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秋’에서 春(봄 춘)의 가로획들은 먼저 오른쪽 위로 올라간다. 길이가 서로 다르고, 그 사이에서 삐침과 파임이 양옆으로 벌어진다. 아래 日(해 일) 부분은 그 안에 작게 모여 글자 전체 너비를 채우지 않는다. 秋(가을 추)는 다르다. 왼쪽 禾(벼 화)는 조밀하고, 오른쪽 火(불 화)의 사선들은 바깥으로 뻗는다. 두 글자는 매끄럽게 이어 읽히지만, 눈앞에서는 같은 크기의 네모 덩어리 두 개로 놓이지 않는다.

春의 가로획은 기울어도 글자 전체가 한쪽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벌어지는 사선, 좁아진 아래 부분, 이웃 글자가 내어 준 자리가 위로 향하는 움직임을 받아 준다. 《장맹룡비》의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방향이 응답한 뒤에 안정이 생긴다는 데 있다. 사선과 모서리는 글자가 서는 과정을 보이게 한다.
여기서는 일본 다이토분카대학 문학부 서도학과 소장 DAITOB00043 한 첩을 읽는다. 대학 기록은 약 31×18.6cm의 접첩으로 설명하며 원각을 북위로 분류하지만, 이 탁본을 뜬 시기는 적지 않는다. 원비는 북위 정광 3년인 522년에 노군 태수 장맹룡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522년은 돌에 관한 연대이며 지금의 종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이번 자료에서는 글씨를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의 이름도 확정되지 않는다. 원비는 산둥성 취푸에 남아 있다. 대학 소장 기록, 고궁박물원의 원비 및 별도 명대 탁본 설명
가로획이 올라가면 사이 공간도 달라진다
그림 1의 春에서 가로획만 먼저 보자. 길이가 같은 평행 막대들이 아니다. 긴 획은 좌우로 뻗어 아래에서 갈라지는 사선들을 자기 범위 안에 품는다. 짧은 부분들은 중앙 위쪽에 시각적 무게를 모은다. 따라서 가로획 사이의 검은 틈도 균일하게 쌓인 서랍이 되지 않는다. 위는 조밀하고, 아래 日의 속 공간은 뚜렷하다. 시선은 교차하는 선 무리에서 작고 안정적인 테두리로 내려온다.
지금 보는 것은 흰 글자와 검은 바탕의 탁본이다. 흰 형태는 대체로 돌에서 움푹 파여 먹이 묻지 않은 부분에 해당한다. 획 사이의 검정은 내부 간격을 분명하게 한다. 조밀함과 성김을 본다는 것은 흰 선이 어디 모이는지와 함께 검은 바탕이 그 사이로 어떻게 통하는지를 보는 일이다. 흰 윤곽만 따라 그리면 관계의 절반이 빠진다.
秋의 조직은 다르다. 春 아래의 작은 테두리가 없다. 오른쪽 사선들이 바깥으로 열고, 왼쪽의 수직적인 부분은 서 있는 골격을 지킨다. 같은 줄에서 연이어 나타나도 열리고 닫히는 방식이 다르다. 위의 先(먼저 선)은 아래가 두 획으로 갈라져 더 넓게 비며, 아래 嘉(아름다울 가, 칭송하다는 뜻)는 가로획과 입 모양 테두리들을 쌓아 다시 조인다. 하나의 읽기 길에서 이미 열림과 밀도가 여러 번 바뀐다.
여기서 전통적인 ‘결구’가 구체적으로 이해된다. 미리 정한 정사각형에 부품을 넣는 일만이 아니다. 어느 곳은 뻗고 어느 곳은 모일지, 어떤 작은 틈을 남기고 어떤 긴 선으로 시선을 옆으로 보낼지 정하는 것이다. 획마다 자리의 역할이 있다. 글자는 알아볼 수 있으면서 국소 관계는 변한다. 그 선택들이 함께 성립할 때 이 비석의 선명한 인상이 생긴다.
오른쪽 이웃 줄의 大(큰 대)와 夫(지아비 부)는 좋은 비교 대상이다. 두 글자가 합쳐진 大夫는 고대의 관직 이름이다. 획이 적어 사선 방향의 확장이 두드러진다. 春과 嘉는 획이 많으므로 뻗는 부분을 더 복잡한 내부 구조가 받친다. 중심축을 하나하나 긋지 않아도 각 글자의 무게중심을 느낄 수 있다. 모두 같은 너비로 확대하고 가로획을 수평으로 바로잡으면 이러한 차이가 사라진다.
태수를 칭송하는 글에 왜 봄풀과 어린 연잎이 나올까
비문은 장씨의 계보를 먼저 이야기하고 장맹룡의 효행, 관력, 통치를 적은 뒤 운문으로 찬양한다. ‘春秋嘉其聲績’은 춘추시대 진나라에서 활동한 장씨 선조들의 업적을 돌아본다. 뒤에 한나라 초기의 장이 등을 서술하면서 태수를 긴 가문의 역사 속에 놓는다. 여기서 春은 먼저 역사 서술의 일부다.
다른 펼침면에서는 비유 속에 들어간다. ‘新蘅之當春,初荷之出水’, 곧 새로 돋은 향기로운 풀이 봄을 만나고 어린 연잎이 수면 위로 나오는 듯하다는 말이다. 식물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으로 인물의 풍모와 자질을 기린다. 찬양의 목적을 알고 나면 지방 관리에게 후대가 기억할 만한 모습을 부여하는 글임이 드러난다.

이 春을 그림 1과 비교할 수 있다. 위는 여전히 조밀하고 아래는 작으며 좌우로 열릴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當과 初 사이에 있다. 위 글자는 여러 층으로 쌓이고 아래 글자는 두 부분이 옆으로 나뉜다. 줄 전체의 흑백 리듬은 달라졌다. 같은 글자를 알아본다고 같은 이웃 관계를 본 것은 아니다.
왼쪽 이웃의 水(물 수)는 더 성기다. 긴 중심선이 서고 양옆 가지가 뻗어 사이에 넓은 검정이 남는다. 아래 入(들 입)은 더 적은 획으로 그 열림을 이어 간다. 더 내려가면 孝(효도 효)가 가로획과 세로 요소를 다시 결합한다. 이런 너비 변화가 뜻은 매끄러운 칭송문에 몇 차례 뚜렷한 시각적 멈춤을 만든다.
오른쪽 면 중간의 ‘白首方堅’, 흰 머리가 되도록 굳건하다는 구절에서 首의 위아래는 좁은 범위에 모인다. 方은 아래를 비스듬히 열고 堅은 조밀한 층을 이어 간다. 모두 모서리가 있지만 하나의 외형에 지배되지 않는다. 위비의 ‘방준’이라는 전통적 평도 시작, 끝맺음, 꺾임, 윤곽의 구체적 관계로 설명될 때 비로소 유용하다.
탁본은 돌에 새긴 면이 종이와 먹을 거쳐 나타난 형상이다. 흰 선 가장자리에 패임이 있고 검정에는 작은 흰 점이 끼며, 어떤 글자는 크게 닳거나 흐려졌다. 날카로움에도 끊김이 있는 이유다. 눈에 보이는 각은 형태 비교를 뒷받침하지만, 패임 하나에서 붓털과 압력과 속도를 복원하려면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우선 온전하게 읽히는 길이, 방향,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믿을 만하다.
네 줄 사이에서 넓은 글자도 길을 독차지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학교를 정비하고 농사와 양잠을 장려한 일을 찬양한 다음 은혜를 초목과 새와 물고기까지 넓힌다. ‘是使學校剋脩’는 그 결과 학교가 정돈되고 수리되었다는 뜻이다. ‘恩及泉木,禽魚自安’은 은혜가 샘과 나무에 미쳐 새와 물고기도 저절로 편안하다는 말이다. 통치의 성과를 넓고 질서 있는 세계로 그린다.
왼쪽 면의 木(나무 목)을 보자. 가로획이 좌우를 펴고 중심 세로획은 길며 삐침과 파임은 양쪽으로 내려간다. 같은 줄에는 조밀한 變과 恩, 획이 적은 及도 있다. 글자들은 대체로 줄을 따라 놓였지만 흰 선이 실제로 차지하는 면적은 크게 다르다. 木 주위 검정은 남는 자리가 아니라 글자가 펼쳐질 조건이다.
오른쪽 면 위의 心(마음 심)은 부분들이 떨어져 안팎의 검정이 통한다. 아래 目(눈 목)은 테두리가 더 닫혀 있다. ‘心目’이라는 하나의 말을 읽으면서, 형태는 흩어짐에서 둘러쌈으로 이동한다. 글의 뜻과 글자의 구조가 동시에 뚜렷해질 수 있다.
이 첩은 탁편을 잘라 한 면에 몇 줄씩 붙였다. 양면 사이 넓은 종이색 골은 장정에 속하며, 탁편 안의 유난히 곧은 세로 경계 중에도 자르고 붙인 결과가 있다. 지금의 네 줄 묶음으로 글자 간 거리는 볼 수 있으나 복원 없이 원비의 완전한 배치로 삼을 수는 없다. 여백의 옅은 글씨 역시 후대 독자의 판독문이라는 별도 층이다. 어려운 글자를 알려 주면서 이 첩이 사용되며 원문이 대조된 책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 형식에는 고유한 보기 리듬이 있다. 눈은 검은 직사각형으로 들어가 흰 글자 사이를 지나 종이 가장자리에 닿은 뒤 페이지를 넘긴다. 공공장소에 서 있던 긴 송덕비가 손 가까이 두고 반복해서 비교할 수 있는 부분들로 바뀐 것이다. 오늘날 학습자가 익숙하게 여기는 몇 글자는 이러한 물질적 변화를 거쳐 전해졌다.
찬사의 한 구절에서 다시 한 줄로

찬송문의 ‘春方’에도 春이 다시 나타난다. 조밀한 위와 작아진 아래가 서로 응답한다. 아래 方은 성기고 옆 줄의 體는 훨씬 조밀하다. 익숙한 형태가 새로운 상하좌우 속에서 다른 대비를 만든다.
왼쪽의 ‘高山仰止’는 《시경》에서 높은 산을 우러러본다는 존경의 표현을 빌렸다. 高 안에는 여러 테두리가 있고 山은 갑자기 간결해진다. 仰의 두 부분은 떨어지고, 마지막 止는 다음 줄 위로 옮겨 간다. 뜻은 위를 바라보게 하지만 종이에서는 밀도와 열림을 번갈아 거친 뒤 아래에서 왼쪽 위로 돌아가야 한다. 의미의 우러름과 실제 줄바꿈은 서로 비출 수 있다. 그렇다고 후대 장정을 거친 배치까지 북위에 글씨를 쓴 사람의 상징적 설계로 볼 수는 없다.
그림 1로 돌아오면 春秋는 그대로 있다. 다만 ‘기울다’, ‘각지다’, ‘위태롭다’, ‘안정적이다’라는 말에는 이제 가리킬 근거가 있다. 올라가는 가로획이 벌어진 사선과 만나고, 밀집한 곳이 옆의 열린 곳을 필요로 하며, 넓은 글자가 좁은 이웃과 함께 서는 방식이다. 서로 바꿔 쓸 찬사가 아니라 한 번의 관찰이 지닌 여러 면이 된다.
《장맹룡비》의 해서에서는 글자가 독립하면서 주위의 공간을 끊임없이 받아들인다. 사방을 닫아 버리지 않기에 설 수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 ‘웅건함’도 미리 붙인 기질이 아니라 획과 글자별로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
선택해서 더 읽기 | 흰 글자 곁에 남은 다른 시간
그림 3을 줄이면 먼저 리듬 있는 형태가 보인다. 확대하면 여백 판독문, 절단 경계, 글자의 손상이 나뉜다. 한 사진에 함께 있어도 서로의 내력은 다르다.
《나무에는 그 가물었던 해가 아직 남아 있다》는 SAE의 ‘인과의 아름다움’을 따라 과거가 영향을 받은 형상으로 현재에 남는 방식을 생각한다. 이 첩 앞에서는 한 걸음 더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다. 이 경계는 어떤 작업이 남겼을까? 돌에 새긴 글자, 종이의 접합, 나중의 판독문을 구분하면 탁본의 시간에도 층이 생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옅은 작은 글자들이다. 무엇이라고 읽는지 알려 줄 뿐 아니라 누군가 본문 옆에서 계속 읽었음을 보여 준다. 굵고 가는 형태가 함께 있는 종이를 보면서 탁본 뜨기, 장정, 원문 대조의 순서도 알아볼 수 있다. 내력은 검증 가능한 흔적으로 나타나므로 얼룩마다 비바람 이야기를 꾸밀 필요가 없다.
SAE 《판단력과 미학》 총론은 ‘광선’이라는 비유를 판단의 방향으로 이해한다. 여기서는 결구 분석을 다른 이름으로 바꾸지 않는다. 획을 읽은 뒤에도 그것을 담은 책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도록 돕는다.
판본·이미지·판독 안내
이 글은 다이토분카대학의 공개 디지털 이미지에 근거하며 현장 관찰 기록이 아니다. 네 그림은 모두 같은 DAITOB00043 첩에서 왔다. 직사각형 자르기와 비례 축소만 했으며 획 보충, 손상·인장 제거, 다른 탁본으로 결자 대체는 하지 않았다. 원비의 522년과 이 탁본의 미정 채탁 시기를 구분한다. 약 31×18.6cm는 첩의 크기다.
인용은 보이는 형태와 국립고궁박물원의 다른 탁본 贈拓000371 공개 판독문을 대조했다. 후자는 글 확인에만 사용하고 이미지 보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張先 같은 이름은 사진에서 논의한 형태를 유지한다. 필요한 구절을 풀이했으며 비문 전체 번역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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