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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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회화 · 서양 회화

페르메이르의 《저울을 든 여인》

빈 접시 두 개, 탁자 위 장신구, 뒤편의 심판. 다시 보면 이 그림의 고요함에는 무게가 있다.

이 글의 구성

이 그림에서는 먼저 저울을 찾아보자. 여인의 아래로 향한 시선을 따라가면 앞으로 내민 오른손에 닿는다. 거기서 조금 아래를 보면 가느다란 줄에 매달린 얕은 접시 두 개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작은 빛이 반짝인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울 만큼 작다. 탁자 위 진주가 더 눈에 띄고, 흰 머릿수건이 더 밝으며, 뒤에 걸린 큰 그림이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래도 이 작은 접시 두 개는 차츰 방 전체를 다르게 보게 한다.

접시는 비어 있다.

페르메이르의 《저울을 든 여인》 전체 모습. 여인이 탁자 옆에 서서 오른손으로 작은 저울을 들고 왼손을 탁자 가장자리에 대고 있다. 탁자에는 푸른 천, 뚜껑이 열린 상자와 장신구가 놓여 있고, 여인 뒤에는 《최후의 심판》이 걸려 있다.
그림 1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저울을 든 여인》, 1664년경, 캔버스에 유채. 화면 크기 39.7×35.5 cm, 캔버스 틀 크기 42.5×38 cm. 미국 국립미술관, Widener Collection, 소장품 번호 1942.9.97. 이미지: National Gallery of Art, CC0. 소장품 정보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읽기를 제안한다. 이 그림은 무게를 재는 행위를 눈앞에 보여 주면서도, 그 결과는 알려 주지 않는다. 빈 접시와 장신구, 뒤편의 심판이 함께 놓이면서 우리의 시선은 “물건이 얼마나 무거운가”에서 “우리는 눈앞의 모든 것을 어떻게 헤아리는가”로 옮겨 간다.

《저울을 든 여인》이 그려진 것은 1664년경이다. 당시 페르메이르는 네덜란드 공화국의 델프트에 살고 있었다.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에서는 일상생활을 주제로 삼은 풍속화가 활발히 제작되었고, 고요한 실내는 여러 화가가 거듭 그리는 장면이 되었다. 화가들은 소재와 구도, 기법에서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페르메이르는 1650년대 중반부터 이런 소재로 방향을 돌려, 한정된 공간 안에 인물과 사물과 빛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 역시 그 전통 안에 있다. 탁자 위 장신구와 벽의 《최후의 심판》이 일상의 공간에 함께 들어오면서, 물질적인 생활과 신앙, 자기 성찰이 한 방에서 만난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여인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동작이 방 안의 사물과 이미지에 연결되어 보인다. 화가의 생애; 풍속화의 배경

1 먼저 방 안에 잠시 서 있기

이것은 작은 그림이다. 화면의 높이가 40 cm도 되지 않는다. 화면에서 확대해 보다 보면 그 사실을 잊기 쉽다. 원작의 크기를 떠올리면 여인의 얼굴은 무척 작고, 저울은 그보다 더 작다. 이 작은 것들 사이의 관계를 보려면 관람자가 조금 가까이 다가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왼쪽 창문은 일부만 보이고, 그 곁에는 노란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그곳으로 들어온 빛이 회색 벽을 지나 여인의 이마와 콧등, 손에 내려앉는다. 여인은 흰 털로 가장자리를 두른 짧은 푸른색 겉옷을 입고, 그 아래에 두꺼운 황갈색 치마를 걸쳤다. 화면 오른쪽의 어깨와 등은 서서히 그늘에 잠기고, 얼굴은 흰 머릿수건에 둘러싸여 도드라진다. 밝은 곳이 있다고 해서 방 구석구석까지 환해지는 것은 아니다. 탁자 아래는 여전히 어둡다.

이 방이 얼마나 큰지도 한눈에는 알기 어렵다. 앞쪽의 커다란 짙은 푸른 천이 왼쪽 아래를 가리고, 탁자는 여인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바닥 타일은 화면 아래 몇 군데 틈으로만 드러난다. 몸은 이미 가까이 다가간 듯한데, 시선은 천과 탁자를 돌아가야 비로소 여인의 손에 닿는다. 그림에는 그렇게 얼마간의 거리가 남는다.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는 볼 수 있어도, 그 삶 속으로 마음대로 들어갈 수는 없다.

여인도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한 손은 들고 있고, 다른 손은 탁자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다. 두 손 사이에는 공간이 남는다. 저울은 그 사이에 매달려 있을 뿐, 탁자에 받쳐져 있지 않다. 오래 보고 있으면 그림에서 가장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저울임을 알게 된다. 탁자는 묵직하고, 천은 아래로 처지며, 검은 액자는 폭이 넓다. 가느다란 줄과 작은 접시만은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릴 듯하다.

이런 가벼움과 무거움의 차이가 ‘균형’을 눈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아직 그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이미 아주 작고 쉽게 변할 수 있는 상태를 바라보고 있다.

2 저울은 아직 무게를 말해 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예전에 ‘금을 다는 여인’으로, 또 ‘진주를 다는 여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제목은 곧바로 하나의 행동을 머릿속에 완성해 준다. 여인이 상자에서 귀중품을 꺼내 저울 접시에 올린 다음 무게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이 기록한 현미경 조사는 다른 판단을 뒷받침한다. 접시 안의 밝은 점은 반사된 빛이며, 접시는 비어 있다. 오늘날의 제목은 그녀가 저울을 ‘들고 있다’고만 말한다. 그만큼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여지를 남긴다. 작품 연구

오른손, 빈 저울, 탁자 가장자리에 댄 왼손을 잘라 낸 부분 이미지. 회색 벽 앞에 얕은 접시 두 개가 매달려 있고, 가장자리에 작은 빛이 보인다.
그림 2 원본 이미지의 일부를 잘라 낸 모습. 빈 접시 두 개가 두 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살펴보자. 이미지: National Gallery of Art, CC0.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이제 무게를 재려고 저울의 흔들림이 멎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막 무게 재기를 마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은 어느 쪽인지 알려 주지 않는다. 곧 일어나거나 이미 일어난 동작은 보는 사람이 덧붙인 것이다. 페르메이르가 남겨 놓은 것은 눈앞의 이 순간뿐이다.

손을 다시 보자. 오른손은 꽉 쥐어져 있지 않다. 손끝과 금속이 닿는 면적은 아주 작고, 그 아래 가느다란 줄은 벽의 회색에 거의 녹아든다. 왼손은 탁자 가장자리에 기대어 있고, 몇몇 손가락은 펼쳐져 있다. 진주를 저울 접시에 옮기고 있지도, 장신구를 움켜쥐고 있지도 않다. 두 손은 각자의 자리에서 멈춰 있고, 다음 동작은 그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때문에 탁자 위 물건들은 특별한 존재감을 얻는다. 모두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상자 뚜껑은 이미 열려 있고, 진주 줄은 상자 가장자리를 넘어 흘러나오며, 작은 금속 조각들은 탁자 위에 흩어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것도 저울에 올라가 있지 않다. 무게는 본래 이 물건들을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속성 중 하나다. 지금 우리가 먼저 보는 것은 그 광택과 모양, 놓인 자리다.

그렇게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조금 늦게 찾아온다. 짧은 지연이지만, 익숙한 동작 하나를 알아보던 눈이 그 동작을 둘러싼 세계 전체를 살피기에는 충분하다.

3 여인 뒤에 걸린 심판

여인 뒤에는 《최후의 심판》이 걸려 있다. 기독교 도상에서 이것은 세상의 마지막에 인류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 장면이다. 그림 속 그림의 위쪽에서는 그리스도가 빛에 둘러싸여 두 팔을 들고 있다. 아래의 사람들은 몸을 비틀고, 어떤 이는 위를 올려다보며, 어떤 이는 손을 뻗는다. 넓게 깔린 어두운 색 때문에 세부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용돌이치는 움직임은 여전히 보인다.

여인의 얼굴과 뒤에 걸린 《최후의 심판》의 부분 이미지. 위쪽 밝은 곳에 그리스도가 있고, 그 아래의 사람들은 여인의 양옆으로 보인다.
그림 3 원본 이미지의 일부를 잘라 낸 모습. 여인의 머릿수건과 얼굴이 뒤편 그림의 일부를 가리지만, 위쪽의 그리스도와 양옆의 군중은 보인다. 이미지: National Gallery of Art, CC0.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이 주제를 알고 나면 탁자 곁의 저울을 단순한 생활 도구로만 보기는 어려워진다. 물건의 무게를 재는 일과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서로 울림을 주기 시작한다. 귀중품은 여인 앞에 놓여 있고, 심판의 이미지는 뒤에 걸려 있다. 같은 방 안에 두 가지 척도가 들어온 셈이다. 물건의 가치를 재는 척도,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이 마지막에 어떻게 헤아려질 것인가 하는 척도다.

이 연결에는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석이 하나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여인을 세속의 부에 끌리는 경고의 인물로 읽기도 했고, 절제를 알며 신중하게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읽기도 했다. 미국 국립미술관의 해설은 후자에 더 가까우며, 이 장면을 성찰과 절도 있는 삶에 연결한다. 두 해석 모두 종교적 이미지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갈리는 지점은 여인과 보석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NGA 작품 해설; 학술 도록

이 글이 보기에 그림의 힘은, 헤아리는 행위를 보여 주면서도 여인을 탐욕이나 절제의 단순한 사례로 만들지 않는 데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장신구를 뽐내지도, 과장된 욕심을 표정에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귀중품은 여전히 손 바로 곁에 있다. 아래로 향한 시선은 저울에 주의를 모으고, 장신구와 《최후의 심판》은 이 작은 동작의 의미를 양쪽으로 넓힌다. 자기 성찰의 느낌은 이런 관계에서 생겨난다. 하나의 표정이 그녀의 덕성을 대신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 속 그림과 인물의 관계는, 미리 마련된 도덕적 판정보다 오래 들여다볼 만하다. 위쪽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향하고, 탁자 곁의 여인은 아주 작은 저울 접시를 바라본다. 뒤편에서는 여러 몸이 뻗고 뒤틀리는 반면, 앞쪽에서는 두 손만 미세한 동작을 유지한다. 여인의 몸은 종교화의 일부를 가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 거대한 장면은 여인의 몸을 비켜 난 곳에서야 우리 눈에 드러난다.

‘부를 탐하지 말라’는 말만 기억한다면, 이런 배치를 놓치게 된다. 종교적 의미는 그림 바깥에 따로 걸려 있지 않다. 크기의 차이와 가림, 움직임의 빠르고 느림을 통해 일상의 방 안으로 들어온다. 같은 신앙을 갖지 않은 오늘의 관람자도 한 가지는 볼 수 있다. 여인이 사는 세계에는 탁자 위에서 집어 들고 값을 매길 수 있는 물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4 빛이 장신구를 그려 낸다

이제 시선을 탁자로 돌려보자.

장신구는 고르게 빛을 받고 있지 않다. 뒤쪽 상자에 담긴 진주 줄에는 거의 흰색에 가까울 만큼 밝은 알이 있는가 하면, 어두운 회색의 둥근 그림자만 남은 알도 있다. 금빛 사슬은 보였다가 가려지기를 반복하고, 어둠 속 몇 군데에서 작고 노란 빛이 떠오른다. 앞쪽에도 작은 빛점들이 탁자 면 가까이 나란히 놓여 있다. 이것들이 푸른 천과 한데 몰리고 서로를 가리기 때문에, 물건을 하나씩 세기는 어렵다.

탁자 위 장신구와 푸른 천의 부분 이미지. 진주 줄과 금 사슬의 밝은 점들이 상자 가장자리와 탁자 위에 흩어져 있고, 푸른 천의 주름은 넓은 면의 명암 변화를 만든다.
그림 4 원본 이미지의 일부를 잘라 낸 모습. 진주의 점 같은 하이라이트, 천 위에 완만하게 퍼지는 밝은 면, 저울 접시 가장자리의 가느다란 빛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미지: National Gallery of Art, CC0.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확대해서 보면 진주 위의 빛이 언제나 경계가 깔끔한 작은 원은 아니다. 흐릿한 것도 있고, 어두운 부분에 붙어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다시 전체 그림 크기로 줄이면 이 점들은 금세 알아볼 수 있는 진주 줄로 이어진다. 우리의 눈은 흩어진 물감 자국을 하나의 사물로 연결하고, 둥글고 단단하며 매끄러운 감촉까지 채워 넣는다.

푸른 천은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다. 날카로운 작은 빛점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다. 짙은 푸른색의 넓은 면들 사이로 조금 밝은 파랑이 접힌 면을 따라 천천히 올라오다가, 주름 깊숙한 곳에 이르면 다시 어두워진다. 눈으로 그 굴곡을 따라가면 천의 두께와 무게를 따라 늘어지는 느낌을 알 수 있다. 오른쪽 겉옷의 파랑에도 짙고 옅은 변화가 있지만, 흰 털 장식이 둘레를 감싸고 있어 앞쪽 천 덩어리보다 윤곽을 알아보기 쉽다. 같은 파랑이 그림 안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한다.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은 회색 벽이다. 화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지만, 그 색은 균일하지 않다. 창문 가까이는 밝고, 아래쪽과 왼쪽으로 갈수록 점차 어두워진다. 저울의 가느다란 줄은 바로 이 벽을 배경으로 놓여 있기에, 뒤편 그림의 군중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머릿수건은 반대로 어두운 배경 덕분에 환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밝은 곳을 등지고, 다른 하나는 어두운 곳을 등지고 모습을 드러낸다. 둘 사이에서 빛의 관계가 조용히 뒤바뀐다.

이런 멈춤은 그림을 볼 때 유용하다. 이미 ‘진주’, ‘옷’, ‘벽’을 알아보았더라도, 그것들이 어떻게 진주와 옷과 벽으로 그려졌는지 계속 살피는 것이다. 재질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같은 캔버스 위의 물감으로 나타난다. 페르메이르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끼게 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빛 속에 놓는다.

5 고요함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화면이 안정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대칭인 것은 아니다. 인물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고, 앞쪽의 푸른 천은 왼쪽 아래에 무게를 싣는다. 큰 그림은 오른쪽 위를 차지하지만, 왼쪽 위에는 넓은 회색 벽이 남아 있다. 양쪽에 놓인 것도 다르고, 시각적인 무게도 다르다. 시선은 그 사이를 오가다가 흔히 앞으로 내민 손과 작은 저울로 돌아온다.

뒤편 액자의 아래쪽 테두리도 살펴볼 수 있다. 여인 왼쪽으로 드러난 부분은, 몸에 가린 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조금 높다. 이 미세한 어긋남 덕분에 저울 접시 근처에 벽이 조금 더 보이고, 저울을 알아보기 쉬워진다. 처음부터 이 불연속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저울 주위에 알맞은 공간이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있다. NGA 구도 해설

기술 연구를 통해 저울의 배치가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적외선 영상에 따르면 페르메이르는 처음에 저울을 화면에 비스듬한 방향으로 그렸다가, 나중에는 관람자를 더 정면으로 향하도록 조정했다. 완성된 모습에서는 두 접시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NGA 기술 연구 소개 지금 보이는 차분함은 수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완성된 화면에 수정 과정이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 작은 도구도 화가가 다시 배치할 만한 대상이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여인이 누구인지는 그림만으로 충분히 답할 수 없다. 배가 불룩한 윤곽은 흔히 임신을 떠올리게 하지만, 옷 자체가 넉넉하다는 점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다. 그녀를 특정 가족 구성원이라고 단정하거나, 거기서 더 나아가 모성에 관한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그림 밖의 증거가 필요하다. 학술 도록

전체 그림으로 돌아오면 처음에 놓쳤던 많은 것이 보인다. 무거운 것들 사이에 가벼운 것이 매달려 있고, 빽빽한 군중 앞에는 작은 동작 하나를 위한 자리가 남아 있다. 빛은 서로 다른 재질 위에 각기 다른 흔적을 남긴다. 두 빈 접시 때문에 ‘무게 재기’의 결과는 당장 주어지지 않는다. 뒤편의 《최후의 심판》은 이 순간을 더 넓고 엄중한 질문에 연결한다.

이 글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그림의 고요함에는 무게가 있다는 점이다. 장신구의 유혹, 심판의 압박, 손의 미세한 동작이 한데 놓이면서, 답보다 먼저 헤아리는 과정이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여인의 손을 다시 보면, 비어 있는 저울 접시가 방 전체를 떠받치는 지점이 된다.

선택해서 읽기 SAE로 다시 보기

여기서는 SAE(Self-as-an-End) 미학을 빌려 두 방향으로 더 살펴보려 한다. 앞의 감상 안내는 이 부분을 읽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다.

SAE는 “나는 이것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말과 “여기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나누어 묻는다. ‘광선’이라는 말은 아름다움이 성립하는 방식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살펴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의 등급을 매기는 기준은 아니다. 이 그림에서 첫 출발로 가장 적합한 방향은 지각이다. 우리는 어떤 관계를 보고 있기에 이 그림을 고요하고 안정적이며 섬세하다고 말하는가? SAE 미학 총론; 지각의 아름다움

아주 작은 비교를 해 보자. 먼저 전체 그림을 본 뒤, 그림 2의 저울 부분만 본다. 부분 이미지에서는 빈 접시를 쉽게 알아볼 수 있고, 손가락과 가느다란 줄도 분명히 보인다. 대신 푸른 천과 검은 액자, 회색 벽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전체 그림에 있던 가벼움과 무거움의 관계도 달라진다. 여기서 물을 수 있다. 공중에 멈춰 있다는 느낌은 ‘저울’이라는 사물 자체에서 오는가, 아니면 주변의 더 큰 형태와 명암, 간격이 함께 이루는 관계에서 오는가? 이때 이론의 쓸모는 ‘분위기가 있다’는 막연한 감상을, 그림으로 돌아가 확인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꾸는 데 있다.

다른 한 방향은 보는 동안 작용하는 기억과 기대다. 무게를 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관람자는 탁자 위 보석을 보고, 접시에도 이미 무게를 잴 물건이 올라가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빈 접시를 자세히 보고 나면 그 판단을 수정해야 한다. 《최후의 심판》을 알아보면서, 평범한 일상 동작처럼 보였던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그림을 보지만, 그림의 세부가 그 경험을 수정하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자기 자신의 감상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지의 아름다움

이는 작품과 감상 과정을 오늘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인물이나 화가가 차분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세우고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로 그런 인정을 주고받는다고 말할 근거는 더욱 부족하다. 더 읽기: SAE의 non dubito와 아름다움

‘고요하다’는 전체 인상에도 되물을 수 있다. 뒤편 군중의 요동 때문에 그 고요함에 압박도 함께 담겨 있지 않은가? 온화함만으로 설명하려면, 이 긴장이 왜 있는지도 해명해야 한다. 이로써 토론에는 구체적인 출발점이 생긴다. 같은 세부를 함께 확인한 뒤, 왜 그것이 서로 다른 느낌으로 이어지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느낌의 차이 자체를 누가 옳고 그른지의 문제로 만들 필요는 없다. 이론이 도움이 된다면, 논의를 더 구체적으로 만들고 그림을 한 번 더 보고 싶게 해야 할 것이다.

이미지와 자료에 관하여

이 글의 시각적 묘사는 미국 국립미술관이 제공한 3620×4096픽셀 이미지와 그 세부를 관찰한 데 근거한다. 전체 이미지는 내려받은 파일 그대로이며, 그림 2부터 4까지는 일부를 잘라 내기만 했다. 색 보정, 복원, 덧그리기, 생성형 작업을 통한 내용 추가는 하지 않았다. 디지털 복제 이미지는 자세히 보는 데 도움이 되지만, 화면 표시와 확대 배율은 원작을 관람하는 조건과 다르다.

미술관 이미지에는 CC0 공개 정책이 적용된다. 그렇다고 미술관 연구 글의 문장까지 자유롭게 전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독자적인 세밀한 감상을 중심으로 하며, 역사적 사실과 논쟁점은 링크된 소장품 자료, 학술 도록, 기술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본문의 해석이 미술관의 지지나 승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같은 패키지에 들어 있는 참고 자료와 이미지 출처 및 이용 정보도 참조하기 바란다.

참고 자료 (영어)

English reference guide

The eight essays use the same source links. Their visual arguments are independent readings, and the optional SAE application is a contemporary interpretation rather than a statement of Vermeer’s intentions.

1. National Gallery of Art, Woman Holding a Balance. Current collection record: artist, date, medium, painted-surface and stretcher dimensions, collection information and image; also the museum’s interpretation in terms of moderation and reflection and its discussion of the offset lower frame edge.
https://www.nga.gov/artworks/1236-woman-holding-balance

2. Arthur K. Wheelock Jr., Dutch Paintings of the Seventeenth Century: Woman Holding a Balance, c. 1664. National Gallery of Art, online edition, published August 30, 2017. Used for historical titles, microscopic examination supporting the empty pans, alternative interpretations and the disputed suggestion of pregnancy. See Entry, Notes 1–12 and Technical Summary.
https://www.nga.gov/research/publications/online-editions/dutch-paintings-seventeenth-century-woman-holding-balance-c

3. Diane Richard, Reconsidering Vermeer’s Perfectionism: Introducing an impetuous artist—and his studio. National Gallery of Art, October 7, 2022. Used for the change from an oblique balance to one parallel to the picture plane. The change concerns spatial orientation, not a difference in weight between the pans.
https://www.nga.gov/stories/articles/reconsidering-vermeers-perfectionism

4. Diane Richard, Who Is Vermeer? 10 facts about a famous but mysterious artist. National Gallery of Art, October 7, 2022. Used for Delft and the turn toward genre subjects in the mid-1650s; see sections 1, 3 and 6.
https://www.nga.gov/stories/articles/who-vermeer

5. National Gallery of Art, Vermeer and the Masters of Genre Painting: Inspiration and Rivalry. Exhibition introduction, 2017–2018. Used for Dutch interior genre painting in the mid-seventeenth century and exchanges among painters in subject, composition and technique.
https://www.nga.gov/exhibitions/vermeer-and-masters-genre-painting-inspiration-and-rivalry

6. 秦汉, SAE判断力与美学, second edition, 2026. The general account used to distinguish aesthetic response from discussable grounds and to treat “rays” as directions of inquiry rather than rankings.
https://self-as-an-end.net/papers/sae-judgment-aesthetics.html

7. 秦汉, 感知之美, 2026. Used for attention to appearance, color, light, dark and background relationships.
https://self-as-an-end.net/papers/sae-aesthetics-ray-8.html

8. 秦汉, 认知之美, 2026. Used for a viewer’s past experience, possible disappointed expectations and revision of judgment.
https://self-as-an-end.net/papers/sae-aesthetics-ray-9.html

9. 秦汉, 不疑之美, 2026. Supports the limit on inferring SAE concepts from empty pans or a calm appearance alone.
https://self-as-an-end.net/papers/sae-aesthetics-ray-12.html

10. National Gallery of Art, Terms and Notices. The open-access policy provides eligible artwork images under CC0; it does not imply museum endorsement of this essay.
https://www.nga.gov/terms-and-notices

11. National Gallery of Art, Free Images and Open Access.
https://www.nga.gov/artworks/free-images-and-open-access

Further reading:

- E. Melanie Gifford et al., First Steps in Vermeer’s Creative Process, Journal of Historians of Netherlandish Art 14:2, 2022. DOI: 10.5092/jhna.2022.14.2.1.
https://jhna.org/articles/first-steps-in-vermeers-creative-process/
- Johannes Vermeer, National Gallery of Art / Mauritshuis, 1995 exhibition catalogue. For further study of the work and perspective. The essays use the current collection page’s dimensions rather than the older catalogue’s figures.
https://www.nga.gov/sites/default/files/migrate_images/content/dam/ngaweb/research/publications/pdfs/johannes-vermeer.pdf

이미지 출처와 이용 안내 (영어)

이 사이트에는 세부와 다른 각도를 포함해 읽기에 적합한 크기의 WebP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미술관 작품 페이지로 이동하며, 전체 해상도 원본은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지 않습니다. 아래 크기, 파일명, 자르기 좌표와 해시는 보관된 원본 자료의 기록으로, 웹 미리보기의 사양이 아닙니다.

English image and licensing summary

Johannes Vermeer, Woman Holding a Balance, c. 1664,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Widener Collection, accession number 1942.9.97. Painted surface: 39.7 × 35.5 cm; stretcher: 42.5 × 38 cm.

- Collection record: https://www.nga.gov/artworks/1236-woman-holding-balance
- Original image: https://api.nga.gov/iiif/c948cf32-e6c7-41a0-a053-0ad0562960c4/full/full/0/default.jpg?attachment_filename=woman_holding_a_balance_1942.9.97.jpg
- License: CC0 1.0 / public domain under the NGA open-access policy
- Policy: https://www.nga.gov/terms-and-notices
- CC0 text: https://creativecommons.org/publicdomain/zero/1.0/
- Original download date: October 1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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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gure 1: images/vermeer_woman_holding_a_balance_full.jpg, 3620 × 4096 pixels
- Figure 2, hands and balance: images/detail_balance_hands.png, 1010 × 1010 pixels; crop 1590, 1670, 2600, 2680
- Figure 3, face and background painting: images/detail_face_last_judgment.png, 1590 × 1910 pixels; crop 1850, 10, 3440, 1920
- Figure 4, jewelry and blue cloth: images/detail_table_jewels.png, 1670 × 740 pixels; crop 630, 2080, 2300, 2820

All eight essays contain captions and alternative text in their own language. Open licensing of the images does not extend automatically to the museum’s explanatory or research text. No full museum article is included. Use of the images does not imply museum endor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