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비추되 서로 증명하지 않는다
반박은 아직 답이 아니다
『국가』 2권 첫머리에서 글라우콘은 트라시마코스가 조용해졌다고 정의가 증명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도 1권 끝에서 정의에 대한 한 주장을 이겼지만 정의가 무엇인지는 배우지 못했다고 인정한다. 상대에게 이기는 것과 대상을 얻는 것은 다르다.
열세 번의 대화에도 같은 규율이 필요하다. 플라톤과 SAE는 얇은 공통 지반이 있는 곳에서 국지적 검사를 할 수 있다. 어느 쪽도 자기 전제 묶음 전체를 가져와 상대의 토대로 삼을 수 없다. 증명은 이미 받아들인 전제와 추론 규칙 안에서 쓰는 내부 통화다.
실제로 드러난 접점과 갈림
가장 가까운 곳은 통치였다. 착취는 엄밀한 기술로서의 통치가 아니며, 대상화는 주체 사이 권력을 벗어난다. 결론보다 개념 경계를 다시 그리는 방법이 닮았다. ‘자신의 것’에서는 같은 말이 가장 깊은 차이를 보였다. 플라톤에서는 도시가 자기 일을 알아보고, SAE에서는 주체가 자기 법을 인수한다.
플라톤은 자기 글 안에도 여백을 남겼다. 동굴 해석의 참은 신만이 알고, 부착물을 벗긴 영혼이 하나인지 여럿인지 결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SAE의 결론이 아니라 플라톤의 설명이 스스로 거두지 못한 것에 열리는 순간이다.
재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플라톤은 SAE가 무슨 자로 자신을 평가했는지 물을 수 있다. 절차가 자연이 되고 배려가 소유가 되었다는 판단에는 이미 기준이 있다. ‘SAE의 기준’이라는 답은 플라톤을 바깥에서 검증한 것이 아니라 다른 위치에서 다시 쓴 것이다.
SAE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조건부 정확성이다. 전제를 밝히고 구분을 보존하며 나머지를 보이고 역검사를 허용한다. 재는 사람은 측정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의 첫 문장은 ‘나는 내려갔다’이고 철학자는 나중에 다시 내려가야 한다. 플라톤도 SAE도 독자 안에서 비추지 못하는 곳은 독자에게 남으며, 마지막 글이 대신 내려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