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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결혼론 · 07

떠난 뒤에도 끝나지 않은 것들

사랑과 약속, 함께 사는 생활과 절차가 같은 날 끝나는 것은 아니다. 떠나면서도 그 세월이 실제로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어떤 사랑은 죽음 뒤에도 남는다.

Han Qin ·

안란은 두헝에게 떠나겠다고 말하기 전 이미 일 년 동안 생각했다. 그해에도 여느 때처럼 수요일마다 그의 어머니를 물리치료에 모시고 갔고, 함께 밥을 먹고 명절이면 찾아갔다. 많은 일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사랑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떠나려고 해. 두헝은 처음에는 당신이 지쳤을 뿐이라고 했고 나중에는 화가 나서 몇 마디를 더 했다. 이듬해 이월 그녀는 언니 집으로 옮겼다. 유월에는 절차를 마쳤다. 칠월에도 어머니와 병원에 두 번 다녀왔고, 그 뒤 두헝의 여동생에게 그 일을 넘기는 방법을 의논했다.

이 결혼이 정확히 어느 날 끝났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날짜가 답처럼 보이지만 어느 것도 전부를 말해 주지는 못한다. 사랑에는 사랑의 시간이 있고 오가는 관계에는 그 시간이 있으며, 제도상 해소에는 따로 절차가 있다. 그 세월을 바탕으로 삶을 꾸려 온 사람들이 날짜 하나가 지났다고 서로 몰랐던 때로 함께 돌아가지는 않는다.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과거가 모두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안란이 그해에도 약속한 일을 했다는 것이 반드시 두헝을 이용했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이 달라졌어도 약속을 진지하게 지켰다면 그 약속의 몫은 여전히 진짜다. 이것이 모든 숨김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즉시 떠나지 않은 사람을 모두 속인 사람으로 판정할 수도 없다.

사랑이 끝났는지는 우선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마주할 일이다. 다른 사람이 밥을 짓고 병원에 동행하고 여전히 집에 산다는 이유로 사랑이 남아 있다고 대신 인증할 수는 없다. 새로운 끌림이 생겼거나 한 번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예전 사랑이 벌써 전부 사라졌었다고 거슬러 판정해서도 안 된다. 말과 행동은 책임 있게 마주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읽을 허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결혼론이 살펴보는 것은 양쪽 모두 사랑하는 관계다. 한쪽의 사랑이 끝나면 더 이상 같은 전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분석의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지 두 사람에게 반드시 헤어지라는 뜻이 아니다. 지난날을 부정하는 뜻도 아니다. 이후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지는 논의 범위를 설명하는 한 문장이 대신 결정하지 않는다.

두헝은 슬퍼할 수도, 물을 수도, 자신은 여전히 함께하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의 감정을 서둘러 달래 없애려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당신은 지쳤을 뿐이야”라는 말로 안란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전부 물리친다면, 그는 단순히 바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녀의 몫까지 대신 말해 버리는 셈이다.

나중에 생각이 분명해졌다고 예전 마음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은 아니다. 나중에도 여전히 진심이라고 상대가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별이 가장 괴로운 이유 중 하나는 더 이상 둘 사이에서 함께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여전히 각자 안에서는 일어난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달라졌다고 설명하는 것은 허락을 신청하는 일이 아니다

다른 방식도 있다. 한 사람은 이미 약속했던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면서도, 그 변화를 알리지 않은 채 상대가 예전 약속대로 내일을 계획하게 둔다. 상대는 일할 기회를 거절하거나 돌봄 일정을 더 이어 가면서 그때의 약속이 그대로 있다고 믿는다. 이런 영향은 떠나는 사람의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생각을 정리했다고 여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떠나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한 일을 마주해야 하며, 무엇이 달라졌는지 상대가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해는 동의와 다르다. 상대가 알아들었어도 믿지 못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거나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게 전해진 떠나겠다는 의사가 저절로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정해진 형식의 작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표현과 전달 방식은 달라도 된다. “얼굴을 보고 분명히 말해야지”라는 요구와 안전을 맞바꾸어서는 안 된다. 위협이나 실제 통제를 받고 있다면 상대가 마침내 끝을 인정할 때까지 필요한 보호를 미뤄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위험한 접촉을 정직함의 대가로 삼지 않는다.

자신이 책임을 인정한 것, 상대가 알게 된 것, 상대가 동의한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앞의 두 가지도 서로를 대신할 수 없다. 마음속으로 책임졌다고 상대가 이미 아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알렸다고 실제 영향을 다 처리한 것도 아니다. 과거에 남긴 일은 계속해서 구체적으로 마주할 것을 요구한다.

지키지 못한 약속일수록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방해를 받아 못 지킨 것과 처음부터 진지하게 약속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 두 사람이 함께 약속을 바꾼 것도 한쪽이 어긴 것과 같지 않다.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말과 행동, 조건과 흔적이다. 한 번 이행하지 못한 사실만으로 한 사람 마음속의 모든 진실과 거짓을 알아낸 듯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나는 다 설명했어”라는 말로 상대가 그동안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대신 선언할 수 없다. 자기 떠남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의 슬픔을 대신 끝낼 수는 없다. 상대가 여전히 괴롭다는 것만으로 떠날 자격이 없다고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그 괴로움은 들어 줄 가치가 있지만 영원히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자물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떠나도 남은 일에는 저마다의 시간이 있다

관계에서 떠나는 것과 제도상 혼인을 해소하는 일이 동시에 끝날 필요는 없다. 후자에는 구체적인 규칙과 절차가 있다. 이 글은 지역을 넘나들며 통용되는 법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실제로 떠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집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관계에서 자신의 몫을 실제로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신분증이나 서류, 연락 수단, 경제적 조건, 실제로 실행될 수 있는 불이익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아야 한다. 대가가 드는 것과 통로가 실제로 막힌 것을 같은 말로 다룰 수는 없다. 형식상 문이 있어도 너무 멀어 닿지 못할 수 있다. 또 통로가 남아 있다는 이유로 머무는 사람이 자유롭게 머물기를 받아들였다고 대신 인증할 수도 없다. 문이 어떤 상태인지만 보고 그 사람 자신의 이유를 읽어 낼 수는 없다.

두려워서 당분간 집에 머무는 사람도 자기 삶을 가질 자격을 잃는 것은 아니다. 가로막힘을 겪으면서도 진심으로 머물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마음이 가로막음을 정당화하지는 않고, 가로막음이 그 사람이 스스로 부여한 모든 의미를 빼앗지도 않는다. 둘은 각각 마주해야 한다.

함께 키워 온 아이는 혼인이 해소되었다고 공동의 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재산과 실제로 들인 노력, 돌봄과 다른 공동의 계획에도 계속 처리할 부분이 남는다. 한쪽이 떠난다고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을 아직 다 처리하지 못했다고 결혼을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결론이 저절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안란이 칠월에도 어머니를 두 번 병원에 모시고 간 것은 맡았던 일을 성실하게 넘기는 과정일 수 있다. 사실은 돌아오고 싶었다는 뜻일 필요는 없다. 이후 더는 가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계획이 있었는지 묻지 않은 채 과거를 지워 버렸다고 단정할 수 없다. 무엇을 구체적으로 약속했고 나중에 어떻게 넘겼는지를 보는 편이 매정한 사람이냐는 총평보다 더 많은 내용을 담는다.

두 사람이 함께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다가 나중에 거두어들인 경우도 같다. 준비에 쓴 몇 년과 마련해 둔 조건은 실제로 있었다. 계속하지 않았다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돌아와 과제를 완성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결혼을 계속해야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 기억될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떠남과 다른 끝도 있다. 두헝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머니는 그의 돋보기를 서랍에 두었다. 이제 마음을 좀 놓으라는 말을 들으면 알겠다고 했다. 이튿날 물건을 정리할 때도 그 작은 칸은 여전히 남겨 두었다.

사별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몫을 거두어들인 것이 아니다. 제도가 어떻게 기록할지에는 제도의 규칙이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이 여전히 어떻게 사랑하는지는 사망 날짜가 대신 마무리할 수 없다. 사람이 더는 곁에 없다는 것과 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다르다. 지금도 이 사랑이 실제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려고 여기서 다른 세계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

어머니는 안경을 간직할 수 있고 언젠가 오래된 옷을 남에게 줄 수도 있다. 어느 행동 하나만으로 더 충실하다거나 마침내 잊었다고 증명되지는 않는다. 그녀의 슬픔과 생활, 생길 수도 있는 새로운 관계는 다른 사람이 추모를 위해 짜 놓은 달력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헤어지는 사람도 짐을 싸기 위해 결혼 전체를 잘못이었다고 정리할 필요는 없다. 사랑했고 진지하게 노력했으며 상처도 주었고 나중에는 계속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함께 있을 수 있다. 따뜻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상처를 변명하는 것은 아니다. 상처를 말한다고 실제로 좋았던 것까지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안란이 떠난 뒤 두헝은 마침내 수요일 어머니의 일을 맡았다. 처음에는 몹시 낯설었지만 이후 여동생과 일정을 다시 짰다. 이 이야기에는 두 사람의 화해를 약속할 만큼 충분한 정보가 없다. 실패라는 꼬리표를 붙일 필요도 없다. 다만 두 사람이 더 이상 예전 방식으로 살지 않으며, 어떤 일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어받고 있을 뿐이다.

결혼에는 이런 여지가 여럿 있을지도 모른다. 머물 수 있지만 붙잡혀 머무는 것은 아니며, 떠날 수 있지만 상대의 세월을 가져다 버리지는 않는 것. 끝에서 누구의 선택도 대신 써 주지 않는다. 다만 조금 천천히 할 한마디를 위한 자리를 남겨 둔다. 그것은 진짜였다. 그 뒤의 삶 역시 진짜다.

원 논문과 이 글의 범위

이 글은 결혼론 논문 여덟 편을 바탕으로 주요 구별과 일상의 예를 살려 썼다. 모든 기술적 명제와 철학적 비교 독해를 항목마다 재현하지는 않는다. 원문의 영어판은 독립적으로 다시 썼으며, 이 한국어판도 논지와 예시를 보존하면서 한국어에 맞게 옮겼다. 부부 등장인물과 확장한 생활의 세부 사항은 모두 허구의 예시다. 실제 사례가 아니며 특정한 결혼에 처방을 내리지도 않는다.

논문은 성인 두 사람 사이의 한 종류의 결혼으로 논의 범위를 한정한다. 다른 형태를 부정하거나 범위 밖의 사람들에게 우열을 매기지 않는다. 예시에는 남녀 부부가 자주 등장하지만 성별 조합은 논의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제도상 인정과 해소에는 구체적인 규칙이 적용된다. 이 글은 현행 법률 안내가 아니며, 마음속 사랑을 검사하거나 필요한 안전과 보호를 대신하지 않는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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