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열어 준 문
행크는 월터를 DEA 현장 견학에 데려가고 자신도 모르게 하이젠베르크로 가는 문을 열어 준다. 악의는 없다. 쉰 살이 된 처남에게 자극을 주고 남자다운 세계를 보여 주려는 호의다. 그러나 농담과 허세 속에서 월터를 보호받아야 할 무해한 사람으로 고정한다. 행크의 직업은 모호한 인간을 용의자, 정보원, 피해자, 동료로 빠르게 분류하는 능력에 기대고 있다. 그 능력이 가족 안에서도 작동해 월터의 지능은 알아도 위험은 상상하지 못한다. 멀리 있는 범죄자를 읽는 정확성과 가까운 사람을 보지 못하는 친숙함이 같은 판단 습관에서 나온다.
역할이 허락하지 않는 공포
투코와의 총격 뒤 행크는 공황 발작을 겪는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숨을 쉬지 못하다가 문이 열리면 곧바로 농담하는 요원으로 돌아간다. 엘패소의 잘린 머리 앞에서 물러난 일도 약함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그의 용기는 가짜가 아니지만 두려움을 말할 수 없는 역할 속에서 갑옷이 된다. 쌍둥이에게 총을 맞고 재활할 때 마리에게 잔인해지는 것도 의존과 수치를 공격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동시에 바로 그 완고함으로 다시 걷는다. 자신을 일으키는 규율과 곁의 사람을 다치게 하는 껍질을 깔끔하게 나눌 수 없다는 점이 행크를 단순한 마초의 풍자로 끝나지 않게 한다.
주인에게도 적용되는 규칙
마리의 사고 소식이 거짓이었음을 안 행크는 제시의 집에 찾아가 무자비하게 때린다. 명백한 권력 남용이다. 중요한 것은 몇 시간 뒤 은폐하지 않고 자진 보고하며 총과 배지를 내놓는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제시의 피해를 없애지는 않는다. 그러나 행크의 규칙은 적어도 위반자가 자기일 때도 작동한다. 월터는 사실을 재배열해 책임을 피하지만 행크는 가장 잃기 싫은 직업적 지위를 걸고 결과를 받는다. 두 사람의 차이는 한 명이 언제나 선하고 다른 한 명이 언제나 악하다는 데 있지 않다. 힘을 가진 사람이 자기가 세운 기준 아래에도 설 수 있는가에 있다.
친숙함이라는 맹점
행크는 푸른 메스의 순도와 결정 방식을 분석하며 하이젠베르크를 하나의 정신으로 존중한다. 식탁의 월터에게는 같은 주의를 주지 않는다. W.W.라는 이니셜도 월트 휘트먼이라는 농담으로 닫는다. 월터 역시 행크를 시끄럽고 얕은 사람으로 저장해 공황과 책임감을 보지 못한다. 두 사람의 평화는 이 상호 오독 위에 있었다. 화장실에서 《풀잎》의 헌사를 읽는 순간 두 파일이 겹치고, 인정과 파괴가 함께 시작된다. 행크는 월터의 업적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이지만, 이해하는 순간 체포해야 하는 관객이다. 월터가 원한 증인은 곧 심판자일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은 ASAC 슈레이더다’
사막에서 월터를 체포한 행크는 마리에게 사랑한다고 전화한다. 잭 일당의 총격으로 고메즈가 죽고 자신도 다친다. 월터는 8천만 달러 전부를 주겠다고 하지만 돈은 행크의 생명과 같은 저울에 놓이지 않는다. 행크는 살려 달라고 하지 않고 자기 직함과 성을 말한다. 월터가 ‘가족’이라고 정의해 구하려는 말에도, 잭이 곧 시체로 처리하려는 말에도 마지막 장면의 이름을 넘기지 않는다. 죽은 뒤 그는 월터의 돈을 숨기던 구덩이에 묻힌다. 제국의 가치와 그 전부로도 살리지 못한 한 사람의 가치가 같은 모래 속에서 갈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