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림 전체를 옆으로 길게 펼쳐진 하나의 장소로 바라보자. 하늘은 넓고 지평선은 낮다. 말들이 마음껏 달려 지나갈 만한 공간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왼쪽 말은 거의 정면을 향한 채 앞다리를 들어 올리고, 오른쪽의 커다란 회색 말은 뒷몸을 우리 쪽으로 내보이면서 머리와 앞다리는 왼쪽으로 돌린다. 그 사이에 늑대 두 마리, 여러 사냥개, 긴 창자루와 사람들의 얼굴이 빽빽하게 몰려 있다. 화면의 너비는 움직임에 대단한 기세를 부여하지만, 한가운데 있는 동물들이 빠져나갈 길은 거의 내주지 않는다.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포위와, 그 안에서 막히는 움직임이다. 여러 방향에서 들어온 힘이 아주 짧은 거리 안에서 저항에 부딪힌다. 그 때문에 동세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뒤쫓는 사냥은 이야기를 제공하고, 충돌은 우리가 보는 화면을 조직한다.
루벤스는 1616년경 이 시기의 대형 사냥 그림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도록은 이 작품을 그 출발점에 놓는다. 이처럼 큰 유화는 군주와 귀족의 실내를 꾸밀 때 사냥 장면을 짠 태피스트리를 대신할 수 있었고,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도 훨씬 적었다는 설명이다. 사냥의 특권은 넓은 토지를 소유한 지위와 연결되어 있었다. 값비싼 말, 화려한 옷차림, 대규모 사냥 일행은 예상 구매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자신들이 누릴 자격을 가진 생활을 보여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림의 크기도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너비가 거의 3.8미터이고 높이는 어른의 키를 넘는 화면이, 신분을 드러내는 활동을 실내의 벽 하나를 크게 차지하는 힘의 광경으로 펼쳐 놓는다. 미술관 도록
1 두 마리의 말이 공간을 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왼쪽 말의 얼굴에는 콧등을 따라 밝은 무늬가 내려온다. 얼굴과 가슴은 대체로 우리 쪽을 향하고, 두 앞다리는 접힌 채 들려 있다. 밝은 다리는 그 뒤의 어두운 몸통과 뚜렷이 구별된다. 이 자세에서 말의 부피는 화면 밖으로 밀려 나오는 듯하다. 시야를 옆으로 지나가는 말의 길쭉한 옆모습 대신, 정면에서 다가오는 몸의 너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 탄 사람은 긴 자루의 무기를 들고 팔을 왼쪽으로 뻗는다. 검은 옷과 흩날리는 갈기가 위쪽의 형태를 옆으로 넓히는 동안, 굽힌 앞다리는 그 벌어지는 기세를 다시 가슴 앞에 모은다.
오른쪽의 회색 말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차지한다. 크고 둥근 엉덩이가 오른쪽 아래 가까이에 놓이고, 몸통은 옆으로 길게 뻗는다. 위쪽의 목은 왼쪽으로 굽어 내려가며 주둥이를 낮춘다. 두 앞다리는 접혀 있고, 발굽은 가운데 사람들 가까이 다가와 있다. 넓은 회백색 몸통에서 굽은 목을 거쳐 머리로 시선을 옮기면, 다시 늑대와 사냥꾼들의 위쪽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동물이면서도 우리의 관심을 자신에게만 붙들어 두지는 않는다.
두 마리의 말은 가지런한 대칭도 이루지 않는다. 왼쪽은 좁은 폭으로 정면을 향하고, 오른쪽은 넓은 몸을 비스듬히 보여준다. 왼쪽 말의 앞다리는 일어선 늑대 뒤에서 드러나는 반면, 오른쪽 말의 앞다리는 사람과 개들 위를 가로지르며 뻗어 나온다. 이 어긋남이 중요하다. 두 마리의 말이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달렸다면, 눈은 그 일행을 따라 화면을 쓸고 지나가기 쉬웠을 것이다. 여기서는 서로 다른 방향이 한가운데에서 만나므로, 보는 도중에 방향을 바꿔야 한다. 속도는 곧장 통과하기 어려운 한 장소에 집중된다.

두 마리의 말 모두 몸의 앞부분을 들어 올렸지만, 무게가 느껴지는 방식은 다르다. 왼쪽의 밝은 다리는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에 가로막힌 듯하고, 오른쪽의 큰 몸은 중앙의 공간을 더욱 낮고 좁게 누른다. 두 말의 앞발굽은 모두 다른 몸들 가까이 허공에 들려 있다. 이 때문에 접촉이 곧 일어나거나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긴박함이 커진다.
2 창날이 늑대의 입에 들어가는 짧은 거리
가운데에서 조금 왼쪽에 있는 늑대가 상체를 일으킨다. 가슴과 배는 세로로 길어지고 앞발은 왼쪽으로 뻗는다. 붉은 옷을 입은 사냥꾼에게서 긴 자루가 가로로 들어오고, 끝의 금속 날은 늑대의 벌어진 입 안에 닿아 있다. 입, 앞발, 자루, 붉은 술 장식 사이의 간격이 아주 좁다. 이 작은 관계 때문에 거대한 사냥 장면이 갑자기 거리를 잴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건이 된다. 위험은 이제 단순히 ‘사나운 동물’을 알아보는 데서만 생기지 않는다. 단단한 금속과 부드러운 몸이 이미 접촉하고 있다.
곧고 밝은 창날의 가장자리가 어두운 입안을 가로지르고, 위아래 턱 사이로 이빨이 드러난다. 자루는 사람의 동작을 연장한다. 왼쪽에서, 어쩌면 화면 밖까지 이어질 힘을 늑대의 머리로 전달한다. 위로 솟는 늑대의 몸통은 그 수평의 압력을 도중에서 가로막는다. 코, 눈썹 부근, 이빨을 드러낸 입, 들어 올린 앞발이 같은 저항 지점으로 모이면서 몸이 비틀리는 이유가 형태로 드러난다.
이 부근의 선들은 저마다 다른 일을 한다. 낮은 위치의 자루는 거의 수평이고, 말을 탄 사람이 든 긴 무기는 왼쪽 위를 비스듬히 가로지른다. 늑대 뒤에는 거의 수직으로 선 창이 있으며, 그 옆에서는 몽둥이가 들려 있다. 길이와 방향이 다른 동작들이 갈기, 옷소매, 동물의 몸이 만드는 부드러운 곡선 사이에 눈으로 따라갈 수 있는 길을 남긴다. 직선 덕분에 이 혼잡함 속에서도 관계를 읽어낼 수 있다. 동시에 그 주변에서 굽어지는 몸들은 더 강한 힘을 받고 있는 듯 보인다.
아래를 보면, 또 다른 늑대는 입을 벌린 채 머리를 오른쪽 위로 치켜들지만 몸은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간다. 어두운 개가 그 뒤에 바짝 붙어 있고, 늑대의 윤곽 옆으로 머리와 앞발을 내민다. 더 오른쪽에서는 밝은 개가 고개를 낮춰 이 몸들의 덩어리 안으로 들어온다. 바로 위에는 또 다른 개의 가느다란 회색빛 머리가 보인다. 여기서 동물 한 마리 한 마리의 온전한 윤곽을 떼어내기는 어렵다. 그래도 머리, 등, 발이 번갈아 나타나는 순서를 좇으면, 하나의 접촉점이 어떻게 몸 전체의 얽힘으로 커지는지 알 수 있다.
겹침이 모든 형태를 똑같이 흐릿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위로 향한 늑대의 입은 밝은 이빨과 콧등으로 구별되고, 어두운 개의 얼굴은 그늘진 털 속에 잠긴다. 한 앞발이 다른 털가죽 위를 가로지를 때는 발가락과 발톱 끝이 그 발을 알아보게 한다. 눈이 하나의 몸을 확인하면 곧 다른 몸이 그 이어짐을 끊는다. 우리는 장면을 부분마다 연결해서 보게 되며, 이런 보기의 경험은 그림 속 행동들이 거듭 저항에 부딪히는 상태와 맞물린다.
3 가장 큰 밝은 면이 시선을 되돌려 보낸다
회색 말은 그림에서 가장 넓은 밝은 형상이다. 목과 어깨는 우윳빛에 가깝고, 엉덩이로 갈수록 어두운 얼룩이 있는 회색으로 바뀐다. 목의 긴 곡선, 배의 둥근 면, 뒷다리의 가느다란 윤곽이 이 큰 밝은 덩어리 안에서도 형태의 방향을 또렷하게 나누어 준다. 이 밝은 색은 캔버스에 평평하게 발라진 색면으로 남지 않는다. 살의 굴곡을 따라 이어지며, 공간을 차지하는 부피를 드러낸다.
검은 고삐가 밝은 목을 가로질러 초록색 옷을 입은 기수의 손으로 이어진다. 기수의 상체는 왼쪽으로 돌아가고, 얼굴은 아래를 본다. 한쪽 다리는 말의 배를 따라 내려와, 높은 곳의 초록색 상의와 낮은 곳의 연갈색 장화를 연결한다. 말이 향하는 방향, 비스듬한 고삐, 사람의 시선이 서로 호응한다. 회색 말에 먼저 눈길을 빼앗기더라도, 시선을 중앙으로 되돌려 줄 경로가 이미 몇 갈래 놓여 있다.

초록색 소매에는 밝은 띠가 길게 나 있고, 천이 주름 안으로 접혀 들어가면 금세 어두워진다. 매끈하게 변하는 표면은 새틴 같은 질감을 느끼게 한다. 가까이에 있는 갈기의 밝은 선들은 갈라지고 굽이치며, 바깥 가장자리에서 하늘을 배경으로 흩어진다. 늑대의 등 털은 더 촘촘하고 짧으며, 윤곽에 잘고 불규칙한 가장자리를 만든다. 이웃한 표면들을 함께 보면 빛은 각각 천이 접힌 면, 말가죽의 둥근 면, 털의 끝으로 달라진다. 화면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재질의 차이는 유지된다.
사람들의 얼굴도 똑같은 표정을 반복하지 않는다. 가운데에서 뿔나팔을 부는 사람은 볼을 부풀리고, 나팔의 벌어진 끝은 왼쪽 앞을 향한다. 그 뒤의 얼굴 몇 개는 말의 목, 늑대의 등, 사냥 도구 사이에 끼어 있다. 머리가 차지하는 면적은 작지만, 이마와 콧등과 볼의 밝은 부분이 하나씩 이어지며 커다란 동물들의 몸 사이로 사람의 존재를 드러낸다. 나팔을 보면 소리를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그림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입, 손, 나팔 관의 연결이며, 빽빽한 윤곽 사이에 둥근 입구가 끼어 있는 방식이다.
오른쪽 위에서 말을 탄 두 인물은 앞쪽에서 걸어서 사냥하는 사람들보다 높이 자리한다. 옷차림과 자세에서도 앞쪽 사냥꾼들과 차이를 보인다. 초록색 옷을 입은 인물의 돌아선 머리는 높은 위치를 아래의 충돌에 연결하고, 뒤쪽 여성의 더 곧게 세운 몸은 움직임을 잠시 늦춘다. 바라보기, 지휘하기, 다가가기, 싸우기가 한 화면에 함께 있지만, 모두가 똑같이 격렬한 몸짓을 하지는 않는다. 높은 곳에 있는 기수들의 시선은 우리가 싸움을 바라보는 경로를 이어 준다. 먼저 돌아선 머리를 보고, 그들의 눈길을 따라 더 낮은 곳의 동물들에게 이르게 된다.
4 먼 곳은 열려 있고 가까운 곳은 막혀 있다
커다란 몸들이 이룬 두 무리 사이로 낮은 지평선이 띄엄띄엄 드러난다. 왼쪽 아래에 가까운 틈에서는 멀리 작게 보이는 기수 한 명과 개들, 초록색 들판도 보인다. 원경에는 차갑고 차분한 청록색이 쓰였고, 전경에는 갈색, 황토색, 빨강, 검정, 강한 회백색이 빽빽하다. 크기와 색이 함께 거리를 벌린다. 저쪽의 장면은 옆으로 뻗어갈 수 있지만, 이쪽의 몸들은 서로 포개질 만큼 가까이 있다.
이 작은 원경에 잠시 머물러 볼 만하다. 화가가 탁 트인 땅을 보여줄 수 있었음을 알게 하고, 바로 그 때문에 앞쪽의 막힘이 더욱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하늘도 넓은 면적을 차지하며 구름 띠는 머리 위로 느슨하게 펼쳐진다. 개방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늑대와 사냥개 발밑에서 실제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되지 못한다. 그림 밖에 있는 우리의 눈은 하늘을 쉽게 가로지르지만, 화면 한가운데를 그처럼 쉽게 통과할 경로는 찾을 수 없다.
아래 가장자리의 여우들은 다시 리듬을 바꾼다. 왼쪽 아래의 여우는 서서 몸을 돌린 채 머리만 뒤를 돌아본다. 아래쪽 중앙에는 쓰러져 누운 여우가 있다. 흰 배와 머리가 땅 가까이에 있고, 입 옆에는 붉은 흔적이 보인다. 오른쪽 아래의 다른 여우는 배를 위로 드러낸 채 뒤집혀 있으며, 굽힌 다리가 말발굽 가까이에 놓인다. 서 있음, 쓰러져 있음, 뒤집혀 있음이라는 자세로 인해 화면 아래에는 위쪽으로 들리는 몸들과 다른 리듬이 생긴다. 옆으로 뻗거나 웅크린 여우들의 몸도 시선을 땅 가까이 붙잡는다. 들린 발굽 아래에 얼마나 많은 몸이 빽빽하게 모여 있는지 보게 되는 것이다.
이 낮은 부분을 오래 볼수록, 그림 전체를 아무 대가 없는 신나는 움직임으로만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진다. 당시 귀족 관객은 이 장면을 신분, 용기, 자신의 사냥 경험과 연결했을 수 있다. 오늘날의 관객은 사냥감이 겪는 위협을 먼저 느낄 수도 있다. 그림이 보는 행위를 강력하게 조직한다고 해서 살상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쪽 반응이든 같은 형태의 배치를 마주해야 한다. 높은 곳의 사람은 아직 지켜볼 수 있지만, 아래의 동물들은 이미 땅과 발굽 가까이 밀려 있다.
5 지금의 가장자리에도 역사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캔버스의 너비는 약 3.8미터다. 미술관의 현행 설명은 원래 크기가 더 컸으며, 높이는 약 11 또는 12피트, 너비는 18피트였다고 본다. 주로 위쪽과 왼쪽이 잘려 나갔고, 그렇다면 두 늑대는 처음에는 구도의 중앙에 더 가까이 있었을 것이다. 도록은 구매를 고려하던 이들 중 몇 사람이 지나치게 큰 크기를 부담스러워한 뒤, 루벤스의 공방에서 이미 캔버스를 줄였을 가능성도 제시한다. 다만 구체적인 사정은 확실하지 않다. 미술관 도록
이 문제에는 서로 다른 결론이 있었다. 미술관 페이지의 참고문헌에 소개된 1984년 연구는 기술적 조사가 상당한 규모의 절단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 2011년 도록 본문과 미술관의 현행 설명은 원래 더 큰 캔버스가 이후 잘려 줄어들었다는 해석을 따른다. 따라서 지금의 가장자리가 밀집감을 어떻게 강화하는지는 논할 수 있지만, 얼마나 잘렸는지, 언제 잘렸는지, 사라진 부분들이 각각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정확히 복원된 사실로 말해서는 안 된다. 왼쪽 가장자리에 잘려 들어간 인물이나 위쪽 끝에 바짝 붙은 모자는, 우선 오늘날 남아 있는 이 물체가 우리에게 주는 관람 조건이다.
완전한 작가 표기인 ‘루벤스와 공방’도 중요하다. 이 대작은 공방의 제작 과정에서 나온 그림이다.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이런 크기의 캔버스에서는 조수들이 구도를 처음 옮겨 그리고 배경과 부차적인 세부를 맡았으며, 루벤스가 그 위에 윤곽과 밝고 어두운 부분, 표면의 질감을 강화했다. 토비 매슈를 거쳐 더들리 칼턴에게 전달된 서신에서 루벤스는 늑대와 여우를 자신이 직접 그렸다고 밝혔다. 이것은 검토할 수 있는 문헌상의 증언이다. 그렇다고 화면에 보이는 털 한 올이나 밝은 붓질 하나만으로 모든 부분을 누가 그렸는지 나눠 지정할 수는 없다.
남아 있는 그림의 성취는 여전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밝은 말의 몸, 옆으로 들어오는 창날, 일어선 늑대, 아래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동물들이 여러 방향을 같은 장소에 유지한다. 우리는 속도를 느끼면서도, 그 속도가 순조롭게 지나가지 못하는 지점에 거듭 이른다. 포위와 막히는 움직임은 이 넓은 사냥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사건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더 읽기 SAE로 방향과 보이는 방식을 점검하기
아래에서는 친한(秦漢, Han Qin)의 SAE(Self-as-an-End) 미학 안에서 지각을 살피는 방향을 빌려, 오늘의 관객을 위한 보기 연습을 제안한다. 이를 화가의 의도를 추정하는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 SAE의 판단과 미학, 지각의 아름다움
먼저 ‘사냥’, ‘용기’, ‘잔혹함’ 같은 이름과 판단을 잠시 내려놓고, 보이는 방향 몇 가지를 허공에 손으로 그려 보자. 왼쪽 말의 가슴은 어디를 향하는가. 회색 말의 머리는 어느 쪽으로 돌아가는가. 가로로 놓인 자루는 어디서 들어오고, 일어선 늑대는 어떻게 그것을 가로막는가. 이어서 자신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가장 넓은 밝은 면에서 어떤 가장자리, 고삐, 얼굴을 거쳐 중앙으로 돌아오는가. 몸이 가려는 듯한 방향과, 실제로 눈길이 이끌리는 경로는 서로 다른 것이다.
이 연습은 ‘움직임이 넘친다’는 감상을 다른 사람과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관계들로 나누어 준다. 막힘보다 매끄럽게 회전하는 흐름이 먼저 보인다면, 끊김 없이 따라갈 수 있는 경로를 찾아보자. 그리고 늑대의 입, 말발굽, 겹친 몸들을 지날 때도 그 흐름이 계속되는지 살펴보자. 동시에 이 글의 해석 역시 펼쳐진 하늘과 흩날리는 갈기를 설명에 포함해야 한다. 알아볼 수 있는 저항과 알아볼 수 있는 흐름이 함께 화면을 이루므로, 해석은 그 둘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이름과 역사를 다시 가져와 보자. 기수와 걸어서 사냥하는 사람들, 사냥감이 각각 차지하는 위치가 귀족의 사냥에 눈에 보이는 형태를 준다. 몸에 가해지는 힘의 차이는 윤리적 판단에도 구체적인 근거가 된다. 이 연습은 다음번의 보기를 더 정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독자는 같은 시선의 경로를 따라가며, 흐름이 어디에서 계속되고 어디에서 방향을 바꾸며 어디에서 다른 몸에 가로막히는지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와 자료 안내
시각적 서술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제공한 4000 × 2672픽셀 이미지에 근거한다. 전체 이미지는 공식 JPEG를 그대로 사용했으며, 검은 테두리 부분과 작품 가장자리도 유지했다. 두 부분 이미지는 원본에서 직접 잘라 PNG로 저장했다. 잘라낸 범위의 픽셀과 내장된 ICC 색상 프로파일을 보존했으며, 크기 변경, 색 보정, 덧칠이나 보완, 없어진 부분의 재구성, 생성 이미지 사용은 하지 않았다. 다만 디지털 복제본의 색과 보이는 크기는 화면의 열람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이미지는 미술관의 오픈 액세스 정책에 따라 CC0로 공개되어 있다. 이 글은 독립적으로 작성한 세밀한 작품 해설이다. 역사적 정보는 미술관 도록과 그곳에 제시된 문헌에 근거하며, 해석과 SAE의 적용은 이 글의 판단으로서 미술관의 지지나 승인을 뜻하지 않는다. 함께 제공된 참고 자료와 이미지 출처를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