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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동화 읽기 · 03

개구리는 약속을 들고 궁전으로 온다 — 약속한 일은 어디까지 해야 할까

『개구리 왕자, 또는 철의 하인리히』 — 도움을 인정하고 속인 일을 책임지는 것과, 친밀한 관계를 강제로 내주는 것은 같지 않다.

Han Qin ·

금공이 우물에 빠지자 공주는 서럽게 운다. 가장 아끼던 장난감인데, 우물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어 혼자 꺼낼 수 없다. 물에서 고개를 내민 개구리가 무엇을 주겠느냐고 묻는다. 공주는 옷이며 진주, 보석, 머리에 쓴 금관까지 무엇이든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개구리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공주의 벗이 되어 옆에 앉고, 같은 금접시로 먹고, 같은 잔으로 마시며, 밤에는 같은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한다.

공주는 곧바로 약속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개구리는 물속에서 제 동족들과 지낼 뿐인데, 어떻게 정말 사람의 벗이 되겠는가. 요구를 지킬 생각은 없고 공부터 되찾으려는 것이다. 개구리가 우물에 잠수해 금공을 물고 나오자 공주는 집어 들고 궁전으로 달려간다. 개구리는 빨리 뛰지 못하니 함께 데려가 달라고 뒤에서 외치지만, 공주는 돌아보지 않는다. 도움은 받아놓고, 도와준 존재는 우물가에 남겨둔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나중에 공주가 겁먹는 대목에서부터 시작할 수는 없다. 그녀는 죽음의 위협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가족을 구하려고 약속한 것도 아니다. 잃은 것은 아끼던 장난감이었다. 이용한 것은 상대에게 이행을 요구할 힘이 없으리라고 확신하며 한 약속이다. 개구리를 얕잡아본 것은 못생겼다고 여긴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요구를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차피 궁전에 들어오지 못할 테니, 오늘 한 말도 떠나면 사라질 거라고 여긴다.

다음 날 개구리는 정말 찾아온다. 공주가 아버지와 신하들과 식사할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나가서 개구리를 본 그녀는 곧바로 문을 닫고 놀라 자리로 돌아온다. 아버지는 까닭을 묻고 우물가에서 한 거래를 들은 뒤, 문을 열라고 한다. 왕의 판단은 분명하다. 약속했으면 지켜야 한다. 곤란할 때는 도움을 받고 일이 끝났다고 도와준 이를 싫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공주가 저지른 잘못 하나를 정확히 짚는다. 높은 지위의 사람이 지킬 생각도 없는 말 한마디로 남의 수고를 얻을 수 있다면, 낮은 쪽은 약속의 상대가 되기조차 어렵다. 공주에게는 궁으로 돌아갈 길이 있지만 개구리에게는 그녀의 승낙밖에 없다. 상대가 개구리라는 이유로 딸을 책임에서 빠져나가게 하지 않은 점은 남겨두어야 한다. 궁전 밖 우물가에서 받은 도움이라고 식탁 위 예절보다 가벼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공주가 처음 내놓은 것은 재물이고, 개구리가 결국 요구한 것은 관계다. 진지하게 감사받는 데 그치지 않고 벗이 되어 일상으로 들어와, 식기와 침대를 함께 쓰려 한다. 한 문장의 약속에 넣어두면 그저 같은 대가의 여러 부분처럼 보이기 쉽다. 실제로 실행할 때에는 다르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원치 않는 마음도 점점 구체적이 된다. 도움 한 번을 보상하는 일과 누구에게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만드는 일을, 끝까지 같은 방식으로 할 수는 없다.

개구리가 공주의 의자 곁으로 뛰어와 안아 올려달라고 한다. 공주가 머뭇거리자 아버지가 시킨다. 이어 식탁으로 올라온 개구리는 금접시를 가까이 밀어 함께 먹자고 한다. 개구리는 만족스럽게 먹지만 공주는 거의 삼키지 못한다. 그림 형제는 그녀의 거부감을 지우지 않았고, 따르다 보니 새 벗을 차츰 좋아하게 되었다고도 쓰지 않았다. 적어도 이 식사에서는 겉으로 함께하는 모습은 만들어졌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공주의 혐오감 자체가 모든 문제의 답은 아니다. 앞선 오만을 ‘나는 싫다’는 말로 이어가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싫음을 지키는 데만 집중하면, 약속을 안 지켜도 되는 자리에서 설명도 안 해도 되는 자리로 옮겨갈 뿐이다. 하지만 도움을 인정하고 멸시를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떤 친밀함이든 강제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속인 일에 책임지라고 할 수는 있어도, 없던 우정이나 사랑까지 느끼라고 할 수는 없다.

식사 뒤 개구리는 피곤하다며 침실로 데려가 잠자리를 준비하라고 한다. 공주는 울기 시작한다. 차가운 몸이 두려워 만지기도 싫다. 왕이 다시, 도와준 이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고 재촉하자, 손가락 두 개로 집어 위층으로 데려가 방구석에 둔다. 여기까지 오면 아버지의 명령은 더는 손님에게 식탁의 자리를 내주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딸이 오늘 밤 누구와 같은 방에 있어야 하는지까지 정하고 있다.

개구리는 구석에 머물지 않는다. 침대 옆으로 와서 다시 안아 올려달라고 하고, 안 그러면 아버지에게 이르겠다고 한다. 이제 도움을 준 쪽의 요구에는 궁정의 권위가 뒷받침된다. 공주는 문을 닫아 요구를 끝낼 수도 없다. 왕이 약속을 지키라고 명령하자, 우물가에서 나눈 사적인 대화는 궁문과 식당과 침실을 통과하는 명령으로 바뀐다.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올 때마다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처음의 ‘네가 약속했잖아’라는 말뿐이다.

하지만 약속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안의 모든 내용을 강제로 실현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공주가 일부러 속여서는 안 되었고, 개구리가 궁전에 와서 갑자기 값을 올린 것도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같은 침대에서 자겠다는 요구는 우물가에서 이미 밝혔다. 그녀는 그런 말을 들은 적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친밀함을 상대에게 넘겨주고 끝난 물건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과, 그 뒤로는 영영 그 접근을 거절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은 다르다.

이 한계를 인정한다고 개구리를 다시 아무 가치 없는 존재로 몰아낼 필요는 없다. 공주는 도움을 받고 상대의 믿음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한다. 사과하고, 처음에는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줄 수 있는 보답을 제안할 수 있다. 상대는 만족하지 않을 수 있고, 다시는 도와주지 않거나 믿지 않을 수도 있다. 어느 것도 가벼운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이제 신의를 알게 되었다는 증거로 같은 침대에서 잘 필요는 없다. 원래대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수습하려면 반드시 몸의 경계를 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화는 세 사람이 이런 방법을 찾게 하지 않는다. 공주는 끝내 격분해 개구리를 붙잡아 벽에 세게 내던진다. 그림의 1857년 텍스트에는 훗날 널리 알려진 입맞춤이 없다. 개구리를 이해한 뒤 다정하게 받아들이는 과정도 없다. 분노의 행동 직후 개구리는 아름답고 다정한 눈을 지닌 왕자로 변한다. 불안한 강제적 접근의 장면에서, 저주가 풀리고 결혼이 이루어지는 결말로 이야기가 갑자기 넘어간다.

변신은 눈앞의 상대를 실제로 바꾼다. 그렇다고 방금까지의 일들이 모두 같은 설명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공주는 그렇게 하면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던진 것이 아니다. 뒤이어 마법이 성공했다고 상대를 해치는 행동을 본받을 만한 방법으로 삼을 수는 없다. 개구리가 사악한 마녀의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도, 앞서 친밀한 공간을 요구한 일에 대해 더는 답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결과 덕에 둘은 곤경을 벗어났지만, 벗어난 방식이 처음부터 유일하게 타당한 길이었다고 증명되지는 않았다.

왕자는 자신이 마법에 걸렸고, 우물가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공주뿐이었다고 말한다. 이 정보는 늦게 도착한다. 약속할 때 공주는 몰랐고, 아버지도 이행을 명하기 전에 물어보지 않았다. 그때 실제로 행동을 이끈 것은 금공을 되찾으려는 욕구와 약속에 대한 이해, 왕의 명령이었다. 저주를 풀 다른 숨은 조건이 있었다고 해도, 나중에 안 비밀을 공주가 이미 받아들인 임무로 거꾸로 써넣을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 큰 희망이 걸려 있다고, 모르는 사이에 그 희망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아니다.

텍스트는 이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왕자가 그녀의 사랑하는 동반자이자 남편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짧은 문장으로 동화의 혼인은 완성된다. 그러나 공주가 방금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펼쳐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모습에 기뻤는지, 이제 다시 함께 살고 싶어졌는지, 이야기는 그녀가 길게 말하게 하지 않는다. 평생 불행했으리라고 만들어줄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 텍스트에 없는 충분한 의사 확인을 덧붙일 수도 없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 화려한 마차가 궁 앞에 오고, 뒤에는 왕자의 하인 하인리히가 서 있다. 주인이 개구리가 되었을 때, 슬픔에 심장이 터질까 두려워 가슴에 쇠테 세 개를 둘렀던 사람이다. 주인이 풀려난 이제 그는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르도록 돕고 뒤를 따른다. 조금 가자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왕자는 마차가 부서졌다고 생각하지만, 하인리히는 자기 심장을 묶었던 쇠테가 풀리는 소리라고 설명한다.

하인리히의 등장으로 같은 이야기 안에 다른 친밀함이 보인다. 그는 우물가에서 값을 흥정하지 않았고, 왕의 명령 때문에 곁에 있고 싶어진 것도 아니다. 충성은 이미 있었으며, 주인이 돌아오자 기쁨에 쇠테가 하나씩 끊어진다. 물론 하인의 삶에 위계나 의무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이 결말에서는 감정이 그 자신에게서 나온다. 앞에서는 약속을 통해 애써 동반자를 얻으려 했지만, 뒤에 나오는 사람은 이미 슬픔 속에서 주인과 이어져 있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대비라고 단정하지 않아도, 독자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공주는 자신을 도와주었지만 존중하지 않던 상대를 진지하게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개구리가 바라는 관계 역시, 명령 때문에 곁에 머무는 사람을 얻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신의를 지키려는 왕 역시 처음에 일리가 있었다고, 약속이 어디까지 가는지 더는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이 각각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한 문장 안에 넣었을 때, 서로 구별되어야 할 한계가 사라졌다는 데 있다.

우물 속 금공은 이미 돌아왔다. 하지만 관계는 물건을 가져오듯 통째로 전달할 수 없다. 약속은 설명과 보상, 기만을 멈추는 행동을 요구할 수 있고, 상대가 믿음을 거두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침대 곁에 이르러 사랑과 평생의 동행을 요구할 때에도 어제의 대답만 들어서는 안 된다. 마지막에 마차는 두 사람을 싣고 멀어지고, 하인리히의 쇠테는 기쁨에 끊어진다. 온전히 되찾은 금공보다 더 물어볼 만한 것은, 관계가 어떻게 명령 없이도 사람 자신에게서 시작될 수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출처

현재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그림 1857년판과 명시한 영어 번역을 따라 읽는 글이지 원작 전체의 번역이 아니다. 공주의 기만, 개구리의 실제 도움, 친밀함을 강제할 수 없는 한계를 함께 남겼다. 입맞춤으로 변하는 판본과 섞지 않으며, 마법이 성공했다는 결과로 행동의 정당성이나 공주의 속마음을 만들어 넣지 않는다.

판본에 관한 주석

텍스트의 바탕은 그림 형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 1857년 제7판 제1화 「개구리 왕자, 또는 철의 하인리히」이며, 독일어 본문과 마거릿 헌트의 영어 번역 제1화를 참조한다. 이 글은 해석이지 문장별 번역이 아니다. 생명 위기가 아니라 금공을 잃은 사건, 처음부터 명시된 동침 요구, 약속을 지킬 뜻이 없었던 공주, 아버지의 강제, 벽에 던져 저주가 풀리는 과정과 철의 하인리히 결말을 남긴다. 친밀함의 한계를 묻는 것은 이 글의 독해이며 그림 형제의 원래 교훈을 대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법의 성공을 폭력 일반의 정당화로 만들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