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보여 주는 장면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아침 세 개 저녁 네 개 준다고 하자 화를 내고, 아침 네 개 저녁 세 개라고 하자 기뻐한다. 합계는 일곱 개로 같다. 주인은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이용한 듯 보인다.

익숙한 교훈이 놓치는 것

그러나 시간은 중립적인 상자가 아니다. 아침의 배고픔, 저녁까지 살아서 받을 확률, 먼저 쓸 수 있는 가치가 다르면 배분 순서에는 실제 의미가 있다. 급여, 상환, 의료, 휴가도 총액만으로 같은 대우인지 말할 수 없다.

결말을 다시 열어 두기

눈앞의 이익에 속는 경우도 분명 있다. 그래서 “일곱이니 같다”나 “먼저 많으니 무조건 낫다”로 끝낼 수 없다. 누가 동등함을 정의하고 시간의 위험을 누가 지며 당사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물어야 한다. 합계는 대화의 시작이지 결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