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읽기 · 09
거위 치는 소녀는 진실을 바로 말할 수 없다―입을 열면 죽는다고 할 때, 사실은 어디로 드러날까
《거위 치는 소녀》―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혼자 더 큰 목소리를 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공주가 길을 떠날 때, 어머니는 넉넉한 지참금을 준비하고 먼 왕궁까지 데려다줄 시녀도 붙여 준다. 헤어지기 전 늙은 왕비는 흰 천에 자기 피 세 방울을 떨어뜨려 몸 가까이 간직하게 한다. 금은과 옷과 혼약은 도착한 뒤라면 누구인지 알려 줄 수 있다. 이 천은 그 사이 길을 지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 위험은 하필 예전의 보호는 멀어지고 새 관계에는 아직 닿지 못한 중간에 일어난다.
날이 더워 목이 마른 공주는 시녀에게 금잔으로 물을 떠 달라고 한다. 시녀는 거절하며 직접 말에서 내려 마시라고 한다. 두 번째 강가에서 몸을 굽혔을 때, 품속의 천이 빠져 물에 떠내려간다. 공주는 모르지만 시녀는 똑똑히 본다. 피 묻은 천을 잃자 보호도 잃는다. 시녀는 서로 타던 말을 바꾸게 하고 왕가의 옷을 벗으라고 시킨다. 또 탁 트인 하늘 아래에서, 궁정의 누구에게도 일어난 일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한다. 안 하면 그 자리에서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물을 대신 떠 주지 않겠다는 것과 사람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다른 행동이다. 먼저 시중들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 거절에 뒤의 죄까지 미리 얹을 수는 없다. 실제로 상대의 것을 가로채기 시작한 지점은, 옷과 신분을 강제로 바꾸고 말할 길을 막았을 때다. 공주는 옷 한 벌만이 아니라, 그 옷이 원래 누구 것이었는지 남에게 알릴 방법까지 잃는다. 말하는 말 팔라다는 모두 보았지만, 시녀가 타고 가면서 가짜 신분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왕궁에 도착하자 왕자는 신부 옷을 입은 사람을 맞아 말에서 내려 준다. 진짜 공주는 뜰에 남는다. 늙은 왕은 유난히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 가짜 신부는 길에서 데려온 아이니 할 일이나 주면 된다고 한다. 왕은 소년 콘라트와 함께 거위를 돌보게 한다. 모두가 먼저 경험을 듣고도 믿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니다. 궁정에 처음 전달된 설명은 이미 신부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내놓은 것이다.
그 뒤 가짜 신부는 팔라다를 죽여 달라고 한다. 길에서 자기를 화나게 했다는 이유지만, 실은 말이 여행 중의 일을 이야기할까 두렵다. 왕자는 청을 받아들인다. 유일한 목격자를 없애도록 허락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다. 소식을 들은 공주는 돈을 조금 내고, 날마다 지나는 성문 아래에 말의 머리를 걸어 달라고 말을 죽이는 일을 맡은 사람에게 부탁한다. 복잡한 폭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다. 다시 한번 바라볼 기회마저 잃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다음 날 거위를 몰고 성문을 지나며 공주는 팔라다에게 말을 건다. 말의 머리도 답한다. 어머니가 네 처지를 아시면 가슴이 찢어질 것이라고. 동화 속에서는 죽은 말도 말할 수 있고, 새 궁정에서는 거의 아무도 모르는 예전 관계를 이어 준다. 사람에게는 털어놓지 못해도 들어 줄 상대를 전부 잃은 것은 아니다. 날마다 되풀이하는 대화 속에는 신분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문제 외에도, 함께 그 길을 지나온 목소리 하나가 남는다.
풀밭에 이르러 소녀가 땋은 머리를 풀고 빗질하자, 콘라트는 빛나는 금발 몇 가닥을 뽑고 싶어 한다. 소녀는 바람에게 부탁해 모자를 날려 보낸다. 소년이 멀리 쫓아가는 동안 머리를 다 빗는다. 화가 난 소년은 끝내 늙은 왕에게 달려가 더는 함께 거위를 치기 싫다고 호소한다. 신분을 가로챈 사건을 조사하려던 것이 아니다. 자꾸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불평하며 덧붙인 말머리와의 대화, 풀밭의 일이 처음으로 공주의 심상치 않은 처지를 궁정에 전한다.
공주는 아무 일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다. 돈으로 말의 머리를 남길 수 있고, 바람을 불러 머리카락도 지킨다. 작은 데서는 여전히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곧바로 안전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어느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신을 침묵시키는 모든 위협을 없앨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모자를 날릴 수 있었으니 가짜 신부도 스스로 폭로했어야 한다고 말하면, 동화가 준 약간의 힘을 도리어 아무도 도울 필요 없다는 이유로 쓰게 된다.
이튿날 늙은 왕은 성문 뒤에 숨어 팔라다와 나누는 말을 듣고, 풀밭까지 따라가 콘라트가 모자를 쫓는 모습을 직접 본다. 저녁에 소녀를 따로 불러 왜 그렇게 하는지 묻는다. 소녀는 죽이겠다는 협박 아래 맹세했기 때문에, 자기 불행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거듭 물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들어 주려는 사람 하나가 앞에 섰다는 것만으로, 이미 떠안은 두려움과 맹세가 풀리지는 않는다.
이 침묵을 가짜 신부의 말이 맞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공주는 옷을 빼앗기고 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을 알며, 왕자가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도 안다. 공개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고 그런 일들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맹세를 강요한 사람은 바로 그 침묵만 남들이 보기를 바랐다. 반대가 없으니 다른 사실도 없다고 여기기를 바랐다. 궁정이 계속 본인이 먼저 나와 설명하기만 기다린다면, 처음 입을 막은 위협은 남들의 기다림을 통해 계속 효력을 얻는다.
그래서 늙은 왕은 사람에게 말할 수 없으면 쇠 난로에 털어놓으라고 한다. 자리를 뜨는 척하자 소녀는 난로 안으로 기어들어가, 마침내 울며 전부 이야기한다. 눈앞의 사람에게 증언한 것이 아니다. 맹세를 어기는 것은 아니라고 여기는 곳에서, 강제로 벗은 옷과 잃은 혼약, 지금의 생활을 하나로 잇는다. 하지만 왕은 바깥 연도 곁에 서서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돌아와 난로에서 나오게 한다.
구해 준 행동이면서, 미리 밝히지 않은 엿듣기이기도 하다. 왕은 대면해서 맹세를 깨라고 더 요구하는 대신, 말할 대상을 주었다. 동시에 자신은 듣게 될 줄 알았지만, 소녀에게는 같은 정보가 없다. 동화에서는 이 방법으로 진짜 신부를 구한다. 그 효과를 인정해도, 돕기 위해서라고만 하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며 한 말을 몰래 얻어도 된다고 볼 필요는 없다. 결과가 운명을 바꿨다고 해서, 수단에 한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이 드러날 수 있었던 까닭도 그 연도 하나에만 있지 않다. 남겨 둔 말의 머리, 화가 나서 콘라트가 한 세세한 이야기, 궁전을 나가 직접 보려는 왕이 없었다면 난로 앞의 질문도 없었을 것이다. 마침내 진실을 말한 것은 공주지만, 모든 증명을 혼자 해낸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행동들이 만났기에, 직접 말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 자기 힘이 충분해져야만 믿어 줄 수 있다는 조건에 묶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왕은 처음에 아름다움 때문에 눈여겨보고, 나중에는 왕가의 옷으로 지위를 되돌려 준다. 이야기 속 신분을 알아보는 데는 분명한 위계가 있다. 공주가 난로 안에서 괴로워하는 것도 속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왕녀인 자기가 하인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읽는 우리는 거위 치는 일 자체를 사람을 낮추는 일이라고 할 필요는 없다. 바로잡아야 할 것은 위협 때문에 이름과 경험, 자기 삶을 정할 기회를 잃은 일이다. 원래 공주가 아니었더라도,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그 무게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
소녀가 다시 왕가의 옷을 입자, 왕자는 신부를 잘못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한다. 길에서는 거짓말을 가능하게 했던 옷이 이제 진실을 보이게 한다. 다만 그 역할을 너무 크게 잡아서는 안 된다. 값비싼 옷으로 갈아입고서야 다시 자기가 된 것도 아니고, 거위를 칠 때 정말 다른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다. 왕이 들은 것은 아직 옷을 바꿔 입기 전의 경험이다.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는 그 경험이 필요하지, 이제 다시 공주답게 보인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혼인 잔치에서 가짜 신부는 곱게 차려입은 소녀가 그 사람인 줄도 모른다. 늙은 왕은 사건을 문제 하나로 꾸며, 주인을 이처럼 속인 사람은 무슨 벌을 받아야 하는지 묻는다. 대상이 자신인 줄 모르는 가짜 신부는 못을 박은 통에 넣고 말이 끌어 죽이는 잔혹한 형벌을 내놓는다. 왕은 그것이 네가 스스로 내린 판결이라고 말하고 그대로 하게 한다. 신분을 밝히는 영리한 방법이, 끝에서는 벌받는 사람이 직접 형벌을 받아들인 듯 보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신분을 빼앗고 살해로 위협하고 팔라다를 죽인 책임은 물어야 한다. 판결 방법이 문제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 속 모르는 인물에게 잔혹한 형벌을 제안한 것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자기가 그 처분을 받는 데 동의한 것과 같지는 않다. 그 말은 잔인함을 드러내지만, 어떤 벌이 적절한지 왕 대신 저절로 판단해 주지도 않는다. 판결하고 집행하게 한 사람은 여전히 왕이다. '네가 한 말이잖아'라며 그 대답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이제 앞뒤의 말이 불안하게 호응한다. 공주는 죽이겠다는 위협 아래 맹세했고, 그 말 때문에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가짜 신부는 누구를 두고 묻는지 모른 채 벌을 말했고, 그 말은 나중에 처형 근거가 되었다. 둘이 한 일과 책임이 다르니, 둘 다 말 한마디에 묶였다고 서로 상쇄해서는 안 된다. 다만 두 장면 모두, 말이 어디까지 사람을 구속할 수 있는지 판단하려면 실행할 내용만 남길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인지도 보아야 한다고 일깨운다.
마지막에 진짜 공주는 원래의 왕자와 결혼하고, 둘은 평안하고 행복하게 나라를 다스린다. 그림 형제가 준 결말에 쓰이지 않은 평생의 불행을 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팔라다가 되살아난 것도, 여행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 것도 아니다. 새 삶에서 가짜 신분에 갇히지 않게 되었어도, 옛일이 모두 받아들일 만한 일로 바뀐 것은 아니다. 회복 뒤에 행복이 시작될 수 있다. '전에는 사실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는 설명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그 전에 소녀는 성문 아래를 거듭 지나며, 자기만 아끼는 말의 머리에 이야기해 왔다. 궁정 사람들이 마침내 소녀가 누구인지 안 것은 침묵이 갑자기 무언가를 증명했기 때문이 아니다. 침묵 주위에 여전히 남은 사실에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험 전부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혼자 더 크게 외쳐 빠져나오라고만 할 수는 없다. 때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주변이 듣고 조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듣고 난 뒤, 막 얻은 진실을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또 하나의 권력으로 만들지 않는 일이다.
출처
현재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명시한 판본을 읽는 해석이며 원작 전체의 번역은 아니다. 침묵을 동의로 삼지 않고, 부분적으로 행동할 힘이 있다고 모든 위협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구별한다. 도움이 된 엿듣기의 한계와 가짜 신부의 책임, 왕이 형벌을 정하고 실행한 책임을 각각 남긴다. 마법과 왕가의 신분이 작용하는 결말을 보존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거나 그 사람의 말을 믿어 줄지를 정할 때 그런 조건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판본에 관한 주석
텍스트는 그림 형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1857년 제7판 제89화 〈거위 치는 소녀〉(Die Gänsemagd)를 따른다. 독일어 텍스트와 마거릿 헌트의 공공 영역 영어 번역을 참조한다. 살해 위협 아래의 맹세, 팔라다의 죽음, 콘라트의 불평, 왕의 관찰과 거듭된 질문, 소녀가 쇠 난로 안에 들어가고 왕이 바깥 연도에서 엿듣는 일, 가짜 신부가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고 잔혹한 형벌을 제안하는 일을 연속된 행동으로 남긴다. 말의 머리와 바람은 동화 안에서 실제로 작용하는 마법이다. 공주가 말의 머리를 보관한 명시적 이유는 계속 보고 싶어서이지, 미리 증거를 수집하려던 계획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