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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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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영화 읽기 · 1 / 3

그들 사이에는 거래가 없었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공개: 2026년 10월 7일

이 글의 목차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한국어판

늦은 밤, 서류 가방을 들고 기차에서 내린 파커 윌슨은 승강장에서 길을 잃은 아키타 강아지를 발견한다. 주인이라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역에서도 맡아줄 수 없다. 그는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간다. 아이 하나를 다 키웠으니 이제 누군가를 돌보는 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다고, 아내가 이미 분명히 말했는데도 말이다.

파커의 삶에 개 한 마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집을 지키거나 일을 하거나 재주를 부릴 동물도, 어떤 미덕을 상징할 존재도 필요하지 않다. 그가 손을 내민 것은 이 동물이 바로 눈앞에 있고, 혼자서는 제 처지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관계가 시작될 때, 파커에게는 아직 하치를 필요로 할 이유가 없었고 하치에게도 보답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1 애착보다 먼저 시작된 돌봄

파커는 실제로 하치의 새 주인을 계속 찾는다. 공고를 붙이고 동료와 역에서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하치를 잠시 머무는 손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케이트의 반대는 매정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이어서다. 개를 키우려면 먹이를 챙기고 산책을 시켜야 한다. 물건이 망가질 수도 있고 수고도 든다. 그 모든 책임을 처음부터 다시 져야 한다.

케이트가 마음을 바꾸는 것은 파커와 하치가 함께 노는 모습을 본 뒤다. 나중에 공고를 보고 전화한 사람이 있지만, 케이트는 이미 다른 사람이 데려갔다고 말한다. 개를 키우는 편이 이득이라는 논리를 찾아낸 것이 아니다. 두 존재 사이에 이미 관계가 생겼음을 알아본 것이다.

이 순서는 중요하다. 먼저 사랑하게 되었기에 도와줄 이유가 생긴 것이 아니다. 처음 베푼 돌봄이 애착이 자랄 시간을 내주었다. 파커가 애정부터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요구했다면, 그 애정이 싹틀 수 있는 공동의 생활도 없었을 것이다.

2 공을 물어 오지 않는 개

파커는 하치에게 공을 물어 오는 법을 거듭 가르친다. 하치는 그를 바라보기만 하고 던진 공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파커가 직접 뛰어가 주워 오게 내버려 둔다. 일본인 동료 켄은 아키타가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데 열심인 개가 아니며 과자 하나로 마음을 살 수도 없다고 말한다. 언젠가 하치가 정말 공을 물어 온다면,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공을 물어 오게 하는 일이 반드시 복종을 시험하는 행위인 것은 아니다. 놀이일 수도, 협력일 수도, 훈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모습은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 파커도 하치가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말을 듣는 것을 이 집에 남는 대가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벌을 주지도 않고, 실망했다고 해서 자신이 ‘자격 미달’인 개를 얻었다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그가 받아들인 것은 개에게 기대할 법한 기능들이 아니라, 눈앞의 이 동물이다. 공을 물어 오지 않는 모습까지도 그가 받아들이는 하치 안에 들어 있다.

3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상

하치는 아침마다 파커를 따라 역까지 갔다가, 오후가 되면 그 기차를 맞으러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다. 파커는 하치에게 길을 가르친 적도, 정해진 시간에 기다리도록 훈련한 적도 없다. 처음에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다 둘은 어느 쪽도 정식으로 제안한 적 없는 생활의 리듬에 함께 들어선다.

파커는 이 일을 남에게 자랑할 재주로 만들지 않는다. 역 문을 나와 하치에게 인사하고 함께 집으로 걸어갈 뿐이다. 그 가치는 오직 되풀이되는 일상 안에 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의 매일의 귀가를 이루는 일부가 된다.

물론 둘 다 얻는 것이 있다. 함께하는 시간, 서로를 알아보는 일, 즐거움이다. 그들 사이에 거래가 없다는 말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어느 쪽도 돌봄을 조건부로 지불하는 대금처럼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관계는 의무를 따져 계산하고 잔액까지 정산할 수 있는 계약이 아니다.

4 영화는 하치의 쓸모를 입증하지 않는다

영화는 하치에게 사람을 구하거나 도둑을 잡거나 시합을 벌이거나 일을 하는 장면을 주지 않는다. 많은 동물 이야기는 결국 사람이 앞서 들인 비용만큼 그 동물이 가치 있었음을 증명한다. 하치는 거의 일부러 그러는 듯 아무런 ‘산출물’도 내놓지 않는다.

파커가 얻는 것은 하치의 존재에서 따로 떼어내 하나의 생산품으로 적어 넣을 수 없다. ‘함께한다는 것’은 하치가 만들어 파커에게 납품하는 물건이 아니다. 두 생명이 같은 길을 거듭 걸을 때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 이 관계를 옹호하려고 숨겨진 쓸모를 강조하면 오히려 핵심을 놓친다. 하치가 남몰래 제공하는 가치가 파커의 지출보다 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애초에 회계 감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5 단 한 번 공을 물어 온 날

파커가 세상을 떠나는 날 아침, 하치는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 늘 하던 외출을 막으려 하고, 공을 가지고 역까지 뒤쫓아와 처음으로 공을 물어 온다. 파커는 기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하치와 놀아준다. 그러고는 다섯 시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기차에 오른다.

그날 오후, 파커는 역 문을 나서지 않는다. 강의 도중 쓰러진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영화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이유’를 기대하게 했지만, 끝내 그 이유를 내놓지는 않는다. 하치는 병을 감지한 것일까, 헤어짐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읽어낼 수 없는 충동을 따랐을 뿐일까? 뒤이어 벌어진 일들이 이 행동에 엄청난 무게를 싣는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을 시간을 거꾸로 돌리듯 그때 하치의 마음속에 집어넣을 수는 없다.

이 관계에는 돌봄뿐 아니라 해석을 절제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하치가 사람에게 중요한 존재이기 위해, 먼저 사람 앞에 속마음을 낱낱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

이 글이 다루는 영화는 라세 할스트롬이 감독하고 스티븐 P. 린지가 각본을 쓴 2009년작 《하치 이야기》다. 영화는 일본의 실제 하치코 이야기를 미국의 작은 마을로 옮겼다. 이 글은 이 허구적 각색을 분석하며, 영화를 역사적 사실의 기록으로 취급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