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론 · 05
남았으면 해. 하지만 갈지는 네가 정해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않으면서 아쉬움을 상대의 의무로 만들지도 않는다. 하필 이 사람이라는 마음과 이 사람에게도 자기 길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로 뭉칠 수 없다.
여자는 악단에서 첼로를 켜고 남자는 중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친다. 사귄 지 사 년인 봄 다른 도시 악단이 여자를 불렀다. 가면 떨어져 살고 안 가면 다시없을 기회일 수 있다. 일주일을 생각한 어느 밤 여자가 물었다. 내가 갔으면 좋겠어?
남자가 답했다. 남았으면 해. 그건 내 마음이고, 갈지는 네가 정해.
가벼운 말은 아니다. 무관심을 익힌 것도 슬픔을 다 치워야 말할 자격을 얻은 것도 아니다. 떠나기 전 잠 못 이룬 밤이 있었고 앞으로 함께 연주할 동료 이야기에 너는 오직 내 사람이어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말하지 않았고 조금 뒤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이 글은 여기서 사랑을 본다. 남기 바라는 것은 똑같이 다정하고 첼로 잘 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녀다. 하지만 그의 사랑을 완성하려고 자기 삶을 가진 것도 아니다. 둘이 함께 있어야 하며 하나가 다른 것을 대신하지 못한다.
이 사람을 사랑하며, 그가 자신으로 남게 하기
자기 삶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사랑은 아니다. 교사도 학생에게, 우리도 낯선 사람에게 그럴 수 있다. 사랑에는 이 사람이 내게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 더 있다. 똑같이 좋은 다른 사람은 같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대체 불가능함에도 상대의 삶을 인정함이 자동으로 들지는 않는다. 그 사람뿐이니 이후의 길 전부를 자기 계획에 넣어야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남았으면 한다는 말은 진심일 수 있고 그래서 못 간다는 말이 뒤따를 수도 있다. 그 연결에서 두 사랑 방식이 갈린다.
교사는 자기 절반을 거두지 않았다. 남았으면 하는 마음을 말했고 여자는 그것이 불합리하다고 해야만 계속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답으로 다시 생각하고 슬퍼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방식이 옳다고 그녀가 먼저 승인해야 사랑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그도 사랑받고 싶다. 답을 바라는 것과 이렇게 대하는 선결 조건으로 답을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충분히 했는지 똑같이 돌려받았는지를 늘 확인하지 않아야 눈길이 자신에게서 옮겨져 그녀가 일주일간 무엇을 생각했는지 들을 수 있다.
왜 가고 싶은지 다 말할 수는 없다. 수석 연주자와 곡목, 서른다섯 전 도전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물으며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러나 너보다 네가 원하는 것을 더 안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친밀함은 자료를 늘리지 속을 읽어 낼 허가증을 주지 않는다.
프롬이 존중을 말하며 상대를 나에게 봉사하도록 키우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펼치게 한다는 점과 닿는다. 이미 완성된 사랑의 교본은 아니다. 이번 말이 그녀에게 속한 판단을 그녀에게 남겼는지를 묻는다.
너만 사랑한다고, 너도 그래야 할 권리는 없다
이 사랑에 관해 한 가지를 분명히 선택한다. 이렇게 사랑하는 순간들에는 늘 이 사람을 향하지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가지 않는다. 사람을 도구로 쓰지 않는다는 데서 바로 나오는 정리도 남에게 발급하는 감정 합격증도 아니다. 여기서 읽는 사랑이 어떤 자리에 서는지 밝히는 것이다.
지속은 매초 생각함이 아니다. 수업과 채점과 버스 타는 중에 사랑을 매번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잠깐의 중단은 흔들림이 아니다. 반면 말 안 한 너는 오직 내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자기 방향을 그녀의 자로 만들 가능성을 보인다. 그때를 따로 읽지 한 사람과 사 년의 사랑 전체를 판결하지 않는다.
실제로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사랑한다면 줄곧 하나만 사랑하겠다고 했다는 이유로 지울 수 없다. 이름을 지키기보다 무엇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상대를 상대에게 남길 수 있는 사랑은 쉽지 않으며 도착하면 다시는 실수 없는 등급도 아니다.
그녀만 사랑하는 것은 자기 쪽의 일이다. 그녀도 자기만 사랑하는 것을 그 사랑으로 교환하지 못한다. 서로 배타적이기로 약속할 수는 있으며 실제 구속과 결과가 따른다. 상대 사랑을 요구할 수 없다는 말로 이미 한 약속을 면책하지 않는다. 다만 너뿐이라는 말만으로 상대 대신 똑같이 서명할 수 없다.
둘이 각자 상대만 택하면 두 일방향 선택이 만난다. 그래도 그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여지를 주었다고 판정하지 못한다. 서로만 사랑해도 원해서일 수도 교환이거나 상실의 두려움이거나 다른 사람과 단절해서일 수도 있다. 겉이 같다고 속에 답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인정하는 것까지 배타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녀를 사랑해도 학생과 동료와 낯선 이에게 자기 길이 있음을 인정한다. 한 사람만 사랑한다고 나머지 모두가 쓸 물건이 되지 않는다. 키르케고르의 편애에 대한 질문은 무겁다. 여기서는 누구를 사랑하는지와 누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지 나누어 앞이 뒤를 삼키지 않게 한다.
먼저 사랑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상처를 다 받아야 하지는 않는다
번역하는 여자가 자주 만나는 편집자를 사랑한다. 편집자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동의를 받아야 사랑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거절했다고 그가 사람으로 대우받을 가치가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사랑한다고 같은 사랑으로 답할 의무가 생기지 않는다.
마음을 아는 편집자가 한동안 한밤에 급한 원고를 보내 네가 최고라며 다음 날 아침까지 달라고 했다. 사랑해도 밤마다 바칠 필요는 없다. 원고를 거절하고 그 시간의 연락에 답하지 않고 교류를 끝낼 수도 있다. 그에게 자기 생활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가능하다.
한쪽으로도 온전하다고 짝사랑이 더 높거나 응답이 하찮거나 잘 사랑하면 무엇이든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한다면 다 받아야 한다는 말은, 사랑을 앞세워 상대의 시간과 판단까지 자기 뜻대로 하려는 것이다. 사랑이 경계를 치울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첼리스트 쪽도 같다. 너를 위해서인데 악단이 안 맞고 계속 고민하면 내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의견만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판단을 받아들여야 사랑을 인정한 증거라고 정한다. 여자는 다시 생각하기 전에 사랑을 모른다는 죄부터 지게 된다.
가면 후회할까 걱정된다는 말과는 다르다. 이유를 주고도 위험을 알지만 해 보겠다는 답을 허용할 수 있다. 부드러운 말투나 너를 위한다는 말만으로 옳고 그름을 끝내지 않는다. 나중에 그녀가 갔다고 앞선 압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더 배려 같아 보이는 흉내도 있다. 남기 바라면서 분위기를 지키려고 어떻게 해도 괜찮다고 판단을 의논에서 거둔다. 공간을 준 것이 아니라 자기 몫을 안 준 것이다. 그러나 가끔 말 안 했다고 모두 맞춰 주기는 아니다. 언제 말하고 잠시 미룰지도 자기 판단일 수 있다.
보부아르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통째로 내주며 자기 삶을 잃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덜 확고한 개인의 문제만도 아니다. 사회는 자기희생을 칭찬받고 실제로 택하기 쉬운 길로 만들 수 있다. 그런 조건을 지우지 않으면서 현재 교류에서 누구 목소리가 넘어가는지 본다. 여러 해 안 싸웠다고 둘 다 싫다고 말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여자는 다른 도시로 갔다. 이듬해 다른 이를 사랑해 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긴 편지를 보냈다. 떠남은 분명했으며 옛 약속으로 이미 다 청산한 척하지도 않았다. 남자는 짧게 답했다. 사 년간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대신 말하거나 자기 슬픔으로 그녀의 거취를 정하지 않았다.
이 사랑은 끝날 수 있다. 지속은 영구가 아니며 자기 길을 인정한다고 같은 길로 계속 가야 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떠나면 교류는 끝나도 남자의 사랑은 그 쪽에서 봐야 한다. 몇 년 뒤 다른 이를 사랑했다면 이전 것이 실제 끝났을 때 선후다. 새 사랑만으로 옛사랑이 일찍 끝났다고 거슬러 말할 수는 없다.
접촉을 놓는다고 사람의 지위를 취소하지 않는다. 아직 사랑한다고 길을 막고 동료를 찾아 압박하는 일이 당연해지지도 않는다. 사 년간 기대어 온 것과 약속과 들어 준 바람은 남는다. 마주해야 하지만 불러올 통행증은 아니다.
그 말의 어려움은 남는다. 남았으면 한다는 것은 거짓도 지워야 할 것도 아니다. 갈지는 네가 정한다는 것도 관대한 척이 아니다. 두 절반이 함께 있어야 사랑으로 상대를 거둬들이거나 사랑하려 자신을 내주는 일이 아니게 된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길잡이는 원논문 제0편, 여섯 시선은 1~6편, 마지막 여섯 이야기는 제7편에 대응한다. 여덟 편은 일반 독자를 위한 완결된 산문이지 기술적 논증 전부를 문단마다 옮긴 글이 아니다. 영어는 독립적으로 썼으며 한국어도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각 글에 원논문 링크가 있다. 시선은 사랑의 발달 단계도 남의 속마음을 검사할 시험도 아니며 밖에서 성숙을 인증하는 기준도 아니다. 혼인과 성의 면을 따로 다룬다고 사랑 안의 그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 사랑 논의로 이미 한 약속과 제도적 요구, 필요한 보호를 취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