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 108 · 진리의 경계 긋기
테슬라, 체계에 담기지 않은 번개
돌아가는 전동기에서 미완의 탑으로, 협력의 장부에서 한 줌의 모이로. 그의 작업은 엄밀히 검증하되, 모든 구상이 성공해야만 그의 삶에 가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1. 그 비둘기
뉴욕의 길에서 노인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춘다. 주머니를 뒤져 모이를 뿌린다. 이런 장면을 떠올려 보자. 사람들에게 그는 유명한 발명가다. 비둘기들에게는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다. 두 모습 모두 니콜라 테슬라이지만, 어느 쪽도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말년의 거처는 뉴요커 호텔 3327호였다. 한때 그의 전기 실험은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제 손바닥에는 훨씬 작은 일이 놓여 있다. 눈앞의 생명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일. 상대는 그의 발명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존 J. 오닐의 훗날 전기에는 테슬라가 유난히 아꼈다는 흰 비둘기 이야기가 나온다. 새가 죽을 때 눈에서 몹시 밝은 빛을 보았다고 테슬라가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억을 거쳐 전해진 대화다. 독립적으로 확인된 현장 기록이나 과학 실험의 결과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 애정까지 지울 필요는 없다. 지구 반대편에 전력을 보내려던 사람이 새 한 마리가 돌아오는지 기다릴 수 있다. 관계의 크기를 그것이 닿는 면적만으로 재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작고 가까운 것에 마음을 쓰는 일이 거대한 구상을 배반하지는 않는다.
실패한 천재가 괴짜가 되어 사람 대신 동물을 사랑했다고 정리하면 동정하기는 쉬워진다. 대신 그가 실제로 무엇을 만들었고, 어떤 판단을 그르쳤으며, 누구와 관계를 맺었는지는 더 볼 필요가 없어진다. 불쌍한 결말이 삶 전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두 문장을 함께 두자. 테슬라는 전기공학의 중요한 부분을 바꾸었다. 늙은 테슬라에게는 곁에 있을 사람과 안정된 생활과 돌봄이 필요했다. 두 번째 문장이 성립하려면 첫 번째의 업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동기에서 비둘기까지, 그 사이에는 한 사람의 삶이 있다.
2. 전동기가 돌아가기까지
테슬라는 1884년 뉴욕에 와서 에디슨의 사업체에서 잠시 일했다. 1919년 자서전에는 기계를 개선하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관리자가 약속했으나 나중에 농담으로 넘겼다는 회고가 있다. 그가 기억한 실망을 보여 주는 글이지, 훗날 만들어진 모든 에디슨 대결담을 입증하는 계약서는 아니다.
다툼보다 오래 남은 것은 움직임이었다. 시간차를 두고 흐르는 여러 교류로 회전하는 자기장을 만들고, 그 힘으로 회전자를 돌린다. 테슬라는 다상 교류 전동기와 시스템을 발전시켜 1887년부터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중요한 특허들은 1888년에 등록되었고, 그해 웨스팅하우스와 사용권 계약이 이루어졌다.
교류 자체를 혼자 발명한 것은 아니었다. 발전기, 변압기, 송전망에도 여러 사람의 작업이 쌓여 있었다. 웨스팅하우스 역시 돈만 댄 것이 아니었다. 도면을 생산할 수 있는 기계로 바꾸고, 연결하고, 설치하고, 고장 나면 고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자와 조직이 필요했다.
당시 교류의 중요한 장점은 변압기로 전압을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다는 데 있었다. 보낼 때 높여 손실을 줄이고, 사용할 곳에서 다시 낮춘다. 초기 저전압 직류 배전의 한계가 직류는 원래 멀리 갈 수 없다는 법칙은 아니다. 오늘날의 고압 직류 송전은 다른 조건에서 제 몫을 한다.
웨스팅하우스는 1893년 시카고 박람회를 밝혔다. 나이아가라 사업은 1895년에 발전을 시작했고 1896년에는 버펄로에 전기를 보냈다. 눈부신 불빛 아래에는 공장, 전선, 공사 일정, 교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발명가의 초상 옆에는 좀처럼 적히지 않는 이름들이다.
그들을 기억한다고 테슬라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기여가 아니어도 결정적인 기여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이어 받아, 만든 사람을 모르는 이들까지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발명의 크기를 보여 주는 더 나은 장면이다.
3. 찢어진 계약서
여기에는 거의 누구나 남겨 두고 싶어 하는 장면이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파산 위기에 놓이자 테슬라가 로열티 계약서를 찢는다. 교류의 미래는 살아남고 발명가의 거액 재산은 사라진다. 종이 한 장이 이상을 좇는 사람과 돈을 좇는 사람을 갈라놓는다.
계약 조건은 실제로 바뀌었고, 테슬라는 계속 지급받는 로열티 조항을 포기했다. 다만 계약서를 찢는 극적인 동작은 나중의 서술을 통해 전해진다. 이전에 받은 대금과 이후의 합의까지 살펴보면, 한순간에 모든 부를 버렸다는 이야기보다 복잡하다.
그는 발명으로 수입을 얻었고, 협상하고, 투자자를 찾아다녔으며, 야심 찬 연구에 돈을 썼다. 성공한 특허와 말년의 생활고 사이에는 여러 사업과 결정이 있다. 찢긴 종이 한 장에서 가난한 호텔 방까지 곧장 이어지는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 이야기에 끌릴까. 너그러움이 눈에 보이는 동작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자기보다 일을 택했다고 가리킬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뒤이은 불행마저 그 선택이 얼마나 고결했는지 확인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발명이 널리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마음은 충돌하지 않는다. 조수에게 임금을 주고, 실험실을 유지하고, 밤에 잘 곳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이상에 묻은 얼룩이 아니라 내일도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이다.
물어야 할 것은 위대한 사람이라면 돈을 받지 말아야 하는가가 아니다. 혼자 완성할 수 없는 일의 위험과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다. 협력 관계가 바뀐 뒤에도 발명가에게 연구할 공간이 남는가. 연구를 잠시 멈추더라도 살아갈 자리는 남는가.
4. 롱아일랜드의 탑
1901년 J. P. 모건은 테슬라의 무선 사업에 투자했다. 롱아일랜드에 워든클리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상업적 무선 통신이 사업의 목표였고, 테슬라의 구상은 더 멀리 뻗었다. 지구 전체에 전력을 무선으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완성되지 않은 탑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자. 한쪽 미래에서는 메시지가 대서양을 건넌다. 다른 미래에서는 멀리 떨어진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 하나의 건물에 두 미래를 겹쳐 볼 수 있다고 해서, 두 계획이 넘어야 할 기술적 문턱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모건은 추가 투자를 거절했다. 1901년 마르코니가 대서양 횡단 수신을 보고한 뒤 경쟁 압력도 커졌다. 비용과 계획 변경, 해결되지 않은 기술 문제가 겹쳤다. 1917년에 탑이 철거되었을 때 사라진 것은 눈에 보이는 거대한 약속이었다. 이미 작동이 검증된 세계 송전망이 아니었다.
에너지를 보내는 일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일과 다르다. 전원이 있어야 하고, 손실과 거리, 수신 장치와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 눈앞의 전선이 사라진다고 그 조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선이라는 말은 전기가 무한하고 무료라는 뜻이 아니다.
기회를 잃은 일을 안타까워할 수는 있다. 그러나 투자 거절만으로 설계가 틀렸다고 결론 낼 수 없듯, 자본주의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설계가 옳았다고 결론 낼 수도 없다. 작은 시연과 수백만 명이 의지하는 공급 시설 사이에는 여전히 긴 작업이 있다.
워든클리프는 미완의 사업으로 남아도 좋다. 상상력은 진짜였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진짜였다. 한 사람에게는 미래가 보이는데 장치와 자금과 다른 사람들과의 합의는 아직 거기까지 닿지 못한다. 그 거리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아프다.
5. 에디슨 옆에서
다음 글은 에디슨으로 이어진다. 그에 앞서 한쪽은 생각하고 다른 쪽은 돈을 벌었다는 배역에서 둘을 꺼내 놓자. 에디슨도 발명가였다. 테슬라도 특허를 내고 조건을 협상했으며, 공개 시연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데 능했다.
에디슨의 강점 하나는 발명가를 만난 적 없는 사람도 거듭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었다. 전구만으로는 부족하다. 발전과 배전, 수리와 요금 체계까지 있어야 생활에 들어온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뒤에 붙이는 포장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필요한 창조적 작업이다.
한편 그는 직류를 지키는 과정에서 교류의 위험을 과장하는 선전에도 관여했다. 감전과 전기의자를 둘러싼 논란에는 에디슨, 해럴드 브라운 등 여러 인물이 얽혀 있다. 만능 악당 한 사람이 모든 잔혹한 장면을 만들었다고 하기보다 각자의 책임을 살피는 편이 더 정확한 비판이다.
테슬라는 현상 사이의 유용한 연결을 발견하고 눈앞에 보여 주는 데 뛰어났다. 하지만 교류가 모든 상황에서 직류보다 낫거나, 무선이 언제나 유선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 약속이 더 크다고 설계도 자동으로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
둘을 합치면 완전한 한 사람이 된다는 말도 충분하지 않다. 협업에는 권한과 소유권, 증거를 둘러싼 조율이 필요하다. 동료가 가장 아끼는 구상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그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이 대비가 남기는 과제는 지금도 어렵다. 낯선 가능성에 자랄 공간을 주면서도 제안자의 확신을 최종 기준으로 삼지 않는 일. 좋은 작업장은 상상력을 환대하는 동시에 결과가 기대를 어길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6. 장부에 적히지 않은 사람
산업은 성공한 발명으로 이익을 얻으면서도 발명가를 오래 지탱하지 않을 수 있다. 동시에 어떤 사업을 거절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둘 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거절이 박해가 되거나, 모든 투자가 진실의 증거가 된다.
테슬라가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었다. 1917년 에디슨 메달을 받았고, 존경하는 사람들과 대중의 관심도 남아 있었다. 명성이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말년의 외로움 때문에 실제로 있었던 존중과 도움까지 지워서는 안 된다.
1943년 미국 대법원 판결도 차분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판결은 마르코니의 특정 특허 청구와 테슬라, 로지, 스톤의 앞선 작업을 다루었다. 무선 통신의 유일한 발명자를 뽑은 재판이 아니며, 세계 규모 무선 전력망의 실현 가능성을 인증한 것도 아니다.
그 경계를 지켜도 질문할 것은 충분하다. 공로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누가 소송 비용을 감당하는가. 성숙한 산업 안에서 누구의 작업이 회사 이름 뒤로 사라지는가. 무료 전력을 막기 위한 세계적인 음모를 덧붙이지 않아도 현실의 부당함은 조사할 가치가 있다.
구체적인 법에 따른 튜링의 박해는 테슬라의 자금난과 같지 않다. 칸토어의 질병도 같은 결말에 배경만 바꾼 것이 아니다. 모든 고단한 삶을 한 도식에 밀어 넣으면, 설명이 오히려 지키려던 사람들을 삼켜 버린다.
테슬라를 상업 세계가 버린 나머지로만 부르는 일도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그에게는 성취와 오판, 애착과 평범한 필요가 있었다. 장부가 그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면, 우리 쪽의 동정 어린 한마디도 그를 다 설명하지 못한다.
7. 칸토어 옆에서
그래도 칸토어는 이 상상의 대화에 함께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작업은 그들의 생활을 지탱하는 조건보다 멀리 나아간다. 다만 그 닮은 점이 유용해지려면, 서로 다른 작업의 성격도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한다.
칸토어는 무한집합에 관한 수학적 증명을 제시했다. 그 타당성은 투자자가 공장을 지어 주는지에 달려 있지 않다. 물론 수학에도 읽고 비판할 사람이 필요하다. 반면 테슬라의 세계 전력 계획은 실제 장치로 측정 가능한 성능을 보여 주어야 했다.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보인다고 다른 사람이 검증할 결과를 대신할 수는 없다. 반대로 한 사업의 실패가 설계자의 다른 성과를 모두 무효로 만들지도 않는다. 돌아가는 전동기가 탑을 보증하지 않으며, 탑의 실패가 이미 돌아가는 전동기를 멈추지도 않는다.
칸토어가 겪은 반대와 질병을 무한을 보았기 때문에 망가졌다는 말로 압축할 수 없다. 테슬라 역시 사람들이 돈을 대지 않았으니 반드시 옳았다고 할 수 없다. 고통은 우리의 해석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기 전에, 누군가가 겪는 고통으로 돌봄을 받아야 한다.
건설되지 않은 것이 영원히 판단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후대의 연구는 원리를 시험하고 한계를 계산하며 서로 다른 무선 기술을 구별할 수 있다. 모든 약속을 믿는 것과 상상력 자체를 사기로 취급하는 것 사이에, 해야 할 일이 넓게 남아 있다.
둘을 존중하려면 작업을 제대로 읽고, 무엇이 입증되었는지 밝히고, 한 주장에 대한 판정보다 사람을 더 크게 남겨 두어야 한다. 존중은 수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숭배는 영웅이 틀릴 가능성 자체를 빼앗곤 한다.
8. 마리 퀴리 옆에서
마리 스크워도프스카 퀴리는 또 다른 빛을 비춘다. 그는 바르샤바를 떠나 파리로 갔다. 테슬라는 1856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 지금의 크로아티아에 속하는 스밀랸의 세르비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나중에 미국에서 활동했다.
이를 작은 나라의 사람이 큰 나라에 선물을 주었다는 이야기로만 줄일 수는 없다. 이동에는 새로운 언어와 제도, 배제와 우정이 따른다. 일할 책상이 당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만들고 지켜야 한다.
퀴리의 방사선 노출과 테슬라의 경제적 불안은 서로 다른 보호를 요구한다. 실험실을 더 안전하게 해도 워든클리프에 부족했던 성능 증거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계약을 고친다고 초기 방사성 물질 연구의 위험이 저절로 사라지지도 않는다.
어느 결말이 더 잔혹했는지 겨룰 필요는 없다. 비극의 크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다음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조용한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안전한 작업장, 공정한 협약, 더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해도 이어지는 돌봄. 그런 것이 더 쓸모 있다.
둘이 마지막에 자기 삶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도 우리가 단정할 수 없다. 전기 작가는 다른 사람의 마지막 생각 안에 살지 않는다. 다 쓰지 않고 남겨 두는 일도, 그 사람을 온전히 우리 소유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
그들의 작업은 사후에도 낯선 사람을 돕는다. 감사할 이유는 되지만 모든 대가가 정당했다는 결론은 아니다. 방에 불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 빛을 가져오는 데 힘쓴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9. 삼십삼 층
1943년 1월 7일, 여든여섯 살의 테슬라는 뉴요커 호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방은 실제로 있었다. 그 안의 종이마다 억압된 세계적 발명이 숨어 있었다는 이미지는, 방 둘레에 나중에 자란 전설이다.
미국 시민이었지만 그의 유품은 외국인 재산 관리 당국이 맡았다. 남은 문서에는 구상에 대한 평가도 들어 있다. FBI는 이 당국의 직원과 자체 수사관을 명확히 구별했다. FBI가 그의 발명품을 압수했다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관과 경위를 혼동하게 된다.
무기 구상을 평가했다는 사실이 곧 사용 가능한 죽음의 광선을 발견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무기가 없었다고 유도전동기의 공로가 작아지지도 않는다. 음모론의 서류를 덮으면서도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열어 둘 수 있다.
이제 사료에서 벗어나 이 연작의 상상 속 다리로 돌아가자. 테슬라가 주머니에 모이를 넣고 온다. 몸에서 견디기 힘든 전기장이 나오는 듯 모두가 물러설 필요는 없다. 체호프가 난간 옆에서 조금 움직여 앉을 자리를 내준다.
흄 앞에는 백개먼 판이 놓여 있다. 칸토어는 듣고 있다. 보부아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콰인은 어떤 구별이 무엇을 더 잘 이해하게 하는지 묻는다. 그들은 서로의 이론을 증명할 전시물이 아니다. 테슬라는 새 계획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앉아도 된다.
다리 너머에서 변압기가 낮게 울린다. 여러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장치의 소리다. 그의 작업 가운데 일부도 그 소리를 따라, 그가 한 번도 알지 못한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큰일이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난간 옆의 사람은 도시 하나를 더 밝혀야만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니다. 내일 다시 틀릴 수 있다. 오늘 저녁에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설명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는 몸을 숙여 모이를 뿌리고 기다린다.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에서는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내려온다. 잠시 시연도 심사도 없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자신을 위해 자리를 남겨 둔 사람에게 다가올 뿐이다.
읽기 안내와 출처
이 글은 인물 산문이며, 공학적 계획의 성패로 사람의 가치를 판정하지 않는다. 첫머리의 모이 주는 모습과 마지막 다리 위 만남은 명시적으로 제시한 문학적 상상이다. 다리에서의 만남과 행동, 대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칸토어와 퀴리의 비교 역시 질병, 법적 박해, 경제적 불안을 같은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서전은 테슬라의 My Inventions(1919)에 따른다. 오닐의 Prodigal Genius(1944)에 나오는 비둘기와 계약서 장면은 칼슨의 역사 연구와 함께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흰 비둘기 회고는 보통 1922년에 놓이며, 1933년 뉴요커 입주 이후의 현장으로 옮길 수 없다. 주요 다상 전동기 특허는 1887년 출원, 1888년 등록되었다. 나이아가라는 1895년 발전을 시작하고 1896년 약 32킬로미터 떨어진 버펄로에 송전했다. 에디슨 메달의 전달은 1917년이다. 1943년 판결은 특정 특허 청구를 다루었지 무선의 유일한 발명자를 선정하지 않았다. 유품 관리 기관과 FBI도 구별해야 한다.
테슬라, My Inventions(1919) · 오닐, Prodigal Genius(1944, 비판적 독해 필요) · 칼슨, Tesla: Inventor of the Electrical Age 서론 · 워든클리프 테슬라 과학센터: 탑의 역사 · 나이아가라 국립유산구역: 전력과 산업 · 미국 대법원: Marconi Wireless Telegraph Co. v. United States(1943) · FBI 설명: 테슬라 문서와 기관 혼동 ·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 신분·시민권·사망 기록 · 프랭클린 연구소: 니콜라 테슬라 자료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