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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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 108 · 진리의 경계 긋기

보어, 반대편도 있다

원자의 스펙트럼에서 끝내 보내지 않은 편지까지, 보어의 삶에는 어려운 질문이 이어진다. 자기 판단을 지키면서도 상대가 대답할 자리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1. 방패 속 두 가지 색

1947년 닐스 보어는 덴마크 코끼리 훈장을 받았다. 자신을 나타내는 문장(紋章) 한가운데 넣을 그림으로 그가 고른 것은 중국의 태극 문양이었다. 그 아래 라틴어가 적혔다. Contraria sunt complementa. 대립하는 것들은 서로 보완한다.

물리학자라면 원자나 수식, 실험 도구를 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보어는 곡선을 따라 맞닿는 검정과 흰색을 골랐다. 어느 쪽도 화면 전체를 차지하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눈길이 자연스럽게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움직인다.

이 그림은 일상으로 쉽게 들어온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는 내가 놓친 것이 보일 수 있다. 한 설명이 유용하다고 모든 것을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모든 모순 뒤에는 반드시 조화가 숨어 있다고 나아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어의 상보성은 더 엄격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특정 실험 조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서로 다른 장치에서는 서로 다른 고전적 서술이 쓰이지만, 그것들을 그대로 붙여 익숙한 물체의 그림 한 장으로 만들 수는 없다.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 양립할 수 없는 두 주장이 모두 참이라는 허가가 아니다. 오히려 조건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요구다. 문장에 새긴 표어는 짧다. 그 말을 지탱할 수 있게 만든 작업까지 짧았던 것은 아니다.

그 작업을 따라가면 다른 질문도 나타난다. 내 설명이 담지 못한 것에 자리를 내주면서도 증거와 소망, 이견과 기만, 한 사람의 존엄과 그가 한 말의 정확함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2. 무너지지 않는 원자

책 한 권을 탁자 위에 놓는다. 책은 그대로 책이다. 이 당연한 일이 러더퍼드의 원자핵 모형을 고전 전기역학으로 설명하려 하면 어려워진다. 핵 주위를 도는 전하인 전자는 에너지를 방출해야 한다. 작은 태양계는 그렇게 안정적으로 버틸 수 없어 보였다.

보어는 1912년 맨체스터에서 러더퍼드와 일했고, 원자에 관한 논문은 1913년에 발표했다. 에너지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정상 상태를 도입하고, 복사를 허용된 에너지 준위 사이의 전이와 연결했다. 모든 궤도를 돌며 계속 에너지를 잃는다는 설명에서 기본 규칙을 바꾼 것이다.

성과는 구체적이었다. 수소가 내는 빛에는 가능한 모든 색이 있지 않다. 스펙트럼에는 특정 진동수의 선들이 나타난다. 보어가 제안한 에너지 차이는 그 배열을 설명할 수 있었다. 측정기에 찍힌 조용한 자국들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한 생각을 시험했다.

그 모형이 전자가 작은 행성 궤도를 달리는 모습을 찍은 사진은 아니다. 뒤이은 양자이론은 상태와 운동을 다루는 방식을 크게 바꾼다. 오늘날의 양자 전이 역시 작은 사람이 3층에서 1층으로 마법처럼 순간 이동한다고 상상해야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더 복잡한 원자에서는 한계가 드러났다. 그래도 예전 설명이 멈춘 자리에 길을 냈다. 모형은 세계를 아는 데 도움을 주면서도 세계를 전부 말하지 못할 수 있다. 어디까지 가고 어디서 멈추는지 아는 일도 그 성과를 이해하는 일부다.

1922년 노벨상은 원자 구조와 복사에 관한 연구를 인정했다. 탁자 위의 책은 여전히 조용히 놓여 있다. 달라진 것은 아직 여기 있다는 그 평범한 사실 뒤에 얼마나 많은 작업이 숨어 있었는지를 아는 우리 쪽이다.

3. 장치가 묻는 것

보어는 1927년 코모에서 상보성을 제시했다. 우리는 흔히 명사 하나로 대답하고 싶은 질문으로 들어간다. 빛은 파동인가, 입자인가. 일상의 그림은 편리하지만, 지금은 그 그림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답을 자연에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간섭 장치에서는 파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무늬가 나타난다. 개별 검출은 국소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관찰자의 믿음에 맞춰 빛이 의상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비슷한 조건을 정성껏 구성해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다.

충돌은 어느 경로를 지났는지 완전히 알면서 간섭도 온전히 남기려 할 때 더 분명해진다. 장치가 무엇을 기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부분적인 경로 정보와 부분적인 간섭 가시성 사이에도 정확한 절충 관계가 있다. 무조건 둘 중 하나라는 거친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어는 결과를 얻은 조건을 함께 서술해야 한다고 보았다. 검출기는 어디에 놓였는가. 무엇을 연결했고 어떤 질문에 답했는가. 숫자를 적은 다음 이 정보를 지워 버릴 수는 없다. 바로 그 조건이 무엇을 알아냈는지 명확하게 해 준다.

사람의 의식이 전자를 바라봐 존재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기계는 누가 읽기 전에 기록을 남길 수 있다. 불확정성 관계도 서툰 관찰자가 물건을 건드려 흐트러뜨렸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수학적 제한과 그 의미를 읽는 일은 구별해서 다뤄야 한다.

과학이 정확함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이제 정확하려면 그 실험이 어떤 주장을 뒷받침하는지까지 말해야 한다. 첫 질문 안에 미리 들어 있던 답을 세계에 강요하는 대신, 질문하는 방식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4. 돌아오는 반대자

아인슈타인은 어려운 문제로 거듭 돌아왔다. 솔베이 회의에서도, 그 뒤의 논의에서도 사고실험은 쟁점을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양자역학이 놀라울 정도로 잘 예측한다면, 그것으로 완전한 물리적 설명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제공한 셈인가.

신과 주사위를 둘러싼 유명한 응수는 논쟁을 멋진 결투로 만든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관심은 확률이 싫다는 데 그치지 않았고, 보어도 재치 있는 한마디로 일을 끝내지 않았다. 세계를 설명한다는 것이 세계에 무엇을 더 해명해야 하는가가 걸려 있었다.

1935년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이 EPR 논증을 내놓았다. 떨어진 두 계의 상관관계를 이용하면 한쪽의 측정으로 다른 쪽에 관한 특정 예측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 그들이 제시한 실재 기준과 분리에 대한 전제를 따르면 양자적 서술은 불완전하다는 결론이었다.

보어는 그 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어떤 예측이 가능한지를 정하는 실험 조건이 중요하다는 답이었다. 멀리 떨어진 입자 사이를 기계적 충격이 여행한다는 설명은 아니었다. 얽힘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빛보다 빠르게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훗날 벨은 국소적 설명에 관한 중요한 가정들을 실험으로 시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벨 부등식 위반은 해당 가정 아래의 국소 숨은 변수 모형들을 배제한다. 가능한 모든 숨은 변수 이론을 없애거나, 보어의 모든 문장을 소급해 정답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논쟁의 선물은 승패표보다 크다. 아인슈타인은 다음 세대가 새로운 방식으로 조사할 수 있는 문제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반론은 바랐던 답을 얻지 못해도, 앞으로 누구나 설명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꿀 수 있다.

5. 점령된 도시의 대화

코펜하겐 연구소에는 젊은 물리학자들이 논쟁할 자리가 있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서로의 통찰만큼 서로의 저항도 필요로 했다. 훗날 코펜하겐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생각들 안에도, 하나의 학파 이름으로 평평하게 만들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1927년 두 사람은 불확정성과 측정의 해석을 놓고 부딪쳤다. 젊은 사람의 수학과 연장자의 실험 서술에 대한 요구는 놓기만 하면 맞는 부품이 아니었다. 이해하려면 고쳐야 한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수정이 언제나 편한 것은 아니다.

1941년 9월, 하이젠베르크가 독일 점령 아래의 덴마크로 보어를 찾아왔다. 그는 독일의 우라늄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 점령은 대화 뒤에 세워진 배경이 아니었다. 방문자의 말이 갖는 의미와 듣는 사람이 두려워할 합당한 이유를 바꾸고 있었다.

보어가 훗날 쓰고도 보내지 않은 초고들은 그 대화를, 하이젠베르크의 의도에 대한 안심할 만한 전후 서술과 상당히 다르게 기억한다. 핵무기와 방문자의 입장을 둘러싼 충격이 남아 있다. 이미 입증된 비밀 반전 임무로 간단히 정리할 수 없는 자료다.

동시에 초고는 여러 해 뒤에 적힌 기억이지 당시 대화의 녹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접촉했다. 보내지 않은 편지에서 평생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최종 내심까지 읽어 낼 수는 없다.

남는 어려움은 더 인간적이다. 예전에 내가 생각하도록 도와준 사람의 판단을, 지금 중요한 일에서는 믿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함께한 과거가 현재의 위험을 해소하지는 않는다. 과학적 재능도 어느 친구에게나 자기 행동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6. 물을 건너서

1943년 가을, 위험은 보어 자신에게 닥쳤다. 어머니가 유대계 가정 출신이어서 나치의 박해가 그를 위협했다. 마르그레테와 함께 덴마크를 탈출해 스웨덴으로 갔다. 국경은 갑자기 지도 위의 추상적인 선이 아니라, 안전에 닿느냐 붙잡히느냐의 차이가 되었다.

덴마크 유대인의 대규모 구조에는 수많은 손이 필요했다. 경고를 전하고, 숨을 곳을 마련하고, 배를 구하고, 조종하고, 스웨덴에서 받아들였다. 7천 명이 넘는 유대인이 건너갔다. 유명한 과학자도 그 공동의 역사 안에 있었지, 혼자 그 위에서 구조를 완성한 것이 아니다.

전기들은 스웨덴에 있는 동안 보어가 난민 지원을 위해 힘쓴 일을 전한다. 명성은 그의 목소리를 잘 들리게 했다. 그러나 한마디가 숨을 방 한 칸이나 통행편, 겁에 질린 승객을 보호하는 사람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행동들이 실제로 이어져야 했다.

바다 위에서는 협력이라는 말의 무게가 달라진다. 세미나에서 다른 사람은 내 논증을 개선해 줄 수 있다. 여기서는 아침까지 살아 있게 도와줄 수 있다. 노벨상을 내보일 수 없는 사람에게도 그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보어는 이후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갔고, 영국 측 팀의 일원으로 전시 원자력 사업에 참여했다. 핵무기를 만드는 작업에도 가담했다. 박해에서 벗어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그 참여에서 생기는 책임까지 지워 주지는 않는다.

위험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안 사람이, 이제 인구 전체가 마주할 위험의 규모를 바꾸는 일에 관여한다. 그의 정치적 사고는 그 얽힌 책임 안에서 자랐다. 사건 밖의 깨끗하고 안전한 곳에서 보내온 지혜가 아니었다.

7. 세계를 열어 두기

아인슈타인과 보어를 고집과 열린 마음의 대표로 배치하면 둘 다 놓친다. 아인슈타인은 측정 선택과 독립적인 실재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려 했다. 보어는 실험 조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나서 명확한 서술이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보지 않으면 달이 사라진다는 말로는 어느 입장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보어에게 의식이 세계의 전원을 켜는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을 증거를 못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만들어야만 상대의 용기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둘의 관계에서 소중한 것은 답을 요구하는 사람이 계속 남아 있다는 점이다. 존중은 쟁점에서 양보하는 일과 같지 않다. 답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질문하는 사람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하는 일이다.

1950년 보어는 유엔에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개방을 다른 영역으로 가져갔다. 자신의 전시 참여를 돌아보며, 핵 경쟁이 오래가는 재앙으로 굳어지기 전에 국제 협력과 정보 교환, 공동 안전의 장치를 마련하자고 호소했다.

모두 서로 믿기만 하면 된다는 권고는 아니었다. 검증과 제도, 상호 약속이 필요했다. 자신의 전쟁 중 작업을 통째로 부인한 것도 아니다. 자신도 만들어 내는 데 참여한 위험에 정치적으로 어떻게 답할지를 찾고 있었다.

실험실의 습관은 자동으로 국가 사이의 방식이 되지 않는다. 권력과 폭력, 위험에 노출된 정도의 불평등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상대를 알 공간을 마련해, 각자의 자기방어가 공동의 위험을 끝없이 키우는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8. 니시다 옆에서

니시다 기타로는 또 다른 입구를 연다. 순수경험은 아는 주체와 알려지는 객체라는, 처음부터 놓여 있던 듯한 구분을 다시 묻게 한다. 우리가 그 역할에 들어앉기 전에 경험에서는 이미 무엇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보어는 다른 길에서 묻는다. 결과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조건과 떼어 놓고 실험 대상을 설명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닮은 점은 한 습관을 멈추게 한다. 구분한 결과를 구분하는 작업 이전부터 있었던 출발점으로 취급하는 습관이다.

하지만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니시다의 절대무의 장소는 태극 그림으로 바꿀 수 없다. 상보성이 그의 형이상학을 증명하지 않으며, 그의 철학이 양자이론의 빠진 수학적 유도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차이를 남겨야 함께 읽는 의미도 생긴다.

콰인을 부르면 우리가 의지하는 구별은 무엇에 의해 지탱되는가라는 질문이 더해진다. 이들을 하나의 보편적 발견에 동원된 증인들로 만들 필요는 없다. 각자 다른 문제를 다루며, 다른 종류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도 이들과 함께 읽으면 언어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수 있다. 유용한 설명도 목적과 한계를 잊는 순간 울타리가 되곤 한다. 그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은 점검의 초대이지, 과학이 모든 경계가 허구라고 판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물리학에서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가려면 따로 이유가 필요하다. 난민이 안전을 얻어야 하는 것은 전자가 상보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우리가 좋아하는 과학적 비유가 오기 전부터 중요하다. 비유가 듣는 태도를 상기시킬 수는 있어도 그 이유 전부를 떠맡지는 못한다.

9. 보내지 않은 편지

1962년 11월 18일, 보어는 코펜하겐에서 일흔일곱 살로 세상을 떠났다. 남긴 종이들 가운데 하이젠베르크에게 쓰고도 보내지 않은 초고가 있었다. 2002년 기록보관소의 공개는 증거를 더했지, 모든 동기를 투시할 창을 열지는 않았다.

초고에는 한 문장을 대하는 시간이 남는다. 단어를 다시 생각하고, 비판을 더 정확히 하고, 설명이 저항을 만난다. 왜 끝내 보내지 않았는지 몰라도, 그 대화가 여전히 쓰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했다는 것은 보인다.

이 연작의 상상 속 다리로 보어가 그중 한 장을 들고 오게 하자. 역사 속 재회는 아니다. 하이젠베르크가 그를 알아본다. 말을 하면 들릴 거리에서, 두 사람은 잠시 상대가 먼저 입을 열지 기다린다.

흄이 백개먼 판을 닫는다. 테슬라는 종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모이를 옆으로 옮긴다. 보부아르는 두 사람 모두 답할 자리를 남겨 둔다. 지금 당장 이해했다거나 용서했다거나 동의한다고 선언할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보어가 난간 위에 종이를 놓는다. 하이젠베르크는 읽고, 어느 기억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다만 실제로 적힌 말에 답해야 한다. 다른 서술이 가능하다는 것이 모든 서술이 같은 증거를 갖췄다는 뜻은 아니다.

날짜가 적힌 줄로 돌아가 다른 문서와 나란히 놓고, 그 말을 무엇이 뒷받침하는지 물을 수 있다. 확정할 사실, 기각할 주장, 쓰이지 않은 동기가 있다. 동기를 열린 채 남겨 두는 일은 이미 확인된 부분에 대한 책임을 없애지 않는다.

문장의 검정과 흰색이 다시 떠오른다. 이곳에서는 자동으로 화해를 보장하지 않는다. 더 작은 가능성만 남는다. 어려운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맞은편 사람을 없었던 사람으로 만들지 않을 가능성이다.

편지는 아직 거기 있다. 이번에는 우리가 그리는 장면 속에서, 다른 사람이 대답할 수 있는 자리에 놓였다. 다음에 벌어질 일은 문양 안에 미리 적혀 있지 않다.

읽기 안내와 출처

이 글은 인물에 관한 문학적 에세이다. 상보성은 특정 실험 조건에서 물리적 설명이 어디까지 성립하는지를 다룬다. 같은 조건에서 서로 모순되는 명제가 모두 참이라는 뜻도, 인간의 존엄이나 윤리 원칙을 물리학으로 증명한다는 뜻도 아니다. 책의 예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장면이다. 마지막 다리 위의 만남은 명시된 허구이며 실제 대화나 보어가 하이젠베르크를 용서했다는 기록이 아니다.

보어가 러더퍼드를 찾아간 것은 1912년, 원자 모형을 발표한 것은 1913년이다. 상보성은 1927년 코모에서 제시했고 인용한 논문은 1928년에 나왔다. 양자 상관관계와 제어 가능한 통신, 벨의 결과와 모든 숨은 변수 이론의 부정은 구분했다. 1941년 대화에 관한 말년의 미발송 초고는 회고이지 녹취록이 아니다. 자료에는 1961년의 교류도 남아 있다. 1943년 덴마크의 구출은 여러 사람의 공동 행동이었다. 도피 이후 보어의 원자폭탄 개발 참여와 1950년 공개서한은 모두 그의 생애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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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