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안내: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원문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전환해 읽을 수 있다. 대사와 인용의 한국어 표현은 이 판본의 번안이며 공식 자막이나 정식 번역을 옮긴 것이 아니다.
코다에게는 친자식이 둘 있다.
맏딸 쿄코와 맏아들 아유무.
코다는 레이를 내제자로 거두면서 두 아이도 제자로 길렀다. 세 아이가 한 지붕 아래서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고, 같은 잣대로 평가받았다.
겉으로는 공평한 구도다. 세 아이에게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고 스승은 누구도 편애하지 않는다. 잘 두는 아이가 잘 두는 아이일 뿐이다.
그런데 레이의 재능은 다른 두 아이보다 훨씬 뛰어났다.
한 가지를 더해야 한다. 쿄코와 아유무가 그렇게 평가받은 곳은 자기 집이었다. 달리 갈 곳이 없었고,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시간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과가 끝나면 나올 수 있는 도장이 아니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곳이었다.
이 글은 그다음에 일어난 일을 다룬다.
레이는 일부러 져 주었다
레이는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자기의 존재가 쿄코와 아유무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의 관심과 기대, 집 안에서의 자리까지 모두 자기 쪽으로 옮겨 오고 있었다.
그래서 한 가지 일을 했다. 두 아이와 쇼기를 둘 때 일부러 져 주었다.
말 한두 개를 빼고 시작해 유리한 조건을 주는, 드러내 놓고 하는 대국이 아니었다. 이겨야 할 판을 아무도 모르게 지는 판으로 바꾸었다.
작품은 이것을 고결한 선택으로 그리지 않는다. 아이가 생각해 낼 법한 서투르고 단순한 수습책이다. 내가 너희 자리를 차지했으니, 대신 판에서는 져 줄게.
다만 이 방법에는 전제가 있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해야 한다.
여기서 잠깐 멈춰 보자. 져 주는 일이 효과를 내려면 상대는 누군가 일부러 져 주었다는 사실을 몰라야 한다. 정말 자기 힘으로 이겼다고 믿어야 한다. 레이의 행동은 처음부터 상대가 눈치채지 못한다는 조건 위에 서 있었다.
알려져서는 안 되는 호의였다.
코다는 알아보았다
코다는 알아보았다.
다만 그가 주목한 것은 레이가 일부러 진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자기 두 아이가 그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마주 앉은 사람이 일부러 지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이겼다고 믿는다. 코다에게 그것은 기력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는 쿄코와 아유무에게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자질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두 아이를 강제로 장려회에서 그만두게 했다.
레이가 호의로 한 일이, 두 아이에게 판정을 내리는 증거가 되었다.
이 연작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므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레이는 두 아이를 지키려 했다. 자기 능력을 감춰서 그들이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을 썼다.
그 방법이 실제로 낳은 결과는 코다에게 결정적인 판단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두 아이가 얼마나 잘 두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알아볼 수 있는지에 관한 근거였다.
다시 말해, 레이는 그들이 자신과 비교되어 뒤처지지 않도록 자기를 숨겼다. 바로 그 숨김 때문에 그들은 탈락 판정을 받았다.
작품은 레이가 이 인과관계의 전모를 알게 하지 않는다. 코다가 설명하도록 하지도 않는다. 일은 그렇게 일어났고, 그 뒤로 각자가 자기 몫을 감당했다.
그 모양을 한 번 더 짚어 보자. 알려져서는 안 되는 호의가 제삼자의 눈에 띄는 순간, 보호하려던 사람에 관한 증거로 바뀐다. 이 전환에 누군가의 악의는 필요하지 않다. 제삼자가 하나의 잣대를 쥐고, 줄곧 그 잣대로 모든 사람을 재고 있기만 하면 된다.
두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
꿈이 끊긴 뒤 쿄코는 파견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고토와 얽혔다. 고토는 프로 기사이며, 아버지와 같은 스승 아래서 배운 후배이고, 아내가 있는 남자다. 관계는 오래 이어졌다. 어느 누구도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끝내지 못하는 식으로.
작품은 레이를 향한 쿄코의 감정을 애증이 뒤섞인 것으로 묘사한다. 그 대상은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 간 사람이다.
쿄코는 레이가 혼자 사는 아파트에 불쑥 나타난다. 술을 마시고, 모진 말을 하고, 방을 어질러 놓고 떠난다. 그 말들은 레이가 가장 아파하는 곳을 정확히 찌른다. 어디를 찌르면 아픈지 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함께 자랐다.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쿄코도 분명히 말하지 못한다. 작품도 대신 설명해 주지 않는다.
아유무는 게임 속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았다.
레이는 코다 집안을 망가뜨렸다는 자책을 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 집을 나왔다.
세 아이가 세 방향으로 흩어졌다. 어느 쪽도 좋지 않았다.
코다의 입장에서
여기서는 코다의 이야기를 충분히 해야 한다. 한 번은 그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한다.
그의 결정에는 앞뒤가 맞는 이유가 있다.
장려회는 잔혹한 곳이다. 나이 제한이 있어서 정해진 나이까지 올라서지 못하면 나가야 한다. 나갈 때는 이미 청춘을 전부 걸고 난 뒤다. 학력도, 다른 기술도, 남은 것이 없다.
이런 세계에서 자기 아이에게 자질이 없다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 일찍 그만두게 한다면, 그것은 잔인한 짓이 아니다.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책임 있는 처사다.
10년 뒤에 그만두면 10년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그것도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의 10년이다. 다른 길로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코다는 그 세계를 보아 왔다. 젊은 시절 직접 장려회에서 자리를 놓고 경쟁했고, 거기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안다. 결정을 내릴 때 그가 떠올린 것은 아마 자신이 보아 온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코다가 치른 대가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크다. 자기 아이에게 직접 너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이 그였다. 그 말을 하고 나면 무엇을 잃을지도 알았다. 실제로 잃었다. 딸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아들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신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야기가 한참 진행된 뒤까지도 그 일로 괴로워한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그 잣대 하나밖에 없다.
작품은 이 점 역시 명확히 한다. 그는 친자식들 앞에서 레이의 재능을 드러내 놓고 거듭 칭찬했다. 쿄코와 아유무의 뜻을 무시하고 강제로 그만두게 했다. 작품이 내리는 평가는 부모로서의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 배려가 부족하다. 작품에서는 두 문장이 동시에 성립한다. 그 사이에 접속사는 없다.
악의가 없는 집
이제 이 글을 정리해 보자.
코다는 친구가 남긴 아이를 거두어 친자식처럼 길렀다.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쳤고, 돈을 대신 관리했으며, 성인이 될 때까지 마음을 썼다.
레이는 자기가 다른 아이들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능력을 감춰 그들에게 져 주었다.
쿄코와 아유무는 자기 집에서 외부에서 온 아이와 같은 잣대 위에 놓였다. 그리고 졌다.
이 집에서는 누구도 악의를 품고 무슨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결과는 이렇다. 딸은 파견직으로 일하며 출구 없는 관계에 빠졌다. 아들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 거두어 기른 아이는 이 집을 망가뜨렸다는 자책을 짊어지고 집을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작품은 또렷하게 보여 준다. 한 단계씩 모두 따라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집을 나온 뒤 레이는 2년 넘게 혼자 살았다.
어느 밤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길가에 쓰러졌다.
그를 주워 간 것은 다른 집이었다.
다음 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