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읽기 · 24
어부는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왜 소원은 매번 그의 입을 거칠까
처음 집을 청하러 나설 때와 맞은 뒤 폭풍 속으로 나갈 때,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의 처지는 이미 달라져 있다.
바다에 갈 때마다 어부는 같은 물고기를 부른다.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하면서 거리를 한 겹 둔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작은 집과 궁전과 왕위가 하나씩 그의 입을 지나 바다에 들어간다. 그는 소원 밖에 선 채 집에서 시킨 말을 옮기기만 하는 듯하다.
처음에는 정말 아무 보답도 청하지 않았다. 잡힌 가자미가 마법에 걸린 왕자라며 놓아 달라고 하자, 무엇을 받을지 흥정하지 않고 물로 돌려보냈다. 자기 뜻으로 한 행동이다. 아내의 명령도 필요 없었고 뒤에 보상을 받아야 비로소 값있는 일도 아니었다. 초라하고 더러운 거처에 돌아간 뒤에야 아내에게 이 기이한 일을 말한다.
아내는 마법의 물고기를 구했는데 왜 아무 소원도 말하지 않았느냐고 한다. 이런 데서 오래 살았으니 적어도 제대로 된 작은 집은 청했어야 한다고. 어부는 다시 가기 싫다. 물고기가 들어줄지도 알 수 없고 귀찮게 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래도 더 다투기 싫어 결국 나선다. 해변에 가니 맑던 물이 변색되어 있다. 그는 여전히 아내가 시킨 대로 청한다.
첫 집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깨끗하고 지낼 방과 뒤의 작은 정원이 있다. 아내가 보여 주자 어부도 좋아하며 이제 만족하고 살자고 한다. 마지막 벌을 아는 우리는 여기부터 잘못된 길이었다고 되짚기 쉽다. 가난한 이가 처음 주거를 낫게 하려 한 것이 벌써 잘못이었던 것처럼. 그러나 이때 생활은 실제로 좋아졌다. 어부도 자기에게 전혀 필요 없는 부를 남에게 실어 나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차이는 다음부터 생긴다. 아내는 얼마 뒤 집이 작다며 돌 궁전을 요구한다. 어부는 지금도 좋고 물고기가 싫증 낼 수 있다고 반대한다. 무섭고 말하기도 싫지만 또 바다에 간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물음에 궁전이라고 답한다. 돌아오면 집이 서 있고 정원과 하인과 가구도 훨씬 훌륭하다. 다시 감탄하면서 이번에는 더 청하지 말자고 한다.
그의 반대는 계속 있지만 소원이 가자미에게 가는 길은 달라지지 않는다. 더 요구하는 데 정말 동의하지 않는 것이며 뒤에서 모든 일을 짜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싫다는 말 뒤에 발은 바다로 향하고 요구는 그의 입으로 나온다. 속마음의 반대만 적으면 행동이 이룬 일을 놓친다. 끝내 실행했다는 사실만 보면 아내의 방향을 전부 받아들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사라진다.
집을 달라던 소원은 왕위로 넘어간다. 아내가 왕이 되고 싶다고 하자 어부는 자기는 싫다고 한다. 그럼 내가 하겠다고 답한다. 돌아오니 왕관을 쓴 아내가 왕좌에 앉고 시종과 위엄이 둘러싼다. 이제 됐겠지 싶지만 다음에는 황제가 되겠다고 한다. 물건이 늘어나는 것만이 변화의 전부는 아니다. 집에서 요구하던 사람이 반대하는 이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뀐다.
말투도 달라진다. 앞에서는 집의 크기를 두고 다툴 수 있었다. 이제는 자기가 왕이니 남편은 따르고 뜻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마법은 같은 가족을 더 큰 집으로 옮기기만 하지 않았다. 말할 때 누가 위에 있는지도 바꾸었다. 똑같은 ‘가서 물고기에게 물어봐’에 점점 아내의 요구와 군주의 명령이 함께 들어간다.
그러니 매번 나간 것을 같은 나약함으로 쓸 수는 없다. 단호했더라면 언제든 무사히 그만둘 수 있었다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처음에는 다투기 싫은 마음, 실제 개선을 누린 일, 자기가 만족했으니 다음 요구도 멈추리라는 착각이 있었다. 뒤에는 두려움과 강제가 점점 늘어난다. 같은 동작이 반복되어도 행동하는 사람의 선택 폭이 매번 같은 것은 아니다.
바다도 배경에 머물지 않는다. 색이 어두워지고 파도가 솟고 바람이 부르는 소리를 덮는다. 마지막에는 배들이 파도 속에서 구조를 외치고 집과 나무도 폭풍을 맞는다. 누구의 손해가 얼마인지, 누가 의식적으로 재앙을 움직이는지 이야기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궁전의 만족과 바깥의 불안을 거듭 나란히 둔다. 집에서 새 요구 한마디로 들린 소원이 세계에 도착하면 청한 사람의 방만 바꾸지는 않는다.
어부도 그것을 보기에 더 가기 싫다. 위험을 전혀 판단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위험할 때마다 무서워하면서도 소원을 전하는 방식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로 마음의 거리를 남기고, 발과 목소리로는 다시 요청한다. 앞의 몇 번에서는 그 거리가 아무것도 안 했다는 뜻일 수 없다. 뒤에 강요로 하는 행동에서는 아직 완전히 내주지 않은 판단이기도 하다.
두 면을 따로 남겨야 한다. 실행했으니 아내와 책임이 같다고 하면 명령과 공포와 커지는 권력의 차이가 지워진다. 동의하지 않았으니 일어난 모든 일과 무관하다고 하면, 전에는 다툴 수도 있었을 때 양보한 일과 누린 성과와 실제의 요청들이 사라진다. 아내와 죄를 반씩 나눌 사람을 찾는 데 이 이야기의 재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내 뜻이 아니다’라는 말이 단계마다 무엇을 지켰는지 보는 데 있다.
가자미도 처음에 무한히 갚겠다는 계약을 하지 않았다. 놓아줄 때 아무 조건도 의논하지 않았는데 뒤에는 번번이 들어준다. 아내는 구해 준 사실을 계속 요구할 근거로 만들고, 물고기는 그 길이 계속 통하게 한다. 처음부터 분명했던 계약을 이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새 소원마다 관계가 커지는데 도움과 보답의 끝이 어디인지 다시 말하는 사람은 없다.
왜 마지막에 거두기 전까지 물고기는 계속 들어줄까. 동화에는 완성된 교육 계획이 없다. 첫날부터 욕망의 끝을 맛보게 할 작정이었는지, 왜 일찍 거절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침묵을 모든 것을 아는 이의 치밀한 수업으로 채우면 폭풍과 공포까지 이미 정당했던 교재가 된다. 동화의 마법을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마법이 말하지 않은 이유를 전부 마련해 줄 필요는 없다.
왕과 황제가 된 뒤 아내는 교황이 되겠다고 한다. 세속과 종교의 높은 자리를 얻고도 편히 잠들지 못한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아직 따르지 않는 것이 있음을 발견한다. 해와 달은 자기 신분 때문에 바뀌지 않는다. 이제 소원은 더 좋은 집이나 더 많은 존경이 아니라 신처럼 세상이 도는 것을 정하는 데 이른다.
이번에는 어부가 무릎을 꿇고 그만하라고 빈다. 예전의 작은 집을 한참 넘어섰다는 것도, 나쁜 끝이 올지 모른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아내는 화를 내며 발로 차고 때려 당장 바다로 가게 한다. 책임을 이야기할 때 이 행동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먼저 발길질과 매질을 빼놓고 거절할 수도 있었잖으냐고 한다면, 행동을 보자는 말로 행동이 일어난 처지를 다시 못 보게 할 것이다.
폭풍 속에서 거의 서 있지도 못하면서 익숙한 부름을 외친다. 여전히 아내의 소원이지 자기의 소원이 아니라고 한다. 이때 그 말은 책임을 피하는 수사만은 아니다. 눌린 사람이 명령을 실행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구별이다. 요구를 입에 올릴 수 있다고 그 요구가 그가 살고 싶은 삶이 된 것은 아니다. 목소리가 요구를 전하는 데 쓰였어도 마음이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가자미는 그저 집에 가라고 한다. 돌아오면 아내는 처음의 초라한 거처에 앉아 있고 변화가 모두 사라졌다. 둘이 앉아 의논하지도, 사과나 뉘우침이나 안정된 새 생활 방식을 보이지도 않는다. 결말에서 재물은 모두 사라진다. 반복해서 요구하고 실행하게 만든 관계까지 새로 정리되었다고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마지막의 원점 회귀 때문에 첫 집의 가치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 깨끗한 침상, 요리할 방, 비 새지 않는 지붕은 나중에 해와 달을 다스리고 싶다는 소원의 축소판이 아니다. 소원 사이에도 경계가 있다. 어떤 개선은 얻으려 할 만하다고 알아볼 수 있기에, 그 뒤 모든 요구를 같은 필요로 볼 이유도 없다. 만족해야 한다는 말로 힘든 이에게 계속 원래 자리에서 살라고 할 이유도 없다.
어부는 한번 자기 뜻으로 물고기를 놓아주었고 나아진 집에서도 진심으로 기뻤다. 처음부터 끝까지 겁만 먹은 사람은 아니다. 뒤에는 ‘원하지 않는다’ 뒤로 물러나면서도 행동으로는 더 큰 요구를 전했다. 정말 필사적으로 반대할 때가 되자 관계에는 이미 지배와 매질이 있었다. 마지막에 둘 다 잃었다고 해서 줄곧 결정할 힘도 같았다고 거꾸로 말할 수는 없다.
그의 가담을 보는 것은 속으로 반대하는 일과 실제 행동 사이에 물음을 남기기 위해서다. 압박을 보는 것은 그 물음이 피해자 탓 한마디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누군가 요구를 전했다면 여전히 누가 보냈는지, 전에 어떻게 승낙했는지, 지금 거절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런 사정을 떼어 놓으면 책임이란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결과를 똑같이 나누는 일만 남는다.
바다의 부름은 같아도 거기로 가는 사람은 더는 같은 처지가 아니다. 처음에는 다투지 않으려고 작은 집을 청하러 갔다. 마지막에는 맞은 뒤 폭풍으로 나갔다. 그 변화를 읽어야 계속 요구하는 아내나 더 용감했어야 할 남편만 기억하지 않을 수 있다. 그의 입을 지나 현실이 되었다고 소원이 모두 그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도, 그 길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잃어 갔는지까지 다 말해 주지는 않는다.
출처
완전한 중국어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국어로 독립해서 썼다. 첫 주거 개선과 실제의 참여, 속마음의 반대와 점점 커지는 강제를 구별한다. 두 사람이 끝에 함께 잃었다는 사실로 모든 단계의 책임을 같게 만들지 않는다. 이야기 밖의 재난 수치나 부부의 사과와 화해도 채워 넣지 않는다.
판본에 관한 주석
그림 형제의 1857년 제7판, 19번 「Von dem Fischer un syner Fru」를 읽는다. 중국어 에세이는 같은 판본의 영어 번역 및 출처 설명과 저지독일어 전사본을 참조한다. 처음 조건 없이 물고기를 놓아준 일, 나아진 집, 왕–황제–교황의 순서, 아내가 지배자의 자리를 내세우는 일과 끝의 발길질·매질, 바다의 변화와 원래 거처로 돌아가는 결말을 남긴다. 첫 거처를 가리키는 말은 번역이 달라 여기서는 일반적인 표현을 썼다. 물고기의 교육 계획, 폭풍의 사상자 수, 뒤에 부부가 뉘우쳤다는 일은 덧붙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