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읽기
Non Dubito

철학 산문 · 04

오래갔다고, 남길 가치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쓸모가 있어 남는 사람, 떠나기 어려워 남는 사람, 서로를 여전히 사람으로 대하기에 남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 같은 안정이어도 안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난다.

Han Qin ·

연례 모임의 단체사진에는 줄마다 사람이 가득하다. 오래된 회원도 돌아왔고 새 회원도 많다. 진행자가 말한다. 오늘까지 왔다는 사실이 처음 고른 길이 옳았다는 증거라고. 박수가 나온다. 쉽게 수긍하게 되는 말이다. 옳지 않은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오래 함께했겠는가.

사진을 다른 방으로 가져가면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배우는 것이 있어서 온 사람, 일할 기회를 잃지 않으려 온 사람, 무대의 말은 더는 믿지 않지만 오랫동안 고생한 친구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진은 모두를 한 장에 담았지만 남은 이유까지 찍지는 못했다.

우선 가상의 연례 모임으로 보자. 오래된 조직은 다 못 믿겠다는 말이 아니다. 구분은 좁다. 이어졌다는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관한 증거이지 이어져야 할 이유 전부가 아니다. 시간은 배치가 얼마나 질긴지 보여 주어도 그에 대한 판단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똑같이 남아 있어도, 그 안은 다르다

공구를 함께 사서 번갈아 쓰는 모임이 있다. 각자 한 벌씩 살 돈을 아낀다. 회원이 오가도 공구를 나누는 일이 계속 유용해서 모임은 남는다. 그렇다고 낮은 것은 아니다. 필요, 편리함, 정당한 보수도 공동생활의 일부다. 아무 이득도 없음을 먼저 증명해야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자격을 줄 수는 없다.

다른 배치도 유지된다. 떠나는 순간 생계를 잃거나 관계가 끊기거나 벌을 받는다. 남아 있다고 자유롭게 찬성했다는 뜻은 아니다. 구호를 맞춰 말한다고 그 구호가 자기 말이 되었다는 뜻도 아니다. 왜 흩어지지 않는지는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흩어지지 않았음을 상처가 없다는 증거로 쓸 수는 없다.

이익도 있고 갈등도 있으면서 다른 방식으로 남을 수도 있다. 자기에게 의미가 있고, 동료가 쓸모 있을 때만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이 싫다고 말해도 다른 사람이 그의 자격까지 지우지 않는다. 협력이 안 맞고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의 불일치를 그 사람 전체에 대한 부정으로 키우지 않을 수 있다.

원논문은 이익, 강제, 상호 인정을 서로 다른 안정 기제로 구분한다. 실제 집단이 한 성분으로만 이루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독서모임에는 우정도 배움도 운영비도, 입을 열기 어렵게 하는 압박도 있다. 지금의 지속을 무엇이 떠받치며 그 비용은 누가 치르는지 보아야 한다.

기제는 달라지기도 한다. 믿음으로 시작한 집단이 서서히 이견을 불충으로 취급할 수 있다. 편의 때문에 시작한 협력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게 할 수도 있다. 처음 이야기가 오늘을 영원히 증명하지 않는다. 몇 년 전의 따뜻함도 오늘의 숨 막힘도 사실일 수 있다. 어느 하나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말을 믿는다는 뜻이 아니다

상호 인정은 근사하게 말할수록 오해하기 쉽다. 우리 사이에는 더는 의심이 없어야 한다고 듣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장부의 문제를 발견한 회원에게 먼저 묻는다. 우리조차 믿지 못하느냐고. 사람을 지키려던 말이 돌아서서 따져 묻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여기서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청구서나 설명, 대표자의 판단마다 고개를 끄덕인다는 뜻이 아니다. 이의를 냈다는 이유로 당신을 처리해야 할 골칫거리로 낮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신도 자기 방향이 있는 사람이기에 내가 못 본 것을 보고 내가 인정하기 싫은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잡지 편집부를 생각해 보자. 누군가는 원고를 실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글에 등장하는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양쪽이 진지하다고 절충한 제목을 반드시 찾는 것은 아니다. 취재를 보태거나 원고를 철회하거나 협력이 끝나기도 한다. 존중은 모든 분쟁을 조화시킬 보증이 아니며 자기 판단을 단체에 잠시 맡기는 일도 아니다.

함께 새 방식을 찾아내어, 꼭 누가 이기고 져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기뻐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한 번 뜻을 모았다고 이후 모든 일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문제는 다시 마주해야 한다. 만남의 한순간을 관계의 영구적 완성으로 쓰면 나중의 진짜 이견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된다.

떠나는 일도 그렇다. 가족을 돌보거나 방향이 바뀌거나 더는 하고 싶지 않아 떠나는 데, 단체가 완전히 나쁘다는 증명은 필요 없다. 여기서 많이 받았다고 인정하면서도 미래 전부를 이곳에 두지는 않겠다고 정할 수 있다. 떠나기를 부끄럽게 해야만 유지되는 집단은, 모두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로운 인정에 기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떠나면 이미 한 행동이 지워지거나 공동재산을 가져가도 되거나 인계할 일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설명하고 책임지는 일과 미래의 자기 전체를 계속 집단에 맡기는 일을 나누는 것이다. 둘은 하나의 끝없는 빚이 아니다. 실제 다툼은 각자의 사실과 약속을 따져야 한다.

무엇을 계속 남기고 싶은가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는 모르는 사이 주어가 바뀌기 쉽다. 처음에는 책 읽기, 기술,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이어 가려 했다. 그러다 이름과 간판을 남기고 회원 수는 늘기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나중에는 집단에 남겨질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름도 귀한 기억을 담는다. 옛 잡지의 제호, 학교의 문패, 친구가 지어 준 모임 이름을 다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판과 실천은 따로 갈 수 있다. 매년 기념행사를 해도 그 생각을 독립적으로 이해하고 고치고 쓸 사람은 없을 수 있다. 이름을 바꾼 사람이 원래의 관심까지 전부 버린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집단이 얼마나 지속하는가는 연구할 문제다. 무슨 근거로 이 사람들에게 계속하라고 요구하는지도 다른 문제여야 한다. 앞의 질문이 뒤에 자동으로 답하지 않는다. 강제적 배치가 질기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반대할 수 있다. 흩어진 집단이 이어지지 못했다고 인정하려고 처음부터 무의미했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실패의 얼굴도 하나가 아니다. 학교는 남기지 못해도 한 학생을 성실히 가르친 사람이 있다. 몇 호만 낸 잡지가 전에는 쓸 엄두를 못 내던 몇 사람을 쓰게 했을 수 있다. 세대를 넘는 전통은 되지 못했다는 판단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래서 헛일이었다고 덧붙이면 지속을 연구하던 자리에서 벗어나 구체적 삶에 다른 판결을 내린다.

반대로 사람을 생각한다는 말로 존속 조건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공간 비용을 내고 지식을 가르치고 자료를 정리하며 뒤의 사람에게 입구를 마련해야 한다. 존중이 그 일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일의 방향을 바꾼다.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누가 가장 충성스러운지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기록을 남기는 것도 뒤에 올 사람들이 그대로 서명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임이 끝나고 의자를 하나씩 포갠다. 내년에 올 사람도 안 올 사람도 있다. 단체사진은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증명할 수 없는 것까지 떠맡지 않을 뿐이다. 함께한 세월을 기뻐하며 다른 질문을 남겨 둘 수 있다. 이 일을 계속한다면 뒤의 사람도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 우리 연혁에 한 해를 보태는 사람으로만 남지 않을 수 있을까.

원논문과 읽기 안내

이 다섯 편은 《오래 이어지는 합의의 네 단계 구조와 비대칭 기하학》을 바탕으로 독자를 위해 새로 쓴 산문이며 기술적 논증 전체를 문단마다 옮긴 번역은 아니다. 공방, 자료실, 공부방, 모임은 가상의 예시이지 역사적 증거나 전문적인 실무 지침이 아니다. 네 단계와 두 요인은 원논문이 제안한 관찰의 틀이며 입증된 보편 법칙, 집단의 순위표, 조직 확장 처방이 아니다. 역사 해석, 시간 비율, 모의실험 결과, 주관적 예측에는 여전히 독립 검증이 필요하다. 기술적 차원표는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는다.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판단에 동의하거나 떠남을 제한하거나 완전한 상호 이해를 이루었다고 선언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어는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한국 독자의 문장 흐름에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인간 모어 화자의 인증을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원논문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