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일하기 · 04 · 선택과 감당
AI는 선택지를 주지만, 내 대신 걸지는 못한다
누군가 선택이 가져올 대가를 감당하겠다고 할 때 조언은 결정이 됩니다. 그 부분은 지시문으로 생성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거의 모든 선택을 AI에 비교해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직장, 세 도시, 아이를 가질지, 관계를 끝낼지, 실명으로 발표할지까지 말입니다. 표를 만들고 득실을 나누고 질문을 던져 줍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선택지를 찾아내기도 합니다.
상황을 보는 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동시에 아주 현대적인 마비를 만들기도 합니다. 선택지들은 점점 말을 잘하는데, 정작 선택하는 사람은 점점 자리를 비웁니다.
조언은 결과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아무리 똑똑한 조언도 아직 결정은 아닙니다. 차이는 신비롭지 않습니다. 결정은 결정한 사람의 삶을 바꿉니다. 안정된 직장을 떠나면 불확실한 가운데 눈을 뜨는 사람은 나입니다. 남으면 시도하지 않은 일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진실을 말하면 그 진실을 들은 사람과의 관계에 계속 머물러야 합니다.
모델은 그 대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대가를 실제로 치르는 처지에 놓이는 것은 아닙니다. AI를 낮춰 보는 말도 아니고 미래의 모든 인공 시스템이 어떻게 될지 예언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이 대화의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출력은 내 월세와 몸과 약속을 물려받지 않고, 내 답을 기다리는 사람을 마주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너라면 어떻게 할래?’는 마지막 질문으로 가장 유용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모델에는 반드시 어떤 일을 하도록 몰아가는 자기만의 유일한 처지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나은 질문은 내가 어떤 처지에서 행동하게 될지 알아보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선택지를 늘리는 것이, 선택을 미루는 일이 될 때
선택이 아플 때에는 한 번 더 비교하고 싶어집니다. 시나리오를 더하고 가중치를 바꾸고 다른 모델에게 묻습니다. 마침내 한쪽 길을 손실 없는 선택으로 만들어 줄 사실을 찾습니다.
정말 정보가 부족한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이미 정보 문제가 아닌 때도 있습니다. 양쪽이 어떤 길인지 다 알면서,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은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능도 진지한 삶을 위해 모든 문을 영원히 열어 둘 수 있는 길을 설계해 주지는 못합니다.
AI는 미루기를 유난히 편하게 해 줍니다. 유용한 관점을 하나 더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답도 헛것이 아니니 미루는 일도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말끔하게 정리한 고려 사항 천 개가 그저 결정의 주변을 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모두 사라져야 선택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불확실성을 안고 계속 살겠는지 내가 말할 수 있을 때 내 것이 됩니다.
결론을 주는 조언자보다, 나를 돌아볼 증인으로
결론만 요구하지 말고 내가 남긴 증거를 정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한 달 어떤 질문으로 거듭 돌아왔을까요? 남들 앞에서는 작게 말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자꾸 커지는 대가는 무엇일까요? 각 선택은 어떤 약속을 어기라고 할까요?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느 쪽이 여전히 중요할까요?
그런 다음 답의 비대칭을 살펴봅니다. 모든 대가를 똑같이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후회는 슬프기만 하지만 어떤 후회는 배신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위험은 크기 때문에 무섭고, 어떤 위험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일기와 메모, 지난 대화를 주면 AI는 이런 패턴을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패턴을 곧장 명령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모순되기도 하고, 옛 글에는 이미 떠나온 내가 기록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과거에 대한 모델의 해석은 계속 살아갈 사람이 검토할 하나의 해석입니다.
다른 사람은 결정표의 변수가 아니다
개인의 선택이 정말 개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뭅니다. 승진으로 가족 전체가 이사해야 할 수 있습니다. 퇴사는 동료에게 부담을 남길 수 있습니다. 관계에 머무는 것이 한쪽의 안정을 지키면서도 다른 쪽이 겪는 부정직함을 더 오래 끌 수도 있습니다.
결정 도구는 이 사람들을 쉽게 요인으로 만듭니다. 배우자의 선호, 팀에 미칠 영향, 부모의 기대처럼 말입니다. 편리한 언어입니다. 하지만 요인은 답하지 않고, 사람은 답합니다.
결정하기 전에 물어보세요. 영향을 받는 사람 중 누구와는 예측만 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요? 배우자가 무슨 말을 할지 자신 있다고 여기거나, 동료는 ‘분명 이해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AI가 대화를 준비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어도 상대의 실제 답을 불필요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고 삶의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도 아닙니다. 머릿속 모델 안에서 상대의 입장까지 미리 써 버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는 내가 빠뜨린 대가를 알려 주거나 둘 다 몰랐던 길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삶을 내 선택의 재료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선택은 여전히 내 것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서명은 여전히 내 몫이다
중대한 결정에 AI를 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좋은 모델은 친구보다 덜 비위를 맞추고, 당황한 나보다 체계적이며, 지친 머리보다 여러 가능성을 함께 남겨 둘 수도 있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나를 가장 옳아 보이게 하는 이야기를 공격하고, 결과를 미리 그려 보는 데 쓰세요.
그런 다음 표를 닫습니다.
일인칭으로 결정을 적습니다. ‘나는 이렇게 하기로 한다. 이유는…….’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서 다시 생각할지도 적습니다. 이 문장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그것도 정보입니다. 빌려 온 말처럼 들리면 계속 생각합니다.
AI는 지도 위에 많은 길을 그려 줍니다. 내가 기꺼이 걸려는 것이 있어야 그중 한 길이 한 사람의 삶이 됩니다. 생성된 조언으로 이 지점을 대신 건널 수는 없습니다. 모델이 쓸모없어서가 아닙니다. 쓸모가 있다는 것과 자기 삶을 써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은 원래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출처와 읽기 안내
Self-as-an-End의 관점을 일반 독자에게 독립적으로 적용한 산문입니다. 한국어판은 공개된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다시 썼습니다. 원래 영어판도 영어 독자에게 맞춰 독립적으로 썼으며, 중국어 간체와 번체에는 전문이 있습니다. 여덟 편에 공통된 이론의 입구는 SAE 방법론 제8편 「Human–AI Collaboration」입니다. 서로 다른 원논문 여덟 편을 각각 옮긴 글은 아닙니다.