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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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 학습 연작
제4편 · 총 4편 · 14DD → 15DD

타자의 목적을 이해하는 학습

14DD에서 15DD로 건너가며, 읽어 냄이 아니라 동의·철회·경계·공동 수정으로 타자의 독립된 목적을 인정하는 법을 살핀다.

Han Qin (秦汉) · 2026

좋은 뜻으로 시작한 조언이 왜 상대를 작게 만들까. 선배는 후배의 잠재력을 확신하고, 부모는 자녀의 안전을 걱정하며, 팀장은 구성원의 성장을 바란다. 그런데 “나는 너를 잘 안다”는 확신이 커질수록 당사자가 자기 목적을 말할 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타자를 내 이야기의 등장인물로 만드는 역설이다.

방향이 생기면 맹점도 생긴다

14DD의 양도할 수 없는 방향은 선택을 견디게 하지만, 세계를 읽는 강한 기준이 된다. 교육을 삶의 핵심으로 삼은 사람은 타인의 망설임을 게으름으로 보고, 조직의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은 퇴사를 배신으로 읽을 수 있다. 자신의 방향이 분명할수록 타자도 같은 지도를 보고 있으리라 추측하기 쉽다.

이 오류가 필연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방향이 강한 사람도 겸손할 수 있고, 방향이 흐린 사람도 타자를 도구화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조적 위험이다. 내 목적이 해석의 기준이 될 때 타인의 행동을 내 목적에 유리한 예측으로 압축하기 쉬워진다.

15DD는 타자의 목적을 인정하는 좌표다

이 글에서 15DD는 타자가 자신의 목적을 독립적으로 말하고 수정할 권리를 인정하는 분석 좌표다. 뇌 부위, 공감 능력 검사, 도덕적 계급, 관계가 좋은 민족의 특성이 아니다. 14DD보다 숫자가 크다는 이유로 더 우월한 사람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SAE가 자기 목적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 세운 철학적 좌표다.

인정의 핵심은 내가 상대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아내는 데 있지 않다. “내가 보기엔 네 진짜 꿈은 이것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인정은 해석의 점유가 될 수 있다. 더 나은 문장은 “내가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는가, 지금도 그런가, 바꾸거나 철회하고 싶은가”다. 타자는 내 모델을 승인하고 고칠 권리를 가진다.

말할 수 없는 상태도 고려해야 한다. 어린이, 언어 장벽이 있는 사람, 의사소통에 지원이 필요한 사람의 목적을 현재의 유창한 진술만으로 판단하면 능력주의가 된다. 반복되는 선택과 거부, 몸짓, 보조 의사소통을 관찰하고 가까운 사람의 해석을 참고하되 어느 대리인도 최종 소유자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가능한 범위에서 당사자의 참여와 이의 제기 통로를 계속 넓히는 것이 인정이다.

인정은 읽어 내기가 아니다

표정과 말투, 오랜 관계는 상대의 마음을 추정하게 돕는다. 공감 정확성 연구도 타인의 상태를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음을 보여 주지만, 정확도는 맥락에 따라 달라지고 자신감과 실제 정확도의 관계도 강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단일 상관계수로 “인간은 타자를 이해할 수 없다”거나 “15DD가 측정됐다”고 결론 낼 수 없다.

따라서 인정은 예측 능력보다 절차에 가깝다. 추정임을 표시하고, 당사자의 말을 우선 자료로 대하며, 말이 바뀌었을 때 모순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당사자의 진술도 언제나 완전하거나 안전한 것은 아니므로 공동으로 결과를 검토한다. 이해는 한 번 맞히는 퀴즈가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합의다.

동의·신뢰·승인은 서로 다르다

타자의 목적을 인정한다고 그 목적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한다고 말할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선택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목적도 독립된 것으로 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계획에도 반대할 수 있다. 인정과 승인, 협력, 친밀감을 하나로 묶으면 경계가 사라진다.

예를 들어 동료가 빠른 승진을 원하고 나는 연구의 자율성을 원할 수 있다. 서로의 방향을 인정한 뒤 역할을 나눌 수도 있고, 조건이 맞지 않아 함께 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합의에 실패했다고 인정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거래하지 않음”은 때로 가장 정직한 결론이다.

동의는 계속 확인되고 철회될 수 있어야 한다

어제의 동의가 오늘의 동의를 자동 보장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멘토링, 친밀한 관계에서 사람은 새 정보를 얻고 비용을 경험하면서 뜻을 바꿀 수 있다. 15DD의 실천은 최초의 “예”를 소유권 문서처럼 붙드는 대신, 결정의 범위와 기간을 명확히 하고 철회 경로를 남기는 일이다.

권력 차이가 클수록 형식적 동의만으로 부족하다. 지도교수의 제안, 상사의 야근 요청, 부모의 진로 권유에 “아니요”라고 말했을 때 실제 불이익이 큰가를 봐야 한다. 침묵을 동의로 읽지 않고, 생각할 시간과 별도의 신고 통로를 제공하며, 철회 뒤 보복하지 않는 제도가 인정의 조건을 만든다.

첫 번째 긴장: 같은 자원을 원하는 경우

두 사람의 목적이 모두 정당해도 시간, 예산, 자리 같은 자원은 한정될 수 있다. 이때 상대의 목적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내 몫을 모두 양보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최소 조건, 교환 가능한 부분, 결정 규칙을 공개하고 협상해야 한다. 인정은 갈등을 없애는 마법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사람을 수단으로만 취급하지 않는 규율이다.

한국의 팀 문화에서는 “분위기를 위해” 이견을 접는 사람이 관계적인 사람으로 칭찬받기도 한다. 그러나 일방적 양보가 반복되면 한 사람의 목적이 공동체의 연료가 된다. 돌아가며 부담하기, 회의록에 반대 의견 남기기, 자원 배분 기준 공개하기 같은 제도가 관계의 미덕보다 더 안정적으로 인정을 지킨다.

두 번째 긴장: 방향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한 사람은 지역 공동체의 보존을, 다른 사람은 개발과 주거 공급을 우선할 수 있다. 서로의 목적을 정확히 이해해도 충돌은 남는다. 이때 공감의 감동으로 합의를 연출하기보다, 각 방향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과 수정 가능한 수단을 나눠야 한다. 공통 사실도 함께 검증해야 한다.

공동 수정은 “중간에서 반씩”이 아니다.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무엇인지, 의사결정 권한이 정당한지 살핀다. 합의가 안 되면 투명한 규칙에 따라 결정하고 재검토 시점을 둔다. 타자의 독립성은 결과가 내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실제로 감수할 때 의미가 있다.

세 번째 긴장: 상대의 목적이 해를 만드는 경우

인정은 유해한 목적을 존중하거나 실행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폭력, 착취, 차별을 계획하는 사람도 욕구와 이유를 가진 주체이지만, 타인의 안전과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에는 분명한 경계를 세워야 한다. 필요하면 관계를 끊고 제도적 보호를 요청해야 한다.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는 것과 피해를 막는 것은 함께 가능하다. 이유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특히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목적까지 헤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안전이 우선이며, 화해나 대화는 의무가 아니다.

멘토링의 선의가 의존을 만들 때

카리스마 있는 멘토는 제자가 보지 못한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다. 동시에 기회와 평가, 인맥을 한 사람이 쥐면 제자는 자신의 방향과 멘토의 승인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멘토링이 언제나 의존을 낳는다거나 특정 지표가 식민화를 입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권력 집중은 점검할 만한 위험이다.

“멘토가 사라져도 내 방향이 남는가”라는 질문은 유용한 휴리스틱일 뿐 진단 검사가 아니다. 초기에는 도움 없이 방향을 실행할 자원이 없을 수 있고, 관계의 상실이 슬프다고 방향이 가짜인 것도 아니다. 더 구체적인 점검은 여러 조언자를 가질 수 있는가, 이견을 말해도 기회가 유지되는가, 성과의 소유권이 당사자에게 남는가이다.

반식민화의 경계는 함께 설계된다

구조적 식민화는 한 관계나 제도가 타인의 목적을 대신 점유하는 현상을 뜻하며 역사적 식민주의와 동일하지 않다. 일상 관계에서 이를 막으려면 좋은 마음보다 구조가 필요하다. 역할과 기간, 정보 사용 범위, 결정권, 이탈 조건을 명시하고 정기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보람을 경계하고, 도움받는 사람은 모든 책임을 혼자 져야 독립이라는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 의존 자체는 인간의 결함이 아니다. 문제는 상호의존 속에서 한쪽만 목적을 말할 수 있는가이다. 지원은 선택지를 넓히고, 식민화는 지원을 대가로 방향을 요구한다.

공동 프로젝트에서는 목적을 한 번 합의한 뒤 고정하지 말고, 중간 점검에서 각자가 얻고 잃는 것을 따로 말하게 할 수 있다. 회의에서 먼저 말한 사람의 언어가 모두의 목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익명 메모나 개별 면담을 병행하는 방법도 있다. 가장 조용한 사람이 동의했다고 추정하지 않고, 참여하지 않을 선택도 일정에 포함해야 한다.

관계가 끝날 때의 절차도 인정의 일부다. 떠나는 사람을 배은망덕하다고 부르거나 공동 성과의 이름을 지우면 과거의 협력이 소유 관계로 변한다. 기여를 정확히 남기고 자료와 권한을 반환하며, 비밀 유지와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각자가 배운 것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관계의 증거는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헤어질 자유가 실제로 존재하는 데 있을 수 있다.

한국의 관계 언어를 서열로 바꾸지 않기

한국어에는 정, 눈치, 도리, 우리처럼 관계를 세밀하게 말하는 어휘가 많다. 유교적 전통에서도 역할과 상호 책임을 성찰할 자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한국인은 본래 15DD에 가깝다”거나 관계의 순위를 잘 지킬수록 타자를 인정한다고 해석하면 오류다. 관계에 익숙한 문화도 침묵과 위계를 인정으로 착각할 수 있다.

연장자와 후배,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예의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와 지위가 타자의 목적을 대신 말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 “너를 위해서”라는 선의도 당사자가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15DD는 유교적 관계 등급이 아니라 누구도 다른 사람의 목적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한계다.

온라인 추천과 자동화된 의사결정에서도 같은 제한이 필요하다. 시스템이 사용자의 과거 클릭을 잘 예측한다고 해서 앞으로의 목적을 소유하는 것은 아니다. 추천 이유를 설명하고, 기록을 지우거나 관심사를 수정하며, 자동 분류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편리한 예측이 사람의 변화 가능성을 닫지 않게 하는 것이 디지털 환경의 인정 절차다.

목적의 왕국은 예언이 아니라 규범적 지평이다

서로를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는 ‘목적의 왕국’은 아름다운 지평을 제공한다. 그러나 15DD를 가진 사람끼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자연히 돕는다는 경험 법칙으로 쓸 수 없다. 성숙한 사람도 속을 수 있고, 타자를 존중하는 사람끼리도 헤어질 수 있다. 누가 “진짜 15DD”인지 판별하는 엘리트 서사로 바뀌는 순간 목적의 왕국은 다시 위계가 된다.

더 현실적인 모습은 절차적이다. 주장에는 반박 통로가 있고, 동의는 철회 가능하며, 약한 위치의 사람이 보복 없이 말할 수 있고, 협력이 불가능할 때 안전하게 떠날 수 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해서가 아니라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런 장치를 만든다.

다섯 좌표를 다시 잇기

11DD의 기억 흔적은 경험의 재료를 남기고, 12DD의 예측 스크립트는 다음 행동을 빠르게 한다. 13DD의 부정적 성찰은 잘못된 전제와 예측을 수정하며, 14DD는 교환할 수 없는 방향을 묻는다. 15DD는 타자도 자기 방향을 말하고 바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어느 좌표도 검증된 뇌 층이나 고정 연령, 인간의 등급이 아니다.

학습은 위로 한 번 올라가 끝나는 계단이 아니다. 타자의 질문이 내 기억을 바꾸고, 새 사실이 방향을 수정하며, 좋은 자동화가 성찰할 여유를 만든다. 때로는 합의하고, 때로는 경계를 세우고, 때로는 거래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목적을 내가 완성해 주겠다는 야심을 버리고, 서로의 수정 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조건을 함께 만드는 일이다.

중국어 원고를 바탕으로 개념과 사실을 다시 검토하고, 한국어 독자의 생활 맥락에 맞춰 독립적으로 쓴 글입니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