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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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 · Nicomachean Ethics · 한국어 재구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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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알면서 다르게 행동하다

Han Qin (秦汉)

소크라테스의 난점

자제력 없음/아크라시아는 논증과 경험을 충돌시킨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도 무엇이 최선인지 알면서 그 반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잘못은 결국 무지다. 그러나 사람은 위험을 알면서 담배를 피우고, 보내지 않기로 한 메시지를 보내고, 미리 파괴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행동을 반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을 버리지 않으면서 앎이 노예처럼 욕망에 끌려갔다는 단순 그림도 거부한다. 결정적 질문은 “그 사람은 아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아는가”다. 지식을 갖고도 사용하지 않을 수 있고, 보편 명제는 알지만 이 행동에 필요한 개별 전제를 못 볼 수 있다. 잠·광기·술 취함과 비슷한 상태로 말을 할 수도 있고, 새로 배운 문장을 아직 자기 것이 되기 전에 반복할 수도 있다.

엠페도클레스를 암송하다

가장 선명한 예는 언어다. 격정에 빠진 사람도 증명이나 엠페도클레스의 시를 읊을 수 있다. 초보자는 학문의 문장을 이어 말하지만 아직 그 지식이 사람과 함께 자라지 않았다. 배우는 정확한 대사를 말해도 자신의 판단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적게 증명한다.

조직은 교육을 이수하고 승인된 용어를 말하면 지식이 있다고 기록한다. 행동이 어긋나면 위선이나 압도적 욕망만 남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3의 설명을 연다. “과음은 해롭다”는 보편 명제는 있으나 “지금 이 잔이 바로 또 하나의 과음이다”라는 개별 전제가 실천적 힘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욕망은 대신 “이것은 즐겁다”를 활성화한다.

자격증과 소유

SAE는 이 문제 일부를 제시와 승인된 소유의 차이로 읽을 수 있다. 자격증·인용·유창한 표현은 그 판단을 자기 책임 아래 인수했다는 보증이 아니다. 빌린 권위는 원래 그것을 받친 근거 없이 이동한다. 경계·동의·구조적 편향 같은 말도 집단의 암호처럼 정확하게 쓰면서 실제 사건에서는 판단을 이끌지 못할 수 있다.

감사는 기억 어딘가에 있던 명제보다 실제 결정에 어떤 전제가 들어왔는지 물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용’ 구분과 만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몸·격정·지각·회복을 포함한 행위자의 상태를 설명한다. SAE의 장부가 그 심리 전체를 읽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빠진 목록

한 사람에게 접근 가능했던 모든 지식을 목록으로 만들어 실제 행동과 비교하자는 해법이 있다. 하지만 목록도 판단이다. 무엇이 정말 접근 가능했는가, 무엇이 눈에 띄어야 했는가, 잠든 소유와 아직 체화되지 않은 말은 어떻게 다른가. 문제는 한 층 위에서 다시 생긴다.

사후의 “나는 줄곧 알고 있었다”도 심사해야 한다. 뒤늦게 선명해진 지식을 과거 순간에 수입했을 수 있다. 나중의 기억이 당시의 활성화를 증명하지 않는다. SAE의 주소는 실제 사용된 것을 적을 수 있지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사용하지 않은 것의 완전한 목록은 갖지 못한다. 보존과 실천적 접근성은 다른 질문이다.

“더 잘 알았잖아”는 한 문장이 아니다

이 말은 정보를 들었다, 규칙을 암송했다, 개별 사태를 알아보았다, 숙고할 시간이 있었다, 행동 순간 더 나은 길을 실제로 승인했다는 여러 뜻을 섞는다. 각 주장은 비난과 회복에 다른 결과를 낳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를 일부 구한다. 완전히 활동하는 앎이 욕망에게 공정한 승부 끝에 끌려가는 것은 아니다. 아크라시아는 특히 개별 지각 수준에서 앎이 현전하는 방식의 결함이다. 동시에 행위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알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므로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SAE는 무엇이 제시되고 인수되고 실제 사용되었는지 묻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순간 사람 안에 어떤 앎이 있었는지 묻는다. 질문은 접하지만 합쳐지지 않는다. 더 잘 알면서 다르게 행동한다는 모순은 사라지지 않는다. ‘앎’이 처음부터 하나의 스위치가 아니었다는 사실만 더 정확해진다.

실천에서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대신 앎이 끊긴 자리를 찾아야 한다. 회의에서는 원칙을 정확히 설명했지만 압박이 닥치자 개별 사례를 그 원칙 아래 보지 못했는지, 보았지만 욕구의 문장이 결론을 가로챘는지, 혹은 행동 뒤에야 지식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각각의 경우에는 다른 훈련이 필요하다. 사례 연습, 환경의 마찰 장치, 동료의 즉각적 질문, 사후 기록은 ‘의지가 약하다’는 한마디보다 훨씬 정확하다. SAE의 목록도 이때 유용하다. 단, 목록을 외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제 판단 권한이 작동했다는 증거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자제력 없음은 지식의 부재라기보다 지식이 제때 통치하지 못한 사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