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중에 우리는 급히 말한다. “나는 그런 뜻으로 한 게 아니야.” 이 말은 완전히 진실일 수 있다. 상대를 빼놓을 생각도, 깎아내릴 생각도, 압박할 생각도 없었다. 누구나 한 번의 행동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되고 싶지 않다. 의도는 중요하다. 일부러 한 일과 실수, 속임수와 오해를 같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 한마디로 다툼은 끝나지 않는다. 행동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온 말과 행동, 그때의 상황, 다른 사람이 맞닥뜨린 결과에도 존재한다. 빼놓을 생각은 없었지만 중요한 결정을 다 한 뒤에야 알렸을 수 있다. 압박할 생각은 없었지만 거절할 때마다 냉담하게 반응했을 수 있다. 악의가 없다는 사실과 압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함께 참일 수 있다.
상대가 계속 말하는 이유는 당신이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 우기고 싶어서가 아닐 수 있다. 당신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설명했지만, 그 행동이 어디에 도착했는지는 아직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니 그렇게 상처받으면 안 돼”는 내 마음을 상대 감정의 허가 조건으로 만든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실제로 일어난 경험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반대 방향의 넘겨짚기도 조심해야 한다. “나는 통제당했다고 느꼈으니 너는 나를 통제하려고 한 거야”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복되는 행동과 사실을 보면 의도에 관한 설명이 믿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내게 도착한 결과만으로 상대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경험은 결과를 말해 주지만 모든 마음을 읽어 주지는 않는다.
더 정직한 대화는 두 문장을 함께 둔다. “너를 배제하려던 것은 아니었어. 나는 이런 생각이었지만, 내 방식 때문에 네가 참여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은 이제 보여.” 다른 쪽도 “고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실제로 선택권을 잃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의도와 결과가 같은 탁자 위에 놓이면 오해가 줄기도 하고, 악의 없이 반복된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악의가 없다는 것은 책임의 성격을 바꾸지만 모든 책임을 없애지는 않는다. 일부러 해친 책임은 없더라도 묻지 않았고, 오래 무시했고, 결과를 보려 하지 않은 책임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야”와 “그래도 이것은 내가 한 일이야”를 동시에 말할 수 있다. 앞의 말은 변화할 가능성을 지키고, 뒤의 말은 현실을 감당한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의 가장 좋은 쓰임은 대화를 닫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차이를 밝히는 것이다. 내가 하려던 일과 네가 겪은 일이 왜 멀어졌는지, 같은 거리가 또 상처를 만들지 않게 무엇을 바꿀지 살피게 한다. 다툼은 한쪽이 사건의 해석권을 독점할 때가 아니라, 각자가 가장 잘 아는 부분으로 상대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을 지우지 않을 때 끝을 향해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