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 108 · 세계가 사람을 되빚을 때
팔대산인, 하늘을 향한 흰 눈
눈 하나와 흰 종이. 물고기와 새, 그리고 선택하는 화가를 보다. 그의 삶은 잃어버린 것보다 넓었다.
1. 그 물고기
팔대산인의 생애를 읽기 전에 그 물고기를 한번 보자. 몸은 몇 번의 붓질로 그렸다. 검은 눈동자는 눈의 위쪽에 몰려 있고 아래는 하얗다. 작은 눈 하나인데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흰자위를 드러내며 눈을 치켜뜨는 듯하다. 나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걸까. 다시 보면 그저 여기까지 헤엄쳐 와서 우연히 위를 본 것 같기도 하다. 물고기는 말이 없다. 먼저 바빠지는 쪽은 그림을 보는 사람이다.
우리는 얼른 대사를 붙인다. 나는 이 세상을 경멸한다. 화가의 사연을 더하면 그 말에 증거까지 생긴 것 같다. 그러나 그려진 눈 하나가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지와 화가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흰 눈은 완적을 생각나게 할 수 있다. 오래 이어진 문화적 연상이다. 그렇다고 모든 그림을 여는 열쇠부터 얻어야 그림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 한 점이 물고기 전체를 어떻게 바꾸는지 먼저 보자. 그에 따라 우리 해석도 어떻게 바뀌는지.
삼백 년이 넘었는데도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조롱일까, 경계일까, 사람 좋게 굴기 싫은 걸까. 아니면 내 기분을 종이 위에 올려놓은 것일까. 여러 느낌이 다가와도 된다. 당장 하나의 정답 자리를 놓고 싸울 필요는 없다.
팔대산인의 힘은 때로 여기서 시작된다. 아주 조금 그렸는데 한 번 보는 것으로 끝낼 수가 없다.
2. 세계가 달라졌다
흔히 주탑(朱耷)이라고 부른다. 장시성 난창 출신으로, 명 황실의 영왕 주권의 후손이었다. 태어난 해는 기록마다 달라 1620년대쯤으로 볼 수 있다. 1644년 베이징이 함락되고 숭정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는 스무 살 안팎의 젊은이였다.
명나라가 모든 곳에서 같은 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쪽에서는 저항이 이어졌고, 청의 정복과 새 질서는 전쟁 속에서 자리 잡았다. 이전 황실과 혈연으로 연결된 사람에게는 한때 지위를 주던 출신이 갑자기 위험을 부를 수 있었다.
그는 불문에 들어가 오랫동안 승려로 살았다. 피난이라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생활이 필요할 때만 걸쳤다 벗는 위장인 것은 아니다. 수십 년의 수행과 관계, 글쓰기와 관찰이 이후의 삶에 스며들었다.
전기에는 평소와 다른 행동, 울음과 웃음이 오가던 모습, 말을 하지 못하는 듯 지낸 시기의 이야기가 있다. 그 기록 너머의 모든 순간을 알 수는 없다. 진단을 내릴 수도, 전부 계산된 연기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격변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행동에 설명이 하나뿐일 이유는 없다.
1680년 무렵 승려 생활을 떠나 서화로 생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1684년에는 가장 널리 알려질 팔대산인이라는 호를 쓰기 시작했다.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사는 방식을 바꾸고, 자기 이름을 어떻게 쓸지도 계속 고르고 있었다.
옛 세계는 달라졌고 잃은 것을 쉽게 되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남은 것은 움직이지 않는 파편이 아니었다. 살고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종이에 붓을 대는 사람이 있었다.
3. 바뀐 사람도 무언가를 바꾼다
소크라테스와 마르크스, 갈릴레오와 비트겐슈타인을 쓸 때는 뚜렷한 동작 하나를 잡기 쉽다. 묻고 분석하고 관찰하고, 자기 생각을 다시 검토한다. 팔대산인 앞에서는 그가 한 일보다 역사가 그에게 한 일이 먼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다 그를 오직 당하기만 한 사람으로 만들기 쉽다. 하지만 어떤 선을 그리지 않을지, 눈동자를 어디에 찍을지, 새가 금방 균형을 잃을 듯 서 있게 할지는 재난이 화가 대신 결정해 주지 않는다. 그의 작업이다.
정치 강령을 쓰지 않았다고 방향 없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벼슬길을 택하지 않는다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떠나는 것도 아니다. 그림을 판다고 그림 속의 자신까지 파는 것도 아니다. 생계를 꾸리고 사람과 사귀고 모든 기대에 맞추지는 않는 일은 함께 가능하다.
갈릴레오와 비교하면 서로 다른 압력이 보인다. 고통의 순위를 매길 일은 아니다. 한 사람의 재판 기록으로 다른 사람의 하루하루를 설명할 수 없다. 왕조 교체도 그 안을 산 모두에게 같은 반응을 정해 주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묻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그림을 보러 가는 길에 동행할 수 있다. 그러나 화가에게도 자신의 언어가 있었다. 팔대산인은 시와 제발, 서예를 남겼다. 붓의 자취를 따라가면 그림의 침묵 같은 느낌과 풍부한 표현의 삶이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사라진 왕조를 그려서 되살려 놓지는 않았다. 다른 일을 했다. 이미 달라진 삶 안에서 여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먹의 쓰임을 계속 길렀다.
4. 흰 종이도 그림 안에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1699년작 〈물고기와 바위〉를 보자. 두 개의 큰 바위 아래에서 작은 물고기 일곱 마리가 먹을 칠하지 않은 종이를 헤엄친다. 물고기를 나타내는 몇 번의 붓질만으로 주변의 흰 곳이 물이 된다.
물결 하나하나를 보지 않아도 헤엄친다고 믿을 수 있다. 바위의 무게, 작은 몸, 그 사이의 간격이 함께 화면을 받친다. 여백은 배경이 사라진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배경을 만드는 다른 방법일 수 있다.
고궁박물원의 〈연꽃과 바위, 물새〉에서는 연잎 아래 바위에 물새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한 발로 서 있다. 차가움과 외로움을 느껴도 좋다. 조금 더 머물며 그 작은 버팀으로 어떻게 서 있는지도 보자. 우리가 가져온 감정 너머에 그 새만의 자세도 있다.
팔대산인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수묵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이전 그림을 보고 서예를 배우며 심주, 서위, 동기창 등의 전통과 마주했다. 선의 무게와 먹의 건습, 대상을 놓는 자리에는 훈련된 손과 오랜 판단이 있다.
넓게 펼쳐지는 그림도 있다. 1697년의 〈하상화도〉는 연꽃을 중심으로 한 거의 13미터 길이의 두루마리이며, 뒤에는 자신이 쓴 긴 시가 붙는다. 잎과 바위, 먹의 흐름을 보는 데 시간이 든다. 짙고 옅음, 성김과 빽빽함을 지나 마침내 말을 만난다. 첫눈에 생각한 것보다 목소리가 많다.
빈 종이는 신세만이 아니라 물과 공기, 거리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느낌도 담는다. 모든 흰 부분을 똑같은 망국의 슬픔으로 번역하면 오히려 그림을 좁힌다.
5. 완적과 흰 눈
완적은 3세기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넘어가던 시대를 살았다. 『진서』는 그가 예법과 관습에 매인 일부 손님을 흰자위로 대했다고 전한다. 조문 온 혜희가 그런 대접을 받았고, 나중에 혜강이 칠현금과 술을 들고 오자 반갑게 맞았다. 반대편의 ‘청안’은 호의적인 눈길이라는 말이지 눈동자가 파랗게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전기에는 수레를 타고 나갔다가 길이 끊기면 울며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해 내려온 인물 이야기이지 모든 순간의 녹화는 아니다. 그래도 자기 좋고 싫음을 예법에 통째로 맡기지 않으려는 자세가 전해진다.
완적이 안전한 높은 곳에서 세상을 경멸했던 것은 아니다. 위험한 정치적 관계 속에서 처신했고, 관직을 맡았으며, 보호에 기대기도 했다. 명사라는 지위가 틈을 열어 줄 수는 있어도 위험을 없애지는 못했다.
팔대산인의 눈은 그림 앞에서 그 기억을 만나게 한다. 하지만 천 년 넘는 시간이 벌어져 있다. 하나는 시인이 손님을 맞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화가가 종이에 눈동자를 놓는 방식이다. 연결에 힘이 있다고 모든 물고기가 완적의 한마디를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질문 하나를 남기자. 다른 사람이 적절한 표정을 기대할 때, 나만의 눈길을 지킬 수 있을까. 다정하게 굴지 않거나 설명하지 않는 것이 아무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선언일 필요는 없다. 지금은 요구받은 미소를 짓고 싶지 않을 뿐일 수도 있다.
완적에게는 설 자리가 충분했고 팔대산인에게는 전혀 없었다고 나눌 필요는 없다. 둘 다 제한된 틈에서 살았다. 자기 모습을 결정하는 일을 전부 남에게 넘기지는 않았다.
6. 혜능과 여백
여백을 보면 혜능과 선불교가 떠오르기 쉽다. 그러나 덜 채운 종이는 불교의 증명 문제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구절도 단순히 재산이 없다는 뜻이나 현실의 상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다.
선에서 묻는 집착은 전쟁이 집과 의지할 곳을 빼앗는 일과 같지 않다. 움켜쥔 손을 스스로 푸는 것과 어떤 삶에서 강제로 밀려나는 것을, 같은 ‘빔’이라는 말로 부른다고 똑같은 자유라고 해서는 안 된다.
팔대산인은 불문에서 수십 년을 살았으니 수행도 그를 보는 시야에 들어올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판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모든 붓질을 상처 안에 가두고 다른 감정은 돌아올 수 없다고 결정할 수도 없다.
그림으로 돌아가자. 비워 둔 것은 더 그릴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몇 번의 붓질이 이미 주변을 바꾸었기 때문일 수 있다. 물고기 곁의 흰 곳이 물이 되고, 새 주변의 흰 곳이 자세를 뚜렷하게 한다. 적다는 것이 반드시 빼앗겼다는 뜻은 아니다.
혜능과의 비교는 더 소박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눈앞의 것을 내 정의로 가득 채우지 않을 수 있는가. 화가의 상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술과 유머, 친밀함과 새로운 관심이 계속 자라도록 둘 수 있는가.
모든 것을 빼앗겨야 그림을 그릴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재난은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뒤늦은 찬사가 그것을 천재가 반드시 치러야 했던 값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7. 고통만 남은 것은 아니다
뉴턴과 마르크스, 갈릴레오와 링컨을 말하면 계산 방식,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 반복할 수 있는 관측, 헌법에 적힌 권리가 떠오른다. 서로 바꿔 달 수 있는 훈장은 아니다. 그래도 사람이 떠난 뒤 다른 이들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팔대산인이 남긴 것은 다른 종류의 지속되는 만남이다. 그림 속 물고기의 눈 앞에서 우리의 시선이 멈춘다. 서예의 선을 따라 누르고 멈추고 꺾이는 감각을 느낀다. 법령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사적인 기분에 지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쉬워 보이면 만드는 노동을 잊기 쉽다. 종이에 내려놓은 한 획은 쉽게 거둘 수 없다. 얼마만큼 비워 두고 진한 먹을 어디에 얹을지 판단해야 한다. 남아 있는 제발과 헌사에는 누군가의 요청에 응한 흔적도 있다. 간결한 표면은 복잡한 선택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품는다.
〈하상화도〉의 제발은 부탁받아 그렸다는 사실과 몇 달에 걸친 작업을 적어 두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이 있고 시간이 있다. 개인적 화풍은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관계 속에서도 바로 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
두보의 시가 고통 속에서 나왔다고 쓰는 기술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팔대산인의 그림도 조용하게 느껴진다고 의식적인 창작이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두 사람 모두 겪은 일을 작품에 가져왔지만, 겪은 일을 받아 적는 기계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그림을 아끼는 것은 그가 고통받았다는 증거여서만이 아니다. 계속 볼 만한 것을 그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만든 삶은 우리가 그림에서 알아본 고통보다 넓었다.
8. 미켈란젤로 옆에서
이 시리즈는 미켈란젤로를 쓰며 돌에서 형상을 풀어낸다는 비유를 썼다. 조각에 다가가는 한 입구다. 완성된 조각상이 실제로 돌 속에 다 들어앉아 기다린다는 설명은 아니다.
팔대산인의 종이는 반대편에서 시작하는 듯하다. 대리석에는 깎아 낼 무게가 있고, 흰 종이는 이미 놓여 있어 먹을 어디에 둘지 기다린다. 한 사람은 덜어 내고 다른 사람은 조심스럽게 더한다. 둘 다 형상과 주변 공간의 관계를 정한다.
그래도 팔대산인이 모든 것을 없앤 것은 아니다. 물고기가 도는 방향, 새의 무게중심, 바위 모서리는 남는다. 물결을 하나하나 그리지 않았다고 물고기에게서 물을 빼앗은 것은 아니다. 다 채우지 않아 오히려 헤엄칠 자리가 생기기도 한다.
〈아담의 창조〉에서는 두 손가락 사이의 거리가 닿을 듯한 순간에 눈길을 붙잡는다. 팔대산인의 넓은 흰 곳은 먹의 흔적 사이로 시선을 오가게 한다. 나란히 볼 수는 있지만 두 문화의 예술을 하나의 기호로 줄일 필요는 없다.
틈은 동작을 잠시 멈추게 하고 빈 종이는 거리를 열 수 있다. 같은 감정을 담아야 하는 것도, 채워야 할 결함인 것도 아니다. 작품은 모든 관계의 끝을 관객 대신 정해 놓지 않았다.
보는 사람은 모범 답안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된다. 다만 내 눈에 보인 모든 것을 작가가 말하려던 단 하나의 뜻으로 내놓지는 않아도 된다.
9. 울 것인가, 웃을 것인가
1705년, 팔대산인은 여든 살 안팎에 세상을 떠났다. 강희제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명 말에서 청 초로, 젊은이는 늙었다. 격변을 살았고 환속했고 호를 바꾸고 그림을 그리고 부탁에 응했다. 한 삶의 세월이 전부 같은 색은 아니다.
서명할 때 팔대산인 네 글자를 이어 쓰곤 했다. 후대 독자들은 그 모양에서 ‘울다’와 ‘웃다’를 떠올리는 글자를 읽었다. 흥미로운 독법이지 하루하루의 기분을 적어 둔 암호표는 아니다. 울음과 웃음이 가까워졌다고 그의 가장 깊은 고통을 우리가 알아맞힌 것은 아니다.
이제 이 시리즈가 상상하는 다리 어귀로 그를 데려오자. 비트겐슈타인의 두 책이 곁에 놓였고 누군가는 갈릴레오의 망원경을 들여다본다. 마르크스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팔대산인은 먹이 묻은 붓을 들고 온다. 우리 초상에 맞추려고 영원히 누구보다 조용할 필요는 없다.
종이를 펴고 눈 하나를 찍는다. 누군가는 화가 난 듯하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우습다고 한다. 그는 답해도 되고 답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는 누구도 서둘러 최종 해설을 써 줄 필요가 없다. 화가 자신까지 평생 흰 눈을 뜨는 물고기로 만들 필요도 없다.
종이는 아직 넓게 비어 있다. 이 사람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곳을 먹에 내주지 않았고 앞으로의 모든 만남을 미리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고, 웃고. 그 눈을 잠깐 거기에 두자. 화가를 겪어 온 사연만으로 다 설명하지 말고, 보는 이에게 다시 볼 시간을 주자.
읽기 안내와 출처
미술관 자료의 출생 연도에는 1624년과 1626년 등 차이가 있어 나이는 어림값으로 썼다. 행동 변화나 침묵에 관한 전승을 진단으로 바꾸지 않았다. 동물의 눈과 서명, 인물 비교는 감상의 제안이지 유일한 심리 설명이 아니다. 마지막 다리는 문학적 상상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물고기와 바위, 1699년 · 고궁박물원: 연꽃과 바위, 물새 및 주탑 자료 · 스미스소니언: 팔대산인의 예술 · 난카이대학교: 인창하이의 하상화도 서문 · 클리블랜드 미술관: 물고기와 바위 두루마리 · 진서 권49: 완적전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