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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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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영화 읽기 · 1 / 3

이유가 있다고 결백한 것은 아니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공개: 2026년 11월 8일

이 글의 목차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한국어판

위조한 서류 한 장

기우는 박 사장 집의 과외 선생 면접을 보러 가려 한다. 하지만 대학 졸업장이 없다. 동생 기정이 컴퓨터로 연세대학교 재학증명서를 만들어 준다. 진짜와 아주 흡사하다. 압인까지 찍고 스캔하니 흠잡을 데가 없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가 조금 불안한 듯 그래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기우는 그 종이를 들고 말한다. 내년에는 꼭 연세대에 들어갈 테니, 이건 조금 일찍 받아 두는 것뿐이라고. 말투는 차분하다. 궁색하게 둘러대는 말도 아니다.

흔히 이 대목을 웃음거리로 보거나, 뻔뻔함을 입증하는 장면으로 읽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것이 있다. 기우는 자기 행동이 말이 되는 자리를 찾아냈고, 스스로도 그 설명을 믿는다. 말을 마친 뒤 종이를 가방에 넣는다.

그의 칸 안에서 보면 사정은 이렇다. 대학 입시에 네 번 도전했고, 매번 조금씩 모자랐다. 그 학생을 잘 가르칠 능력은 있다. 없는 것은 종이 한 장뿐이며, 그 종이는 어차피 언젠가 손에 들어올 것이다. 이 셈법에서 위조란 거짓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앞당기는 일이다.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인물에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준다. 어떤 행동이든 그것을 한 사람의 칸 안에서 보면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고 결백한 것은 아니다. 어떤 선택은 충분히 이해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분명한 해를 끼칠 수 있다. ‘나쁜 사람’이라는 이름 하나로 판단을 끝내지 못하게 하는 데 이 영화의 힘이 있다.

기정의 수법

동생 기정이 박 사장 집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더 대담하다. 신분을 꾸며 내고 미술치료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전문용어와 방법론을 막힘없이 늘어놓다가, 그 자리에서 전문가답게 들리는 용어까지 만들어 박 사모님을 설득한다.

여기서 한 가지를 보아야 한다. 기정의 설명은 가짜지만, 실제로 해내는 일은 진짜다. 박 사모님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막내 다송이다. 그림은 제멋대로이고 가만히 앉아 있지도 못한다. 앞서 다녀간 선생들도 아이를 다루지 못했다. 그런데 기정이 맡은 뒤로 아이는 실제로 차분해진다.

기정은 아이를 다루는 요령을 정확히 안다. 달래지도, 응석을 받아 주지도 않는다. 첫 수업부터 자기 방식대로 수업의 흐름을 단단히 잡자 아이는 오히려 그를 따른다. 사기술만으로 흉내 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기정에게 원래 있던 재주다.

그에게 없는 것은 그 재주를 증명해 줄 종이 한 장뿐이다. 영화는 기정이 어디서 그런 능력을 익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불우하게 살았다는 이력도 붙여 주지 않는다. 다만 능력은 분명히 있는데, 가공의 신분을 빌려야만 남들이 믿어 준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래서 기정은 자신을 증명해 줄 종이를 한 장 만들어 낸다.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그 칸 안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긋남을 해결하는 행동이다. 재주는 있는데 증빙이 없고, 이 시장은 증빙만 알아본다.

그들이 쫓아낸 두 사람

이 가족이 저지른 가장 추한 일 두 가지는 원래 있던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를 내쫓은 것이다. 이 두 일을 충분히 짚지 않으면 이 글은 그들을 두둔하는 글이 되고 만다.

운전기사를 쫓아내는 데 쓴 것은 팬티 한 장이다. 기정이 차 뒷좌석에 그것을 남겨 놓는다.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다. 박 사모님이 알아서 결론에 이른다.

가사도우미를 쫓아내는 데는 복숭아를 쓴다. 문광에게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털을 몸에 뿌려 기침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박 사모님이 폐결핵을 의심하도록 한 단계씩 몰아간다. 마침내 집주인의 입에서 해고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두 수법 모두 비열하다. 설계는 치밀하고, 단계마다 다음 단계가 맞물리며, 실행에도 흔들림이 없다. 일을 마친 뒤 누구 하나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날 밤 축하 자리에서는 평소처럼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동기는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네 사람에게 일자리가 필요하고, 그중 두 자리를 이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살아 있는 두 사람을 치워 버려도 되는 장애물로 의도적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해서 가한 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가족이 쫓아낸 사람들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택은 그 운전기사가 새 일자리를 구했을지 물은 적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젊으니 분명 더 좋은 일을 구했을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그러자 기정이 먼저 우리부터 걱정하라며 화제를 돌린다. 그들은 더 묻지 않고, 자신들이 어떤 손해를 입혔는지도 확인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행방은 잠깐 그들의 칸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밖으로 밀려난다. 잠시 생각했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찍고 있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실명이다. 눈앞의 문제를 풀고 나면, 문제 밖에 있던 사람에 대해서는 더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박 사장

박 사장을 제대로 보려면 관객이 극장에 들고 온 기대부터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에는 응당 혐오스러운 부자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기대다.

박 사장은 면전에서 욕을 하거나 월급을 제때 주지 않는 식으로 악인임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권력은 그보다 훨씬 일상적이다. 상대가 어떻게 사는지 알 필요 없이, 자신과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정할 수 있다.

기택에게 말도 정중하게 한다. 칭찬한 적도 있다. 이 기사는 분수를 잘 알고, 절대 선을 넘지 않는다고. 그의 입에서 그 말은 진심 어린 칭찬이지, 은근한 경고가 아니다.

가족에게는 다정한 면이 있다. 막내 생일을 위해 따로 파티를 열고, ‘인디언’ 놀이에도 기꺼이 어울린다. 영화는 사생활의 추문을 들춰 그에게 문제가 있음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점잖은 고용주’도 유지할 수 있는 불균형을 보라고 한다.

그가 내뱉는 유일하게 모진 말은 당사자 몰래 하는 말이다. 자기 집 소파에 앉아 아내에게 운전기사 몸에서 어떤 냄새가 난다고, 그 냄새는 선을 넘는다고 말한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 가족이 거실 탁자 밑에 엎드려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이것은 영화에서 가장 치명적인 장면이다. 장면의 모양은 이렇다. 가장 모진 말은 집 안에 자기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나온다. 박 사장의 칸 안에서는 그때 집에 다른 사람이 없다. 그러니 그에게는 모욕이 아니라 부부끼리 나누는 사적인 이야기다.

이 점은 다음 글에서 더 살펴보겠다. 여기서는 한 가지만 기억해 두자. 그는 누구도 면전에서 모욕한 적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박 사모님과 기택의 그 말

박 사모님은 이 집에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다. 남을 쉽게 믿고, 까다롭지 않고, 씀씀이도 크다. 아이들 일에는 지나치게 불안해하며, 누구를 고용하든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으려 한다. 이 가족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속으면서도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박 사모님에 대한 영화의 평가는 기택 가족의 입에서 나온다. 네 사람이 주인집 거실에서 술을 마시던 날, 충숙은 사모님이 착하다고 했다가 곧 고쳐 말한다. 부자인데도 착한 게 아니라, 부자라서 착한 거라고. 기택도 한마디 보탠다. 나도 돈이 그만큼 있으면 착하게 살겠다고.

영화 전체에서 박 사장 가족에 대해 내리는 가장 무거운 평가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고, 웃으면서 말한다. 고발하는 말투가 아니다. 그 말에는 증오가 없다. 서늘한 사실 하나를 짚을 뿐이다. 그 집에서 착함은 값싼 물건이다. 누구든 그 안에 살면 사들일 수 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몇 시간 뒤 바로 그 집에서 다른 가난한 두 사람과 몸싸움을 벌인다. 영화는 두 장면을 아주 가까이 붙여 놓는다. 그 사이에 놓인 것은 비 한 차례뿐이다.

이 대목의 핵심은 풍자에 있지 않다. 박 사모님은 위선적인 사람이 아니다. 세상이 대체로 좋은 곳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 판단이 뒤집힌 적도 드물다. 그의 선의는 진짜다. 선의가 미치지 못하는 삶을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또한 진짜다.

지하실의 두 사람

문광은 이 집의 전 가사도우미다. 박 사장 가족이 들어오기 전, 이전 집주인 때부터 이곳에서 일했다. 해고된 뒤 비 오는 밤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지하실에 두고 간 물건이 있다는 것이다.

그 지하실에는 남편 근세가 산다. 빚쟁이를 피해 몇 년째 집 아래 숨어 지내며 아내가 날마다 날라다 주는 밥으로 연명한다. 두 집주인을 거치며 몇 년씩 이어진 일이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았다.

이 일이 가진 무게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돌봄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밥을 뜨고, 물을 나르고, 주변을 치운다. 몇 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매일 고용주의 눈을 피해야 한다.

그 뒤 문광이 하는 행동은 하나같이 추하다. 울고, 무릎 꿇고, 동영상으로 협박한다. 궁지에 몰리자 못 할 일이 없고, 내뱉는 말은 갈수록 사나워진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려는 대상은 구체적인 한 사람이다.

근세 쪽은 더 기묘하다. 지하실에서 살면서 매일 위층으로 통하는 쪽을 향해 절하며 박 사장에게 감사한다. 먹을 것을 주고 살 곳을 마련해 준 사람이 사장님이라는 것이다. 정작 박 사장은 자기 집 아래 사람이 산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나쁜 사람 하나를 찾아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이 영화를 읽는 가장 흔한 방식은 둘이다. 하나는 부자가 위선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한 사람이 교활하다는 것이다. 반대 방향을 보는 듯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같다. 한 부류를 골라 모든 책임을 그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나머지 구조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첫 번째 독법부터 보자. 박 사장 가족의 예의나 가족 간의 애정이 꼭 가식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예의가 진심이라고 관계까지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고용인을 면전에서 모욕하지 않으면서도, 그가 어떻게 사는지 한 번도 자기 시야에 들일 필요 없이 살아갈 수 있다.

냄새에 관한 말은 거짓 예의라는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이 아니다. 자기 집에서 아내와 나누는 사적인 말이다. 일부러 얼굴을 마주하고 모욕하려던 말이 아니기에, 오히려 이미 몸 안에 자리 잡은 서열의 경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번째 독법도 보자. 가난한 사람들이 교활하다고만 하면, 실직한 네 사람이 반지하에서 피자 상자를 접고 있는 형편을 지워 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그 형편을 보았다는 이유로 위조와 모함, 남의 실직을 대신 결정한 행위를 아무도 해치지 않는 자구책으로 써 줄 수는 없다.

두 독법 모두 몇몇 장면을 근거로 내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영화 전체를 감당하지 못한다. 영화가 말하는 것은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두가 자기 처지 안에서 필요한 것만 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살길이 너무도 쉽게, 그 사람의 화면 밖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손실이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책임과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기택 가족은 자신들이 쓴 수법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박 사장 가족은 타인을 몰라도 되는 유리한 자리에 산다. 그리고 각자의 책임을 빠짐없이 따져 놓아도, 부족한 자리들과 층층이 아래로 이어지는 공간은 계속 갈등을 만들어 낼 것이다.

거실 탁자 아래

비 때문에 캠핑을 일찍 접은 주인 가족이 느닷없이 돌아온다. 네 사람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던 중이다. 차 소리가 들리자 허둥지둥 거실 탁자 밑으로 숨는다.

바로 위 소파에서는 박 사장 부부가 이야기를 나눈다. 운전기사 몸에서 나는 냄새가 화제에 오른다. 세 사람은 바닥에 엎드린 채 듣고 있다. 기택의 얼굴은 바닥을 향하고, 아무런 표정도 없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자기 집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며, 이야기의 당사자가 발치에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바닥의 네 사람은 앞서 저지른 속임수 때문에 그곳에 몸을 숨긴 채, 기어서 빠져나갈 틈만 기다린다.

여섯 사람의 행동에는 저마다 그 자리에서 성립하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전체 장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빗줄기는 갈수록 굵어진다. 소파의 두 사람이 잠들자 네 사람은 탁자 밑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붙어 거실을 기어간다. 하나씩 문밖으로 빠져나가는 동안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밖에서는 벌써 비가 도시의 절반을 채웠다. 그들은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한참을 걷고, 길은 갈수록 좁아진다. 마침내 그 길은 물속으로 이어진다.

이 글은 2019년 극장 개봉 컬러판을 기준으로 한다. 상영 시간은 약 132분이며, 별도로 나온 흑백판은 다루지 않는다. 기정의 중국어 표기에는 ‘基婷’과 ‘基静’이 있는데, 중국어 원문은 ‘基婷’으로 통일했다. 한국어판에서는 본래 이름인 ‘기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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