다. 클로틸드의 거절도 진짜다. 사랑받았다고 같은 사랑을 돌려줘야 할 빚이 생기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방향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러다 한 사람은 편지를 쓸 수 없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관계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녀가 죽은 뒤 그가 이어 간 추모는 사상과 의례 속에 들어갔다. 『실증정치체계』 네 권은 1851~1854년에, 『실증주의 교리문답』은 1852년에 출판되었다. 인류교는 생각과 감정, 행동과 공동생활을 하나의 관계로 조직하려 했다.
애도는 이미 진행 중이던 계획 안으로 들어갔다. 콩트는 오래전부터 감정이 도덕과 사회생활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고민했다. 클로틸드의 죽음 이후 그 물음에는 더는 직접 물어볼 수 없는 한 사람이 함께 있게 되었다.
다른 관계에서는 밀이 점차 거리를 두었다. 1841년부터 1846년 말까지의 서신에는 여성의 역할, 경제적 지원, 사상의 방향을 둘러싼 이견이 남아 있다. 1865년 밀은 한 권의 책으로 콩트를 다시 읽었다. 가까움이 차이를 지우지 않았고, 차이도 상대를 더는 읽을 필요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는 자기 구조를 뜯지 않았다. 상실을 둘러싸고 기억할 자리를 세웠다. 달력, 기도, 의식. 방은 더 완성되어 간다. 없는 사람은 어떻게 들어올지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이론은 기념을 마련할 수 있다. 기념되는 사람의 말, 특히 동의하지 않았던 말도 남겨 둘 수 있을까. 과학을 옹호하던 사람이 왜 종교를 세웠느냐고 놀라는 것보다 어려운 질문이다.
시멘트를 부으면 물은 다른 곳으로 나온다. 여기서 물은 병이 철학에 내리는 판결이 아니다. 한 가지 배치로는 살아 있는 사람을 끝까지 설명할 수 없는, 바로 그 부분이다.
거절하기 위해 쓴 그 편지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
5. 패턴 인식의 천장
관찰하고, 분류하고, 모델을 만들고, 예측한다. 익숙한 일이다.
예측이 틀리면 모델로 돌아간다. 일기 예보도 실험도 일상의 많은 판단도 이 왕복에 기대고 있다. 쓸모가 크다.
하지만 패턴 인식은 인식의 천장이 아니다. 바닥이다.
‘예측할 수 있다’와 ‘무엇을, 왜 그것을 예측하는지 안다’ 사이에는 한 걸음이 있다. 모델 안의 답은 좋아져도 모델이 한 번도 묻지 않은 것은 그대로일 수 있다.
누가 복종할지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장치가 있다. 왜 복종만 얻으려 하는가. 정확도를 아무리 높여도 이 질문은 같은 자리에 남는다.
콩트 자신이 패턴만 맞추는 기계였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사고의 역사와 방법을 성찰했다. 묻고 싶은 것은 이쪽이다. 세 단계의 법칙 자체가 주어진 문제가 되었을 때,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지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방법은 세계를 만나도록 돕는다. 동시에, 이 조건으로만 만나라고 명령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
다음 글의 포퍼는 걸음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찬성하는 사실만 높이 쌓지 않는다. 추측을 내놓고 어디서 무너질지 찾는다. 세계에도 아니라고 할 기회를 준다. 관찰은 벽돌을 더할 뿐 아니라 하나를 빼낼 수도 있다.
추측이 먼저라고 해서 칸트가 말한 선험적 지식의 증명서를 얻는 것은 아니다. 이 시험에 앞서 걸음을 내디뎠지만, 세계의 동의를 받을 권리까지 얻은 것은 아니다.
운전대가 돌아왔다. 시험은 남는다.
그런데 시험이 다른 일 전부를 관리하게 되면 어떨까. 포퍼는 비과학을 무의미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은 책을 떠나 다른 손으로 옮겨지며 두꺼워질 수 있다.
포퍼가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그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 보자.
6. 그가 남긴 한 가지 요구
중요한 요구 하나는 남는다. 설명은 미지의 것에 새 이름만 붙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본질을 지목했다고 작동 방식을 설명한 것은 아니다. 체계를 그렸다고 해서 자신이 설명한다는 세계에 응답할 의무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콩트 혼자 이 요구를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 자신도 베이컨, 데카르트, 갈릴레오 등의 일을 잇는 자리에 자신을 놓았다. 근대 과학이 한 사람이 먼저 바닥을 비워 줄 때까지 설 자리를 얻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잇는 일도 일이다. 흩어진 학문을 연결하고, 전문 지식이 다른 지식을 잊지 않도록 하며, 관찰과 예견을 이어 주는 작업이 있다. 그의 최종 목적지를 묻는다고 이런 노력까지 지울 필요는 없다.
디랙의 방정식은 다른 각도를 보여 준다. 1933년 노벨 강연에서 그는 이론적 난점과 양전자에 관한 새로운 귀결로 이어지는 길을 돌아보았다. 답이 자료가 찬 서랍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은 아니다. 방정식이 아름답다고 현실이 복종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론은 검사를 기다리는 곳으로 나아갔고, 관련 예측이 버틸 수 있는지는 실험 앞에 놓였다.
매클린톡은 관찰 안에 있는 일을 보여 준다. 1983년 강연에서 그녀는 오랜 옥수수 실험을 통해 처음 질문이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알아차렸고, 이어지는 실험으로 그것을 따라간 과정을 회고했다. 이상한 것을 봤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추적할 가치가 있다고 알아보면 일의 짜임을 바꿔야 한다.
켈러는 전기에 『생명체에 대한 느낌』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제목 안에는 긴 시간이 있다. 심고, 비교하고, 기다리다 보면 다른 눈에는 배경으로만 보이던 곳에서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폴라니의 암묵지 논의는 명시된 규칙이 다 담지 못하는 실제 판단을 드러낸다. 할 줄 안다는 것은 누구나 항목을 따라 체크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목록으로 언제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의적인 느낌에 통행증을 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이 어떻게 찾아왔는지와 그것을 받아들일 근거가 무엇인지는 연결되지만 서로 대체할 수 없다. 솜씨는 설명서를 넘어설 수 있다. 그래도 실험은 이번 시도가 틀렸다고 보여 줄 수 있다.
굴원은 이 연작이 앞으로 펼칠 다른 길에 있다. 시는 지표로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을 들리게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물리 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시와 실험실이 같은 시험지를 놓고 경쟁하는 척할 필요가 없다.
균열을 남기기 위해 바닥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 위에 서 있는지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7. 세 가지 닫힘
이 악장에서 콩트의 자리가 드러난다.
플라톤의 벽. 답이 이미 위에서 완성된 듯하다. 위에서 닫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바닥. 분류가 촘촘해질수록 자리를 사물 자체로 착각한다. 아래에서 닫는다.
콩트의 시멘트. 모든 사실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앎의 방향을 인류가 성숙해 도착할 곳으로 정한다. 사이를 닫는다. 답하지 않은 질문 일부가 미리 불필요해진다.
벽, 바닥, 시멘트. 세 그림이지 세 사람의 삶 전부는 아니다. 어디서 다음 걸음을 뗄지 보려는 그림이다.
이 악장의 열여덟 사람은 닫힌 곳을 다시 연다. 포퍼는 추측을 반박의 위험 앞에 놓는다. 디랙은 수학적 구조가 묻는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듣는다. 굴원은 아름다움이 말하게 한다. 피히테는 아는 사람을 질문 안으로 돌려놓는다. 매클린톡은 오랜 일로 자란 감각을, 베유는 주의를 가져온다. 나가르주나는 단단해 보이는 받침을 되묻는다.
폴라니에 이르면 실마리가 모인다.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것은 지식의 찌꺼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처음부터 딛고 있던 땅일 수도 있다.
무엇이 지식으로 인정받는가에서, 아는 일은 무엇에 기대어 일어나는가로. 이 악장이 그리는 곡선이다.
길이 이어지려면 모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일치도 길의 일부다.
콩트는 인류가 다시 길을 잃지 않을 지도를 주고 싶다. 뒤에 오는 사람들은 묻는다. 지도에 그려지지 않은 곳에는 이제 가면 안 되는가.
8. 다리 어귀
이제 콩트를 우리가 상상한 다리로 맞아들이자.
발걸음이 무겁다. 이름으로 가득한 달력을 들었다. 다른 이들이 다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보는 동안 그는 먼저 모두에게 자리가 있는지 살핀다.
난간에 달력을 펼친다. 갈릴레오, 있다. 뉴턴, 있다. 셰익스피어도 있다. 칸 안이 아니라 다리 아래의 물로. 콩트는 물소리를 듣고 다시 이름을 본다.
달력은 그의 지도다. 지도 위의 물소리는 저렇게 넓지 않다.
멀리 칸트가 서 있다. 둘 다 지식의 경계를 안다. 하지만 칸트는 아직 경계가 어떻게 경계가 되는지 묻는 듯하다. 콩트는 고개를 숙여 눈앞을 정리한다. 가까워 보이는 거리가 걸어 보면 길 하나만큼 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달력을 들여다보고 웃는다. 분류라면 오래 해 왔다. 하지만 분류로 누군가를 찾고 나서도 그 사람은 계속 걷는다.
아직 콩트는 다리 아래를 보지 않는다.
밤이 깊어지자 작은 초상화를 꺼낸다. 클로틸드 드 보. 오래 바라본다. 그녀가 쓴 거절도 둘 사이에 남아 있다. 초상화는 대신 그 말을 거두지 않았다.
초상화를 넣고 달력을 편다. 바람이 한 장을 들어 올려 난간의 틈이 보인다. 그는 종이를 다시 눌러 내린다.
아주 세게 누른다.
읽기 안내와 출처
생애와 클로틸드 서신 발췌는 콩트 기념관 자료를 따른다. 달력은 1849년 본문과 1852년 제4판 서지를 참고했다. 1842년은 마생과 별거한 해이지 이혼한 해가 아니다. 밀과 주고받은 1841~1846년 서신과 1865년 저서는 서로 다른 시기다. 건강과 사생활로 철학의 참과 거짓을 판정하지 않는다.
『강의』 첫 강의는 이론과 관찰의 상호 의존을 인정한다. 『실증정신론』 12~18절에는 의미의 제한과 지식의 상대성이 함께 나온다. 콩트를 후대 논리실증주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벽·바닥·시멘트는 필자의 비교적 비유다. 특정 시험보다 먼저라는 것이 칸트적 선험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8절의 만남과 주머니 속 초상화는 문학적 우화다. 셰익스피어는 연작의 다리 아래 물소리로 이어진다. 과학·시·암묵지의 병치는 입증된 영향 관계가 아니다. 패턴 맞추기는 여기서 정한 절차를 가리킬 뿐 콩트나 모든 AI의 능력 진단이 아니다.
HathiTrust 서지 · 1849년 서문과 달력의 문자 전사 · 기관의 Mill 항목 · Bourdeau 전기 · 콩트 첫 강의 · 실증정신론 · 밀의 1865년 책 · SAE 인식론 I, Must-Cognize · IV, Must-Be-Questioned · Science: Conjectures and Refutations · Theory of Electrons and Positrons · The Significance of Responses of the Genome to Challenge · 출판사 서지 · The Logic of Tacit Inference · 원고 · 연작 목차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