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青松勁挺姿’, 푸른 소나무가 힘차고 곧은 자태를 지녔다는 다섯 글자는 좁고 긴 한 칸 안에 쓰여 있다. 하지만 하나의 곧은 기둥처럼 서 있지는 않다. ‘青’은 푸르다는 뜻으로, 가로획들이 오른쪽 위로 올라간다. ‘松’(소나무)의 좌우 부분은 높이가 어긋난다. ‘挺’(곧게 서다)에서는 아래쪽 획이 오른쪽 괘선 가까이 뻗는다. 이어지는 ‘姿’(자태)는 다시 안으로 모이고, 그 아래 ‘凌’의 꺾임이 눈에 들어온다. ‘凌’은 여기서 능소화를 뜻하는 ‘凌霄’의 첫 글자다.
그 옆에는 가느다란 직선이 줄곧 있다. 이 선 덕분에 글자가 어떻게 기울고, 넓어지고,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지 더 잘 보인다. 괘선은 사라지지 않고, 글자들의 서로 다른 자세도 지워지지 않는다.

《촉소첩》(蜀素帖)의 움직임에는 이처럼 동시에 보이는 차이가 한몫한다. 비단의 긴 선은 아래로 이어지지만, 글자 안의 가로획과 빗획, 굽이진 획은 방향을 바꾼다. 한 글자씩 잘라 같은 흰 바탕에 놓아도 아름다운 획은 남을 것이다. 그러나 괘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이 줄에서 어떻게 방향을 바꾸는지를 보여 주는 기준은 사라진다.
이 작품은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이 소장한 미불(米芾)의 1088년 친필이다. 박물원은 본폭을 능직 비단인 능(綾), 세로 27.8, 가로 270.8센티미터로 기록한다. 쓰촨에서 만든 이 비단은 통상 ‘촉소’라 불린다. 박물원 설명에 따르면 가느다란 검은 괘선은 검은 실로 짜 넣었다. 임희(林希)의 제기는 재료의 제작 연도를 1044년으로 적는다. 미불은 임희의 요청으로 소중히 간직하던 이 비단에 여섯 제목 아래 여덟 편의 시를 썼고, 마지막에 원우 무진년 9월 23일, 곧 1088년의 날짜를 남겼다. 직물 제작과 미불의 글쓰기는 서로 다른 때의 일이다. 박물원 소장 기록과 석문, 2025년 전시 설명
여기서는 처음 네 편을 따라가 보자. ‘생동감’을 곧바로 인물평으로 돌리기 전에 두 종류의 선을 구별한다. 두루마리에 지속되는 방향을 주는 괘선, 그리고 한 글자마다 새롭게 짜이는 점획이다. 두 선이 함께 보이는 방식이 이 작품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곧음’은 수직획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림 1로 돌아가자. ‘青’의 윗부분 가로획들은 비슷하게 올라가지만 아래의 세로 구조가 글자를 붙잡는다. ‘松’은 꽉 찬 검은 덩어리가 아니다. 좌우 사이에 좁고 긴 비단빛이 남는다. ‘勁’(힘차다)의 오른쪽은 비스듬히 뻗고, ‘挺’(곧게 서다)은 더 낮은 곳에서 폭을 넓힌다. 다섯 글자의 검은 부분은 위로 모였다가 옆으로 퍼진다. 기울어 있으면서도 같은 칸을 따라 계속 읽을 수 있다.
왼쪽 이웃 줄에서는 ‘屈’(굽히다)이 유난히 길고, 그 아래 ‘盤’(휘감다)은 내부가 조밀하다. ‘種’ 뒤의 작은 반복 부호는 그 한자를 한 번 더 읽어 ‘種種’으로 만들라는 표시다. 이어 ‘出’(나오다)은 펼쳐지고, ‘枝’(가지)와 ‘葉’(잎)은 획을 다시 모은다. 줄 끝의 ‘牽’(끌다)은 길고 가는 선으로 아래 경계에 다가간다. 칸의 폭은 대체로 이어지지만 글자가 차지하는 너비와 높이는 다르다. 한 글자마다 같은 높이의 네모를 배정하는 가로선은 없다.
시는 소나무를 힘차고 곧다고 말한다. 글씨는 그 곧은 자세가 모두 수직인 것은 아닌 획들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무게중심이 안정되려면 모든 획이 괘선과 평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예에서 말하는 ‘欹正’, 기울어짐과 바름의 관계도 여기서는 눈으로 비교할 수 있다. 빗획과 글줄의 아래 방향이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더 선명하게 한다.
이 묶음의 제목은 ‘擬古’, 옛 양식을 본받아 짓는다는 뜻이다. 첫 시 전체를 읽어 보자. 아래 네 편의 중국어 원문은 통용 간체자로 옮겼으며 문장부호와 시의 행을 넣고 반복 부호를 풀어 썼다. 원본의 글줄 배치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사진에는 ‘勁/劲’(힘차다), ‘葉/叶’(잎)처럼 역사적인 자형이 남아 있다.
青松劲挺姿,凌霄耻屈盘。
种种出枝叶,牵连上松端。
秋花起绛烟,旖旎云锦殷。
不羞不自立,舒光射丸丸。
柏见吐子效,鹤疑缩颈还。
青松本无华,安得保岁寒。
푸른 소나무는 힘차고 곧게 섰는데,
능소화는 낮게 구부러져 감기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가지와 잎을 잇달아 내어,
얽히고 붙으며 소나무 꼭대기로 오른다.
가을꽃은 짙붉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무성하고 아름다워 검붉은 구름 비단 같다.
혼자 서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곧은 줄기에 빛을 펼쳐 쏜다.
측백나무는 이를 보고 씨를 내어 흉내 내고,
학은 의아해하며 목을 움츠려 돌아간다.
푸른 소나무 자체에는 이런 꽃이 없으니,
어찌 그 꽃을 겨울 추위까지 지켜 주겠는가.
이 번역은 마지막 물음을, 소나무에 기대어 피는 꽃이 소나무의 내한성까지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뜻으로 읽었다. ‘丸丸’은 《시경》의 ‘松柏丸丸’에서처럼 곧게 자란다는 뜻으로 보고, 둥근 열매로 풀지 않았다. ‘꽃이 없다’는 앞의 가을꽃과 마주하며 의문문을 그대로 남긴다. 시는 다른 것에 기대어 위로 자라는 화려함을 그린다. 한편 비단 위의 글자에는 저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받침과 펼침이 있다. 《시경·은무》 중국어 본문
시의 뜻은 ‘힘차고 곧음’에 주목하게 하지만, 모든 획의 방향을 정해 주지는 않는다. ‘青’과 ‘挺’을 곁의 괘선과 함께 보면 기울어짐과 바름을 가리킬 기준이 생긴다. 가로획은 어떻게 비스듬히 올라가는가. 무게는 한 줄 안에서 어디에 놓이는가.
한 칸을 채울 수도, 대부분 남겨 둘 수도 있다
첫 시가 끝날 무렵 ‘青松本無華安得保’(푸른 소나무에는 본래 꽃이 없으니 어찌 지키겠는가…)까지가 한 줄을 채운다. 마지막 ‘歲寒’, 겨울 추위는 다음 줄 위쪽에 따로 놓인다. 그 아래 긴 비단에는 미불의 시 본문이 없다. 다시 왼쪽으로 가면 ‘龜鶴年壽齊’, 거북과 학은 수명이 같다는 구절이 칸 위에서 시작하며 두 번째 시를 연다.

글씨 없는 자리에는 두 개의 뚜렷한 가장자리가 있다. 이어지는 괘선 안에 있고, 옆 칸과 같은 길이를 지닌 비단이다. 시가 끝나도 칸은 짧아지지 않는다. 말이 멎는 위치와, 쓰지 않은 길이가 한꺼번에 보인다.
‘寒’(춥다)의 끝에는 아래로 돌아가는 가는 획이 있지만 그 밑에 받을 글자가 없다. 왼쪽에서는 ‘龜’(거북)와 ‘鶴’(학)이 넓고 조밀한 검정을 되돌려 놓는다. ‘年’(해)의 긴 세로획이 그 밀도를 열어 놓은 뒤 ‘壽’(장수)와 ‘齊’(같다)가 이어진다. 한 번 멈춘 뒤 시작한 다음 시는 앞의 배치를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는다.
두 번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龟鹤年寿齐,羽介所托殊。
种种是灵物,相得忘形躯。
鹤有冲霄心,龟厌曳尾居。
以竹两附口,相将上云衢。
报汝慎勿语,一语堕泥涂。
거북과 학은 오래 사는 것이 같으나,
깃털과 껍질, 몸을 의탁한 바가 다르다.
둘 다 영묘한 생물이라,
뜻이 맞으면 몸의 차이를 잊는다.
학에게는 하늘로 솟을 마음이 있고,
거북은 꼬리를 끌며 사는 데 싫증이 난다.
둘이 같은 대나무를 입에 물고,
함께 구름길로 오른다.
일러 두지만 조심해서 입을 열지 마라.
한마디만 하면 진흙으로 떨어진다.
이 시의 상승에는 구체적인 조건이 있다. 서로 다른 몸, 대나무 한 대, 닫혀 있어야 할 입이다. 높이 오르려는 마음이 이 사물들을 통해 전개된다. ‘구름길’과 ‘진흙에 떨어짐’ 사이에는 한 번 입을 여는 일이 있을 뿐이다.
글씨에도 고르게만 갈 수 없는 길이 있다. 다만 다른 종류의 구체성이다. 그림 3의 오른쪽 줄 ‘忘形軀鶴有沖霄心龜’(몸의 차이를 잊고, 학에게는 하늘로 솟을 마음이 있으며, 거북은…)를 보자. ‘形’(형태)과 ‘軀’(몸)는 비교적 가늘고 끊기는 선을 보이고, 이어지는 ‘鶴’(학)은 조밀하다. ‘有’(있다)와 ‘沖’(솟구치다)은 다시 간결하고 성기다. ‘心’(마음)은 양쪽으로 열리고, 끝의 ‘龜’(거북)는 다시 모인다. 한 칸 안에서 형태들이 바뀌되 규칙적으로 교대하거나 계속 커지지는 않는다.

옆 줄의 ‘厭曳尾居’, 꼬리를 끌며 사는 데 싫증이 난다는 구절은 긴 글자들로 세로 공간을 크게 나눈다. 그 아래 ‘以竹兩附口相’(둘이 같은 대나무를 입에 물고 함께…)에서는 복잡한 ‘附’(붙이다) 다음에 단순한 ‘口’(입)가 나타난다. 폭과 놓인 자리가 달라도 계속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줄의 연결을 만든다. 괘선이 점획 대신 그 길을 완성해 놓은 것은 아니다.
‘一語墮泥塗’(한마디면 진흙으로 떨어진다)에서 줄은 중간보다 아래에서 끝난다. 왼쪽의 《吳江垂虹亭作》 제목은 위 괘선에 붙지 않고 조금 낮게 시작하여 다음 두 시를 같은 두루마리에 잇는다. 여덟 시에는 시의 끝, 짧은 줄, 새 제목이라는 마디가 있다. 그 마디를 지나며 다음 시가 시작하는 곳을 안다. 이어지는 직선은 이 다른 끝과 시작을 같은 비단에서 비교하게 한다.
물과 하늘이 흐려져도 획에는 각자의 자리가 있다
한 행이 일곱 글자인 오강의 절구 두 편에 이르면, 내용은 우화에서 여행자 눈앞의 물로 옮겨 간다. 첫 시는 돛, 물고기, 귤과 가을빛을, 둘째 시는 넓은 호수에서 천상의 직녀와 달의 여신으로 이어지는 상상을 쓴다.
《오강 수홍정에서 지음》 첫째
断云一片洞庭帆,玉破鲈鱼金破柑。
好作新诗继桑苎,垂虹秋色满东南。
구름 한 조각인가, 동정 쪽으로 가는 돛인가.
자른 농어는 흰 옥, 쪼갠 귤은 황금빛이다.
새 시를 지어 상저옹을 이을 좋은 때이니,
수홍정의 가을빛이 동남에 가득하다.
‘桑苎’, 상저는 육우(陸羽)의 호인 상저옹을 가리킨다. ‘玉’(옥)과 ‘金’(금)은 음식의 흰색과 노란색을 구분해 쓴다. 원본의 ‘金’은 옆에 넣은 수정이고, 원래의 큰 ‘霜’(서리)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석문은 고친 글자를 읽지만 사진은 둘을 함께 보존한다.
둘째
泛泛五湖霜气清,漫漫不辨水天形。
何须织女支机石,且戏常娥称客星。
오호에 배를 띄우니 서릿기운이 맑고,
아득하여 물과 하늘의 모양을 가릴 수 없다.
직녀의 베틀을 받치는 돌을 굳이 구할 것 있으랴.
달의 여신과 장난하며, 나 스스로를 객성, 곧 찾아온 별이라 부르리라.
원본의 ‘常娥’는 보통 ‘嫦娥’로 쓰는 달의 여신 항아다. 베틀 받침돌과 객성은 호수 여행을 은하를 찾아가는 전설로 이끌지만, 시 안에는 서늘한 가을 공기와 물과 하늘이 나뉘지 않는 모습도 남는다. 두 시가 끝나면 작은 글씨로 ‘時為湖州之行’, 당시 호주로 가는 길이었다고 덧붙인다.

오른쪽 줄 ‘斷雲一片洞庭帆玉破鱸’를 따라가 보자. ‘斷’(끊어지다)과 ‘雲’(구름)은 검정을 위에 모으지만, ‘一’(하나)은 가로획 하나다. ‘片’(조각)은 넓은 내부 공간을 남기고, 지명 동정을 이루는 ‘洞’과 ‘庭’이 다시 폭을 가져온다. 아래 끝의 ‘鱸’(농어)는 남은 자리에 조밀하게 들어간다. 칸의 폭은 그대로인데 열 글자는 같은 크기의 네모 열 개가 아니다.
다음 줄 위쪽의 큰 ‘霜’(서리) 옆에서 작은 ‘金’(금)은 글자와 오른쪽 괘선 사이의 좁은 틈을 쓴다. 이 칸은 줄 전체의 범위를 나눌 뿐 모든 자리를 같은 크기의 글자에게 미리 배분하지 않으므로 두 크기가 함께 있을 수 있다. 수정은 드러난 비단이 다른 글자의 진입 자리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가운데 ‘泛〔반복 부호〕五湖霜氣清漫〔반복 부호〕不’를 보면 ‘五’(다섯)는 가로로 벌어지고 ‘湖’(호수)는 긴 내부 공간을 남기며 ‘霜’(서리)은 조밀하다. ‘氣’(기운)의 아래쪽은 오른쪽으로 나오고, ‘清’(맑다)은 좌우로 나뉜 구조로 돌아간다. 옆의 ‘辨水天形何須織女支’에서는 ‘水’(물)가 양쪽으로 열리고 ‘形’(모양)과 ‘何’(어찌)는 가늘어지며 ‘織’(짜다)에서 다시 모였다가 ‘支’(받치다)의 끝이 오른쪽으로 뻗는다. 평행한 괘선은 이 열림과 모임을 같은 동작으로 만들지 않는다.
비단빛도 볼 만하다. 글자 밖의 넓은 자리에는 촘촘한 직물 표면이 보이고, 옅고 가는 획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짙은 검정의 ‘霜’과 ‘清’ 옆에서는 분명한 경계를 이룬다. 재료는 글씨의 뒤로 물러나 있지 않다. 획과 노출된 직물, 가느다란 직선이 함께 눈앞의 표면을 만든다.
사진의 굵기와 드러난 바탕이 필압, 속도, 비단의 저항을 직접 알려 주지는 않는다. 눈앞의 비교만으로도 풍부하다. 괘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가로획을 따라 옆으로 돌고, 복잡한 획 뭉치를 만난 뒤에는 작게 열린 비단으로 나온다.
《촉소첩》의 서로 다른 자세는 괘선을 넘어야만 생기지 않는다. 변화의 많은 부분이 이어지는 칸 안에서 일어난다. 빗획은 수직 기준을, 짧은 글줄은 칸의 전체 길이를, 가는 획은 재료를 드러낸다. 미불은 이미 모양을 가진 직물에 글을 썼으며 그 직물 또한 글자 사이에 남는다. 둘이 눈앞에서 함께 성립하는 데서 움직임이 생긴다.
선택해서 읽기|하나의 표면에서 서로 다른 내력을 구별하기
그림 2 ‘歲寒’, 겨울 추위 아래의 긴 공간은 좋은 출발점이다. 다음 글자는 없지만, 촘촘한 직물 표면과 양쪽 직선, 나중에 들어온 붉은 인장이 있다. 모두 오늘의 사진에 속한다. 그러나 미불의 붓 아래 같은 순간에 놓인 것은 아니었다.
《나무에는 그 가뭄의 해가 남아 있다》에서 나는 물건의 내력이 현재의 형태에 남을 수 있지만, 어떻게 남는지를 구별해야 막연한 ‘오래전’으로 물건을 대신하지 않게 된다고 썼다. 이 관점은 《촉소첩》의 괘선에 다른 무게를 준다. 그것은 글쓰기 이전의 제작이 남긴 것이며, 오늘 우리가 미불의 기울어진 글씨를 설명하려고 그어 넣은 보조선이 아니다. 링크는 중국어 본문이며 한국어 제목은 이 글의 번역이다.
임희의 제기는 1044년 제작과, 글씨 잘 쓰는 이에게 부탁하려 했던 1068년 장황을 기록한다. 미불의 마지막 날짜는 1088년이다. 이 기록들이 선후 관계의 근거다. 눈은 실제로 존재하는 괘선을 찾고, 제기는 그 선이 글씨 이전에도 내력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후 빈 곳에 들어온 소장인은 ‘미불이 여기 글을 쓰지 않았다’와 ‘오늘 여기가 완전히 비어 있다’를 다른 판단으로 만든다.
SAE(Self-as-an-End)의 ‘인과의 아름다움’이 더하는 것은 한 표면 속 서로 다른 형성 과정에 대한 감각이다. 직물을 만들고, 그 위에 쓰고, 나중에 인장을 찍고, 사진을 통해 화면에 오는 과정은 각기 다른 것을 남긴다. 이를 구별하면 글자는 내력 있는 재료 위에 놓인다. 이미 만들어진 것에 응하면서 자신의 배치를 남겨, 나중의 관람자도 그 기울기와 폭, 쓰지 않은 자리를 찾게 한다.
작품, 판독과 이미지 설명
- 대상은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宋米芾蜀素帖卷》, 통일번호 故書000071N000000000이다. 본폭은 능직 비단, 27.8×270.8센티미터. ‘비단’, ‘촉소’는 통상 명칭을 따르며 종이라고 하지 않는다. 과거 박물원 해설의 미불 생몰년에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나이로 서풍을 추정하지 않고 현재 전시의 제작 연도 1088을 따른다.
- 여덟 시 중 네 편을 전문 전사하고 완역했다. 모든 외국어판에 이 네 편의 중국어 전문과 완역을 넣었다. 역사적 자형은 勁/劲(힘차다), 龜/龟(거북), 鶴/鹤(학), 壽/寿(장수), 華/华(꽃), 斷/断(끊다), 雲/云(구름), 鱸/鲈(농어) 등이다. 간체자 전사는 읽기 보조이다. ‘霜’ 옆의 ‘金’ 수정을 따르고 반복 부호를 풀며 ‘常娥’를 유지했다. 첫 시 마지막 물음의 번역은 본문의 독법임을 밝혔다.
- 네 부분도는 2025년 공식 전시 사진 2-4-3, 2-4-4, 2-4-5를 직사각형으로 잘라 JPEG로 저장했다. 이웃 글줄과 괘선을 남겼으며 보필, 색 변경, 인장 제거, 글씨 생성은 하지 않았다. 사진 17장의 축소 색인과 공식 고해상도 링크를 제공한다. 색인은 각 단에서 왼쪽부터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번호를 찾고, 사진 속 두루마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사진은 서로 겹치므로 단순 연결하여 실물 길이를 계산할 수 없다.
- 공개 사진을 자세히 읽은 글이지 원작 앞에서 관찰한 기록이 아니다. 기울기, 공간, 표면의 설명은 보이는 형태의 비교이며 특정 심리나 성격, 제작 전 과정을 필적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 이미지 출처: 국립고궁박물원, 타이베이. 박물원 일반 공개정보 선언은 출처 표시 등의 조건에서 재이용을 허용하며 예외도 규정한다. 개별 이미지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다른 다운로드 경로의 CC0 또는 CC BY를 이 전시 JPEG에 적용하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동봉한 이미지 권리 설명을 참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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