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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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 108 · 진리의 경계 긋기

코페르니쿠스, 바로 그날

임종 곁의 책, 그림 안으로 들어온 관찰자, 첫 장에서 들리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 코페르니쿠스가 넘긴 작업을 독자들은 이어받으면서 고쳐 간다.

I. 침대 곁에 도착한 책

죽음을 앞둔 사람 곁에 책 한 권이 놓인다. 그는 눈을 떴을까. 표지를 알아보았을까. 우리는 그 순간을 또렷하게 보고 싶어진다.

코페르니쿠스는 1543년 5월 24일 프롬보르크에서 일흔 살로 죽었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그해 뉘른베르크에서 인쇄되었다. 완성된 책이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의 중요한 근거는 친구 티데만 기제가 레티쿠스에게 보낸 편지다.

후대의 이야기는 여기에 손가락의 움직임, 갓 마른 잉크, 마지막 미소를 보탠다. 장면은 선명해지지만 모든 세부가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책 한 권이 도착한 날과 그 책이 인쇄되거나 출판된 날도 반드시 같지 않다.

우연을 완벽히 맞추지 않아도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인다. 한 사람이 오랜 작업을 마침내 세상에 내놓았는데, 독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지켜볼 시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장에 갈릴레오의 재판을 써 놓은 것도 아니고 케플러에게 궤도를 고치라고 맡긴 것도 아니다. 뒷이야기는 이미 짜인 줄거리가 아니며 저자가 편한 때에 무대에서 빠져나간 것도 아니다.

하필 그날이라는 제목은 남길 수 있다. 다만 정확히 확인된 달력처럼 행세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예정대로 터질 폭탄이 아니라, 쓴 사람의 손을 떠나는 책이다.

II. 오늘도 다른 일이 있다

1473년 토룬에서 태어난 코페르니쿠스는 매일 혼자 하늘만 보며 살지 않았다. 토지와 장부, 의술과 돈, 정치가 그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크라쿠프에서 공부한 뒤 이탈리아에서 교회법과 의학을 배웠고 페라라에서 교회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바르미아 대성당 참사회원이라는 직책은 행정 업무와 생활 기반을 제공했다. 이를 오늘날 설교하는 본당 사제의 직무와 곧바로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일들은 천재의 전기에서 빨리 치워야 할 잡무만은 아니었다. 의료와 행정에는 판단이 필요했고, 나빠지는 화폐 사정에는 개혁안이 필요했다. 전쟁은 평소의 질서를 위협했다. 그는 바로 그 세계 안에 살았다.

망원경은 없었다. 맨눈과 각도를 재는 기구로 관측했으며, 이전 세대가 남긴 기록을 이용해 계산했다. 기념물로 남은 탑 하나가 수십 년의 다양한 작업을 언제나 위만 쳐다보는 고독한 사람으로 굳혀서는 안 된다.

천문학을 그의 취미라고 부르면 오랜 전문적 노력을 작게 만든다. 반대로 다른 모든 책임을 지우면 재능이 수입도 생활 조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를 바꾸는 일은 반드시 완전히 비어 있는 오후에 시작되지 않는다. 장부를 덮은 사람이 다시 펼쳐 드는 원고 속에서 조금씩 자라기도 한다.

III. 관찰자도 그림 안에 넣기

땅에서는 태양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지구는 든든히 멈춰 있는 듯하다. 지구 중심 천문학은 옛사람들이 단체로 생각을 잘못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경험을 정리했고 정교한 수학 도구를 발전시켰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심원과 주전원과 이도는 체면을 지키기 위한 땜질만이 아니었다. 예측하는 힘이 있었다. 지구의 운동을 생각한 선례가 있었고, 이슬람권 천문학자들은 오래전부터 행성 모형을 검토하고 개선했다. 코페르니쿠스 앞에 놓인 것은 천 년의 공백이 아니라 유산이었다.

그는 그림의 배치를 바꾼다. 지구는 매일 자전하고 해마다 태양 둘레를 돌며 움직이는 행성들 사이에 놓인다. 달은 계속 지구 주위를 돈다.

행성의 역행도 공통된 설명을 얻는다. 지구가 안쪽의 빠른 궤도에서 화성을 추월하면 화성이 먼 별들을 배경으로 잠시 뒤로 가는 듯 보인다. 빠른 기차가 느린 기차를 앞지를 때 생기는 뒷걸음질의 인상에는 보는 사람 자신의 운동이 들어 있다.

계산 문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등속 원운동을 유지했고 주전원도 썼다. 그의 체계가 곧바로 더 정확하고 단순해지거나 원의 수가 적어진 것은 아니었다. 행성의 순서와 상대적 운동을 하나의 질서로 묶는 데 강점이 있었다.

가장 옮기기 어려운 것은 종이에 그린 태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리만큼은 표시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 관찰자였을 수 있다. 발밑의 땅도 그림 안에 들어와야 했다.

IV. 서랍에 있던 시간

초기의 《소논고》가 정확히 언제 쓰였는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1514년의 장서 목록에 관련 흔적이 있다. 1543년 대작 출판까지의 긴 시간을, 확실한 발견일부터 정확히 36년이 흐른 것처럼 셀 수는 없다.

왜 오래 기다렸을까. 바오로 3세에게 바친 헌사에서 그는 예상되는 조롱을 언급한다. 어려운 계산과 계속되는 수정도 있었다. 망설임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전기 작가가 한 가지 속마음을 골라 모든 해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주변의 목소리가 전부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1533년에는 그의 생각이 클레멘스 7세 앞에서 소개되었다. 이후 쇤베르크 추기경과 기제는 출판을 권했다. 교회 안에는 서로 다른 사람과 반응이 있었다. 언제나 그를 노려보는 하나의 얼굴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레티쿠스가 찾아온 것은 1539년이다. 이듬해 그의 《첫 번째 보고》가 새로운 천문학을 알렸다. 서랍이 갑자기 저절로 열린 게 아니다. 읽고 토론하고 설명하며 실무를 처리하는 시간이 원고를 인쇄소로 옮겼다.

책을 내놓는다는 것은 독자를 만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동시에 모든 오해에 미리 답할 수는 없음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작업을 이어받으려면 붙잡은 손의 힘을 풀어야 한다.

기다림을 완벽주의로 찬양하거나 비겁함으로 재단할 필요는 없다. 계산은 계속되었고 삶도 계속되었다. 마지막에 출판했다는 사실이 그전의 모든 날을 같은 심리 상태로 만들지는 않는다.

V. 그 뒤의 재판들

코페르니쿠스는 갈릴레오의 재판을 겪지 않았다. 그렇다고 위험은 남들에게 맡기고 떠나기로 했다는 뜻은 아니다. 죽음은 절묘하게 계산한 퇴장이 아니며 사상사는 대가를 누가 치를지 미리 배정한 일정표가 아니다.

1616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수정될 때까지 정지 처분을 받았고 1620년 구체적인 수정 지침이 나왔다. 책의 모든 활용을 영원히 금지했다는 단순한 설명과는 다르다. 그래도 어떤 주장이 공개적으로 설 수 있는지를 권위가 통제하려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갈릴레오는 1633년 재판을 받았고 남은 생을 가택 연금 상태로 지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확인된 재판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전설이다. 그 말을 실제로 했는지와 무관하게 판결이 행성의 운동을 바꾸지는 못한다.

1600년 브루노의 처형에는 여러 종교적 이단 혐의가 관련되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를 받아들였다는 이유 하나로 줄이면 서로 다른 갈등이 보기 좋게 정돈된 순교 행렬로 바뀐다.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오 사건에 관여한 신학자들의 판단 오류를 인정했다. 중요한 역사적 성찰이지만 지구가 그해에야 움직일 허가를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 한마디로 수백 년의 결과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책의 영향은 예측을 벗어나고 뒤에 오는 사람은 자기 결정을 한다. 검열과 판결과 박해의 책임은 그 행위들에 물어야 한다. 처음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거꾸로 전부 청구해서는 안 된다.

VI. 첫 장에서 들리는 다른 목소리

책 맨 앞에서 말을 거는 사람이면 당연히 저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책에서는 그 습관 때문에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길을 잘못 들 수 있다.

인쇄본 첫머리에는 서명이 없는 독자에게 보내는 글이 실려 있다. 천문학의 가설은 계산에 쓸모가 있으면 되며 반드시 참이거나 참일 법할 필요는 없다는 취지다.

이를 넣은 사람은 루터교 신학자 안드레아스 오지안더다. 코페르니쿠스가 쓴 글이 아니다. 인쇄업자는 요하네스 페트레이우스였다. 신학자와 인쇄업자와 저자를 한 사람으로 합치면 무슨 충돌이 있었는지부터 사라진다.

코페르니쿠스의 헌사와 본문은 지구의 운동을 진지하게 주장한다. 교황에게 자신도 믿지 않는다고 안심시킨 것이 아니다. 친구들은 익명으로 끼워 넣은 글에 항의했고, 케플러는 나중에 작성자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온건해 보이는 머리말 하나가 책 전체를 듣는 방식을 정할 수 있다. 공개적인 반박에 못지않은 일이다. 당신이 말하기도 전에 누군가 당신이 뜻해도 되는 범위를 설명해 놓는 셈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조용함은 열정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수학적 질서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굳이 큰 소리를 지르게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조용한 천재를 그린다며 정작 그의 목소리를 꺼 버려서도 안 된다.

VII. 독자가 이어받는 일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읽기 어려운 전문서다. 출판 당일 모인 군중의 크기로 영향력을 잴 수 없다. 지구의 운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계산법을 활용한 천문학자도 있었고, 세계의 실제 모습을 설명하는 주장으로 검토한 이들도 있었다.

케플러는 티코 브라헤의 정밀한 관측을 바탕으로 원 궤도를 타원으로 바꾸었다. 다음 세대는 선배를 뒷받침할 증거만 보탠 것이 아니다. 선배가 소중하게 여긴 것 하나를 놓았다.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 변화를 관찰했다. 기존 배치에 도전하는 증거였지만 금성만으로 지구가 정지한 모든 모형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티코식 모형도 그 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증거에는 실제로 배제하는 대안만큼의 힘을 인정해야 한다.

뒤이어 뉴턴 역학은 또 다른 층위의 설명을 제공했다. 오늘날 교과서에서 간단해 보이는 그림 아래에는 여러 세대의 작업이 쌓여 있다.

금지는 사람을 다치게 하고 전달을 막을 수 있었다. 사상은 금지할 수 없다는 말은 그 손실을 지울 때 너무 가벼워진다. 남은 책과 논증과 독서의 기회는 구체적인 누군가가 지켜 낸 것이었다.

책의 가장 좋은 미래가 모두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일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 주의 깊게 읽고 과감하게 고치며 무엇을 바꾸었는지 이해한다. 그런 방식으로도 작업은 제대로 전해진다.

VIII. 중심에서 내려온 뒤

코페르니쿠스 옆에 다윈을 놓으면 비슷한 질문이 들린다. 우리가 생각했던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면 이제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사람은 천문학적 질서 안에서 지구의 자리를 바꾸고, 다른 사람은 인류를 생명 전체의 역사 안에 놓는다. 비교는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두 발견이 같은 일이 되거나 인간의 자존심을 꺾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중세 우주의 중심이 언제나 영광스러운 왕좌였던 것도 아니다. 무겁고 썩어 가는 것들의 자리로 여겨지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여전히 태양에 특별한 위치를 주었다. 특권적인 중심이 없는 현대 우주론을 이미 완성한 것은 아니었다.

다윈의 지체에도 연구와 증거 수집과 집필이 들어 있었다. 아내의 신앙을 걱정한 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종의 기원》은 결말 부근에서 인류의 기원을 언급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문장은 아니다. 뒤의 《인간의 유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한다.

두 작업을 읽고 우리 쪽의 질문을 할 수 있다. 사람의 가치는 우주에서 특별한 자리에 있다는 증명서를 필요로 할까. 지구가 움직이고 우리가 진화의 역사에 속한다고 해서 누군가를 돌볼 이유가 줄어들까.

중심을 잃는 것이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니다. 이 윤리적 판단은 천문학 정리가 아니다. 천문학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까지 말하지는 않는지 이해한 뒤, 우리가 책임지고 생각해 볼 일이다.

IX. 바람이 다음 장을 넘긴다

프롬보르크의 대성당은 남아 있다. 2005년 고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찾았다. 2009년 발표된 유전학 연구는 다른 증거와 함께 신원 확인을 뒷받침했고, 2010년 재안장이 이루어졌다.

그가 소유했던 책에 남은 머리카락도 연구에 쓰였다. 책들이 뜻밖의 방식으로 그를 찾는 일에 참여했다. 증거로 뒷받침된 신원 확인이 가능한 모든 의심을 지운다는 뜻은 아니다. 무덤을 찾은 일과 처음으로 그를 기념한 일도 같지 않다.

이 연작의 상상 속 다리에서 그는 조금 뒤쪽에 두꺼운 책을 들고 서 있다. 앞에서는 누군가 질문하고, 또 누군가는 종이를 들여다본다. 칸토어는 아직 펜을 놓지 않았다.

흄의 백개먼이 한쪽에 놓여 있다. 튜링은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과를 들고 있지 않다.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서 등장할 때마다 비극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가 발견하기 쉬운 곳에 책을 내려놓는다. 우리가 만든 이 몸짓은 뒤의 일에 무관심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모든 독자가 읽기를 마칠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저자는 없다는 인정이다.

바람이 페이지를 넘기다가 한 곳을 펼쳐 둔다. 뒤에 온 사람은 거기서 시작할 수도 있고, 앞으로 되돌아가 확인할 수도 있다.

마침 그날 누군가 책을 집어 든다. 책을 쓴 사람이 떠났다고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읽기 안내와 출처

임종에 책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출판일과 사망일의 일치나 마지막 미소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의 헌사, 오지안더가 넣은 익명 글, 인쇄업자 페트레이우스를 구별했다. 1616년 정지와 1620년 수정, 갈릴레오와 브루노 사건, 1992년 연설을 하나의 단죄와 복권 이야기로 합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는 원운동과 주전원을 유지했고 금성의 위상은 티코식 모형도 설명한다. 후대의 증거를 당시에 모두 갖추었던 것으로 쓰지 않았다. 유해 발견은 2005년, 유전학 연구는 2009년, 재안장은 2010년이다. 신원 확인은 증거에 기대며 절대 무오류를 뜻하지 않는다. 다윈과의 비교, 가치 판단, 상상 속 다리는 이 글의 해석이지 천문학 정리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 바오로 3세에게 바친 헌사, 영어 번역 · 스탠퍼드 철학백과: 코페르니쿠스 · 미시간대 소장 자료: 오지안더의 익명 서문 · 바티칸 천문대: 1620년 수정령 본문 · 요한 바오로 2세: 1992년 10월 31일 연설 · Bogdanowicz 외: 코페르니쿠스 추정 유해의 유전학적 확인, 2009 · 오언 깅거리치: 코페르니쿠스 무덤의 수수께끼, 2009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