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 영화 읽기 · 2 / 3
가오나시는 두 손 가득 금을 쥐고도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이 글의 목차
다리 위로 비가 내린다.
흰 가면을 쓴 검은 그림자가 서 있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도록 그렇게 서 있었다.
여자아이가 지나가다 그가 비를 맞고 있는 것을 보고, 문을 살짝 밀어 열며 말한다. 안으로 들어와.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그러고는 가 버린다.
누군가 가치를 따지지 않고 가오나시를 받아 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 뒤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 순간에서 자라난다.
1. 그 문에서 시작된 이야기
처음의 가오나시는 무엇이었을까?
얼굴도 없고, 이름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한다. 나중에 하는 말은 한마디 한마디 모두 자기가 삼킨 이들의 목소리를 빌린 것이다. 정해진 형체도 없다. 감정이 일면 검은 그림자가 덩어리져 부풀어 오른다.
속이 빈 존재다.
치히로는 그에게 문을 열어 주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상대였고, 자기에게 도움이 될 일도 없었으며, 유심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누군가 비를 맞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가오나시에게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는 이 목욕탕 주변을 오랫동안 떠돌았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스쳐 지나갔다. 괴롭힌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대했다. 모두가 가치를 계산하는 곳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빈 존재에게는 미움받을 자격조차 없다.
치히로는 그를 위해 문을 열었다. 가오나시는 그것을 기억했다.
2. 처음 배운 것은 무언가를 내주고 바꾸는 일이었다
목욕탕에 들어온 가오나시는 먼저 치히로가 책임자에게 약탕용 나무 패를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는 모습을 본다. 가오나시는 필요한 나무 패 하나를 구해 준다. 나중에 다시 한 움큼 가져다주자, 치히로는 이미 충분하다며 사양한다.
그가 처음으로 치히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려 한 순간이다. 이미 교환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적어도 건넨 물건만큼은 그때 치히로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
나중에 그는 금을 만들어 개구리 직원을 유인한 뒤, 그를 삼키고 목소리를 빌린다. 이곳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른 무언가를 내주고 바꾼다. 목욕탕 전체가 금 앞에 고개를 숙이고, 금을 위해 밤새 돌아간다.
그가 배우는 것은 이곳의 언어다. 치히로에게 잘해 주고 싶지만, 마음을 표현할 방법은 이것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처음 치히로가 문을 열어 주었을 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는 더 많이 준다. 금을 무더기로 만들어 사방에 뿌리면, 모두가 달려들어 차지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를 떠받들고, 허리를 굽히고, 귀하신 손님이라 부른다. 그는 세 사람을 삼키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점점 커지면서 더욱 탐욕스러워진다.
손안의 것은 자꾸 늘어나는데, 정작 원하는 단 하나는 끝내 얻지 못한다.
3. 목욕탕 사람들은 그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가오나시는 저절로 부풀어 오른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먹여 키운 것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금을 뿌리기 시작하자, 전에는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던 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든다. 가장 좋은 음식을 올리고, 가장 큰 욕탕을 내주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더 주문해 달라고 빈다.
처음으로 누군가 그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한 것은 가오나시가 아니라 그 손에 든 금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그는 금세 법칙을 알아낸다. 계속 내주기만 하면, 사람들도 계속 곁에 몰려든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어진다. 갈수록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요구한다. “너무 외로워” 하고 외치면서 사람을 삼킨다.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이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거대하게 부푼 괴물이 아니다. 그를 저렇게 만든 사람들이 바로 그에게 잡아먹힌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먹힌 것은 개구리 직원이다. 금을 차지하려고 달려들었을 때 가오나시가 그를 삼켰다. 나중에 토해져 나왔을 때도 모습은 그대로다. 구조를 놓고 보면, 영화는 가오나시를 금고로만 대하던 이들을 먼저 그에게 삼켜지게 한다. 가오나시는 그들의 목소리와 욕망까지 한꺼번에 자기 안에 집어넣는다.
여기서 한 가지 세부를 보자. 가오나시는 가장 큰 금 무더기를 두 손으로 치히로에게 내민다. 전부 너에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치히로는 필요 없다고, 자기가 원하는 것은 그가 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무너진다.
자기가 배운 언어에는 “필요 없어”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한다.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자기를 위해 문을 열어 준 그 아이 말고는.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아이다.
4. 금은 가짜였다
날이 밝자 금은 진흙 덩어리로 변한다.
지난밤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금을 받들던 사람들은 바닥에 가득한 진흙을 보며 말문이 막힌다.
이 대목에서 미야자키가 택한 방법은 단호하다. 금을 더럽거나 유독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저 본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그 금은 처음부터 금이 아니었다. 가오나시가 자기 몸에서 만들어 낸 것, 속이 빈 존재가 관심을 얻으려고 생산한 것이었다. 출처도 없고 가치도 없다. 금처럼 보일 뿐이다.
목욕탕 전체가 바로 그것 때문에 밤새 미쳐 돌아갔다.
그날 밤 정말로 드러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무언가가 이 사람들을 얼마나 쉽게 움직일 수 있는가였다. 금이 어디서 났는지, 이 손님이 누구인지, 왜 계속 먹기만 하는지 묻지 않는다. 손에 넣을 것이 있다는 사실만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내밀지 않은 사람은 치히로뿐이다. 고결해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함께 집에 가고 싶다. 금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다른 것으로 사들이기 어렵다.
5. 삼킨 경단과 토해 낸 것들
치히로는 강의 신이 준 쓴 경단을 가오나시에게 먹인다.
그가 토하기 시작한다. 음식도, 금도, 삼켰던 세 사람도 토해 낸다. 치히로를 뒤쫓아 나가면서 줄곧 토하고, 토할수록 작아진다. 마침내 흰 가면을 쓴 가느다란 검은 그림자로 돌아온다.
토해 낸 것은 이곳에서 배운 모든 것이었다.
그런 다음 치히로는 그를 데리고 기차에 오른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고요한 십 분이다. 바다 위에 철길이 놓여 있고, 수면에는 빛이 비친다. 객차 안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가오나시는 치히로 옆에 얌전히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이제 금을 만들어 내지도, 사람을 삼키지도 않는다. 그저 앉아 있다.
제니바의 집에 도착하자 제니바는 그를 머물게 한다. 그는 실 잣는 법과 무언가를 짜는 법을 배워, 등불 아래 조용히 앉아 일한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그는 털실을 손에 쥐고 제니바를 돕고 있다.
이것이 영화가 그에게 준 결말이다. 강해지거나 무언가를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곳에서 구체적인 일을 하나 하는 것.
이곳에도 노동은 있다. 다른 점은, 노동만으로 그가 머물러도 되는 이유를 전부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6. 누군가 이미 한 번 주었던 것
이제 그 다리로 돌아갈 수 있다.
가오나시의 비극은 여기에 모두 담겨 있다. 그가 그토록 원한 것을, 아직 아무것도 없던 때에 누군가 이미 한 번 주었다.
치히로가 문을 열어 주었을 때 그에게는 금도, 이름도, 힘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치히로는 열어 주었다.
그 뒤로 그는 밤을 꼬박 들여, 금으로, 폭력으로, 부풀린 몸으로 이미 받았던 그것을 사려 했다. 바꾸어 얻으려 할수록 더 멀어졌다.
그것은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으로 살 수도, 몸을 키워 얻을 수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다고 가질 수도 없다.
문 앞에서 치히로가 한 말은 사실 아주 평범하다. 안으로 들어와.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려는지, 자기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비를 맞고 있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누군가 가오나시를 이렇게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중에 제니바는 그런 환대가 계속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 처음 그 일이 일어난 때는 그에게 아무것도 없던 때였다. 바로 그 사실이, 이것은 그가 무언가를 가졌느냐와는 상관없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가 이후에 한 모든 행동은 자기도 그럴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증명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이 글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과 연출을 맡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2001년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