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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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조각 · 서양 조각

베르니니 부자의 《소년과 용》: 웃는 입과 벌려진 입

아이를 따라 웃기 전에 손부터 보자. 태연한 웃음과 억지로 벌어진 용의 입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이 글의 구성

소년과 함께 웃기 전에, 그 손이 무엇을 하는지 보자.

화면 중앙에서 통통한 한 손이 용의 입 일부를 붙잡고 있다. 구부린 손가락이 한 줄로 모인다. 다른 손은 용의 머리를 누른다. 용의 긴 주둥이는 비스듬히 위로 향하고, 벌어진 입은 소년의 가슴과 배 앞에 놓인다. 더 위로 가면 아이가 고개를 기울이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다. 두 입은 아주 가깝다. 하나는 편안해 보이고, 다른 하나는 매우 크게 벌려져 있다.

둥근 얼굴에 먼저 끌렸다가 두 팔을 따라가며, 미소가 동작의 전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쉽다.

베르니니 부자의 《소년과 용》, 정면 위쪽에서 조금 내려다본 전신. 벌거벗은 어린아이가 용의 몸 위에 앉아 머리를 화면 왼쪽으로 기울인다. 두 손은 각각 용의 입을 붙잡고 머리를 누른다. 용의 긴 주둥이는 비스듬히 위로 뻗으며, 몸은 아이의 두 다리 사이를 가로지른다.
그림 1 피에트로 베르니니와 잔 로렌초 베르니니, 《소년과 용》, 약 1617년. 대리석, 55.9 × 52 × 41.5cm. J. 폴 게티 미술관, 소장품 번호 87.SA.42. 미술관이 촬영한 정면의 약간 높은 시점 사진, CC0. 소장품 기록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이 조각은 아직 아기 살이 남아 있는 몸에 비범한 힘을 넣으면서도 몸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아이가 어떻게 앉아 버티고, 용이 어떻게 아이의 팔다리와 뒤엉켜 모이는지도 이 편안함에 참여한다. 벌려진 입은 이 긴밀한 구성을 분수로 쓰려 했을 가능성에도 연결한다. 여기서 놀이 같은 느낌은 싸움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힘을 쓰는 사람이 힘쓰는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작품은 17세기 초 로마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게티는 이를 베르니니 부자의 협업으로 보고, 훗날 교황 우르바노 8세가 되는 마페오 바르베리니의 저택을 위해 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미술관은 소년을 어린 헤라클레스가 독사를 제압하는 고대 전통과 연결한다. 그 전통에서 어린 몸과 놀라운 능력은 원래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눈앞의 조각은 그 능력을 아이가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게 한다. 작품 해설 이 내력을 알면 아이가 왜 괴물을 이길 수 있는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그 힘이 왜 이토록 가벼워 보이는지는 앉은 자세부터 살펴봐야 한다.

1. 힘은 앉은 자세 속에 숨어 있다

아이는 가슴을 펴고 서 있지도, 상대에게 덤비려고 한 다리를 뒤로 뻗어 밀지도 않는다. 낮게 앉아 있다. 한쪽 다리는 화면 왼쪽으로 크게 벌어져 무릎이 둥글게 솟는다. 다른 쪽 종아리는 앞으로 내려와 발을 받침 앞 가장자리에 놓는다. 두 다리 사이는 비어 있지 않다. 용의 굽은 몸이 가로놓여 아이의 배와 손, 발을 비좁고 밀집된 범위로 묶는다.

먼저 아이 몸의 바깥 가장자리만 따라가 보자.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고, 어깨 높이는 다르며, 앞으로 뻗은 팔은 굽고, 무릎은 옆으로 벌어진다. 단정히 앉은 윤곽은 아니다. 하지만 몸의 균형을 잃기 쉬운 뻗음은 나타나지 않는다. 손은 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고, 용의 입은 배 앞으로 옮겨져 있다. 아이는 상대를 쫓아갈 필요 없이 자기 앞에 붙들어 두면 된다. 그래서 상체의 동작은 짧고 가까운 범위를 유지할 수 있다.

낮은 곳의 부피도 이 가까움을 받친다. 벌어진 다리와 가로놓인 용의 몸, 앞쪽 종아리는 모두 받침 범위 안에 남아 넓고 두터운 아래를 이룬다. 위로 갈수록 형태는 줄어들고, 마지막에는 기울어진 머리가 남는다. 아이의 얼굴은 생기 있어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상당히 조밀한 접촉 관계가 모여 있다. 힘들이지 않는 듯 보이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작품이 아이를 공중에 뜬 두 손만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앉은 자세가 이야기와 연결되는 곳도 여기다. 용은 아이가 제압하는 대상이면서 아이가 깔고 앉은 몸이다. 서사에서 두 몸은 대립하지만, 조형에서는 따로 서 있는 두 사람처럼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소년의 몸은 용의 부피를 따라 배치되고, 용은 다시 소년의 다리 사이로 들어간다. 괴물은 몸 밖으로 들어 올려져 따로 보여 줄 수 있는 전리품이 되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 가까이에서 깔리고, 붙잡히고, 눌린다.

전체 높이는 약 56cm, 너비는 약 52cm다. 높이와 너비가 비슷한 크기는 이 작품의 기세가 높이 솟는 데 기대지 않음을 알려 준다. 양옆으로 벌어진 다리와 아래의 용 몸은 머리 꼭대기의 높이만큼 중요하다. 화면에서 얼굴만 확대하면 넓은 아래를 잃고, ‘편안함’이 기대는 부피도 잃는다.

2. 살의 둥긂과 발톱의 굽음

앉은 자세 전체를 본 뒤 아이의 손목으로 주의를 옮겨 보자. 붙잡은 손가락은 길고 마디가 뚜렷한 뼈대가 아니라 작은 둥근 부피들이 마디마다 맞붙어 있다. 팔뚝은 손목에서 가늘어졌다가 그 아래에서 곧 손바닥으로 부푼다. 다리도 마찬가지다. 무릎과 종아리, 발목은 곧은 막대 몇 개를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연속해서 불어나고 좁아진다. 우리는 이 변화에서 어린아이 몸의 부드러움을 알아본다.

용의 몸은 다른 읽기를 제공한다. 배에는 가로 방향의 기복이 이어지고, 긴 주둥이 가장자리에는 뾰족한 돌기가 있으며, 머리 옆에는 말려 올라가는 형태가 있다. 아이의 피부는 넓은 곡면을 따라 시선을 미끄러뜨리지만, 용의 표면은 거듭 눈길을 멈추게 해 짧은 요철이나 말린 가장자리를 구분하게 한다. 둘 다 대리석이지만 눈은 같은 종류의 몸으로 읽지 않는다.

차이는 ‘매끈함’과 ‘거침’만이 아니다. 용의 긴 주둥이도 늘어난 부피지만 위로 갈수록 가늘고 길어 보이며 가장자리가 날카롭다. 아이의 뻗은 팔뚝은 손목에 가까워져도 둥근 두께를 유지한다. 인접한 두 형태 중 하나는 단단한 입을, 다른 하나는 꼬집으면 들어갈 듯한 살을 떠올리게 한다. 돌이 실제로 부드러워진 것은 아니다. 부드러운 느낌은 서로 이웃한 부분 사이에서 형태가 어떻게 변하는가에서 온다.

이제 맨 아래를 다시 보면 아이가 괴물을 자기 몸 바깥으로 완전히 떼어 놓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용의 한 발은 앞쪽 발목 곁으로 뻗어, 굽은 발가락 끝이 둥근 종아리에 바짝 붙는다. 반대편에서는 용의 몸이 다리가 이어지는 방향을 일부 가린다. 위의 손은 입을 통제하지만, 아래의 다리는 발톱과 몸통에 얽혀 있다. 아무렇게나 놓인 듯한 아이의 팔다리는 사실 독차지한 공간이 별로 없다.

이 작은 세부는 장면이 ‘귀여운 아이와 이상하게 생긴 장난감’이 되지 않게 한다. 용에게는 자기 발톱과 입이 있고, 눈을 붙잡는 뾰족한 끝이 있다. 그 형태는 여전히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사진에는 이 뾰족한 부분에 반응해 고통으로 긴장한 소년의 얼굴이 없다. 접촉은 보이지만 그에 걸맞은 긴장은 보이지 않는다. 비범한 능력은 이 불균형 속에서 나타난다.

두 몸은 비슷한 대리석 빛깔로 드러나므로 접촉에 선명한 색의 경계가 없다. 눈은 오목한 곳과 가려짐을 따라가야 어디가 다리이고 어디가 용인지 나눌 수 있다. 보는 일에 얽힘을 푸는 작업이 조금 들어간다. 두 물건을 먼저 알아보고 그것들이 함께 놓였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밀집한 곳에서 두 몸을 차츰 구분하는 것이다.

3. 두 입 사이의 거리

아이의 웃음은 과장되지 않았다. 입술 사이에는 가는 틈만 있고,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부푼 볼은 짧은 턱으로 이어진다. 기울인 머리 때문에 두 눈과 입은 수평에서 벗어나 얼굴 전체에 약간의 호기심 어린 기울기가 생긴 듯하다. 사진에서 얼굴은 앞을 향하고, 시선도 두 팔을 따라 용의 입에 곧장 닿지는 않는다.

용의 입은 다른 폭을 차지한다. 긴 주둥이는 거의 아이 가슴 높이까지 서고, 입을 벌리며 생긴 사선은 상체 앞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아이의 작은 입술 틈처럼 얼굴 일부만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머리 전체가 벌어지는 동작에 휘말린다. 아주 좁은 범위에서 미세한 웃음으로부터 커다란 벌어짐으로 눈길을 옮길 수 있으며, 두 손이 바로 그 둘을 연결한다.

이 손 때문에 입 벌리기는 용의 표정에 그치지 않는다. 화면 오른쪽 손가락은 용의 머리에 펼쳐지고, 다른 손은 중앙에서 입의 다른 부분을 꼭 붙잡는다. 한 곳은 누르고, 한 곳은 잡아당긴다. 미술관은 이를 맨손으로 용의 턱을 부러뜨리는 동작으로 설명한다. 소장품 해설 사진을 뼈가 부러지는 정확한 순간으로 읽지 않더라도, 용이 입을 어떻게 다물지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은 보인다.

이제 미소와 동작은 ‘천진함’과 ‘힘’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에 머물지 않는다. 아이의 얼굴은 밖을 향하지만 두 손은 용의 머리를 계속 차지한다. 얼굴은 우리를 머물게 하고, 손은 머무는 동안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려 준다. 어느 쪽도 숨기지 않았지만 둥근 얼굴이 먼저 주의를 받기 쉽다.

장난스러운 놀이처럼 느껴진다면 그 느낌에는 구체적인 조건이 있다. 아이의 머리는 기울고, 몸은 팽팽하게 펴지지 않았으며, 입꼬리는 가볍다. 게다가 상대를 집중해서 지켜볼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후 용의 처지는 그다지 편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거기에도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 입은 두 손에 의해 벌어지고, 몸은 여전히 아이 아래에 있다. 신화 속 어린아이의 인격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붙은 몸들 속에 작품이 대등하지 않은 동작을 어떻게 넣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동작이 앉은 자세와 떨어지지 않기에 웃음도 승리가 끝난 뒤의 표정에 그치지 않는다. 소년은 아직 손을 놓지 않았고 용의 입도 아직 닫히지 않았다. 편안함은 동작 속에서 계속된다. 그 지속 때문에 사진의 고요함에는 조금 기묘한 느낌이 있다. 온 장면이 계속 이렇게 유지되고, 아이는 숨을 고를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

4. 용의 입은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벌려진 이 입은 단지 보라고 만든 것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티가 1988년에 발표한 수집 연구에는 받침 바닥에서 용의 입으로 통하는 구멍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작품이 원래 실내 분수로 계획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중요한 구분이 있다. 통로는 미술관이 보고한 실물 구조이고, 실내 분수는 그 구조에 근거한 용도 판단이다. 사진 자체에는 통로 전체가 보이지 않으며, 원래의 수반이나 설치 높이, 물줄기의 형태도 알려 주지 않는다. 게티 수집 연구, 184쪽

다만 ‘물을 통하게 한다면’이라는 조건을 유지하면 앞의 동작에 한 겹의 의미가 더 생긴다. 아이가 용의 입을 벌리고, 그 입에서 물이 흐른다. 강제로 열린 입은 실제 흐름이 조각에 들어오게 하는 출구가 되기도 한다. 출수구는 아무 곳에나 숨겨져 있지 않다. 이미 우리가 주목한 동작의 중심, 두 손 사이에서 긴 주둥이와 아이의 상체가 이웃하는 곳에 놓인다.

이렇게 상상한다고 과장된 물기둥을 덧붙일 필요는 없다. 거기서 물이 나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보는 시간은 달라진다. 대리석의 손은 더 당길 수 없고 용도 더 몸부림칠 수 없지만, 물은 변하지 않는 그 자리를 계속 지날 것이다. 조각에 새겨 멈춘 동작을 실제로 일어나는 또 다른 움직임이 통과할 수 있다. 영구히 벌어진 입은 한순간이 길어졌다는 뜻뿐 아니라 장치가 계속 작동하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받침의 고르지 않은 표면과 낮은 곳에 모인 몸들은 이 가능성이 완전히 외부에서 덧붙은 용도처럼 느껴지지는 않게 한다. 그러나 그 형태만으로 분수 전체를 복원할 수는 없다. 오늘의 물 흐르지 않는 미술관 사진에는 독립적이고 긴밀한 돌조각의 구성이 남아 있다. 분수에 관한 지식은 조각으로서의 완결성을 지우지 않는다. 같은 구멍이 이야기와 사용에 함께 속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놀이’에도 한 층이 더해진다. 아이는 형상 속에서 용을 다루고, 현실의 관객은 용의 입에서 나오는 물을 보았을 수도 있다. 아이가 실제로 손짓을 바꾸지 않아도 작품은 새로운 볼거리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다. 경쾌함은 미소뿐 아니라 돌조각이 가능한 물의 흐름에 어떻게 자리를 마련했는가에서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꼭 쥔 손을 다시 보자. 용의 입을 열린 위치에 붙들어 두고 우리의 주의도 거기 머물게 한다. 위에는 부드러운 작은 얼굴이, 아래에는 맞붙은 몸들이, 가운데에는 표정과 힘, 용도를 연결하는 구멍이 있다. 이 작품의 기묘함은 강함과 어림을 서로 상쇄하는 데 있지 않다. 아이가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듯 보이려면 이토록 많은 형태가 함께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차츰 발견하게 하는 데 있다.

더 읽고 싶다면: SAE로 다시 보기

사진 맨 위의 머리를 잠시 가리고 어깨 아래만 남겨 보자. 굽은 팔과 용의 입을 쥔 손, 넓게 벌어진 다리는 그대로 있다. 누가 누구를 통제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있지만, 이 만남을 ‘놀이 같다’고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 하나가 줄어든다.

얼굴을 다시 드러내 보자. 바뀐 것은 손의 위치도 용의 입이 벌어진 정도도 아니다. 같은 동작이 드러내는 분위기다. 미소와 기울인 머리가 힘쓰는 몸에 편안함을 얹는다. 조각을 개조할 필요는 없다. 보는 동안 주의의 일부를 거두었다가 돌려놓는 것만으로, 동작을 알아보는 일과 장면 전체에 대한 느낌이 같은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구분할 점이 더 있다. 얼굴을 되돌리는 것은 판단에 무관한 장식을 추가하는 일이 아니다. 얼굴은 지금 힘쓰는 몸의 일부다. 그 편안함 때문에 아래의 손도 힘겹게 일을 끝내는 모습이 아니라 주의를 다른 데 나눌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동작처럼 보인다. 부분의 자세는 바뀌지 않지만 몸 전체 안에서 그 부분이 띠는 의미는 달라진다. 얼굴을 ‘귀엽다’, 손을 ‘힘차다’고 부르고 두 평가를 더하는 것만으로는 이 변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이는 SAE 미학으로 들어가는 한 입구가 될 수 있다. 보이는 한 부분이 전체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재구성하는가. 먼저 얼굴을 가렸다가 되돌릴 때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구분한 뒤, 편안한 얼굴과 힘을 가하는 손이 왜 이토록 선명한 관계를 이루는지 물어보자. 여기서 이론은 계속 질문할 방향을 제공한다. 두 손을 바라보는 수고를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SAE 미학 총론

이미지와 자료 안내

이 글은 게티가 제공한 정면의 약간 높은 시점 사진 한 장을 바탕으로 작품을 자세히 읽는다. 원본은 3561 × 4500픽셀이며 미술관은 보존 처리 후 사진으로 표기한다. 공식 다운로드 파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다른 각도로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충하지 않았고, 사진을 현장 관찰이나 촉각 경험의 기록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바닥에서 용의 입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미술관 연구에 따른 것으로 이 사진에서 독립적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다.

작가와 연대는 현재 소장품 기록에 따라 피에트로와 잔 로렌초 베르니니, 약 1617년으로 표기했다. 초기 출판물의 단독 작가 귀속이나 다른 연대를 작가 표기의 근거로 삼지 않았다. 특정 손이나 얼굴을 부자 중 누가 조각했는지 나누어 배정하지도 않았다. 이미지 출처와 이용 조건은 이미지 목록, 참고 자료는 자료 목록에 정리했다. 형태 분석과 분수 효과에 관한 조건부 상상은 이 글의 해석이다.

참고 자료 (영어)

English

Boy with a Dragon: official collection record.

Attribution and date follow the current Getty record: Pietro Bernini and Gian Lorenzo Bernini, about 1617. Earlier publications use different dates and attributions. The documented channel supports a possible fountain function; the essay does not reconstruct a proven original installation.

Getty Museum Journal 16 (1988), acquisition entry, p. 184.

Han Qin, SAE Judgment and Aesthetics is optional philosophical reading, not a historical source about this object. The close reading and proposed interpretations belong to this essay.

이미지 출처와 이용 안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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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The J. Paul Getty Museum, Los Angeles (87.SA.42).

The supplied photographs show the same object described in the collection record. Public Domain / CC0; museum image policy. Their use does not imply museum endorsement. The supplied originals are preserved in an offline archive. The site provides lightweight WebP images; clicking an image opens the museum’s collection page.

01_front_high_angle_post-cons.jpg: official image · 3561 × 4500 pi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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