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본에 관하여
이 판본에 대하여: 중국어 원작의 논지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롭게 쓴 독립 한국어판이다. 원문은 같은 페이지에서 간체와 번체로 읽을 수 있다.
이 시리즈에서 하려는 말부터 꺼내 놓자. 다섯 편의 글은 모두 이 한 가지 주장을 밀고 나간다.
각자의 자리가 타인의 관심에 따라 정해지는 제도 안에서 자기 몫을 지킬 수 있는지는, 그 제도가 마련해 준 것이 아닌 다른 갈 곳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곳이 좋은 곳일 필요는 없다.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마오마오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이고, 진시는 그 반대편의 사례다. 후궁에 사는 수천 명의 여인은 이 주장으로 설명되는 다수다. 첫 글에서는 가장 눈에 잘 띄는 사실부터 살펴보려 한다. 마오마오는 자신이 언제 나갈지 안다.
그녀는 팔려 들어왔다
성 밖 비탈에서 소녀 하나가 약초를 캔다. 열일곱 살. 유곽 거리의 작은 약방에서 양녀로 자랐으며, 약을 알고 독도 안다.
누군가 뒤에서 소녀를 붙잡아 팔아 버린다. 사들인 곳은 후궁이다.
작품은 이 일을 비극적인 사건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납치한 자들은 인신매매범이고, 그들은 돈을 받았다. 유곽 거리 사람들에게는 낯설 것도 없는 일이며, 정작 본인도 누구를 원망하는 데 힘을 쓰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후궁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하녀 신세다. 빨래하고, 짐을 나르고, 허드렛일을 한다.
그런데 그녀가 맨 먼저 하는 일은 얼굴에 주근깨를 그리는 것이다.
그 행동이 통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원래 있던 주근깨가 아니다. 직접 그려 넣고, 꼴도 조금 더 지저분하고 촌스러워 보이게 만든다.
흔히 이렇게 설명한다. 영리한 아이라서 제 능력을 감출 줄 알고, 이런 곳에서는 예쁜 얼굴이 화를 부른다는 것도 안다고.
맞는 말이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몸을 숨기는 전략이 이익이 되는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언제 이곳을 떠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마오마오의 계획은 첫날부터 정해져 있었다. 2년을 채운다. 그 시간을 버틴 다음 집에 간다. 그래서 날짜를 센다.
2년 뒤 떠날 사람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남의 눈에 들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전부 성가셔진다. 거기서 얻는 이익은 이곳에 남아야 누릴 수 있는데, 그녀에게는 무언가를 누리려고 이곳에 남을 생각 자체가 없다.
반대로 평생 여기서 살아야 할 사람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다.
똑같은 행동이 끝을 아는 사람에게는 자기보호가 되고, 끝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기포기가 된다.
이것이 논증의 첫걸음이다. 검증할 수도 있다. 다음 글에서 후궁의 다른 여인 몇 명을 놓고 확인해 볼 것이다.
공까지 감춘다
첫 번째 사건을 보면 이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
상급비인 교쿠요 비와 리화 비의 아이들이 모두 병을 앓는다. 마오마오의 경고가 양쪽에서 똑같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이후 리화 비의 아이는 숨진다. 궁에서는 저주 때문이라고들 한다.
마오마오는 원인을 알아본다. 백분이다. 비들과 시녀들이 매일 얼굴에 바르는 분에 납이 들어 있고, 아이를 안을 때 그것이 아이 입에 묻어 들어간다.
그녀의 해결 방식은 이렇다. 왼손으로 일부러 글씨를 못나게 써서 쪽지 하나를 만들고, 누군가 발견할 만한 곳에 끼워 둔다. 거기에는 해결책만 있다. 이름도, 설명도, 자신을 찾아낼 실마리도 없다.
문제를 해결하고도 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의 인품을 읽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앞서의 계산이 그대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공은 결국 보상으로 바뀐다. 승진하고, 상을 받고,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 셋 다 2년을 더 긴 시간으로 늘려 놓는다.
그녀는 원하지 않는다. 떠날 사람이니까.
승진은 계획의 좌절이었다
결국 쪽지의 주인은 밝혀진다. 진시가 그녀를 찾아내고, 마오마오는 하녀에서 교쿠요 비의 시녀로 승진해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확인하는 시식도 맡는다.
이 제도의 서열로 보면 몇 단계를 단숨에 건너뛴 승진이다.
그 소식을 듣는 그녀의 반응을 통해 작품은 분명히 판단한다. 그녀에게 이것은 골칫거리다.
기뻐하지 않는다. 이제는 숨을 수 없겠구나, 앞으로 더 귀찮아지겠구나, 집에 갈 날은 더 멀어지겠구나. 그녀가 하는 계산은 그것이다.
중요한 차이다. 이 반응 하나가 그녀를 이곳의 거의 모든 사람과 갈라놓는다. 후궁의 움직임은 모두 위를 향한다. 총애를 다투고, 자리를 다투고, 황제가 누구의 처소를 찾을지 다툰다. 궁에 들어온 직후 마오마오가 바라던 방향은 오히려 밖이었다.
많은 사람이 위를 올려다보는 곳에서, 그녀는 우선 문을 보고 있다.
그렇다고 48화 내내 나가고만 싶었던 것은 아니다. 12화에서는 마오마오 자신이 후궁에 남기를 바란다. 그 뒤의 선택이 오히려 이 글의 요지를 분명하게 한다. 밖이 있다는 것과 언제나 떠나고 싶다는 것은 다르다. 남더라도 자기 기준까지 모두 넘겨주지 않을 발판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손을 내미는가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면, 왜 교쿠요 비의 아이 일에 끼어들었을까?
작품은 그녀에게 해명시키지 않는다. 다만 보여 주는 것은 명확하다. 그녀는 원인을 알았고, 아이는 눈앞에 있었다.
이것은 손익을 따져 내린 결정이 아니다. 개입의 대가를 미리 계산하지 않았다. 나중에 계산하기는 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몸을 숨길 수 있을지를.
48화 동안 궁과 맺는 관계는 달라진다. 되풀이되는 것은 똑같은 탈출 계획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으려는 마음과 그냥 두지 못하는 마음 사이의 긴장이다. 손을 내밀 때마다 숨어 지내려던 계획을 조금씩 허물고, 그다음에야 허물어진 부분을 어떻게 메울지 다시 계산한다.
후반부에 이르면 숨어 지낼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다. 궁에서 이름깨나 있다는 사람은 모두 그녀를 안다.
그래도 그녀는 매번 손을 내민다.
모순이 아니다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닌가? 떠나려는 사람이 왜 거듭 스스로 얽혀 드는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처음의 주장이 쓸모를 드러낸다.
손을 내민 대가는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그녀가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주는 것은 시간이지 자기 자신이 아니다. 승진하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사건에 휘말린다. 그런 일들이 그녀의 시간을 차지할 수는 있어도 그녀가 누구인지를 정하지는 못한다. 그녀를 규정하는 것은 이곳에 없기 때문이다.
달리 갈 곳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곳의 일에 휘말리는 것과 이곳의 일부가 되는 것이 같은 일이 된다. 무엇을 얻든 반드시 여기서 돌려받아야 하므로, 들이는 모든 것은 이 제도에 투자하는 밑천이다.
마오마오는 다르다. 시간은 여기에 들이지만, 밑천은 다른 곳에 있다.
그렇다면 후궁에 사는 수천 명의 여인들은 어디에 밑천을 두고 있을까?
다음 글에서 살펴보자.
이 글은 TV 애니메이션 1·2기, 총 48화(2023~2025)를 대상으로 한다. 휴우가 나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캐릭터 원안은 시노 토우코, 애니메이션 제작은 OLM / TOHO animation STUDIO가 맡았다. 2026년 10월 2일 방영을 시작하는 3기와, 원작자 휴우가 나츠가 스토리 원안을 맡아 2026년 12월 11일 개봉하는 오리지널 극장판은 이 글의 논의에 포함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은 계속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