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형벌로 이끌면 벌만 피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덕과 예로 이끌면 부끄러움을 알고 바로 선다는 문장은 덕치의 선언으로 읽힌다. 이 시리즈는 의도적으로 다른 가능성을 시험한다. 장 전체가 통치자에게 향한다면, 백성의 내면에 수치를 만들려는 통치를 경계한 것은 아닐까.
자기 행동을 판단해 느끼는 부끄러움과 권력이 원하는 감정을 안에 심는 일은 다르다. 명확한 법은 보이는 경계를 긋는다. 도덕적 통치는 그 안쪽까지 정해진 감정으로 채워 관청의 목소리를 양심처럼 만들 수 있다. 덕은 먼저 통치자의 자세여야 한다.
이 해석을 강제하는 결정적인 이본은 없다. 전통 해석을 지우는 증명도 아니다. 둘을 함께 두어야 한다. 새로움의 매력도, 오래됨의 권위도 증거는 아니다. 다만 지금의 질문이 선명해진다. 내 부끄러움 가운데 무엇이 내 판단이고, 무엇이 너무 일찍 내 목소리를 배웠는가.
중문·영문판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자세한 논증은 시리즈 끝의 연구판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