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일하기 · 06 · 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글쓰기의 마지막 5퍼센트
‘마지막 5퍼센트’는 실제 분량이 아닙니다. 매끈한 언어가 저자 자신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 지점을 가리킵니다.
AI는 이미 문법만 고치는 도구가 아닙니다. 논증을 제안하고 문체를 흉내 내고 장을 재배치하며, 연결 문장을 보탭니다. 원고 속에 줄곧 숨어 있었던 듯한 결말도 내놓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단순히 ‘보조’라고만 계속 부르면 벌어지는 변화를 작게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문장 대부분을 기계가 제공한 글에도 글자 수로 셀 수 없는 마지막 몫은 남습니다. 일단 ‘마지막 5퍼센트’라고 불러 봅시다. 사람이 꼭 5퍼센트를 썼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완성된 글은 끝내 누군가 ‘그렇다, 이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라고 말해야 하는 지점에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너무 일찍 완성될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첫 생각만으로는 충분히 참되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문장이 앞으로 나가지 않고, 예가 아무리 해도 들어맞지 않으며, 좋아하던 대목이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가정에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어려움은 글쓰기 옆의 잡음이 아닙니다. 때로는 글쓰기 자체입니다.
AI는 어려움을 풀어 주는 데 능숙합니다. 문장을 완성하고 다리를 놓으며, 충돌하는 두 문단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정말 빠져 있던 생각을 찾게 도와주는 때도 있습니다. 다른 때에는 거기에 다리가 없었다는 사실을 감출 뿐입니다.
위험한 것은 너무 일찍 완성되는 일입니다. 언어가 다 갖추어진 듯 들리면 저자는 문제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글에는 결말이 생겼는데, 생각은 다른 곳에서 먼저 끝나 버렸습니다.
마지막 구간은 교정이 아니다
사람의 검토는 흔히 품질 관리로 설명됩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상투어를 지우며 어조를 고치는 일입니다.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진짜 마지막 구간은 초안이 그 검사를 통과한 다음에야 시작됩니다.
정돈된 판본을 읽고 묻습니다. 글이 어디에서 가장 확신에 차는가? 그 확신에는 근거가 충분한가? 어느 문단이 나를 보호해 무언가를 인정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가? 진지한 독자라면 무엇에 반대할 이유가 가장 클까? 이 글이 정말 누군가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면, 어떤 변화를 내가 일으킨 것으로 인정할 생각인가?
저자의 질문입니다. 글이 효과적인지만 묻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작동하는지 묻습니다.
글쓰기에서 마지막으로 사람에게 남는 것은 ‘손으로 쓴 문장’의 할당량이 아닙니다. 이 말을 내 말로 받아들이는 일을 누구도 대신 끝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독창성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AI 앞에서 순수성의 상상으로 돌아가는 작가도 있습니다. 값진 말은 모두 고립된 머릿속에서 아무 영향 없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글쓰기는 원래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장르와 리듬, 이야기와 논증, 기억 속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물려받습니다. 독창적이라는 것은 출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받아들인 모든 것이 선택하고 거절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삶을 거쳤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영향을 조합할 뿐 아니라 그 조합을 책임집니다. 그래서 편집을 많이 거친 책도 어떤 사람의 작품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입력한 글인데도 아무도 없는 듯 느껴질 수 있습니다.
AI는 저자를 없애기보다 저자가 누구인지 묻는 문제를 더 피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제법 쓸 만한 문장을 만드는 값이 싸질수록 진짜 귀해지는 것은 문장이 아닙니다. 어떤 가능성을 남길 가치가 있는지, 그 결정 때문에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정하는 일입니다.
진짜 ‘마지막 5퍼센트’ 점검
초안이 이미 아름다워진 다음, 아름다움과 상관없는 수정을 한 번 더 합니다.
- 글의 진짜 주장을 표시하고, 원문을 보지 않은 채 한 문장으로 다시 씁니다.
- 누구에게나 만들 수 있을 법한 문단을 찾아, 이 상황에만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넣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지웁니다.
- 가장 강한 반론을 찾습니다. ‘대응했다’고 끝내지 말고, 구조를 바꾸어야 할 반론이면 실제로 바꿉니다.
- ‘따라서’, ‘명백히’, ‘반드시’를 하나씩 살피고, 누가 그 도약을 승인했는지 묻습니다.
- 거친 곳을 매끈하게 고치면 정직한 불확실성까지 사라지는 경우에는 그대로 둡니다.
이 검토로 몇 줄만 고칠 수도 있고 초안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가치는 수정량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성된 형식이 적어도 한 번은 그 위에 이름을 올릴 사람의 검토를 온전히 거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설명일 때도 있다
얼마나 드러내야 하는지는 글에 따라 다릅니다. 일상적인 내부 메일에 긴 제작 경위를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연구와 보도, 교육과 평가, 개인적인 증언에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AI가 글에 손댔느냐가 아닙니다. 그 역할을 숨기면 독자가 증거와 전문성, 경험과 책임이 어디서 왔는지 오해하게 되느냐입니다.
설명도 만능은 아닙니다. ‘이 글에 AI를 사용했다’는 말은 너무 넓어서 구두점만 고쳤는지, 논점을 만들었는지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협업 과정을 말하려고 해 보면 저자는 자신이 실제 무엇을 맡고 있는지 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타자 기록이 아니라 의미에 서명하기
‘마지막 5퍼센트’는 비효율적인 노동을 옹호하는 말이 아닙니다. 기계에 중복을 지우게 해도 되고, 구성 두 개밖에 떠오르지 않을 때 먼저 열 개를 달라고 해도 됩니다. 나보다 더 좋은 문장을 썼다고 인정해도 됩니다.
그런 다음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 말뿐 아니라 그 방향에도 서명할 수 있을까? 이 주장이 왜 여기 있는지 아는가? 틀이 배제한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가? 생략을 설명할 수 있는가? 글의 효과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드러내면 다시 쓸 의향이 있는가?
서명은 모든 글자를 손으로 만들었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언어가 행동이 되기 시작할 때, 그곳에 여전히 사람이 있다는 말일 뿐입니다.
출처와 읽기 안내
Self-as-an-End의 관점을 일반 독자에게 독립적으로 적용한 산문입니다. 한국어판은 공개된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다시 썼습니다. 원래 영어판도 영어 독자에게 맞춰 독립적으로 썼으며, 중국어 간체와 번체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여덟 편에 공통된 이론의 입구는 SAE 방법론 제8편 「Human–AI Collaboration」입니다. 서로 다른 원논문 여덟 편을 각각 옮긴 글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