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을 만들면 보상하려는 것이 자연스럽다. 망가뜨린 물건은 새로 사고, 쓴 돈은 갚고, 놓친 시간은 다른 일정으로 메울 수 있다. 보상은 책임을 “미안해”라는 말에만 두지 않고 현실로 가져온다. 그러나 어떤 일은 원래 상태로 돌릴 수 없다. 밖으로 나간 비밀은 다시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지 않고, 놓친 기회는 똑같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으며, 깨진 신뢰도 물건처럼 제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이때 두 극단이 생긴다. 하나는 “이미 보상했으니 이제 끝내야 한다”는 태도다. 내가 생각한 만큼 갚았으니 상대도 예전처럼 믿고 가까워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다른 하나는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니 빚도 끝이 없다”는 태도다. 과거의 상처가 앞으로의 모든 요구를 정당화하고, 어떤 변화도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회복은 구체적인 손실부터 보아야 한다. 실제로 무엇을 잃었고, 무엇은 돌려줄 수 있으며, 무엇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가. 잘못한 사람이 선물이나 특별한 이벤트처럼 자기 죄책감을 덜어 주는 보상을 고를 때도 있다. 그러나 상대가 필요한 것은 정보 공개, 행동의 변화, 다시 선택할 기회, 혹은 예전 관계로 돌아가지 않을 자유일 수 있다.

보상을 만든 사람이 혼자 회복 방식을 정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상처받은 사람의 모든 요구가 자동으로 옳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응은 손실과 연결되어야 한다. 한 번의 거짓말은 비슷한 약속을 신중하게 보게 할 수 있지만 모든 생활을 검사할 권리까지 주지는 않는다. 손해가 진짜인 만큼 그 범위도 진짜여야 한다. 과거가 모든 미래를 삼키지 않게 하는 선이 필요하다.

어떤 빚은 불완전한 방식으로만 책임질 수 있다. “네가 잃은 것을 온전히 돌려줄 수는 없어. 대신 부정하지 않고, 가능한 부분을 고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하겠다.” 상처받은 사람도 결정해야 한다. 이 일이 앞으로의 판단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할지, 다른 조건으로 계속할지, 거리를 둘지, 관계를 끝낼지 정해야 한다.

새로운 친절이 예전의 상처를 없애지는 않고, 오랫동안 달라졌다고 해서 상대가 반드시 다시 믿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행동은 그저 새로 생긴 사실이다. 잘못한 사람은 변화를 즉시 용서로 바꾸어 달라고 할 수 없고, 상처받은 사람은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상대의 미래를 끝없이 소유할 이유로 만들 수 없다.

모든 빚이 정확히 결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영원히 추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정직한 회복은 메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는 것을 함께 인정한다. 그 일은 기억되고 관련된 판단에 영향을 주며 알맞은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해석하는 유일한 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